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샘레터 80]‘대한민국 대표 교양PD’의 뒷담화
‘벗길맛’ 멤버(고정멤버는 없고, 늘 불특정 다수이다)인 친구가 다녀가면서 불쑥 던지고 간 책이 자기의 친형이 펴냈다는 『따뜻한 TV 행복한 PD』(강성철 지음, 한스컨텐츠 2022년 12월 19일 발행, 269쪽, 16000원)였다. 출간된지 보름도 안된 따끈따끈한 책이다. 양력 섣달 그믐날을 함께 지낸 아내가 상경하자마자 전기장판에 누워 통독했다. 비교적 가벼운 내용이기에 두어 시간이면 충분할 듯하다. 일단 재밌었다. 방송인들이 쓴 책은 글쟁이(약간의 비아냥과 폄하의 의미가 담겼다) 신문기자들이 쓴 책보다는 드문 편이고, 나로선 상당히 낯선 분야인데도, 재미가 쏠쏠했다. 즐겨 보는 프로들이 많은 때문이기도 하지만, 언제나 어떤 이야기의 뒷이야기(뒷담화, behind story)는 재미가 있게 마련이다.
1980년 KBS PD로 입사하여 지금껏 교양PD로 살아왔다고 한다. 2007년 KBS를 사직하여 프로덕션 대표를 하고 있다는데, 그가 기획하고 개발한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지금도 장수프로인 <걸어서 세계속으로>와 <도전골든벨(1999년 시작, 20년 지속, 2020년 6월 28일 990회 종료. 저자는 이 프로 장기기획자로 백상예술대상을 받음)> <시니어 토크쇼 황금연못> <6시 내고향> <러브 인 아시아> 등 50여편이라고 하니, 말하자면 ‘교양PD 귀신’인 셈. 하나의 프로그램만 대박을 쳐도 소문이 왁자지껄할 터인데, 판판이, 번번이 히트를 친 작품만을 기획하다니, 대다난 방송장인이자 천직 PD 마에스트로임에 틀림없는 듯하다. 아, 강우성 친구의 형이 장수 교양프로그램 전문PD로 인기폭탄 제조기라니? 게다가 전북 김제산産, 자랑스럽기까지 했다. 어찌 KBS뿐일까. 다른 방송 모니터도 열심히 했을 터이니, 대한민국 방송 역사상 유명 교양프로그램의 역사는 강PD에게 물어보면 그 배경 등에 대해 척척척 대답이 나올 듯하다.
요즘도 내가 가장 즐겨보는 프로가 <걸어서 세계속으로>(약칭 ‘걸세’. 아침 KBS2 6시 10분 - 57분 방영)와 <세계테마여행>이다. 한 작품이 성공하기까지 관련된 방송인들은 얼마나 피를 말리는 노력을 했을까, 제작현장의 이야기가 흥미롭다. 이런 세계가 있나? 싶었다. 그런 보람과 성취감으로 40여년을 지탱해 왔으리라. 무엇보다 그는 아날로그의 따뜻한 심성을 갖고 있어 좋았다.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따뜻하다는 것은 세상을 살만하게 만든다. 뒷표지에 실린 유명짜한 방송인들의 이 책에 대한 멘트는 하나같이 상찬賞讚 수준을 넘는데, 다 읽고 나서야 인정했다. 김홍성 아나운서는 강PD선배와 일한 것은 큰 행운이었다고 했다. 방송인 이금희씨는 “좋은 사람이 좋은 프로그램을 만든다”는 방송계의 오랜 격언을 온몸으로 보여준 선배라고 기억한다.
정작 지은이는 “자신은 최초 기획자일 따름일 뿐이며 프로그램을 롱런하게 만든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동작업 덕분”이라고 겸손해 하지만, 40여년 동안 60여개의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방영하여 인기 얻기가 어디 쉬웠을 것인가? 평생 못잊을 방송사고도 솔직히 고백한다(‘걸세’출연자의 이름을 오기誤記하여 3년간 KBS 출입금지를 당했단다). 서울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5개월간의 짧은 교사생활을 ‘교학상장敎學相長’을 들먹이며 과감히 때려치운 뒷이야기는 우리를 숙연하게 들을 만하다. <지구촌 기행> 프로그램을 준비하여 오스트리아에서 대건축가 훈데르트바서를 만나 행운의 인터뷰를 하고, 그리스에서 취재 중 배우 멜리나 메르쿠리를 만나 인터뷰한 감격도 인상적이다. 이탈리아 작가 아미치스 원작의 동화책 <쿠오레>(쿠오레는 심장, 사랑하는 마음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우리나라에선 <사랑의 학교>로 번역돼 출간됐다)를 읽은 감동이 오래 남아 <인간가족 휘파람을 부세요>라는 프로그램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는 감동을 준다. 역시 사람 사는 사회는 휴먼 다큐 프로그램이 “짱”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대학신문 기자를 하면서 신문기자를 꿈꾸었으나, 동아일보 광고사태 등 엄혹한 시대상황에 회의를 느껴 방송인이 되었다는 그는 PD지망생들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아 가이드북 역할도 톡톡히 할 것같다. 나도 신문사 문학-출판담당 기자가 되고 싶었으나, 기회가 영 오지 않았다. 기회가 왔으면 잘 할 수 있었을까? 내공이 빈약하기에 못했을 것같기도 하다. 흐흐. 그나마 교열과 편집을 익히게 된 것은 행운이었기에, 지은이와 동병상련의 마음이 교차했으나, 그는 대한민국 대표 교양PD로 우뚝 섰다. 창의적인 방송활동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는 일은 어려울 터이지만 신나는 일이기도 할 것이다. 앞으로도 녹술지 않은 특유의 감각으로 좋은 작품들을 방송사에 부단히 납품하여 이름을 빛내길 바라는 마음 가득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