구례오산
전남 구례군 문척면 죽마리에 있는 531m의 아담한 산. 작지만 정상에 오르면 발 아래로 굽이치며 흐르는 섬진강과 구례읍의 전경, 멀리 무등산쪽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지리산 연봉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산에 들면 산을 모르고 산을 벗어나면 그 산이 보인다는 말이 제대로 어울리는 그야말로 지리산 전망대다. 수십개의 바위기둥과 절벽이 있어 소금강산이라고 한다.
정상에는 사성암 암자를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오산이 자랑하는 12비경이 있다. 사성암은 신라시대 연기조사가 세웠다고 하며 원효, 도선, 진각 등 4성인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이름지었다고 한다. 사성암 뒤편엔 뗏목을 팔러 하동으로 내려간 남편을 기다리다 지쳐 세상을 떠난 아내와, 아내를 잃은 설움에 끝내 숨을 거둔 남편의 애절한 전설이 깃든 뜀 바위가 있다.
1987년에 나온 『구례군지』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백운산의 한 지맥이 구례읍을 향하여 북향으로 거슬러 올라가다 섬진강변에 우뚝 솟 아 멈추어선 오산은 큰 산은 아니지만 기암과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을 뿐 아니라 발 아래 문강청류(汶江淸流)가 산자락을 크게 감고 굽이돌아 흐르고 있기 때문에 산과 강 의 조화로 경관이 아름다우며 정상에서 바라보면 굽이쳐 흐르는 청류와 강변의 백사장 과 넓은 구례평야와 아득히 보이는 지리연봉이 한눈에 들어와 전망이 배우 수려하다.
정상에는 사성암과 사성암이 남북으로 절벽을 끼고 자리하고 있으며 동태(東台) 절벽밑에 도선국사가 조각(爪刻)했 다는 거대한 미륵불상이 새겨져 있는 영자태(影子台)의 고적이 있다.
◎ 사성암
오산(해발 542m) 정상에 있다. 사성암은 『신증동국여지승람』이나 송광사 제6세인 『원감국사집』에 사성암과 관련된 내용이 기록되고 있다. 즉 연기,원효,도선,진각 등 네 성인이 수도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란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고, 마애여래입상과 53불(35불이 현존)이 있다.
◎ 사성암 마애여래입상
이 마애불은 사성암에서 약간 내려와 약 50m 남쪽으로 돌면 높이 20m가 넘는 벼랑의 암벽이 ㄷ자형을 이루고 있으며 그 안쪽면에 음각으로 새겨진 여래입상이다.
주형거신광에 두광을 나타내고 있는 이 마애불은 소발의 민머리에 육계가 솟아있고 상호는 원만상으로 눈과 양미간, 코와 입 등이 선각으로 간략화되긴 하였으나 그 기법이 옛형식을 지키고 있다. 목에 삼도(三道)가 보이며 수인(手印)은 오른손을 들어 중지를 잡고 있고 왼손은 손가락을 벌려 가슴 앞에 대고 있는데, 아미타수인으로 보인다. 법의는 통견인데 전체적으로 파상문을 이루고 있어 사실적인 의도가 엿보인다. 특히 군의자락 밑으로 묘사되는 발등의 표현은, 양각에서 오는 볼륨감이 없는 탓도 있겠지만 다소 도식적인 면을 감출 수가 없다. 이러한 기법은 아마도상의 감각을 실제바위에 새기면서 치룰 수밖에 없는 과정의 하나라 하겠다. 게다가 두광에서 보인 불꽃무늬, 불신을 중앙으로 하여 대칭되게 새긴 거신광의 인동문은 매우 인상적이다.
이 마애입상은 비록 음각이지만 군의에서 나타난 파상문, 발등의 표현에 따른 사실적인 기법, 상호에서 풍겨주는 인상 등이 고려시대에 조성된 다른 불상들 보다는 사뭇 우수한 면이 보이고 있다.
조성연대는 나말여초인 10세기초경으로 추정된다.
(총고 390cm, 신고 321cm, 두고 58cm, 안고 47cm, 어깨폭 80cm,
두광폭 96cm, 신광 174cm)
◎ 사성암 53불(35불 현존)
이 53불은 원래부터 사성암에 봉안된 것은 아니고 인근에 있는 곡성 태안사에서 옮겨왔다고 한다. 김경례 노보살의 말에 의하면 본인이 열여덟살에 화엄사에 들어갔다가 그로부터 3년후인 스물한살에 사성암으로 옮겨왔는데 그때 이미 53불이 봉안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김경례보살이 사성암으로 옮겨진 연대가 1930년대 후반경으로, 이때 이미 53불이 태안사에서 옮겨 왔다고 하니 1920년대쯤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 이 53불이 왜 태안사에서 옮겨진 것인지 그 사유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다.
이들 53불은 현재 35불밖에 없다. 높이와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큰불은 높이가 52cm정도, 작은불은 36cm이다. 나발의 머리에 육계가 보이고 전면에는 계주가 뚜렷하다. 법의는 통견으로 U자형이며 수인은 대부분 향마촉지인을 결하고 있으나 어떤 불은 합장한 예도 있다. 몸체에 비해 무릎의 폭이 넓으며 어깨가 좁고 쳐진 상태여서 허리가 꾸부정하게 보인다. 재료는 요사이 흔히 사용되는 석고가 아니고 그 무게가 무거운 것으로 보아 돌가루와 회를 섞어 제조한 것이 아닌가 한다. 조성연대는 19세기말∼20세기초경(일제초기)으로 추정된다.
구례군청 홈에서 재편집
교통
1) 구례에서 중마리행 버스 이용[06:40~18:20, 3회 운행/20분 소요]
2) 구례에서 택시 이용시 15분 소요( 3000원 정도 )
도로안내
1)서울방면 : 서울 - 대전 - 전주 - 남원 - 동림교 - 송치리(또는 승사교 앞) -19번 국도 - 2km - 밤재터널 - 18km - 구례읍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서 우회전 - 중마리
2) 부산방면 : 부산 - 남해고속도로 - 120km - 하동 - 19번 국도 - 12km - 하동읍 - 19번 국도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서 우회전 - 중마리
3) 광주방면 : 광주 - 호남고속도로 - 곡성 - 9.5km - 곡성읍 -17번 국도 - 15.0km - 압록 - 17번 국도 - 8.0km - 구례구역 - 18번 국도 - 5.5km - 구례읍 - 861번 지방도 - 문척교 건너서 우회전 - 중마리
사성암 연락처: 061-781-5463
전남 구례군 섬진강가에 솟아있는 오산은 지리산을 마주하고 있는 해발 531m의 호릿한 산으로 자라 모양을 하고 있으며, 높지도 험하지도 않고 비경이 많아 가족동반이나 단체 소풍 코스로 사랑을 받아왔으며, 죽연마을에서 산오름을 시작하며 오르는중 산위를 바라볼라치면 아슬아슬한 감에 작대기라도 가지고 올라가서 떠 밭히고 싶은 생각이 든다.
제비가 제비집을 지어 놓았는지 사람이 집을 바위에 붙여 놓았는지 바위벼랑에 아슬하게 붙어있는 집이 보인다. 고개를 뒤돌아 아래를 내려다 보면 섬진강물이 걱정을 말라는듯이 아무말이 없이 굽이돌아 흐른다.
정상에서 북녘을 바라보면 섬진강 건너 저멀리에 솟아있는 지리산이 한눈에 쏙 들어온다.
정상에는 서기 582년 연기조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암자가 있는데 원효, 도선, 진각, 의상대사 등 네성신이 수도를 하였다 하여 사성암이라 불리워지고 있으며, 이 사성암을 중심으로 풍월대, 망풍대, 배석대, 낙조대, 신선대 등 12 비경이 일품이다.
등산코스
각금마을 -> 밤나무단지 -> 사성암 -> 정상 -> 자래봉 -> 마당재 -> 571봉 -> (둥주리봉) -> 마고마을 : (4시간)
문화재(명승지)
사성암 : 1984년 2월 29일 전라남도문화재자료 제33호로 지정되었다. 구례읍에서 약 2km 남쪽인 죽마리 오산(鰲山) 꼭대기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원래 오산암이라 불렀는데, 544년(성왕 22) 연기조사가 처음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성암 사적(四聖庵史蹟)》에 4명의 고승, 즉 원효(元曉)·도선국사(道詵國師)·진각(眞覺)·의상(義湘)이 수도하였다고 하여 사성암이라 부르고 있다.
교통
88올림픽고속도 남원나들목 -> 남원 -> 구례 ->구례읍내에서 문척교를 건너 하동방면 861번 지방도로 진입하여 3분 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각금마을로 들어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이길로 각금마을
호남고속도 서순천나들목 -> 17번국도(구례방면) -> 구례 -> 구례읍내에서 문척교를 건너 하동방면 861번 지방도로 진입하여 3분 정도 가다보면 우측으로 각금마을로 들어가는 포장도로가 있다. 이길로 각금마을
대중교통
구례 시외버스공용정류장에서 동해행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각금에서 내린다.
첫댓글 우와앙.... '구례 오산'에..가고잡다.... 근데요.... 야간벙개함 하자....5월 4일이 좋겠네..... '선들메'님 나비암 함 가입시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