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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주는 시한폭탄과 같아…몸 어느 곳에서 폭발할 수 있다"
'보일러메이커', '밤샷', ‘서브마린주’, ‘요르쉬’, ‘혼돈주’. 이들은 모두 다른 종류의 술을 섞어 만든 폭탄주를 일컫는 용어이다. 보일러메이커와 밤샷은 맥주와 위스키를 섞은 미국식 폭탄주이고, 서브마린주는 맥주와 독일 술 ‘슈납스’를 섞은 북유럽식, 요르쉬는 보드카와 맥주 혹은 샴페인을 섞은 러시아식, 그리고 혼돈주는 막걸리와 소주를 섞은 조선시대의 폭탄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맥주와 소주를 섞은 이른바 ‘소맥’이 폭탄주의 대세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나폴레옹이 전쟁 중 와인이 부족하자 병사들에게 와인과 독한 술을 섞어 마시게 했다는 설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폭탄주는 과거에 정치권이나 군부 등 특권층의 술 문화로 여겨졌으나, 이제는 음주자 3명 중 1명이 폭탄주를 즐길 만큼 대중의 술 문화로 자리잡았다.
▲ 폭탄주는 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과음을 유발한
다. 폭탄주가 사랑을 받는 가장 큰 이유는 이름에서 풍기는 ‘강렬함’에 대한 호기심과 독한 술에 순한 술을 섞어 알코올 도수가 낮아져 마시기 편하다는 점일 것으로 추측된다. 폭탄주 제조가 하나의 이벤트로 여겨져 동석자에게 즐거움을 주고 단합을 유도한다는 점도 빼 놓을 수 없다.
하지만 폭탄주는 건강 측면에서 장점보다 단점이 많은 술이다. 술이 순해져 마시기 편하다는 점은 술에 대한 거부감을 줄여 술에 입문하는 진입장벽을 낮춘다. 술잔을 처음 입에 대는 연령을 낮추고, 독한 술을 잘 못 마시는 사람들을 끌어들이는데 기여한다. 특히 청소년과 여성들에게 폭탄주에 대한 거부감을 줄이는 데 한 몫 한다.
폭탄주 제조의 이벤트 성향은 ‘원샷’을 부추겨 과음을 유도하고, 자신이 마신 술의 양을 헤아리기 힘들게 만든다. 또한 폭탄주를 자주 마시면 간의 알코올 분해 능력이 증가하여 실제로 술이 늘 수 있기 때문에 점점 더 많은 술을 마실 수 있는 신체적 능력도 생긴다.
폭탄주가 건강에 해로운 결정적 이유는 최소 두 종류 이상의 술을 섞었기 때문에 마시는 알코올 양이 늘어나고, 알코올이 몸에 가장 흡수되기 쉬운 14~15도 내외가 된다는 점이다. 맥주로 폭탄주를 만들 경우에는 맥주에 들어 있는 탄산 때문에 알코올 흡수가 더욱 빨라진다. 즉, 폭탄주는 ‘단시간에 알코올 흡수를 늘려 빨리 취하게 하는, 분위기에 휩쓸려 과음하기 쉬운, 건강에 해로운 술’이라고 다시 정의할 수 있다. 분위기를 깨지 않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폭탄주를 마셔야 한다면 물을 함께 마셔 희석시키는 게 그나마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이다.
폭탄주의 알코올 도수가 원래 독주보다 낮기 때문에 건강에 문제가 없을 거란 생각은, 타르 함량이 낮은 순한 담배가 일반 담배보다 건강에 해롭지 않을 거라 착각하는 것과 같다. 모든 담배는 해롭다. 술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은 종류에 상관없이 마신 양에 비례한다.
술을 하루에 1~2잔 마시면 심혈관 질환을 예방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으나, 그 이상 마시면 각종 건강피해를 유발하게 된다. 건강주의 대명사인 와인이나 항암성분이 들어 있다고 알려진 막걸리도 과음하면 마찬가지로 몸에 해롭다. 술이 약이 되느냐 독이 되느냐의 경계는 ‘하루 2잔을 넘기느냐 넘기지 않느냐’에서 갈린다. 물론 술을 전혀 마시지 않던 사람이나 건강에 문제가 있어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좋은 사람에겐 심혈관 질환 예방한다며 하루 한두 잔 마시는 술도 해롭다..
▲ 에너지 음료를 술과 섞어 먹으면
카페인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져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
다. 최근 유행하고 있는 ‘에너지 폭탄주’는 새로운 골칫거리이다. 청소년이나 20대 젊은이들이 처음 술을 마실 때 고카페인 음료(일명 에너지 음료)를 술과 섞은 ‘에너지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는 폭탄주에 입문하는 계기가 될 수 있는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고카페인 음료와 술을 섞어 마시면 카페인의 체내 흡수율이 높아져 카페인의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고, 일시적으로 정신이 맑아져 자신의 주량이 센 것으로 착각해 술을 더 많이 마시게 된다. 이로 인해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 있다. 미국과 호주에서 보고된 사례에 따르면 병원 응급실의 야간 단골 환자가 고카페인 음료와 술을 섞어 마신 10대 청소년이라는 사실이 이를 방증한다. 미국의 5개 주는 부작용을 우려해 고카페인 음료를 섞은 술의 판매를 금지하고 있다고 한다.
폭탄주는 시한폭탄과 같다. 몸에서 폭발하지 않도록 뇌관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 어쩌다 한번쯤 즐긴다면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매번 폭탄주를 즐긴다면 언젠가는 몸 어느 곳에서 폭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필자 약력 - 전상일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 E-mail : sangil326@gmail.com 서울대학교에서 환경보건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후 미국 하버드대학교 <위해성 평가 연구소>에서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연구를 했다. 가장 큰 관심은 환경 및 보건 정보를 대중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데 있다. 한겨레신문(<전상일의 건강이야기>)과 시사저널(<환경보건 섹션>) 등에 400여 편의 대중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현재는 CBS 라디오 <최정원의 웰빙다이어리>에 출연하고 있다.
한국환경건강연구소 소장을 맡아 환경보건 및 리스크 커뮤니케이션과 관련한 다양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으며, 건국대학교 보건환경과학과 겸임교수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또한 환경 및 보건 정보를 대중과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하기 위해 2013년 <둘다 북스> 출판사를 설립하여, 어린이 건강을 다룬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출처 : 조선일보 2014.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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