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달맞이의 작은 비원
우리집 1층 104호 거실앞에는 ‘작은 나의 비원’이 있다. 빌라건물대장에는 ‘공동대지’라고 분명히 기재되어 있지만, 문서의 기재와는 상관없이, 그 ‘공동대지’가 바로 내 거실앞에 위치해 있다. 이점이 우리가 이집을 보자마자 묻혀 있던 보석을 발견한 것처럼 서둘러 구입한 이유이다. 최근에 방문한 서울 경북궁의 비원에 감히 견줄수 없는 터무니 없이 작디 작은 정원이지만, 이 작디 작은 곳으로부터 받는 위안과 즐거움은 이루 말할수 없이 크다.
한바탕 봄비가 다녀간 아침, 침실의 창문을 열고 보니, 밤새 ‘봄’이 정원에 ‘기운’으로 한바탕 춤을 추고 갔나보다. 철쭉나무, 매실나무, 벚꽃나무, 댕기나무, 목련나무 가지에 파릇파릇 파아란 싹들이 수줍게 고개를 내밀며 서로 인사하고 있었고, 쬐끔 미리 나온 꽃봉우리들은 한껏 햇빛의 간지러움에 웃음을 참다 못이겨 하얀이들을 드러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나는 ‘봄’을 나의 작은 비원으로부터 느낀다. 아무리 밖에서 봄의 전령들이 화려하게 춤을 추어도, 나의 거실앞 작은 정원에서 누에 고치가 허물벗듯, 겨울의 옷을 벗고 봄의 옷을 입는 향연이 시작되어야 나는 ‘봄이구나’ 감탄사를 지른다.
4월은 말 그대로 잔인한 달이다. 잦은 대기오염과, 황사는 큰 거실창을 자주 청소하게 하는 ‘귀찮음’을 안겨주고, 소나무에서 뿜어내는 송진가루는 나의 허락도 없이 초록색인 차를 노랑색으로 도색하는 장난질을 한다.
그래도, 봄은 좋다. 아무리 겨울이 매서웠어도, 길었어도, 가물었어도, 여지없이 창조주의 시간안에서 대지를 온통 생명의 초록으로 그려낸다. 겨울내내 얼어붙은 땅을 태양과 협력하여 녹이면 땅을 뚫고 파릇파릇 초록의 싹이 나오는 그 경이로움을 보면, 베토벤의 합창교향곡이 절로 흥얼거려지며 창조자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
비원에 여름이 오면, 빌라의 회색 콘크리트 담들은 ‘아이비덩굴’로 자신들을 은폐한다. 한낮의 강렬한 햇빛은 자신들이 가져가고 그 댓가로 대지는 선선함을 받아 나에게 선물한다.
베란다에서 큰 이불빨래를 건조기가 아닌 ‘햇빛’의 살균 건조 모드로 말릴수 있다. 햇살과 바람의 애무로 말려진 이불, 수건, 빨래들을 개킬 때 손끝으로 느껴지는 뻣뻣하면서도 보드라운 촉감은 참으로 좋다. 가끔씩 놀러오는 친구들도 있다. 해가 높이 떠 오르기전, 제라륨에 물을 줄때면 화분밑에서 ‘앗 차가워’하며 고개를 내밀며 인사하는 도룡용, 큰 이불빨래 할때마다 이불 널뛰기 하러 마실오는 사마귀, 윙윙 소리내며 날아오는 느리디 느린 장수벌레, 그늘이 진 소나무사이를 빠르게 넘나넘는 청설모들은 나의 여름 친구들이다.
뉘엿뉘엿지는 해가 ‘인디언 서머’의 아름다운 감색으로 노을을 물들이는 늦여름 저녁때쯤이면, 살랑살랑 한풀기가 꺽인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반가운 마음으로 앞,뒤 창문들을 활짝 열어 놓고 아래 동네 바벨탑에 사는 지인들은 감히 뒤처리가 무서워 밥상에 잘 초대하지 않는다는 ‘고등어생선구이’를 한다. 둿감당은 바람에 맡긴 체.
‘해운대’라는 지명답게 달맞이 중턱에 ‘운무’가 턱하니 자주 걸린다. 사방 운무커텐속에서 솜사탕같은 구름을 만지려 손을 내밀면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며 설탕가루가 아닌 찹찹한 물기만 손바닥에 남기고 사라져 버린다. 남겨진 그 흔적들을 지우려고 제습기는 쉴새없이 노동을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무가 머무르는 날은 지극히 환상적이고 몽환적이다.
가을, 비원의 모든 나무들이 여름내내 입었던 자신들의 체취가 묻은 옷들을 허물 벗듯이 벗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그들의 흔적들을 놓치기 아쉬워 바스락바스락 낙엽을 귀로 발바닥으로 만끽하기 위해 맨발의 이사도라마냥 정원을 춤추듯 걸어다니곤 한다. 청명한 가을 햇살아래서 베란다 벤치에 앉아 책읽는 시간은 그 무엇과도 바꿀수 없는 나만의 유희이다. 저녁석양이 물들쯤 여지없이 가을의 전령사 귀뚜라미들의 합창으로 방해받기 전까지.
우수수 우수수 낙엽이 떨어져, 모든 에너지를 소진한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보일때쯤이면,
나는 집안을 겨울모드로 전환한다. 얇은 커텐들을 걷어내고 묵직한 면 커텐들로 스멀스멀 틈새로 들어오는 ‘한기차단’을 시작으로 추운겨울을 준비시작한다. 3계절을 즐긴 댓가를 치러야 하는 1층의 현실이다. 거실밑으로는 주차장이요, 집의 앞면, 측면, 뒷면은 찬바람이 항시 드나들고 만나는 탁 터인 정류장이다. 그래서, 창문틈들을 방풍지로 꽁꽁 싸고, 쇼파엔 무릎담요들을 장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겨울 저녁의 깜깜한 적막감만은 사랑한다. 도시의 고층건물들이 자랑하며 내뿜어 대는 화려한 도시의 불빛들은 다행히 이곳에까지 미치지 못한다. 해가 지고 나면 굴뚝의 밥짓는 연기만 보이는 시골의 정경처럼 소리도, 불빛들도 어둑함과 적막함으로 흡수되어 고요해진다. 하늘에 촘촘히 박힌 보석같은 별들을 볼려고 거실문을 열고 베란다로 나가 큰 기지개를 키노라면 코 끝에 느껴지는 고추냉이 같은 알싸하게 매꼼한, 대지의 체취가 한껏 묻은 찬 바람도 좋다.
달맞이의 역사는, 한국전쟁이 끝나고 해운대가 주한미군의 휴양지로 사용되자 달맞이고개는 주한미군의 골프장으로 사용되었다. 이 골프장은 국내의 유일한 골프장이었다. 60년대까지 미군이 사용하고 70년대부터 본격적인 개발이 되었다. 80년대부터 빌라들이 지어지기 시작했고, 국토공원화 사업으로 인하여 1983년부터 고갯길에 자연석을 쌓고 벚나무를 심어졌다. 이때 심어진 나무가 달맞이고개의 가장볼거리인 벚꽃길이 되었다.(나무위키)
그때 심어져, 오랜세월동안 그 자리에서 사철내내 달맞이를 지켜준 벚나무들의 꽃의 축제가 지금 한창이다. 주말에는, 문탠로드로 가고 오는 모든 도로들이 온통 나들이 나온 차들로 인해 시끌벅적 난리 북새통이다. 달맞이에 사는 댓가로, 달맞이 주민들은 벚꽃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기까지, 도보로 외출을 해야하고 귀가시간도 나들이객들이 다 물러간 늦은 저녁으로 계획해야하는 ‘수고로움과 불편함’도 감수해야 한다.
해운대 달맞이 빌라촌에 32년째 살고 있는 나와 남편은 바벨탑처럼 치솟은 고층 아파트의 생활과 집값을 도저히 감당할수 없고, 감당하기 싫어서 이곳에 정착했다.
달맞이 고갯길, 대부분의 빌라들은 20여년전에 건축된, 지금 지어지는 아날로스식의 편리함과는 동떨어진 오래된 건물들이다. 거대한 아파트 단지처럼 관리실도 없으니, 조그마한 일상의 수리부터 모두 본인들이 해결해야 하는 불편함을 감수하고 즐겨야 하고, 고갯길에 위치하여 낭만은 있으나 흔히 부동산의 가치를 책정한다는 ‘인프라’는 제로인 동네, 잠옷 바람에 슬리퍼 끌고 갈수 있는 이 시대에 없었어는 아니되는 ‘편의점’ 또한 멀리 떨어져 있는 이 불편한 달맞이에 사는 우리에겐 이곳만의 톡특한 ‘매력’ 때문이다. 10여분만 싱그러운 길을 따라 ‘아래동네’로 걸어내려가노라면, 바다해안가를 따라 상가와 각국의식당들이 즐비하게 있고, 선택의 폭도 호텔부터 재래시장까지 다양하다. 10여분 차를 타고 뒤돌아 올라가면 도시를 감싸안고 있는 ‘장산’을 만날 수 있다. 화려하고 번잡한 ‘아래 동네’에 마실갔다 지루해지고 피곤해지면, 고즈넉하고 cozy한 ‘작은 비원’이 있는 달동네 달맞이로 걸어 올라온다.
긴 하얀벚꽃 터널을 지나 나의 작은 비원으로 가는 길은 마냥 감사하며 행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