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척 문학탐방을 다녀와서
우 승 순
모처럼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은퇴 전 현직에 있을 땐 강릉, 동해, 삼척으로 출장을 자주 다녔다. 이 지역엔 석회석이 많이 매장되어 있어 국내 굴지의 시멘트공장이 많았기 때문이다. 먼지나 대기오염도 검사를 위해 30여 년 동안 수십 번을 다녀갔지만 관광을 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회장단에서 나누어준 일정표에 있는 탐방장소를 보니 모두 처음 가보는 곳이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기이한 사람 중에 하나다. 아마도 관광의 매력을 잘 몰라서일 것이다. 사실 이번 탐방도 관광보다는 오랜 만에 문학선배님들을 뵙고 신입회원들과 친교의 시간을 갖고자 함이었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자꾸 무기력해져 가는 마음을 달래보고 작은 변화라도 갖고 싶어서였다. 코로나 후유증인지 요즘 산만하고 괜히 우울하다.
아침 일찍 배낭을 챙기고 출발장소에 도착했다. 만남의 광장에서 오랜만에 문학선배님들을 뵙는 순간 나오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원들이 속속 도착했고 2차 집결지에서 대기 중인 일행을 모두 태우고 버스는 삼척을 행해 출발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회장님의 간단한 인사말이 있었고 춘천수필의 명가수이자 능수능란한 만능 엔터테이너 최정란 사무국장의 일정 소개와 유쾌한 재치문답이 이어지면서 이번 여행의 즐거움을 예고했다. 아침 일찍 출발하면서 식사대용으로 나온 여러 가지 간식 중에 검은 콩과 호박고자리가 어우러진 시루떡은 정말 맛있었다. 이틀 동안 버스 안에서 무료함을 달래주는 최고의 군것질거리가 되었다.
당초 탐방지는 9곳이었는데 현장에서 유채꽃 마을을 추가하여 모두 10곳을 다녀왔다. 첫날은 영경묘, 강원종합박물관, 죽서루, 나릿골 감성마을, 임원항을 방문했고, 둘째 날은 수로공원, 장호항 케이블카, 유채꽃 마을, 해신당 공원, 이사부 사자공원을 보았다. 첫날 날씨는 초여름 같이 더웠고, 둘째 날을 초가을 같이 선선했지만 바깥 활동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다.
관광은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다. 돌아와서도 글보다는 사진이나 동영상을 보는 것이 훨씬 더 실감난다. 그러나 느낌은 글로 표현 할 수밖에 없기에 어쭙잖은 탐방 후기를 쓰려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름다웠던 풍광은 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삼척의 해안절경이었고, 인상 깊었던 탐방지는 죽서루, 나릿골 감성마을, 수로공원 등 이었다. 죽서루에서는 잠시 동안거사를 생각하며 삼척현의 선비가 되어 술 한 잔에 시한수를 읊어보는 회상에 잠겨 보았다. 다만, 13점이나 되는 편액과 현액이 모두 한자로 되어 있어 일반인이 감상하기 어려운 점이 아쉬웠다. 관동제일루인 죽서루가 삼척시민의 염원대로 부디 국보로 승격되길 바란다. 나릿골 감성마을에선 타임머신을 타고 그 옛날 가난했던 어부의 삶 속으로 들어가 봤다. 가파른 언덕을 오르던 거친 숨소리, 막걸리 한잔에 회포를 풀었을 남정네의 걸쭉한 목소리와 돈이나 사랑 때문에 다투었을 여인네의 앙칼진 목소리가 부딪히며 파도소리에 실려 왔다. 방귀소리나 숨소리까지 들렸을 다닥다닥 붙은 이웃들의 그 고된 삶을 생각하며 요즘 세상의 과소비를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언덕을 오르내리며 땀 벅벅이 된 일행들을 위해 한상만 선생님께서 시원한 아이스크림으로 더위를 식혀주셨다. 수로공원은 거대한 수로부인상과 탁 트인 시야가 일품이었다. 수로부인께 마음속으로 헌화가의 한 구절을 고해봤다. “나를 아니 부끄러워하시면 꽃을 꺾어 바치오리다.” 부인께서 빙긋이 웃으시며 “그대는 그대 일이나 잘 하시게”라고 말씀 하신다. 수로부인께 합장하고 철쭉을 꺾어 받쳤던 노인의 마음을 헤아리며 내려왔다.
오후 5시쯤 첫날의 탐방을 마치고 임원항에서 저녁을 먹었다. 마침 오늘은 박종숙 선생님의 생신이었다. 회장단이 케익을 준비하여 즉석에서 축하연을 베풀었고 이어 즐거운 식사시간이 이어졌다. 휴대폰의 만보기를 보니 오늘 약 14,000보 정도를 걸었다. 더운 날씨에 갈증도 나고 해서 맥주를 시켰고 생선회와 매운탕으로 맛나고 즐거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우리 식탁은 맨 끝 쪽이라 디귿자(ㄷ) 형태로 5명이 앉을 수 있었는데 테이블의 주도권은 당연히 맞은편에 계신 Y선생님이었다. 매사에 나아가고 멈춤이 분명하신 분이다. 그 옆에 K선생님 그리고 신입회원이신 S선생님과 최 사무국장이 함께했다. 나는 청일점이 되었고 내심 너무 기뻤다. 사실 나이 들면 여성분들이 훨씬 더 재미나고 유쾌하다. 수다 떠는 것이 스트레스 해소에 최고의 명약이라는 것은 이미 정신분석학에서도 잘 알려진 정보다. 이슬에 거품을 채우며 분위기가 무르익을 그때쯤이었다. 최정란 쌤의 “문자가 왔어요”란 에피소드에 모두는 파안대소 했고, 기발하고 재미있는 ‘따라 하기’가 이어지며 시간은 번개처럼 흘러갔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여행 중 가장 유쾌하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오후 7시쯤 숙소에 짐을 풀고 문학 강의를 들었다. 강사는 시인이고, 여행 작가이며 국학박사인 김태수님께서 열강을 해주었다. 강의실이 아닌 숙소에서 칠판도 없고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교재도 없이 삼척의 역사, 문화, 인물 등에 대해 1시간 이상을 막힘없이 강의할 만큼 전문가였다. 이어서 우리 방에서는 10여명 정도가 별도로 모여 문학포럼을 개최하였다. 주제는 ‘MZ세대의 이해와 공감능력에 대하여’로 정했다. 패널들은 각자의 경험과 지식을 기반으로 열변을 토했고 칼칼해진 목을 축이기 위해 치맥을 곁들였다. 더하여 정금지 선생님이 준비해온 포도주 2병이 보랏빛 향기를 더했다. 포럼은 11시까지 이어졌지만 대개 토론이란 것이 그렇듯 아무런 결론 없이 다음을 기약하며 파했다. 우리 방 이름은 ‘잣나무 방’ 이었는데 코골이가 심한 분들이 자진해서 선택한 방이었다. 그날 밤 코골이 세레나데가 있었는지 없었는지 나는 모르겠다. 아침에 일어나니 그 부분에 대해서 아무도 말을 꺼내는 사람이 없어 다행이었다.
둘째 날, 아침 산책을 마치자마자 뱃속의 위장에서 문자가 왔다. “배고파유, 빨리 밥 줘유!” 빈속에 게 눈 감추듯 밥그릇을 비우고 이동하여 장호원 케이블카를 탔고, 해신당공원을 거쳐 삼척중앙시장에서 자유 시간을 가졌다. 오랜만에 싱싱한 문어(3kg 정도가 맛있다)를 사려 했지만 1kg에 4만원을 불러 너무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포기하고, 그 가격에 꾸덕꾸덕 잘 말려진 열갱이와 가지미를 각각 2마리씩 샀다. 점심식사 후 이사부 사자공원을 경유하여 남은 일정을 빠짐없이 소화하고 어느 듯 우리 버스는 춘천을 향하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바다가 잘 보이는 구정 휴게소에 들려 간밤에 남긴 케익, 치킨, 캔맥주 등을 소비하였고 일행들의 얼굴은 어느새 4월의 연산홍 처럼 붉게 물들고 있었다. 버스 안에서는 지루함을 달래기 위해 노래와 시낭송이 이어졌는데 평소 노래방에서 듣던 감정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객지에서 듣는 노래가사와 시의 의미는 더 짙게 다가왔고 흥도 절로 솟았다. 노래실력은 모든 회원들이 수준급이었다. 돌아오는 길에 휴게소 한곳을 더 들렸는데 운전기사님의 멋진 색소폰 연주가 있었다. 가요 ‘장녹수’ 등 3곡을 내리 연주했는데 완전 프로 솜씨였다. 설렘이 있으면 아쉬움도 남는 것이 세상이치다. 해질 무렵 우리 일행은 춘천에 도착하여 기사식당에서 저녁을 함께하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헤어짐은 늘 아쉬움을 남긴다. 이 시간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도 어쩌면 그리움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우 하루 밤이 지났을 뿐인데...... 친교와 기분전환의 두 마리 토끼를 다잡은 나의 문학탐방은 그렇게 마무리 되었고, 지난밤 나는 오랜만에 단꿈을 꾸었다.(끝)
감사의 글
이번 문학탐방을 꼼꼼하게 준비해온 이병옥 회장님을 비롯한 임원 여러분의 성심어린 노고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특히 회장님께서는 형님이 돌아가시는 집안의 조사에도 불구하고 회원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꺼이 참석하시어 솔선수범하심을 보면서 마음 한편에 뭉클함을 느꼈습니다. 회장단에서는 예약하기 어려운 휴양림을 숙소로 정한 것부터 식당예약, 문학 강연 섭외, 안내책자 제작, 간식준비, 안내방송과 오락 사회 등 모든 것이 잘 준비되어 편안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탐방지를 방문할 때면 미리 차안에서 삼척이 고향인 이경진 선생님께서 그곳의 역사적 배경과 유래 등을 상세하게 설명해 주시어 더욱 뜻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고, 탐방지에 도착하면 허남국 선생님께서 회원들과 삼척의 아름다운 풍광을 널리 알리기 위해 예술적인 사진과 동영상 촬영으로 동분서주하여 많은 볼거리를 남겨주셨습니다. 춘천 최고의 바리스타이신 김동순 선생님께서는 틈틈이 환상적인 커피를 제공해 주셨고, 뒤에서 궂은일들을 도맡아 해준 김휘규, 연제철 선생님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일일이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언제나 정이 넘치시는 춘천수필문학의 대선배님들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더욱 즐거웠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즐거운 입담으로 재미를 한층 더해준 윤명수, 한상만 선생님 덕분에 정말 유쾌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즈어멈께서는 늘 행복하고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랍니다.”ㅎㅎ 또한 글로만 대하던 허시란, 송순자, 서명희, 목서윤 선생님 등 신입회원님들과 조우하고 맛깔 나는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습니다. 끝으로 미안했던 일을 고백하고 싶습니다. 많은 회원님들이 찬조금을 내셨는데, 한 푼도 안 낸 내가 술과 안주는 가장 많이 소비한 것 같아 회장단에 대단히 죄송합니다.ㅠㅠ
함께 하지 못했던 회원님들께는 이번 탐방의 궁금증을 풀어드리고 다음을 기약하며, 함께한 분들께는 추억을 간직하고자 졸필이지만 이 글을 올립니다.
4월 22일 우승순 드림
첫댓글 우 선생님 감동입니다. 눈물 날 만큼~~
출발하는 시간부터 도착시간까지 한순간도 놓치지 않고 다 기록하셨네요. 눈 비비고 일어나 읽고 또 읽어보며 추억으로 기록해 주심을 탄복하며 감사합니다.
애써 준비한 1박 2일 문학탐방에 예상보다 참석 인원이 적어서 아쉽고 섭섭했는데, 다행히 신입회원님들이 함께 해 주시고 마지막 날 우 선생님께서 신청신청해 주셔서 얼마나 기쁘던지요. 역시 우리 춘천수필문학회입니다. 우 선생님 술과 안주를 많이 소비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젤루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한가지 수정 부탁합니다. 첫날은 연경묘~~ '영경묘'로요.
일정표에 잘못 적혀서 죄송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잘 즐겼습니다.
우와 !
잊기전에 빠르게 쓰셨네요
버스뒷자리에서 몰래 컨닝하니 벌써 글을 쓰고 계시더군요
모든님들의 대표로 쓰신 소감이라 생각합니다
공감합니다
저의 세계 알을 깨고
글쓴이들의 세계로 날아들었습니다
저또한 감탄감탄 했어요
정말 대단하세요.
난 반이나 잊어 버렸는데~~~
우선생님 글 자주보며 추억을 떠올리게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빕니다.
과분한 말씀으로 댓글 달아 주셔서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함께했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리며,
함께하지 못했던 분들은
매월 정기적으로 하는 걷기 나들이에서 뵙겠습니다.^^
잘 봤습니다
소상히 적어주신 글 잘읽었습니다. 와~우 멋진 글입니다. 즐거웠습니다. 곁드려주신 감사의 글도 잘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제 닉네임이 그대로 있네요. 서명희입니다
지창식, 서명희 선생님 댓글 감사합니다.^^
1번으로 쓰신 글 이제야 읽었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
우작가 덕분에 요번 문학기행 분위기가 좋았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최정란 선생님~
임종학 선생님~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