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행의 목표는 무엇인가? 마음이다. 체험을 가지고 수행을 측정해서는 안 된다. 로바ㆍ도사ㆍ모하가 얼마나 줄어들었는가? 마음의 질이 얼마나 좋아졌는가? 얼마나 지혜가 났는가? 마음이 얼마나 바뀌었는가? [이런 것들로 수행을 측정해야 한다.] 어떤 대상이 있을 때, 전에는 그 대상을 만나면 이 만큼 알았는데 만날 때마다 점점 더 알아진다면 지혜가 나는 것이다.
✽ 낄레사의 허물을 알아야 한다. 좋은 수행체험을 할 때 원하는 마음이 일어나면 그 상태가 깨진다. 로바가 생기면 마음의 좋은 질이 다 사라져버린다. 로바가 안 좋다고 누가 말했는가? 다른 사람이 말해주어서 그것을 믿는가? 내가 체험해서 그것을 믿는가? 로바가 안 좋다는 것은 내가 체험해 봐야 알 수 있다. 작은 로바를 알아차리지 못하면 그것이 커져 버린다. 어떤 때는 로바가 일어나도 일어났는지조차도 모를 때가 있다. 조사하는 힘이 약하기 때문이다.
✽ 조금 알게 되면 ‘내가 알았다.’라고 마음이 말을 한다. 그러면 더 이상 알지 못하고 막혀버린다. 이런 체험을 많이 한 사람은 조금 알아졌을 때 ‘충분하지 않다. 더 알아야 한다.’라고 생각한다. 처음 조금 알았을 때는 아주 많이 아는 것처럼 ‘내가 알았다.’라고 생각한다.
✽ 알아차림이 자연스럽게 진행될 때는 아무것도 더 하려고 하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것에 대해서 ‘알고 있는가?’하고 체크만 하라. 그러고 나서 가끔씩 ‘대상을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가? 보는 마음의 질이 좀 바뀌었는가?’ 이런 것들을 조사해야 한다. 언제 어떻게 하니까 줄어들었고 어떻게 하니까 좋아졌는지 조사해야 한다. ‘마음이 얼마나 고요해졌는가? 보는 마음의 질이 좋아졌는가, 나빠졌는가? 이해하는 것이 더 좋아졌는가, 나빠졌는가?’ 고요해진 상태도 지금 고요한 것과 다음 고요한 것이 다르다. 마음이 동요되는 것도 더해졌다가 덜해졌다가 한다. 마음이 깨어있을 때도 흐릿하게 깨어있을 때가 있고 맑게 깨어있을 때가 있다. 어떤 때는 마음이 한 가지만 알 때가 있고 어떤 때는 동시에 여러 가지를 알 때가 있다. 미세한 것을 알 수 있는 상태와 거친 것을 알 수 있는 상태가 다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