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년기획] 의료급여 부양의무자기준 폐지, 정말 안 되는 걸까?②
비수급 빈곤층, 건강보험 가입하지만… 비극 연달아 일어나
의료급여 수급자, 자살률 제일 높아… 미충족 의료도 ‘심각’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의료기관의 과잉진료가 ‘문제’
▶ (이전 글) ① 의료급여 못 받는 빈곤층 약 73만 명, ‘3%’로 관리되는 수급률
2021년 8월 17일, 복지 사각지대에서 살다 죽은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을 추모하는 '합동 사회장'이 열렸다. 검은 천이 덮인 테이블 위에 초, 향, 국화가 놓여 있다. 두 개의 영정사진 속에는 얼굴이 없다. 사진 하민지
- 비수급 빈곤층, 건강보험 가입하지만… 비극 연달아 일어나
박 씨와 같은 사람들은 의료급여를 마땅히 받아야 하는 빈곤층임에도, 국민건강보험 대상자가 되어 건강보험료를 납부하고 있다.
건강보험료 부담능력이 없지만, 건강보험에 가입되어 발생한 비극적인 사례는 이미 ‘송파 세 모녀’ 사건에서 확인된 바 있다. 이에 정부는 지난 2018년, 월 4만 8천 원의 건강보험료를 내야 했던 ‘송파 세 모녀’와 같은 사례가 없도록, 소득에 따라 월 1만 3천 원의 건강보험료를 낼 수 있는 ‘최저보험료’ 제도를 도입했다. 문제는 그런데도 최저보험료를 내기도 어려운 저소득 체납 가구가 발생하고 있다는 점이다. 2020년 12월,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해 의료급여를 신청조차 못 한 ‘방배동 모자 사건’의 60대 김 씨는 1만 3천 원의 최저보험료를 체납하다 사망했다.
이처럼 정부는 부양의무자기준을 폐지해 의료급여 대상자를 늘리는 대신, ‘최저보험료 도입’을 하거나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라는 명목아래 건강보험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산정특례’, ‘차상위 본인부담 경감 대상자’ 등의 사업을 확장하는 추세다.
정부의 이런 덧대기식 사업은 공공부조와 건강보험 제도로 나뉘어 있는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오히려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건강보험 제도는 가입자의 소득과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부과하도록 한다. 이 때문에 소득이 부족하고 정부로부터 기초생활보장을 받아야 할 국민을 건강보험 제도로 편입시키는 건 건강보험 원칙에 맞지 않는다. 게다가 건강보험 재정에 대한 국고지원율이 법정기준 20%에 미달하고 있어(2021년 기준 14.3%), 건강보험 재정 건전성을 저해하는 등 정부가 공공부조 책임을 건강보험 제도에 떠넘기고 있다.
- 의료급여 수급자, 자살률 제일 높아… 미충족 의료도 ‘심각’
의료급여 수급자라고 해서 충분한 의료를 받고 있는 상황도 아니다. 의료급여를 받고 있어도 의료이용에서 충족되지 않는 문제를 ‘미충족 의료’라고 한다. 예를 들어, 의료급여 수급자라고 하더라도 비급여 진료비는 모두 본인 부담이다. 그렇기 때문에, 몸이 아파 병원에 가는 가난한 사람들은 비급여 진료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병원에서 기피 환자가 되거나, 혹은 비급여 진료비로 큰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료분위 구간별 자살사망자 수와 자살사망발생률. 인구 10만 명당 자살사망발생률을 산출한 결과, 의료급여구간의 자살사망발생률이 43.5명으로 가장 높았다. 이미지 출처 복지부 '5개년 전국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2013~2017)'
최근 복지부가 발간한 전국 자살사망 분석결과보고서(2013~2017년)에서도 정부가 의료급여 수급자가 가난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충분한 의료 지원을 받고 있는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보고서에 따르면 의료급여 수급자의 자살률이 월등히 높게 나타나, 경제적 취약 상태가 자살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왔다. 건강보험료 소득분위구간별로 분석한 결과, 자살사망발생률은 의료급여 수급자 구간에서 43.5명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뒤이어 건강보험료를 기준으로 한 소득하위구간(30명), 중위구간(24.6명), 상위구간(19.1명)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보다 의료기관의 과잉진료가 ‘문제’
정부는 오래전부터 의료급여 수급자의 미충족 의료를 개선하고 비수급 빈곤층의 의료 사각지대를 없애려 노력하기는커녕 오히려 극단적인 사례들을 발표하며 의료급여 수급자의 도덕적 해이를 문제 삼고, 새로운 의료급여 수급자가 발생하지 않도록 했다.
노무현 정부는 지난 2006년, 의료급여 수급자의 ‘파스’ 남용을 지적했다. 당시 유시민 전 복지부 장관은 부정수급 문제를 드러내며, 양적 확대보다는 ‘지속가능’을 핑계로 수급자들에게 부담을 전가하는 대책을 내놓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1종 대상자에 대한 본인부담제 △선택병의원제 △대상자 선정체계 정비 등을 발표했다.
2018년 2월 23일, 복지부 보도자료 "보건복지부, 기초생활보장 부정수급 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 나서" 중 일부. 제2의 '어금니 아빠'와 같은 기초생활보장 부정수급 사례를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문재인 정부도 마찬가지다. 복지부는 지난 2017년, ‘이영학 사건’, ‘일회용 안약 사용’ 등 극단적인 사례를 이용해 의료 오남용과 도덕적 해이를 주장했다. 2020년에는 의료급여법을 개정해 의료급여증 양도 및 대여를 방지하기 위한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 신고 포상금 지급 근거를 신설하는 등 의료급여 부정수급에 대한 사후관리를 강화하겠다며 엄포를 놨다. 그러면서도 실제 의료급여에서 부정수급이 얼마나 많이 발생했는지는 밝히지 않았다.
지난 2015년, 국회입법조사처의 ‘복지급여 부정수급 현황 및 근절을 위한 개선과제’에 따르면, 복지분야에서 부정수급의 대부분은 개인이 아닌, 공급자(기관)가 저지르는 비리였다. 2015년 수급액 95조 6251억 원(복지부 17개 사업) 중 적발된 부정수급액은 790억 원(0.08%)이었으며, 이중 공급자가 저지른 비리가 절반 이상을 차지했다. 개인의 경우,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에서는 1만 3496명(0.8%), 146억 원(0.4%), 국민건강보험제도는 6만 2122명(0.1%), 69억 원(0.014%)으로 나타났다.
즉, 실제 의료급여 수급자의 과다 의료이용이 문제라면, 이는 개인의 도덕적 해이가 아닌, 의료기관의 과잉진료와 같은 ‘공급자 유인’에서 비롯되는 문제가 크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저소득, 취약계층이 아니더라도 일반 의료 이용자들의 의료 오남용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의료급여 수급자를 목표로 삼아 도덕적 해이나 오남용을 주장하는 건 가난한 사람에 대한 매우 심각한 편견이 반영된 것”이라고 질타했다.
이어 “한국에서 대부분의 과잉진료는 공급자가 유발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의료진 내부 동료 평가 기능이 강하지 않기 때문에 과잉진료가 있어도 이를 묵인하는 분위기다. 비급여 진료를 권하는 민간병원에서는 사실상 의료급여 수급자를 환영하지 않아, 수급자가 갈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정해져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비수급 빈곤층 규모에 맞게) 의료급여 수급자가 늘어나야 하며, 그 수요에 맞게 공공의료기관을 늘려 공급 자체를 ‘공공적’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참고 자료]
국회 입법조사처, <2021년 국정감사 이슈 분석 제9권 보건복지위원회>, 2021.
기초법바로세우기공동행동,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빈곤층의 몫찾기 20년: 수급권자의 경험과 제도변화, 운동, 판례, 이의신청을 통해 보는 기초생활보장제도 20년>, 2021.
김선 외, <부양의무제 폐지 이후의 의료급여제도>, 시민건강연구소, 시민건강이슈 2018-12, 2018.
나영균 건강보험연구원 부연구위원, <저소득층 의료보장 사각지대 해소를 위한 건강보험과 의료급여 역할 재설정>, 2021 사회정책연합 공동학술대회, 2021.
보건복지부, <5개년 전국 자살사망 분석 결과보고서(2013~2017)>, 2021.
여유진 외, <부양의무자기준 폐지에 따른 정책과제 연구>, 한국보건사회연구원, 2017.
관련기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