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즐거운 휴일입니다.
그러나
달력을 바라보니 즐겁지가 않네요.
8월 15일은 붉은 글씨로 광복절이라 쓰여있지만
1907년 나라를 일본에게 강제로 빼았긴 '치욕의 날'
8월 29일에는 아무런 기록도 보이지 않아서입니다.
즉, 국치일(國恥日)은 기념일이 아니라는 뜻이지요.
4월 22일 새마을의 날, 자전거의 날, 정보통신의 날 등 등
심지어 자전거의 날까지 ...
무수한 국가기념일이 있건만 국치일을 기념일로 지정하지 않은
정부와 국회는 과연 어느 나라 국민들일까요?
이날이 되면 생각나는 고전이 있습니다.
임진왜란 당시 영의정을 지낸 유성룡의 '징비록' [懲毖錄]입니다.
『징비록』의 첫 장에서 유성룡은 수많은 인명을 앗아가고 비옥한 강토를
피폐하게 만든 참혹했던 전화를 회고하면서, 다시는 같은 전란을 겪지 않도록
지난날 있었던 조정의 여러 실책들을 반성하고 앞날을 대비하기 위해 『징비록』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참 의외의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 사절단이 일본에 갔을 때
우리나라에서는 잘 읽혀지지도 않은 '징비록'이
책방마다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도꾸가와 이예야스의 일본 막부는 징비록을 일본어로 번역,
베스트셀러로 만들어
모든 무사들과 백성들이 읽도록 했답니다.
결국 징비록은 일본인들이 조선의 치부를 잘 알도록 하게 한
교과서 역할을 한 셈이 됐지요.
이와 같은 일본이기에 세계 3대 강국으로 우뚝 설 수 있었다고 봅니다.
또 있습니다.
대청황제공덕비(大清皇帝功德碑-병자호란 당시 인조가 청태종에게
무름꿇고 항복하는 그림이 새겨진 비석)-사적 제101호
원래는 한강변 삼밭나루터의 항복을 했던 곳에 세워졌다가, 1895년 청일 전쟁에서
청나라가 패하여 조공 관계가 단절되자 강물에 수장시켰습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인
1913년에 일제가 다시 세워놓았고, 1945년 광복 직후에 주민들이 땅 속에 묻어버렸지요.
1963년에 홍수로 다시 모습이 드러났고, 여러 차례 이전을 거듭하다가 1983년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지시로 송파구 석촌동 289-3번지에 옮겨젔습니다.
비록 부끄러운 역사라고 해서 우리에게 무의미한 존재는 아닙니다.
어쩌면 그것이 더욱 우리를 분발하게 하여 다시는 그러한 뼈아픈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해주는 것이 좋은 역사가 될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국치일'을 기념일로 제정하지 않은 위정자들이
있는 한 대한민국의 앞 날이 어둡기만 합니다.
우리 모두 8월 29일, 국치일에 조기를 게양하며 간악한 일제의 만행을
되새기도록 합시다.
글이 너무 길어 죄송합니다.
아침 저녁으로 기온차가 뚜렷한 환절기입니다.
블벗 여러분의 건강을 기원합니다.
첫댓글 민족혼을 일깨우는 글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