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세에서 깨달음을 성취한 독신녀
아찬 나에브는 미얀마 국경 근처에 있는 태국의 한 지방 총독 가문
에서 출생했다. 35세에 그녀는 아찬 파투타 우 비라사의 지도하에 불교
심리학과 지혜 명상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2년 후에 그녀는 가르침을
펴기 시작했고 많은 사원에서 연구와 명상을 위한 수도원을 세웠으며,
마침내 왕실의 후원을 얻어 방콕에서 불교 연구 및 정신 복지재단인
왓스랏케트를 설립했다. 현재 그녀는 이 세상을 타계했지만 그녀의 제
자들은 지혜 명상 수련, 포교를 위한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현대 도시 방콕의 심장부에 위치한 조용한 섬과 같은 왓스랏게트
의 아찬나에브를 방문하면 그녀의 맑은 법문을 직접 들을 수 있었다.
그녀는 방문객에게 편안히 앉아서 움직이지 말라고 한다. 물론 잠시
후 자동적으로 자세를 바꾸려고 한다.
“기다리시오, 그대로. 왜 당신은 움직이려고 하는가?
아직 움직이지 마시오.”
아찬 나에브는 우리들 자신의 몸에서 고통의 분명한 원인을 직접 지적
한다. 만약 우리가 조용히 앉아서 움직이지 않으려고 애쓰면, 결국 고통은
증대하여 자세를 바꾸어야 한다. 온종일 일어나는 우리들의 대부분 모든
제 3 장 아찬 나에브 (Achaan Naev) 181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행동은 이와 동일한 유형을 따르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면 위와 방광의
고통을 덜기 위하여 식사를 하고, 서 있는 고통을 덜기 위하여 자리에
앉는다. 또한 복잡한 마음의 고통을 다른 곳으로 전환하기 위하여 책
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거나 얘기를 하며, 그리고 나서 우리는 또 다
른 고통을 덜기 위해서 다시 움직인다. 각각의 움직임과 행동은 행복
을 가지고 오는 것이 아니고 육체를 가지고 태어남으로써 어쩔 수 없이
갖게 되는 고통을 덜기 위한것이다.
그녀의 방법은 우리들의 일상생활과 행동에서 고통의 원인과 결과를
보게 하는 단순한 접근법이다. 이과정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고통을
종식시키고 붓다의 행복으로 바로 들어가는 길이다.
아찬 나에브는 달마에 관한 중요한 사항들을 체계적으로 언급했다.
우선, 수행하기 전에 올바른 개념적 이해를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중도를 확립하는 것은 쉽지 않다고 그녀는 말한다. 올바른 이해와 알
아차림 없이 지혜는 계발되지 않는다. 이러한 올바른 이해는 몸과 마음
을 정확하게 아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어떻게 욕망으로부터 오염되는
가를 아는 것이며, 현재 일어나고 있는 대상을 분명하게 알아차리는 정
확한 수련과 오직 평온함(정신통일)만을 계발하는 잘못된 수련법과 구
별할 줄 아는 것이다.
그녀는 지혜 명상과 선정 명상의 구분을 강조한다. 선정과 특별한 수행법
에 대한 어떠한 집착이라도 지혜 계발에 방해가 된다. 지혜는 현재 순간의
몸과 마음을 직시함으로써 온다. “강렬한 노력과 특별한 집중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대신 우리는 우리들의 모든 상황에서 일어나는
몸과 마음을 바로 직시하여야 한다. 우리들은 또한 어떻게 몸과 마음이
분리되는가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비어 있는 현상을 보게 될 것이다.
지혜 수련에 있어서 지혜가 일어나는 것은 몸과 마음을 직시하는 것
을 통해서만 일어난다고 아찬 나에브는 말한다.
그녀는 불교의 독특성을 강조하고 모든 지혜에 이르는 유일한 방법인
4념처에 중점을 둔다. 그녀는 특별한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단지 현재
순간에, 특히 몸과 마음을 관찰함으로써 그리고 우리가 행동할 때 왜
움직이는가를 관찰하는 것만이 가장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아찬 나에브는 우리가 지혜를 얻기 위하여 이해심을 가지고 경청하
도록 격려한다. 그녀는 말한다.
“이해를 가지고 듣는 것은 어떠한 선입견이나 견해없이 듣는 것을
의미한다. 만약 우리가 폐쇄된 마음으로 듣는다면, 선입견이나 견해
가 어쩔 수 없이 그 본질을 감추게 된다. 그렇게 될 경우 우리는 지혜
를 달성하는 것에 실패하게 된다. 편견을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
야 하며 이전에 우리들 스승이 가르쳤던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더군다나 스승에 관해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그가 누구인지, 그
가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는지 없는지 그에 대한 어떠한 편견도 가져
서는 안된다. 개방된 마음으로 듣고 설해진 내용이 합리적인지 그리
고 그 설법이 우리를 진리로 이끌어 가는지를 알도록 노력해야 한다.”
미얀마에서와 마찬가지로 태국의 수많은 사원에서도 이러한 전통에
따라 가르친다. 그리고 서구인들을 포함한 누구든 언제든지 와서 그들
스스로 지혜의 성장과 자유를 체험하도록 환영받는다.
2. 통찰지혜의 계발
불교에 있어 정신 계발에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하나는 지혜의
계발(위빠사나)이고 다른 하나는 선정의 계발(사마타)이다. 후자는 오직
집중만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하여 수행자는 한 대상만 계속해서
집중하며 이러한 집중은 평온한 정적 상태에 도달할 때까지 하나의 대상
에만 향하도록 되어진다. 이러한 종류의 정신 계발은 본질과 그 인과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것은 오직 선정만을 가져온다. 반면 통찰력
의 계발은 존재의 본성에 대한 이해를 요구하고 현상이나 몸과 마음
혹은 마음상태의 이해를 요구한다. 이러한 이해가 바로 통찰력 계발의
목적이다.
우선 선정의 계발에 있어서 집중이란 어떤 것인지 설명하겠다. 왜냐하
면 이 방법에 의한 집중력의 계발은 통찰 계발과 동시에 겸해서 이용
될 수 없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점을 오해하지 마라. 왜
냐하면 선정 계발을 먼저 시작하고 선정을 얻은 후에 지혜 계발 쪽으
로 전환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방법을 혼합해서 수련하면 원하는
지혜의 결과를 얻지 못한다.
선정 명상은 마음을 특별한 한 대상에만 집중해서 유지시킴으로써
계발된다.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선정을 성취하는 방법은 40가지가 된다.
즉 10가지의 색채와 원소(4원소와 색깔), 10가지 부정(주로 시체관), 10
가지 염(念 : 주로 붓다의 위대성, 열반, 죽음, 신체 각 부분 등), 4가지 자
비희사(慈悲喜捨), 4가지 무색계정(空無邊處·識無邊處·無所有處),
음식염(음식을 혐오스럽게 생각하는 수행)과 4원소의 구별, 즉 견고
성·응집성·뜨거움·움직임 등을 차별하는 것 등이다. 선정을 계발하
기 위해서 어느 것이나 명상의 주제로 택할 수 있다.
위에 언급한 40가지 중 어느 것 하나에 집중하는 것이 지혜로 인도
되어 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지혜 명상은 마음 상태와 몸의 변화를
명상의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 집중은 마음의 힘을 증대시키고 특이한
행복감을 가져오지만, 이러한 행복감은 일시적이고 열반으로 인도하는
마음 챙김법(위빠사나)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오직 지혜 수련법만
이 고(苦)를 영원히 종식시킬 수 있다.
통찰(지혜) 계발에 관해서 더 상세히 얘기하기 전에 우선 통찰이 무엇
인지, 그것의 기능과 유용성을 이해하여야 한다. 간단히 말해서 통찰은
몸과 마음은 무상하거나 일시적이고, 불만족스럽거나 고통스럽고, 비인격
적이고 ‘내’가 없는 것을 보게 할 수 있는 지혜이다. 우리들이 ‘자아’, ‘
자신’, ‘영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절대적인 진리에 대한 무지에서 오
는 착각이다. 실제로 ‘자아(自我)’란 단지 마음 상태와 몸의 일어나고 사
라지는 현상의 엄청나게 빠른 연속성에 지나지 않는다.
통찰이란 이러한 종류의 지혜이다. 그러면 그것의 기능은 무엇인가?
통찰은 모든 감추어진 악업, 욕망, 잘못된 견해를 부숴버리는 기능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