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아가(雅歌)라 ! (아가 1장 1절 – 17절) 1:1 솔로몬의 아가라 2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3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 5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 6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 9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10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 꿰미로 아름답구나 11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 12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13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14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 15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 16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 17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 (개역개정) 오늘부터 ‘아가’서의 설교를 시작합니다. ‘아가’서는, 구약 성경에서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와 함께 시가서(詩歌書) 곧 지혜문학으로 분류됩니다. 솔로몬 왕(주전970-930년)이, 젊은 열정이 넘치던 인생 초반에 쓴 것이 ‘아가’(雅歌)서였다면, 지혜가 무르익어가던 인생 중반에 쓴 것이 ‘잠언’(箴言)서였고, 한 생애를 되돌아보는 인생 후반에 쓴 것이 ‘전도(傳道)서’였던 것으로 추정합니다. ‘아가’서는 성도를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을 상징하는 두 연인의 사랑 이야기로서, 솔로몬 왕이 이름을 알 수 없는 시골 여인과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를 노래한 내용입니다. 이 여인의 출신에 관한 것으로 추정되는 “술람미 여자”라는 단어는, 단지 아가서의 한 구절(6:13)에서 두 번 나오는 것이 전부입니다. 그렇다면 “술람미 여자”가 어디 사람이냐고 하는 견해에 대해서, 학자들은 정확하지 않지만 대체로 술렘 또는 솔렘으로도 불렸던 “수넴”(왕상1:3) 출신의 여인으로 봅니다. “수넴” 지역은, 나사렛 남쪽 11km 정도 떨어진 헬몬산 아래 이스르엘 평지에 있는 잇사갈 지파의 성읍(수19:17-18)입니다. ‘아가’서의 내용은, 시간적 순서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제1부(1:1-3:5)는 연인 시절에 두 사람의 뜨거운 밀회와 애타는 그리움의 토로와 결혼에 이르기까지의 사랑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제2부(3:6-5:1)는 장엄하고도 화려한 왕과 여인의 혼인 예식 광경과 첫날밤을 맞이한 두 연인이 결혼의 기쁨을 노래합니다. 제3부(5:2-8:14)의 전반부(5:2-7:13)는 갓 결혼한 신혼부부 사이에 야기된 사소한 갈등과 극복을 통해 성숙한 사랑으로 승화하는 노래라면, 후반부(8:1-14)는 두 사람의 성숙한 사랑이 주변의 형제와 이웃으로 확장되어가면서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노래입니다. 1. 솔로몬의 아가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오늘 본문의 성경이 ‘아가’서로 불리는 것은, 첫 표제어가 “솔로몬의 아가라”(1:1)는 선언으로 시작되고 있기 때문이며, 그 전체 내용 역시 “솔로몬의 아가(雅歌)” 곧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새번역)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아가”서를 기록한 저자가 다윗이 통일한 이스라엘 왕국의 제2대 왕이었던 “솔로몬”이며, 또한 그 주인공 역시 “솔로몬”이라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아가”(雅歌)라는 의미가 무엇입니까? 우리 성경 제목의 “아가”(雅歌)라는 말 자체가 ‘아름다운 노래’라는 뜻이자, 내용 전개 역시도 오늘날 노래로 이어지는 일종의 오페라 형식의 가극(歌劇) 형태라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등장인물인 신랑과 신부 그리고 친구들인 예루살렘 여자들로 구성된 여성 합창단들이 서로 번갈아 노래하는 교창(交唱) 형식으로 내용이 전개됩니다. 편의상 여자 주인공을 ‘신부’로, 남자 주인공을 ‘신랑’으로 표현한 것은, 결혼 예식 과정의 노래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가”의 원어적인 의미는 ‘노래들 중의 노래’(Song of Songs)로서, 영어 성경 제목이기도 합니다. 가장 아름답고 가치 있는 노래라는 최상급적인 강조의 의미입니다. 전혀 종교적 색채라고는 없이 남녀 간의 성적 사랑이 중심 주제를 이루는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를 묶은 “아가”서가, 성경이라는 종교 경전으로 들어오기까지는 많은 논란 과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말 성경의 “아가”서에 나오는 “여호와”(8:6)는 번역하면서 추가된 것일 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과, 이 “아가”서가 초대 교회 당시에 많은 사람들이 결혼식에 사용했던 노래였고 오늘날도 시리아 등 일부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세속적인 사랑의 노래라는 점에서 거부되었습니다. 그러나 유대교가 주후 90년 얌니아 회의에서 “성경의 모든 기록이 다 거룩한 것이라면, ‘아가’서는 더욱더 거룩한 것으로서 ‘성경 속의 지성소’이기 때문이다.”라는 랍비 아키바의 선언에 힘입어서 최종적으로 구약 성경이 되었고, 우리 기독교는 이것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이 때문에 “아가”서를 ‘성경 안의 지성소’(the Holy of Holies) 또는 ‘책 중의 책’(Book of Books)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지성소(至聖所)는 성막과 성전 안에 있는 성소로서, 대제사장 외에는 함부로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따라서 ‘성경 안의 지성소’라는 것은 “아가”서에 나오는 두 남녀의 친밀한 사랑의 노래를 통하여, 하나님과 선민 이스라엘 곧 하나님과 사람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심오하고 신비한 사랑의 밀착 관계를 읽어낼 수 있는 성숙한 안목을 가진 사람들만이 읽을 수 있는 성경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남자인 “아담”만을 지은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창2:18)며, 여자인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이에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창2:23)고 노래했고, 하나님께서는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2:24)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러한 원초적인 인간의 존재와 사랑을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며,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의 존재 자체를 인정하는 부부 관계의 아름다움을 창세기는 증언합니다. 이처럼 “아가”(雅歌) 곧 “가장 아름다운 노래”(새번역)는, 이미 창세기에서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의 이야기가 경전의 내용이 될 수 있었다면, 남녀의 신실한 사랑 노래를 세속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본질적 의미로서의 종교적 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을 일깨웁니다. 구약 성경 자체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서로 사랑하는 관계로서의 부부 관계나 부모와 자식 관계로 비유합니다. 신약 성경에서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에 대해서, 그리스도를 “신랑”(마25:1)으로 교회를 “신부”(계21:2)로 비유합니다. 이러한 관계의 파괴를, “음녀”(호3:1,계17:5)와 “음행”(삿2:17,계2:21)으로 비유하여 경고합니다. “아가”서의 남녀 관계가 하나님의 창조 의도가 반영된 인간적 사랑을 노래한 것으로 본다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섭리와 성적인 관계의 기쁨을 인간에게 주신 창조주의 사랑을 확인하는 메시지입니다. 왜 솔로몬이 “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에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그것이 네가 평생에 해 아래에서 수고하고 얻은 네 몫이니라.”(전9:9)고 권면합니까? 성경에서 하나님을 ‘안다’(yada, oida)는 단어의 의미가, 지식적인 배움을 통한 ‘이론적 앎’의 의미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를 통한 ‘체험적 앎’의 의미라는 것을 어떻게 이해하겠습니까? 2. 연인에 대한 사랑을 어떻게 고백합니까? “아가”서의 제1부(1:1-3:5)는, “술람미 여자”와 “솔로몬” 왕이 결혼 이전에 연인 시절의 두 사람의 뜨거운 밀회와 애타는 그리움의 토로와 결혼을 다짐하는 과정에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시작의 이야기입니다. 오늘 본문은 “내게 입 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1:2) 곧 “그리워라, 뜨거운 임의 입술, 포도주보다 달콤한 임의 사랑.”(공동번역)이라며, “술람미 여자”인 예비 신부가 연인인 “솔로몬” 왕과 함께 했던 벅찬 사랑의 시간을 그리워하는 고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입 맞추기”는 연인간의 사랑의 표현이면서도, 고대 근동과 서양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신뢰와 존중과 환영의 표현입니다. 이 때문에 막달라 마리아가 한 바리새인의 집에 앉은 예수께 나아와 “그 발에 입 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7:38)라고 했던 사건은,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눅7:45)라며, 예수님을 초청해놓고도 이러한 환영 표현이 없었던 바리새인의 태도와 이를 안타깝게 여긴 마리아의 태도로 비교되게 됩니다. 또한 “포도주”는, 이스라엘에서 단지 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로서 “사람의 마음을 기쁘게 하는 포도주”(시104:15)로 받아들이기에, 솔로몬도 “너는 가서 기쁨으로 네 음식물을 먹고, 즐거운 마음으로 네 포도주를 마실지어다. 이는 하나님이 네가 하는 일들을 벌써 기쁘게 받으셨음이니라.”(전9:7)고 권면합니다. 하나님과의 신앙의 기쁨과 감격조차도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시4:7)라고 비유할 정도로, 본문에서도 “술람미 여자”는 그 “사랑”의 기쁨을 맛과 향이 뛰어난 “포도주보다” 더 낫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리 좋아도 지나친 것은 항상 악이 되는 것처럼,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사5:11)라고 했던 저주의 경계를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이러한 양면성의 균형을 잘 지켜야 하는 것과 달리, 많은 신앙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종교 행위에만 집중하게 하면서, 막상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불신앙인지를 예수님은 사람들과의 질문과 대화를 통해서, “마음을 다하고 지혜를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또 이웃을 자기 자신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 전체로 드리는 모든 번제물과 기타 제물보다 나으니이다.”(막12:33)라며, 종교 의식만을 중시하는 이들의 잘못된 신앙의 문제를 이끌어 내신 의미를 어떻게 생각합니까? “아가”서는, 예비 신부인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연인 “솔로몬” 왕에 대해서 좋았던 뜨거운 “사랑”의 기억을 끄집어내는 고백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우리 역시도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삼상7:12)고 하는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 “에벤에셀”(삼상7:12)의 하나님에 대한 감사의 기억과 고백을 통해서, 앞으로 변함없이 우리와 함께 하실 “여호와 이레”(창22:14)의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고백과 신뢰가 가능합니다. 따라서 예비 신부인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 왕과 함께 밀회할 때 느꼈던 아름다운 기억을 떠올리며, “네 기름이 향기로워 아름답고, 네 이름이 쏟은 향 기름 같으므로, 처녀들이 너를 사랑하는구나.”(1:3)라고 고백하며, “왕이 나를 그의 방으로 이끌어 들이시니, 너는 나를 인도하라. 우리가 너를 따라 달려가리라.”(1:4) 곧 “나를 데려가 주세요, 어서요. 임금님, 나를 데려가세요, 임의 침실로.”(새번역)라고 “솔로몬” 왕에게 간청합니다. 이에 “술람미 여자”의 친구들이 “우리가 너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즐거워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더 진함이라.”(1:4) 곧 “그대 있기에 우리는 기쁘고 즐거워, 포도주보다 달콤한 그대 사랑 기리며 노래하려네.”(공동번역)라고 합창합니다. “술람미 여자”의 친구들이, 그러한 친구를 질투하고 시기하기보다 함께 축하해주고 기뻐하는 아름다운 모습을 노래합니다.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전13:4-5)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네 기름”이 외적인 매력과 아름다움을 의미한다면, “네 이름”은 내적인 인품과 인격의 존귀함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 왕의 매력적인 외모와 고귀한 인품과 명성을 “향기”로운 “기름”으로 비유하며, 그렇기에 자기뿐만 아니라 모든 “처녀들”의 흠모의 대상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우리 믿는 이들에게서 죄악의 악취(갈5:19-21)가 진동하느냐, 아니면 “향기로워 아름”다운 “향 기름” 곧 성령의 열매(갈5:22-23)가 나타나느냐는 중요합니다. 왜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인의 표상을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고후2:14-15)라고 고백했다고 생각합니까? 예비 신부인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연인인 “솔로몬” 왕의 내실에 함께 거하기를 열망하면서도, 자신에게 예루살렘에 사는 도시 여자들 같은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음을, “처녀들이 너를 사랑함이 마땅하니라. 예루살렘 딸들아, 내가 비록 검으나 아름다우니, 게달의 장막 같을지라도 솔로몬의 휘장과도 같구나!”(1:4-5)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또한 자신만의 아름다움이 있음을 당당하게 노래합니다. 많은 “처녀들” 특히 “예루살렘 딸들”이 흠모할 수밖에 없는 “솔로몬” 왕이라는 것을 “아가씨라면 누구나 임을 사랑할 것입니다.”(1:4,새번역)라고 하면서도,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 “솔로몬” 왕이 자신을 “사랑”한다고 고백합니다. “술람미 여자”가 자신을 “검으나”라고 한 표현이 흑인이라는 의미가 아님을, “내가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할지라도 흘겨보지 말 것은,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 나에게 노하여 포도원지기로 삼았음이라.”(1:6)고 고백합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안 계신 어려운 가정의 딸로서, “오빠들 성화에 못 이겨서”(새번역) 함께 밖에 나가 “포도원”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보니, “햇볕에 쬐어서 거무스름”해졌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자기 얼굴 피부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을, “나의 포도원을 내가 지키지 못하였구나.”(1:6)라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햇볕에 까맣게 그을린 자신의 피부를, 사막의 유목민들이 염소 가죽으로 만든 시커먼 “게달의 장막”으로 비유합니다. 그럼에도 “솔로몬” 왕이 그러한 자신이 좋다고 한다는 것을, “예루살렘의 아가씨들아, 내가 검어서 예쁘단다. 게달의 장막 같고 솔로몬의 휘장 같다는구나!”(1:5,새번역)라고 노래하며 자랑합니다. “솔로몬의 휘장”은, 경치가 아름다운 곳에 왕이 쉬기 위해서 세운 장막에 드리운 화려한 천을 가리킵니다. “술람미 여자”를 빛나게 한 것은 “솔로몬의 휘장”처럼 “솔로몬” 왕 자신이며, 건강미 넘치는 자신의 검은 피부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이 “사랑”하는 “솔로몬” 왕을 언제야 다시 만날 수 있는지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내 마음으로 사랑하는 자야! 네가 양 치는 곳과 정오에 쉬게 하는 곳을 내게 말하라. 내가 네 친구의 양 떼 곁에서, 어찌 얼굴을 가린 자 같이 되랴?”(1:7) 곧 “사랑하는 그대여,…양 떼를 치는 임의 동무들을 따라다니며, 임이 있는 곳을 물으며 헤매란 말입니까?”(새번역)라고 호소합니다. “얼굴을 가린 자”라는 것은, 과거에 창녀(창38:14-15)나 슬피 애통하는 자(삼하19:4)가 하던 모습으로, “솔로몬” 왕과 함께하지 못할 때에 자신은 사람들에게 창녀 취급이나 받는 비참한 여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호소였습니다. 3. 서로를 향한 사랑의 칭찬이 무엇입니까? 예비 신부인 “술람미 여자”가 “사랑”하는 연인인 “솔로몬” 왕에 대한 간절한 그리움을 호소하는 노래에, “여인 중에 어여쁜 자야! 네가 알지 못하겠거든, 양 떼의 발자취를 따라 목자들의 장막 곁에서 너의 염소 새끼를 먹일지니라.”(1:8)고 하는 친구들의 격려가 합창으로 울려 퍼집니다. 친구들은 진정으로 “술람미 여자”와 “솔로몬” 왕의 “사랑”이 구체적으로 실현되기를 소망했습니다. 이 권면은, 연정을 불태웠던 “솔로몬” 왕의 “사랑”을 확신한다면, 그가 찾아올 때까지 “너의 어린 염소 떼를 치며 기다려 보아라.”(새번역) 곧 정숙한 신부로서 겸손히 자기 할 일을 감당하며 기다리라는 당부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우리가 사랑하는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이 땅 위에서 어떠한 삶의 자세를 견지하며 살아야 할지를,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11:2-3)고 한 권면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제 그토록 자신의 간절한 그리움과 “사랑”의 열망을 토로했던 “술람미 여자”를 향한 “솔로몬” 왕의 화답 노래가, “내 사랑아, 내가 너를 바로의 병거의 준마에 비하였구나. 네 두 뺨은 땋은 머리털로, 네 목은 구슬꿰미로 아름답구나.”(1:9-10) 곧 “나의 사랑 그대는 바로의 병거를 끄는 날랜 말과도 같소. 땋은 머리채가 흘러내린 임의 두 볼이 귀엽고, 구슬목걸이 감긴 임의 목이 아름답소.”(새번역)라는 사랑의 칭찬으로 울려 퍼집니다. “바로의 병거의 준마”는, 당시 강력한 국력을 자랑하였던 애굽 왕의 마차를 끄는 말이라는 자체가 최상급의 “준마”였으며, 왕의 마차였다는 점에서 온갖 보화로 치장한 그 위엄과 아름다움은 말로 다 할 수 없었습니다. 이런 점에서 “솔로몬” 왕은 자신이 “사랑”하는 “술람미 여자”를 강건하고 생명력 넘치는 말인 “바로의 병거의 준마”로 비유한 것으로, 자신의 사랑스런 여인이 가진 젊음에서 발산되는 매혹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가장 최상급의 묘사이자 사랑의 칭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모든 것이 아름다운 법입니다. 이러한 “술람미 여자”를 자신의 정식 신부로 맞이할 것을 “우리가 너를 위하여 금 사슬에 은을 박아 만들리라”(1:11) 곧 “금 사슬에 은구슬을 박은 귀고리를 우리가 너에게 만들어 주마”(새번역)라며, 귀한 보석 장식품들을 예물로 선사할 것을 “솔로몬” 자신의 고백과 친구들의 보증이 담긴 합창으로 선포됩니다. 사랑하는데 무엇을 못해주겠습니까? 사도 바울도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롬8:31,35)라며,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2,37,39)고 선언했습니다. 이제 “아가”서의 새로운 전환은, 잠시 떨어져 지냈던 두 사람이 서로를 격려하고 세우는 칭찬으로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내용(1:12-2:7)으로 이어집니다. “솔로몬” 왕과 밀회의 “사랑”을 나누는 “술람미 여자”는 자신의 기쁨을, “왕이 침상에 앉았을 때에, 나의 나도 기름이 향기를 뿜어냈구나.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주머니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구나.”(1:12-14)라고 노래합니다. “나도 기름”은 신약 성경에 나오는 “지극히 비싼 향유”인 “나드”(요12:3) 향유로, 동인도 지방에서 생산되는 수입품입니다. “술람미 여자”는 “솔로몬” 왕과 동침하는 밀회의 기쁨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향기로운 “나도 기름”과 “몰약 향주머니”와 “엔게디 포도원의 고벨화 송이”로 비유하며, 자신의 애정과 존경을 표현합니다. 이에 대해 “솔로몬” 왕은 자기 품속의 “술람미 여자”에게 “내 사랑아, 너는 어여쁘고 어여쁘다. 네 눈이 비둘기 같구나.”(1:15)라고 화답합니다. 이에 “술람미 여자”가 “나의 사랑하는 자야, 너는 어여쁘고 화창하다. 우리의 침상은 푸르고”(1:16) 곧 “나의 사랑, 멋있어라. 나를 이렇게 황홀하게 하시는 그대! 우리의 침실은 푸른 풀밭이라오.”(새번역)라고 하자, “솔로몬” 왕도 “우리 집은 백향목 들보, 잣나무 서까래로구나.”(1:17) 곧 “우리 집 들보는 백향목이요, 우리 집 서까래는 전나무라오.”(새번역)라며, 사랑을 나누는 숲속 전체가 자신들 “침실”과 “집”이라고 노래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왜 오늘 본문이 “솔로몬의 아가(雅歌)라”(1:1)는 선언으로 시작되었고,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아시겠습니까?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주요 단어가 있다면, “사랑”일 것입니다. 왜 하나님과 인간의 친밀한 관계를, 인간의 원초적 관계의 표현인 성적인 “사랑”으로 비유했다고 생각합니까? 하나님이 창조하신 첫 사람인 “아담과 그의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니라.”(창2:25)고 증언한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서로에 대해서 감출 것이 없는 정직하고 솔직한 부부 사이에 보여줄 수 있는 이 모습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사도 바울은 자신이 선교와 목양을 하고 말씀을 선포하고 가르치는 것에 대해서,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5-7)라고 안타까워합니다. 예수님도 믿는 신앙인들과 교회의 타락을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24:10-12)고 탄식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요12:43)고 경계합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을 통하여 자신의 “사랑”을 증언하기를 “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요13:1)며, 따라서 우리에게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고 당부하셨습니다. 왜 그래야하는지에 대해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나의 계명을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13:35,14:15,21)고 말씀하신 권면과 약속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솔로몬의 아가(雅歌)”를 통해 울려 퍼지는 “가장 아름다운 노래”(새번역)가, 우리의 신앙 여정과 세상 속에 주님의 “사랑”이 회복되는 기회이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