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차다
이정호
손목에 시계가 하나 생겼다.
딸아이가 신혼여행에서 돌아오던 날, 현관에 서서 나한테 직접 채워줬다. 딸깍. 버클 잠기는 소리가 났다. 나는 그 소리에 아무 말도 못 했다. 딸은 내 손목을 잠깐 두 손으로 감쌌다가 놓았는데, 그 온기가 사라지고 나서도 한참 동안 거기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결혼식 날을 떠올리면 이상하게 행진 길 생각이 먼저 난다.
짧았다. 그렇게 짧은 줄 몰랐다. 딸 손을 잡고 들어가면서 나는 웃고 있었는데, 웃으면서도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아이가 열이 펄펄 끓던 밤에도 이 손이었는데. 운동회 날 넘어지고 입술 꽉 깨물면서 울지 않겠다고 버티던 아이가 이 손이었는데. 그런 생각들이 걸음마다 치고 올라왔다. 나는 그걸 누르면서 걸었다. 혼주가 그 자리에서 울면 안 되니까. 아버지란 그런 것이니까.
신랑 손에 딸 손을 얹어줬다.
그리고 돌아섰다. 몇 걸음이었을까. 짧은 거리인데 왜 그렇게 멀게 느껴지던지. 자리에 앉아서 앞을 보는데 눈이 뜨겁더라. 나는 괜히 천장을 봤다.
집에 돌아왔더니 녀석 방문이 열려 있었다.
들어가지 않았다. 문 앞에서 한참 봤다. 짐이 다 빠진 방은 생각보다 넓었다. 그 넓음이 불편했다. 대학 기숙사 보낼 때는 이러지 않았다. 방학이면 돌아오는 방이었으니까. 그런데 지금 이 비어 있음은 성격이 달랐다.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아주 조용한 종류의 달라짐이었다.
나는 불도 안 켜고 거실에 앉았다.
그러다 별 이유 없이 부모님 생각이 났다.
결혼식에 기어이 오시겠다던 부모님. 아버지는 걷는 것도 불편하신데 그날 꼿꼿이 앉아서 식장을 다 지켜보셨다. 나는 그때 바빠서, 무슨 생각으로 오신 건지 깊이 생각 못 했다. 그냥 오고 싶으신 거라고만 했다.
그런데 지금, 이 빈방 앞에 서 보니까 알 것 같다.
부모님은 결혼식을 보러 오신 게 아니었다. 나를 보러 오신 거였다. 아이 하나를 길러서 세상에 내보내는 사람이 된 아들을. 그 얼굴을 보러 오신 거였다. 그리고 그 눈 속에는 내가 영영 볼 수 없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내가 열이 나던 밤, 내가 운동회 날 넘어지던 것, 내가 수험생이던 시절 굽어 있던 어깨.
나는 그걸 한 번도 헤아려본 적이 없었다.
한 세대가 그냥 흘렀는데, 나는 그게 흐르는 줄도 몰랐다.
초등학교 때 녀석이 상장을 들고 왔던 날이 있었다. 별거 아닌 상이었는데 현관에서부터 "아빠!"하고 부르며 뛰어왔다. 나는 별거 아닌 척 받아봤는데, 혼자 있을 때 다시 꺼내봤다. 그게 뭔지 모르겠다. 부끄러워서 숨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혼자 보고 싶었다.
중학교 때는 사물놀이 사진을 가져왔다. 장구채 쥔 손이 작았다. 그 사진도 지금 어딘가에 있을 텐데.
고등학교 때는 동아리에서 만든 영상을 보여줬는데 제목이 '아빠'였다. 나는 다 보고 나서 "잘 만들었네" 한마디했다. 그게 다였다. 사실은 말이 안 나왔다. 이 녀석이 이런 것도 만드는구나, 그것보다는 이 녀석이 나를 이렇게 보고 있었구나 싶어서. 아버지는 그런 순간에 웃고 있어야 하니까, 나는 그냥 웃었다.
수능 끝나고 밤늦게 들어오던 녀석. 어깨가 왜 그렇게 작아 보였을까.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그냥 어깨에 손을 얹었다. 녀석도 아무 말 안 했다. 그 침묵이 지금도 따뜻하게 기억된다. 이상한 일이다. 아무것도 안 한 기억이 이렇게 선명하게 남아 있다니.
가족이란 게 뭔지 나는 잘 모른다.
설명할 수 있는 것 같다가도 막상 말로 하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오래 같이 있던 사람들인데, 그 오래라는 것이 어느 순간 몸에 배어 있다. 딸아이가 아팠을 때 나도 어딘가 아팠고, 녀석이 웃으면 나도 이유 없이 기분이 좋아졌다. 그게 의지로 되는 게 아니었다. 그냥 그렇게 되어 있었다.
그러니까 건네준다는 게 생각보다 훨씬 큰 일이다.
내가 신랑 손에 딸 손을 얹어줄 때, 나는 그냥 손 하나를 건넨 게 아니었다. 스물여덟 해가 건너간 거였다. 그리고 부모님이 나를 세상에 내보낼 때도, 그분들은 그냥 아들 하나를 내보낸 게 아니었다. 내가 가늠도 못 할 세월을 건네신 거였다.
나는 그걸 받아놓고 한 번도 묵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시계를 들여다본다.
초침이 간다. 쉬지 않고, 아주 작은 발걸음으로. 유럽 어느 골목 진열대 앞에서 딸 녀석이 이걸 골랐을 것이다. 어떤 얼굴로 골랐을까. 아버지 손목에 채워줄 거라고 생각하면서 뭘 느꼈을까.
나는 그게 자꾸 궁금하다.
물어볼 수는 없다. 그런 걸 물어보는 사이가 아니라서가 아니라, 물어보지 않는 편이 더 오래 간직할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냥 모르는 채로 두고 싶다. 딸이 아버지를 생각하며 골랐다는 것만 알면 충분하다.
초침은 지금도 간다.
나는 불 꺼진 거실에 앉아서 손목을 들여다본다. 시계 안에 뭔가가 있는 것 같다. 딸의 어린 시절이, 부모님의 주름이, 내가 미처 알아채지 못하고 흘려보낸 날들이. 다 거기 들어 있는 것 같다.
시간이란 게 원래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흐를 때는 몰랐다가, 손목에 차고 나서야 비로소 느껴지는 것.
첫댓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그래서 '가족' 이고 피붙이인 듯합니다.
가족 만큼 세상을 살면서 단단한 관계가 또 있을까 싶습니다.
열심히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시간 안에 있을 때는 모르고
시간 보낸 후에야 알아지는 사랑이 부모자식인가 봅니다.
시간 잘 차시고
시간을 잘 보시길.
손목에 얹을 때 비로소 느껴지는 감각, 거기에 시간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가족에 대한 사랑에 가슴 뭉클해집니다. 작가님. 행복한 주말보내십시오.
감사합니다. 가족은 시작이자 끝입니다. 즐거운 주말 되세요.^^
딸을 보내고 난 아버지의 애틋한 심정이
읽는 이에게 와 닿는 것 같습니다.
신랑 손에 딸의 손을 얹어주게 되는 날이 언제 올 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 지는군요.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누구나 비슷한 패턴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언젠가 그날은 올 것입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가정으로 피어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