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주 선야봉(758.7m)
*남이자연휴양림~작은골 입구~산제터~벼랑바위~선야봉~신선봉~오십폭포~휴양림
선야봉은 금남정맥의 서암산(속칭 백암산)과 귀목봉 사이에 위치해 있는 '713.5봉'에서 갈라진 지능선 산줄기가 북북서쪽으로 2.5km를 뻗어가다가 불쑥 솟구친 봉우리다. 옛날 이 산에서 신선들이 쇠를 달구어 불리느라고 풀무질을 하였다고 하여 '선야봉(仙冶峰)' 이라고 한다. 종전의 지형도에는 '仙治峰(선치봉)'으로 잘못 표시되어 있었으나 2003년에 수정하고 2004년 5월에 인쇄된 지형도에는 '仙冶峰(선야봉)' 이라고 옳게 표시되어 있다. 공주중고등학교 재경동문회 산 친구 노태선, 백태현, 신영현, 이덕균 등 4명과 함께 선야봉 산행에 나섰다.
산행 들머리는 느티골의 큰골과 작은골이 만나는 합수지점의 갈림길이다. 큰골에 위치한 남이자연휴양림주차장에 차를 주차해 놓고 큰골 입구의 다리를 건너 합수지점의 갈림길까지 되돌아 나온 다음 작은골로 들어가는 비포장 임도로 들어서며 산행을 시작한다. 합수지점의 다리와 작은골 입구의 조그만 다리를 연이어 건넌 다음 곧바로 임도를 버리고 남동쪽 방향의 가파르게 오르막진 등산로로 접어든다. 이곳에 '등산로' 표지가 있다. 33도를 웃도는 삼복더위 때문인지 초반부터 숨이 차고 땀이 비 오듯이 흐르는 등 발걸음이 무겁다. 가쁘게 숨을 몰아쉬며 17분 정도를 계속해 치고 올라가니 가파른 오르막이 멈추는 지점에 산제터가 있다.
이어서 무덤을 지나고 작은 봉우리를 지나면서 보니 오른편 앞쪽 나뭇가지 사이로 선야봉 정상이 올려다 보이는데 꽤 높아 보이는 등 산세가 만만치 않다. 두번째 무덤을 지나고 난 다음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짧게 오르면 '506봉'이다. 내리막 능선길로 들어서서 안부지대를 지나고 다시 한번 가파른 오르막 능선을 5분 정도 치고 올라가면 '557.5봉'에 이르고 곧이어 엇비슷한 558m의 작은 봉우리를 지난다. 이곳에서부터 정상까지의 약 1km 구간이 선야봉 산행의 백미다.
이 구간은 암릉과 바위로 된 절벽 그리고 전망대 등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고 있고 조망이 빼어나서 좋다. 옆으로 퍼진 아름드리 적송 두 그루가 서있는 작은 봉우리 진 곳을 지나면서 보니 북쪽 방향으로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전망이 시원스럽다. 천등산, 대둔산 등이 뚜렷하게 보이고 느티골(하괴목동) 마을도 빤히 내려다보인다. 곧이어 얕은 안부를 지나고 621m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게 되는데, 단애를 이루고 있는 암릉이 앞쪽으로 올려다 보이는 등 주위의 경관이 절경이다.
가파른 오르막이 멈추는 어깨 같은 691.4봉을 지나고 나면 3분 정도 후에 또 한번 714.2봉을 지난다. 이때 바로 앞에 올려다보이는 747봉이 정상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사실은 정상은 그 뒤에 있어서 보이지 않는다. 747봉의 오르막 암릉으로 접어든 다음 그냥 지나치기 쉬운 오른쪽 옆의 벼랑바위에 올라서니 북동쪽이 넓게 천길 낭떠러지를 이루고 있어서 마치 비행기에서 내려다보는 것처럼 전망이 기막히게 좋다.
북북서쪽으로 878.9m의 대둔산이 보이고, 북북동쪽으로 662m의 인대산이, 북동쪽으로 903.7m의 서대산이 멀리 보이고 그 오른편 앞쪽으로 732.3m의 진악산이 보인다. 동쪽으로는 육백고지(서암산 654m 속칭 백암산) 등 금남정맥의 산줄기가 가깝게 건너다 보이고 남동쪽으로는 백두대간의 덕유산군이 멀리 아스라하게 보인다. 북쪽 바로 아래로는 작은골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고 그 뒤로 느티골(하괴목동) 마을이 빤히 보이며, 우리가 지나온 능선이 길게 내려다보이는 등 전망이 너무 좋다.
이어지는 오르막 부분 암릉을 2분 정도 오르면 절벽을 이루고 있는 전망대가 왼쪽에 있고 곧바로 오른쪽에 또 있다. 이곳에서 몇 걸음만 더 가면 747봉이다. 이제 정상 봉우리가 바로 코앞에 다가와 있어서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다. 747봉을 출발한 후 안부를 지나는 등 3분만에 758.7m의 선야봉 정상인 헬기장에 도착했다. '선야봉 해발 758m' 라고 쓴 표지판이 헬기장 북쪽 가장자리의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동쪽과 남동쪽 방향은 시야가 탁 트여 있어서 전망이 좋지만 그외에는 헬기장 가장자리의 나무들 때문에 전망이 좋은 편이 아니다. 서쪽 건너편에 위치한 665.9 선녀봉이 나뭇가지 위로 보금 보이고 있고, 서남쪽에 위치한 칠백이고지는 나무숲에 가려서 아예 보이지 않아 아쉽다. 남동쪽으로는 755.1 신선봉이 가깝게 보이고, 남쪽으로는 금남정맥의 맹주인 1125.9m의 운장산이 멀리 가늠된다. 신선봉으로 가기 위해 왼쪽인 남쪽의 완만한 능선길로 들어서고 2분만에 삼각점(금산 315 1980 재설)이 박혀있는 지점을 지났다.
이어서 참나무가 울창하게 숲을 이루고 있는 완만한 능선으로 난 길을 매미들의 합창소리를 들으며 편하게 가고, 마지막에 2분 정도를 가파르게 오르면 755.1 신선봉 정상이다. 나무숲에 가려서 전망은 없고 '신선봉 해발 750m' 라고 쓴 표지판이 나뭇가지에 걸려있다. 남쪽으로 직진하는 길을 버리고 왼쪽인 동동북쪽의 내리막 지능선길로 들어선다. 작게 봉우리 진 곳을 두어번 지나며 가파른 내리막 능선을 내려가고 동쪽, 동남쪽, 남쪽으로 점차 방향이 바뀌는 급경사 진 내리막 능선을 계속해서 내려간다. 급경사를 이루고 있는 내리막길이 험하고 지루하다.
바위가 조금씩 드러나 있는 짧은 내리막 암릉을 막 지나고 나니 속삭이듯이 조그맣게 물소리가 들리고 저만치에 있는 암벽(이름 없는 폭포)에서 물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는 등 심심산골의 비경지대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이곳에서 왼쪽인 동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완만한 사면길로 들어서고 너덜지대에서 오른쪽인 남쪽으로 방향을 바꾸며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로 들어선다. 물이 흐르지 않고 있는 마른 지계곡을 남쪽으로 건너면 바로 신선봉 0.6km 이정표가 있다. 곧이어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내리막 세미클라이밍지대를 지나고 가파른 내리막 돌계단을 2분 정도 내려가면 '오십폭포'다.
이끼 낀 높은 바위 절벽에서 물방울이 조금씩 줄지어 흘러내리고 있다. 지금은 수량이 부족하여 오십폭포라는 명성이 무색하지만 비가 많이 내릴 때는 장관을 이룰 것이라 여겨진다. 지게곡을 따라 완만한 내리막의 너덜길을 한동안 내려가고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 쉼터를 지나고 나니 곧바로 큰골의 비포장도로(임도0에 닿는다. 큰골의 계류는 군데군데 소를 이루고 있고 암반 위를 흐르기도 하는 등 청간옥수여서 탁족 등을 하기가 좋다. 비포장도로를 따라 남이자연휴양림의 야외교육장, 놀이터(체력단련장), 야영장, 산막, 관리사무소, 물놀이장 등을 지나고 주차장에 도착했다.
*산행길잡이
남이자연휴양림 주차장-(4분)-작은골 입구 합수지점(갈림길)-(18분)-산제터-(13분)-506봉-(15분)-558봉-(8분)-612봉-(15분)-벼랑바위(전망대)-(2분)-747봉(전망대)-(3분)-선야봉(헬기장)-(2분)-삼각점-(18분)-신선봉-(23분)-무명폭포 옆-(10분)-오십폭포-(15분)-큰골(임도)-(35분)-휴양림주차장
6.25 동란 때 민족상잔의 피로 물들였던 산이다.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과 9.28 서울수복으로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 인민군과 남로당 금산,논산, 완주군 인민위원 및 지역공산주의자 등 20,000여 명이 느티골, 육백고지, 팔백고지, 싸리재, 왕사봉, 챌백이고지, 피묵리, 고당리, 대활골 등 이곳 선야봉의 주위 일대에 집결하여 진을 치고 인근지역에 출몰하는 등 남한의 치안을 교란하였다. 이를 토벌하기 위하여 국군, 경찰 등이 투입되어 5년 반 동안이나 치열하게 공방전을 벌였던 곳이다.
이때 인민군 2,287명이 사살되고 국군 및 경찰도 수백 명이 목숨을 잃는 등 온통 산야가 민족상잔의 피로 물들었었다. 육백고지, 칠백이고지, 팔백고지 등은 그때 작전상의 용어였고 일부는 지금도 지도상에 지명으로 표기되고 있다. 선야봉은 산세가 가파르고 험하다. 절벽지대가 많고 사면이 온통 심하게 급경사를 이루고 있어서 기존의 등산로가 아닌 곳으로 들어서는 것은 위험하다.
*교통
승용차 서울을 출발하여대전,통영간고속국도 추부나들목에서 고속도로를 벗어나고 37번 국도를 따라 추부면소재지까지 간 다음 17번 국도를 따라 전주,대둔산을 향해 가다가 신호등이 있는 복수삼거리를 막 지나고 300m 거리에 있는 갈림길에서 17번 국도를 버리고 금산으로 가는 왼쪽의 635번 지방도로로 들어선 다음 2km를 지난 삼거리에서 '진산,전주'로 가는 오른쪽의 68번 지방도로 들어선다. 다시 2km를 지난 삼거리에서 왼쪽의 635번 지방도로로 들어서서 남이면 건천리 지암삼거리까지 간 다음 지암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남이자연휴양림의 매표소를 지나 주차장에 도착하게 된다. 서울에서 2시간40분 정도 걸린다.
대중교통 서울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서 금산행 고속버스 1일 8회 운행(2시간40분 소요)한다. 금산읍에서 진산 경유 건천리행 금산시내버스(1일 2회 06:20, 13:00 운행. 1시간 소요. 요금 2,040원. 한일교통 041-754-2830)을 타고 지암에서 하차한 다음 2km를 걸어가면 남이자연휴양림에 도착한다. 금산읍에서 남이자연휴양림까지 택시요금이 20,000원이다.
*잘 데와 먹을 데
남이자연휴양림(041-753-5706)의 산막을 이용할 수 있다. 하룻밤 이용료는 8평형 40,000원, 16평형 60,000원, 20평형 120,000원으로 사전에 예약을 해야 한다. 남이면 건천2리 느티골(하괴목동) 마을의 용진상회(041-753-1250), 느티골찻집(011-401-6791) 등에서 민박을 할 수 있고 남이면 건천리로 가는 길목의 진산면 삼거리에 금강산모텔(753-7113?)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음식점은 금강산송어가든(753-7113?)에서는 닭, 오리, 숭어회 등을 맛볼 수 있다.
*볼거리
칠백의총 임진왜란 때, 선조 25년(1592) 8월18일, 중봉 조헌선생과 영규대사가 이끄는 700명의 의병들이 금산 연곤평에서 고바야가와다가가게가 지휘하는 왜군 15,000여 명과 필사무퇴로 결전을 하다가 중과부적으로 전원이 장렬하게 순절하였고, 그 4일 후에 조헌선생의 제자인 박정랑과 전승업 등이 의병의 시신을 수습하여 한 무덤에 함께 모시고 '칠백의사총'이라 이름한 무덤이다. 칠백의사들을 추모하고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성역으로 보존하여 관리하고 있다. 사적 제105호로 충남 금산군 금성면 의총리(753-8701~2)에 있다.
육백고지전승탑 6.25동란 때 퇴로를 차단당한 북한 인민군 등 20,000여 명이 육백고지, 느티골, 피묵리, 칠백이고지 등에 진을 치고 인근 지역에 출몰하여 치안을 교란하는 것을 5년 반에 걸쳐 토벌하고 이를 기념하여 세운 탑이다. 육백고지전승탑, 충혼비, 육백고지참전기념비 등을 세우고 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육백고지능선이 빤히 올려다보이는 작고개(충남 금산군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의 경계) 고갯마루의 금남정맥 마루금 위에 위치해 있다.
글쓴이 강승기 산경표를 신봉하는 산악인. 1995.1.1부터 2001.12.27 사이에 남한 땅에 있는 백두대간, 낙남정간 및 8개의 정맥을 모두 다 종주하는 대장정을 마치고 종주기를 남겼다. 도서출판 <사람과산>을 통해 <강승기의 종주기 백두대간>을 출간했다.
참고: 월간<사람과산> 2004년 9월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