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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한성경을 카페에서 읽어 보세요 , 2009년에 시작해서 성경 차례로 읽어 가면서 해오고 있습니다
'편한 성경' 은 '다음' 가페에서 읽을 수 있어요
편한 성경은 알기 쉽게 편집해서 만들었으니
예수를 믿고 있는 사람들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성경의 참고서로 사용하면 되고
아직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은 편한 성경을 읽어 보고 예수 믿으면 됩니다.
예수 믿는 것도 성령 하나님이 도와 주어야 하니까요
맨처음 믿는 사람들은 요한 복음 부터 읽어야 좋을 것입니다
보혜사 (뜻: 도와 주는 분) 성령에 대하여 잘 가르켜 주니까요
최대한 한자 용어를 줄여서 편집 했어요.
페리토메(할례), 샤밭날(안식일), 미쉴레. 코헬렡, 쉬르하쉬림 ( 잠언 전도 아가 )
마타이오(마태) 마가(마르코) 펜테코스테절(오순절)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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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말
하나님의 성품과 뜻을 온 세상 사람들이 읽고 알수 있도록 글자로 기록한 것이 성경이다.
온 세상 사람들을 죄에서 건져내는 역사를 글로 나타낸 성경은 예수 크리스토(구세주)가 가운데 있다.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과의 약속이다. 그래서 옛약속을 구약 이라하고 새로운 약속을 신약 이라고 한다.
살아 가면서 생긴 모든 문제는, 성경 안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성경을 통하여 예수가 우리를 죄에서 건져내려고,
사람의 몸으로 이 땅에 와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려고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하늘나라로 간 사실을 믿어서,
우리도 끝없이 살 수 있다는 것을 믿도록 하는 것이 성경기록의 목적이다.(요 20:31, 요한 알파 4:1,2,3)
살아 가는데 기준이 되는 잣대가 필요하다.
성경을 잣대로 삼고 살아가면 되는데, 많은 사람들이 자기가 살아가고 있는 방식대로 잣대를 바꿀려고 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가르치고,
꾸짖고(책망하고),
바로 잡도록 하여서,
바르게(정의,의,옳음) 살아가도록 가르치기에 이롭다. (티모데 베타 3:16)
이해하기 편하고
읽기 쉽게 '편한성경' 은 편집하였습니다.
'편한성경'이 전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서
예수 믿지 않는 사람은 교회 가지 않고도 성경을 읽어서 성령의 도움으로 예수를 믿을 수 있고,
예수 믿고 있는 사람은 기존 성경의 참고서로 사용하면 됩니다.
영어 성경은 단위가 길이는 피트(feet) 무게는 파운드(lb)로 되어 있어서 이해하기 힘들어요.
한글은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언어 입니다.
구약성경 제목 데바림(신명기), 미쉴레(잠언), 코헬렡(전도서), 쉬르 하쉬림(아가서)
요한 알파, 요한베타, 요한 감마 등 등
용어도 뛰넘절(유월절, 영어 pass over) 등 등
펜테코스테(헬라어,헬라어로 50(펜티코스타),오순절 五다섯 오,旬열흘 순, 節마디 절,
10일이 5개, 영어(the day of Pentecost)
뛰넘절이 지난 다음 50 일이 되는 시나이 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을 기념하는)날
샤밭날 (안식일, 영어 Sabbath)
이스라엘에는 연간 강수량이 1000 mm 이하 500 mm 이하도 많아서 성경에도 논은 없고 밭만 있다.
그러니 주식이 빵이다. 개역 성경 번역의 떡은 빵(餠떡 병)이다. 한문 성경에서 번역하다 보니 그렇다.
광야로 번역한 곳은 사막 지역 비슷하다. 영어 성경은 desert 로 번역해 놓았다.
유트브에서 '성지가 좋다.' 보면 성경 이해하기 좋다. 이강근 목사. 1 회마다 약 20 분씩 350 회 가까이 됩니다.
출이집트에서 이집트와 나일강을 설명하는 가운데서
"이집트는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그리고 BC322 년에는 헬라에 침략당했다.
BC671 년, BC663 년 바빌로니아에게 침략 당했다.
'조안'과, '높(멤피스)'은 같은 장소이다.
고대 이집트는 수도를 나일강 하류의 '조안'(높(헬라어로 멘피스)) 에서
나일강 상류쪽으로 약 900KM 떨어진 '노의 아몬' 또는 '노' 또는 '노아몬'( 테베, 룩소르) 로 옮겼다.
성경에 나오는 지명들은 노의 아몬(렘 46:25), 노 (에즈켈 30:14), 노아몬(나훔 3:8)
(노아몬은 태양신을 섬겼던 장소 이다. 테베, 룩소르는 시간이 흘러 이름이 바뀐같은 장소이다) "
구약 성경은 이스라엘에서 10년 생활하였던 허성갑 목사(작고)가 2009년 펴낸 '히브리어 한글 대조 성경',
신약 성경은 2006년판 김기수 목사의 '헬라어 분해 대조 성경'을 많이 참조 하였습니다.
크리스토교의 3 대 보배로
사도신경은 무엇을 믿을 것인가?,
십계명은 어떻게 살아 갈 것인가?,
주기도문은 무엇을 믿고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가르켜 준다.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한 사람들의 기록이다.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기적이 나타나고,
체험한 기적의 기쁨을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고 살아가야만 한다.
성경은 신구약 1,189장 (구약 929장 신약 260장) ㅡ
신구약 31,173절 (구약 23,214절 신약 7959절)로 이루어져 있다.
성경 기록자 수 약 40명이고
성경 기록 기간 (BC1,600-AD100)약 1,600년 이다.
구약 성경 39 권은 AD 90년 무렵 이스라엘 욮페(텔아비브) 남쪽 20 킬로에 위치한 얌니아에서 결정되었고,
신약 성경 27 권은 AD 397년 북아프리카의
(페니키아시대에 아프리카 지중해 옆의 튀니지의 고대도시에 세운 식민지 도시) 카르타고 회의에서 결정되었다.
구약 시대에는 천막 성소가 있다가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성전에서 제사장들이 백성을 대신 해서 백성의 죄를 씻어 준다는 표로 제사도 바첬는데,
그 제사제도도 성전이 BC 586년에 불에 타서 없어지고, 스룹바벨 시절에 다시 성전이 세워지고,
헤롣 대왕시절 까지 있다가 주후 70년경 그 성전 마저 다 불타서 없어졌다.
그 다음 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계로 흩어져서 떠돌이 생활 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떠돌이 생활 하면서도, 구약 모세 오경 즉 하나님의 말씀 율법 공부 하기를 지금까지 계속 하고 있다,
히브리서에 그전 것들은 다 예수의 그림자 였다고 하였다.
지금은 예수 크리크리토가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공짜로 주는 은혜 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성경에는 사람을 죄에서 건져내는 역사 밖에,
예수 믿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하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지켜야 할 각종 법규들을
시대별, 인물별로 사건 사건을 통하여 실례로 들어 설명해가면서 기록하고 있다.
성경은 바르고 빠르게 가르친다
1. 성경은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2. 성경속에는 약속이 있다.
3, 성경속에는 명령이 있다. (하지 말라는 248 개와 (날마다)하라는 365 개 = 모두 613개)
4. 성경속에는 예언이 있다. (계시록 밖에도 신구약 곳곳에 있다)
5. 성경속에는 슬기(지혜)가 있다.
6. 성경속에는 성공과 실패의 가르침 (교훈)이 있다.
7. 성경속에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찬양)이 있다
(크리스토 교인들이 믿고 살아가야 할) 크리스토교 5 대 신앙
1.(하나님이 우주를 만들었다.) 창조신앙
2.(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한다.) 임마누엘 신앙
3.(예수가 우리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었다.) 십자가 신앙
4.(십자가에 달려 죽었지만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났다.) 부활신앙
5.(예수가 다시 세상에 온다.) 재림 신앙
하나님은 이집트 왕궁에서 공부하여
당시 이집트 문자인 상형 문자도 공부한 모쉐에게
창세기와 출이집트, 레뷔기, 민수기, 데바림을 기록 하도록 하였다.
성경과 관련 있는 6 대 제국은
이집트, 앗시리아, 바빌로니아, 페르시아, 헬라, 로마 인 것을 알고 성경을 읽어야 이해하기 쉽다.
성경 내용 가운데, 이들 나라들 끼리 전쟁 결과에 따라 이스라엘의 나라 역사도 움직였다.
창세기는 우주 창조와
사람 창조
요셒이 이집트에서 가족들을 모두 이집트로 오라 하여
요셒은 임종 하는 것으로 창세기는 마무리 된다.
출이집트기 에서는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불러 내어,
아브라함과 맺었던 카나안 땅으로 되돌아 오도록 하였다.
레뷔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거룩해 지도록 가르치고 있다.
민수기는 40년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을 훈련 시키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데바림을 하나님의 방법으로 훈련 받은 사람들이 복을 받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다.
예호슈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빼앗은 땅을 잘 관리 하도록 가르키고 있다.
사사기는 왕들이 있기전 사사들이 다스리는 기간에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다.
룯기에서는 다뷛왕의 조상이 누구 인가를 알려 주고 있다.
사무엘서는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 이었고,
이스라엘은 사무엘이 마지막 사사로 사사들이 다스리는 사사 시대는 끝나고,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세웠는데,
사울은 첫번 째 왕이 되었지만,
다뷛 왕이 왕권을 굳건하게 하였다.
열왕기서는 솔로몬 부터 마지막 왕 찌드키아 왕 까지 다루 었다.
역대기서는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역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에게 종교적 도덕적 가르침을 주는 것을 목적으로 기록 되었다.
에즈라 느헴야 에스테르는
바빌로나아를 무너뜨리고
페르시아를 세운 첫번째 왕 코레스 때 유다로 다시 돌아온 에즈라와 느헴야 그리고 그 이후 예스테르에 관한 이야기,
욥기는 인류의 공통 문제 '고난' 다룬 것이다.
시편, 미쉴레, 코헬렡, 쉬르 하쉬림 이다.
예사야는 예루살렘 왕족 집안 출신으로서 앗시리아 제국과 이집트 두 강대국이 패권 다툼을 벌이는
틈 바구니 속에서 할동한 선지자 이다.
에레미야, 예레미야 에카,에즈켈, 다니엘은 이스라엘이 망하고 바빌로니아로
끌려가거나 끌려가서 할동한 선지자들의 글이다.
북 이스라엘 출신의 호쉐아는 주요 활동기간은 BC 755-725 년으로
북 이스라엘이 망하는 수 년 전 까지 이다.
다른 선지자들 처럼 소명을 받은 것이 아니라.
가정에 있어서 비극적인 체험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지자로 나섰던 것이다.
아모스는 남왕국 웆지아 시대, 북왕국 이스라엘의 예로보암 왕 시대의 선지자이다.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갈라져 있고, 종교적, 도덕적, 정치적으로 혼란 하던 시대에
공법을 물 같이 정의를 강물처럼 흘리라고 외쳤던 선지자 이다.
오바댜는 에돔(페트라,나바티안 왕국)에 대한 하나님의 공정한 심판과 이스라엘의 회복이다.
요나서는 요나가 선지자로 일하던 북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의 다스리던 기간 41년( BC 786-746)은
북이스라엘 최전성기라 할 만한 때였지만,
진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튼튼해진 것을 알지 못하고 잘난체만 한 나쁜 세대이다.
요나서는 이런 이스라엘을 보고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마지막으로 알려주는 말이다.
이것이 요나서의 목적이다.
정말로 북쪽 이스라엘은 한 세대쯤 다음인 BC722년에 앗시리아에 의해 없어진다.
살찐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의 경고와 심판은 멀리 있었다.
니느붸는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 강 사이 메소포타미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의 하나다.
이곳은 현재의 이라크 티그리스 강 옆에 있는 도시로 앗시리아(BC 705-612)의 수도였다.
요나는 BC 760년 무렵에 이곳에서 뉘우쳐 고치라는 메시지를 알렸고, 니느붸 사람들은 뉘우치고 고쳤다.
그러나 요나의 메시지가 알려지고
약 100년이 지난 뒤 나훔 선지자는 니느붸가 없어질 것을 알렸다(나훔 1:14).
미카서는
미카는 요탐(B.C.750-732), 아하즈(B.C.735-716), 히즈키야(B.C.716-687)가
유다를 다스릴 때 일하였다고 밝히고 있다(1:1).
미카는 최고 50 년 동안 일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예사야와 비슷한 시대에 활동한 선지자이다.
예사야는 왕실을 상대로 사역하였고,
미카는 시민들을 상대로 사역 하였다.
1징,2장,3장에서는 죄를 보여주고, 죄 때문에 심판이 온다.
4장, 5 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다.
6장, 7장은 현재의 삶에서, 뉘우치고 고쳐서 살아야 한다.
나훔 선지자는 즈판야, 하밬쿡,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와 같은 시대 인물이었다.
니느붸는 나훔보다 150년 앞의 요나의 전도를 듣고 뉘우쳐 고쳤지만,
또 다시 잘난체하고 잔악해져서 나훔은 피의 도성이라 부렀다.
그는 앗시리아의 죄악 가운데 두 가지를 지적하였다.
첫번째의 것은 군사력을 무자비하게 사용한 점이다.
앗시리아 군인들은 적국 군인들의 목을 베어서 손에 들고 다니는 돌에 새긴 그림도 있다.
항복 안하면 죽여서 목을 베어서 들고 다니겠다는 협박이다.
그 결과 피가 강처럼 흘렀으며, 많은 민족이 없어졌고,
훌륭한 관습과 제도가 없어졌으며, 전쟁이 곳곳에서 격렬하게 일어났다(2:11-13).
하밬쿡
(하나님의 일을 한 때 : BC 609-589, 히브리어 발음 : 하밬쿸, 영어 : Habakkuk )
하밬쿡은 ‘껴안은 사람’, ‘매달리는 사람’라는 뜻. 남쪽 유다의 선지자(하밬쿡1:1).
레뷔 지파 출신의 제사장 또는 찬양대원으로 짐작(하밬쿸 3:19).
하밬쿡은 앗시리아 제국의 수도 니느붸와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창건자 나보폴라살(B.C.625-605년)과
마다이(메대)의 시악사레스(B.C.625-585년)의 연합군에 의해 무너진 B.C.612년부터
남쪽 유다가 바빌로니아에 의해 제1차 침입을 당했던 B.C.605년 사이에
주로 일을 하였던 선지자다.
즈판야는 B.C. 630- 625년 경, 남유다 제 16대 왕 요쉬야가 다스리던(B.C. 640- 609년) 시대에
주로 하나님의 일을 한 선지자이다.
당시 근동을 다스리는 앗시리아는 신바빌로니아 제국(B.C. 625- 539년)의 나타남과 함께
그 세력이 빨리 쇠퇴해져 가던 때였다.
이 때에 요쉬야는 나라 밖으로는 앞의 왕들이 친 앗시리아 정책을 폈던 것과는 달리
강력한 반 앗시리아 정책을 폈다.
그리고 나라 안으로는 대대적인 종교개혁을 밀고 나가서,
이스라엘 민족의 자주성을 되찾는 데 크게 힘을 기울였다.
이러한 때에 즈판야는 요쉬야가 종교개혁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에 앞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에 대한 꾸짖음과 세계에 대한 여호와의 심판을 예언함으로써
그의 종교개혁이 빠르게 나아가도록 힘을 더 하였던 것이다.
왕족임에도 불구하고 왕과 종교 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일반 백성들이 사회적으로 썩어빠지고, 종교적으로는 나쁜 길로 빠져서
하나님의 심판을 알려주는 것으로 보아
바르지 않은 것에 대해 단호하고 사리 판단이 또렷한 사람이다.(즈판야1:4- 13)
여호와의 날에 대한 그의 메시지가 매우 힘있고 또렷한 것을 보아
하나님의 바른것에 대해 굳은 믿음을 가지고 있는 매우 바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즈판야1:14- 18)
여호와의 날의 심판 예언이 흡사 죽은 사람을 위해 부르는
진혼곡이나 장엄한 장송곡과도 같은 만가체(挽歌體) 운율을 갖추고 있으며,
이밖에도 매우 아름다운 문장들을 많이 사용한 것들을 볼 때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다.(즈판야 1:12, 17, 2:4, 3: 11- 13)
학가이 (뜻 : 축제, 명절)
글을 쓴 연대 BC 520년 , 바빌로니아에 (70년간) 포로로 잡혀갔다가 되돌아 올 당시의 나이 많은 선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부서진 다음(BC. 586년)
70년 동안 바빌로니아 땅에서 포로생활을 했다.
때가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로니아를 없애버린 페르시아 첫번째 왕 코레쉐 왕의 명령에 따라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 때 약 5만 명의 같이 돌아오는 사람들과 함께
즈룹바벨, 대제사장 예호슈아, 선지자 학가이와 즈카르야가 돌아왔다.
이들은 성전을 다시 건축하기 위하여 기초를 놓았으나
사마리아와 또 다른 여러 가지 압력 때문에 어려움에 부딪치게 되자 성전공사를 그만두었다.
약 16년 동안 공사를 그만둔 뒤 BC. 520년 다리오 왕 때에
다시 성전건축이 시작되어 마침내 BC. 515년에 성전을 완공하여 하나님에게 바쳤다.
학가이는 네 번의 설교를 통해서 그만둔 성전건축을 다시 하도록 부탁하였다.
'학가이', '즈카르야', '말라키'는 포로기 이후 페르시야를 배경으로 쓰여졌다.
즈카르야와 학가이는 뱌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가서 같은 때(BC520 무렵)에 활동한 예언자이지만,
즈카르야는 문학적으로는 다르다.
즈카르야는 그의 글에서 불에 타서 없어진
성전을 다시 짓는 것과 성전 예배의식을 깨닫는 것에 관하여 처음 이야기한다.
성전은 하나님의 죄에서 건져내는 역사를 새롭게 하는 곳으로 깨닫고,
메시아의 시대가 갑자기 나타나는 것으로 깨닫는다.
즈카르야1-6장에는 모두 8개의 환상이 기록되어 있다.
말라키
영어 제목 : Malachi
즈룹바벨 성전 재건 (BC 516년) 다음에 활동한 선지자로 추정
말라키는 ‘나의 심부름꾼, 사자(보낸 사람)’, ‘나의 천사’라는 뜻.
말라키 선지자의 인적 사항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바가 없다.
말라키는 B.C. 444년 제3차 바벨로니아 포로들이 돌아온 때로부터
자신의 예언서를 기록한 연대로 짐작되는 B.C.430년까지 주로 하나님의 일을 한 선지자이다.
말라키는 느헴야와 같은 시대 인물이며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로서
당시 이스라엘의 사회적 도덕적으로 썩은 것을 꾸짖음으로써,
잘못된 길로 가는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제3차 포로 귀환을 주도한 유다 총독 느헴야가 예루살렘에 돌아온 다음에
첫 번째 사명으로 생각한 것은 먼저 예루살렘 성벽을 다시 쌓는 것을 통하여
제1차 포로가 돌아온(B.C.537년) 다음으로 성벽을 다시 쌓기 시작한
하나님 중심 국가의 정치적 위상을 드높이고
또 종교 개혁을 통해 골라 뽑은 백성의 모습을 새롭게하는 것이었다.
이러한 때에 말라키 선지자는 특별히 종교 지도자들인 제사장들이 썩어빠진 것과,
십일조와 감사헌금 규정의 정비,
외국 여자들과의 결혼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꾸짖음으로써
종교적으로 다시 일어서도록 하였다.
마지막 때 메시야가 세상에 올 것을 예언 하였다. ( 말라키 4장)
말라키에서 마타이오 복음 사이 약 430년 사이를 '성경 중간사'라고 한다.
이 기간 동안에 생겨난 것이 파리사이파, 사두카이파, 에세네파가 생겼다.
이 기간에 성전을 깨끗하게 하는 마카비 반란이 일어나서
'수전절'이 생긴 것도 성경 외경에서 이야기 하고 있다.
팔레스틴 지역을 다스리는 제국이 헬라에서 로마로 바궜다.
로마가 유대 땅을 다스리는 시기에 예수 크리스토가 태어났다.
신약은 예수 크리스토가 전 인류를 죄에서 건져 낼 수 있다는 것을 기록 하였다.
마타이오 복음은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마르코 복음은 로마인들을 대상으로,
루카 복음은 헬라인을 대상으로,
요한 복음은 전 인류를 대상으로 기록 되었다.
사도 요한은 페트로가 로마의 현재의 바디칸 성당이 있는 곳에서 십자가에 꺼꾸로 달려서 순교한 다음에,
요한복음, 요한 알파, 요한 베타, 요한 감마, 요한계시록을 AD 90년 즈음 즉 사도 요한이 90 살이 넘어서 기록 하였다.
사도 요한은 마타이오,마르코,루카복음을 다읽어 보고,
마타이오, 마르코 복음에 기록이 없는 31 가지,
루카 복음에 기록 되지 않은 것 29 가지를
예수가 십자가에서 달려 죽을 때 사도 요한에게 부탁해서 모시고 살았던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일일이 확인한 다음에 ,
예수가 행한 것을 빠짐 없게 기록하였다.
사도 행전은 예수가 하늘 나라로 가면 보혜사(도와주는 사람)를 보내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페테코스타절 (오순절 때) 성령을 사람들이 받아서,
교회가 폭팔적으로 부흥하기 시작 했다,
하나님은 사울이 타마스쿠스로 예수 믿는 사람을 체포 하러가는 것을,
불러서 예수를 널리 전하도록 하였다.
사울은 가말리엘 문하에서 율법을 철저하게 배웠기 때문에
로마서, 코린도 알파베타,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맆포서,콜로 싸이서,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티모데 알파 베타, 티토서,필레몬서, 히브리서를 기록 하였다.
예수의 동생 야코보는 예수 승천후 예수를 믿어 초대 교회 지도자가 되었다.
페트로는 적게 배웠기 때문에 자기가 예수에게 배우고 경험 했던 것을
페트로의 제자 마르코에게 이야기 한 것을 마르코가 적은 것이 마르코 복음이다.
페트로 알파 베타를 기록 하였다.
유다서는 예수의 동생 유다가 기록 하였다.
요한 계시록은 요한이 기록하였다.
요한 복음, 요한 알파 베타 감마 요한계시록은 요한이 90 살이 넘어서 기록 하였다.
성경은 구약이 처음에 히브리어와 아람어로 기록된 것을
알렉산더 대왕이 세계를 통일하여 헬라어(그리스어)가 세계적인 글자로 된 다음에,
유대인 학자 72명이 모여서 히브리어를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한 것이 70인 역이다.
신약은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기록 되었는데,
로마가 세계를 통일하여 라틴어가 세계어가 되었다.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 (영어 이름:제롬)가
로마 서민들이 사용하는 불가타(뜻:보통의) 라틴어로 번역하고,
구약도 (히브리어에서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과 히브리어로 된 것을 참고하여 불가타 라틴어로 번역 하였다.
로마시대의 세계어인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 종교 개혁 앞까지 사용되다가
종교 개혁이 일어나면서 성경 번역도 라틴어에서 독일어,영어,프랑스어로 번역되기 시작했다.
유럽은 칼뱅의 종교개혁에 영향을 받아 성경을 스스로 읽어야한다는
청교도의 믿음은 다양한 성경의 번역을 가져왔다.
구약 히브리어(70인역참고)와 신약 헬라어에서,
라틴어(로마어)로 로마의 보통 사람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불가타(Vulgata 뜻:일반의,보통의,공용의)) 성경을 번역한 사람은
라틴어로 히에로니무스(영어:제롬Zerom AD 347-420)이다.
2014년 현재 베들레헴의 예수가 태어났던 곳의 옆에,
36년을 성경 번역에 힘을 기울였던 히에로니무스(제롬)를 기념하는 곳이 있다.
구약 70인 역도 히브리어에서, 그 당시 세계적 글자인 헬라어로 번역 하여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서 읽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꿈도 꾸지도 못하였던 방법들을 사용하여,
그의 뜻이 온 세상에 퍼져나가도록 하였다
에라스무스는 불가타(로마 언어 라틴어) 에서 헬라어로 성경 번역
마르틴 루터는 1533년 라틴어에서 독일어로 성경 번역
존 위클리프는 불가타 성경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 지만
다 불태워져서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영어 성경으로 번역 할 수 있다는 토대가 되었다.
틴테일은 에라스무스와 마르틴 루터의 성경을 참조하여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참조 하여
영어로 1526년 성경을 출판 하였다
2010년 현재 신.구약 완역 469 개 언어, 신약만 번역 1,231 개 언어, 단편(쪽 복음) 827 개 언어 총 2.527 개 언어로
번역 되어 출판된다.
1894년 까지 이스라엘 나라 사람들은 세계 각나라에 흩어져서 현재의 이스라엘 땅에 나라를 세우고
산다는 것을 꿈꾸는 사람도 없이 살아들 왔다.
하나님 은혜로 프랑스에서 장교로 살아가고 있었던
유대인 출신 드레프스를 통하여 이스라엘 땅에 독립국가를 세워서 살아 가도록 힘을 주었다.
1948년 5월 14일에 초대 수상 벤구리온이 텔아비브(욮페) 박물관에서 이스라엘 나라를 선포 하였다.
하나님이 왜 우주를 만들었을까?
"보기에 좋았다"라는 구절이 창세기 1 장에 7번이나 나온다.
하나님이 우주와 사람을 만든 목적은 보기에 좋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빛나게 하기 위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목적에 맞도록 살아 가야 한다.
예사야 4321(43장 21절) "내가 나를 위하여 이 백성을 만들었으니,그들이 나를 찬양할 것이다."
우리 사람들은 사람 중심의 삶이 아니라, 하나님을 빛나기 위해 이 땅에서 살다가
주님이 부르면 하늘 고향으로 되돌아 가면 되는 것이다.
웨스트민스터 요리문답 첫번째가
"인간의 제일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좋아)하는 것이다" 라고
사람의 목적을 간추려 놓았다.
성경본문 내용의 단위를 미터, 킬로그램 등 현대적으로 표현하고, 문체를 현대적으로 표현하여,
이해하기 편하고 읽기 쉽도록 편집하였습니다.
"개역개정판" "쉬운성경" "NIV" "GOOD NEWS" "히브리어-한글대조 구약성경"(허성갑 2009년),
헬라어 원문직역 "신약분해대조성경" (김기수, 로고스. 2006년), "KJV","새번역", "우리말 성경" 등을 참고하여
하나님의 뜻을 글로 표현한 성경 원문 내용에 벗어나지 않도록 하면서,
그 동안 읽으면서 이해하기 힘들었던 것들에 대하여 최대한 이해하기 편하고 읽기 쉽도록 하였습니다.
( ) 안의 내용은 본문 내용을 이해하기 쉽도록 덧붙이거나 풀이한 것이다.
성경 읽다가 이해 잘 되지 않는 부분들은 상당히 도움이 될 것입니다.
수장절(추수감사절)=초막절,초실절=맥추 감사절=칠칠절, 비파=기타, 수금=(작은)하프
그리고 히브리어, 헬라어에는 높임말이 없다는 것을 알고
문맥이 매끄럽지 못한 부분에서는 기존 번역과는 달리 높임말을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가장 널리 보급된 영어 성경도 높임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굳이 하나님에게나 예수님에게 대한 부분에서도 생활에서 잘 사용하지도 않는
어색한 극존칭어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예를 들어 "말했다. 말씀하셨다. 먹다, 잡수셨다. 했다. 하셨다. 하시었다. 잠자다. 주무셨다 " 등등
요즈음 신세대와 높임말을 모르고 한국어를 어렵게 배우는 외국인들에게는 훨씬 쉬울 것입니다.
AD 7-10 세기 무렵 '맛소라'라는 유대인 학자들에 의하여,
22개의 닿소리(자음) 밖에 없는 히브리어 글에도 홀소리(모음)가 시용되기 시작해서,
티베리아의 맛소라 학파인 아론 벤 아쉐르에 의하여 고안된 홀소리(모음) 원리가 대표적으로 사용하게 되었다.
AD 925년의 알렉스 코덱스는 닿소리(자음) 본문에 홀소리(모음)의 강세 부호를 직접 적어 넣었다.
사나이 산 캐서린 수도원의 구약 사본 보다
약 1,000 년 정도 앞에 기록한 쿰란 사본이다.
BC2세기 부터 AD 67년 까지, 지금 부터 약 2,000 년전의 예수 시대와 비슷한 시대이다.
쿰란에 모인 사람들은 유대인의 사두카이파 사람들이나 파리사이파 사람들 보다 더 엄격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비슷한 광야의 쿰란 동굴에서 동굴 마다 나뉘어 살면서 생활 하였던 사람들이다.
로마가 망하고, 지진이 나면서 많은 유적들이 파괴 되었지만, 쿰란 구약성경 필사본이 2,000 년 지나서야 빛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올리브 등잔불을 켜고 모여서 성경을 필사한 흔적들이 많이 남아 있다.
쿰란 구역성경 필사본 내용이 캐서린 수도원 성경과 똑 같다는 것이다.
시나이 산의 캐서린 수도원 사본에 있는 구약 39권 가운데 38 권의 내용이 있다. 에스더서만 빠져 있다.
에스더 서는 시기가 늦어서 포함되지 않았을 수 도 있다,
처음 1947년에 양치는 소년에게 발견되어 여러 손길을 거치면서
1951 년 부터는 온 세계를 깜작 놀라게 할 만한 사건이 되었다.
AD 1008 년에는 시나이 산의
1400년 앞의 비잔틴 시대에 만들어진
그리이스 정교회 소속의 캐서린 수도원에서 수도원 수리하다가
버린 고대 70인역 헬라어 성경 사본을
독일의 라이프찌히 대학 교수 티센도르프 순례객이 발견하여
그 사본을 러시아로 가지고 가서,
러시아 정교회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레닌그라드)
사본도 만들어 졌다
성경은 모두 1189 (구약 929장,신약260장) 장이다
1450년대는 독일의 구텐 베르크가 발명한 인쇄술로 성경책을 한꺼번에 여러권 인쇄할 수 있었다
1397년에는 세종 대왕이 태어나서, 세종 48년 1446년에 쉬운 한글을 만들었지만,널리 사용들 하지 않았다.
그 앞에는 한권씩 일일이 적을 수 밖에 없었다
구텐 베르크 인쇄술로 성경을 대량으로 출판하기 앞의 성경은 아주 회려하게 만들어
보통 사람들은 사서 볼수 없게 희귀해서 엄청나게 비쌌다.
신.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이 붙인 것은 프랑스의 궁정 인쇄 기술자 스테파누스(AD 1503-1559) 가
1555년에 신.구약성경 모두에 장절을 붙여서 출판했다.
스테파누스의 라틴역 불가타(Vulgata) 성경이며,
오늘날의 성경은 1560년판 제네바 성경의 장절 구분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한다.
15-16 세기의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포르투칼과 스페인은 새로운 뱃길을 발견하여 자기들 나라에 이로움을 가져다 주기도 하였지만,
하늘나라의 기쁜 소식을 온 세계에 널리 알렸다.
한글 번역 성경은 중국 만주에 와있던 존 로스 선교사가
서로 친구사이인 조선 상인들 출신 서상륜, 이성하,이응찬, 백홍준의 한글 번역 도움을 받아서
1884년에 번역해 내 놓은 신약 성경과,
1887년에 신사 유람단으로 일본에 가서 츠다센을 만나서 예수를 믿고,
언드우드와 아펜셀라에게 조선어을 가르켰던 이수정이 번역해 내놓은 신약 번역 성경이 있다.
언드우드와 아펜셀라는 이수정이 한자성경에서 한글로 번역해 놓은 마가복음을 조선 땅 제물포에 가지고 와서
복음을 한글(조선어)로 전할 수 있었다.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1863-1949)’는 조선 입국 3년 만에 순한글 지리 교과서 《사민필지》를 펴냈다.
‘한글 띄어쓰기’를 하여 1896년에 헐버트가 도와서 만든 한글 <독립신문>에서부터
띄어쓰기와 마침표, 쉼표를 상용화 했다.
그는 1903년, 세계 학술지에
‘한글은 과학적이고 독창적으로 만들어진 음성언어로 한글의 우수성을
“한글은 각 자모로 정확하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완벽한 문자이다.”
헐버트 선교사는 "배우기 시작한지 4일만에 한글을 읽고 썼으며,
1주일 만에 조선인들이 위대한 문자인 한글을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한국어 학습에 매우 적극적이었던 그는 3년만에
한글로 '사민필지' 지리 책을 저술하였다.
한글은 세종대왕이 500년 뒤 셈틀로 글을 쓰고
누리통신을 하는 때를 내다보고 만들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셈틀과 딱 어울리는 글자다.
그래서 공병우 박사는 미국에서 셈틀로 글을 쓰는 길을 연구하고
세벌식 한글문서편집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1988년 귀국하여 종로 옛 공안과 병원자리에
한글문화원을 차리고 셈틀로 한글을 쓰고 누리통신을 하는 세상을 이끌었다.
1990년대 초 하이텔, 천리안 들 피시통신회사가 생겼을 때
공병우 박사는 아흔 살을 바라보는 나이에 피시통신으로 한글사랑운동을 하였다.
초대 대통령 이승만은 23세 젊은 나이에 한성감옥생활을 하면서
선교사가 전해준 성경을 일고 하나님을 믿게 됐고,
믿는 날부터 옥중 동료들을 열심히 전도해 40여 명을 크리스토교를 믿게 하였다.
선교사들의 노력으로 감옥 밖으로 나와서 미국 유학을 갔다.
구약 성경 번역(1895-1926)년에는 러시아(우크라이나)의 유대인 출신으로
미국 시민이 되어 조선에 온
알렉산더 피터스(1878-1958)가 있었다.
피터스는 러시아어, 히브리어,독일어,프랑스어, 영어, 일본어,한글도 공부 하여 할 수 있었다.
1910년 무렵 신구약 성경 번역을 마쳤다.
언드우드, 게일, 레이놀즈선교사와
구약 성경을 번역한 알렉산더 피터스는
히브리어와 헬라어를 가지고
여러모로 검토하여
1911-1938년 까지 (고치는) 개역 작업을 마쳐서
개역 성경이 만들어 졌다.
성경 번역에는 우리들이 알지 못하는 여러 사람들과 어려움들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예수의 복음을 알리며 살아 가야 한다
제주도 선교는 1907년 9월 17일 평양에서 대한 예수교 장로회 독 노회가 조직되었을 때 시작되었다.
조사, 장로, 전도사로서 사역하며 평양 신학교를 졸업한 일곱 사람 곧
서경조, 한석진, 송인서, 양전백, 방기창, 길선주, 이기풍이 한국 장로교회의 첫 목사로 안수를 받았는데
그 들 가운데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 선교사로 가겠다고 자원하게 된 것이다.
한인교회는 그 설립 초기부터 선교하는 교회였다.
일제 식민통치 기간동안 암울한 가운데서한반도 주변국들뿐 아니라
멀리 하와이와 브라질에까지 선교사를 파송하여 해외주재 한인들과 타민족을 위한 선교사역을 펼쳤고,
독립 후에 6.25 전쟁으로 국토가 초토화된 직후에 어려운 여건 하에서도 선교하는 교회로서의 전통을 지켜왔고,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폭발적인 교회성장, 경이로운 경제성장, 지속적인 이민성장,
교육수준의 향상을 힘입어 대대적으로 선교하는 교회로 탈바꿈하였다.
한인교회는 하나님이 세계선교를 위해 한인교회에게 주신 자산들을 이용하고
그 동안 쌓은 선교의 경험을 바탕 위에 세계선교를 위한 위대한 기여를 해야 한다.
급변하는 세계의 동향을 이해하고 효과적인 선교전략을 수립하여
세계선교발전에 독특하고도 위대한 기여를 해야 한다.
이제 성경을 단순한 원문에서 한글로의 번역을 뛰어넘어,
요근래 한류가 세계를 뒤엎듯이 세계적 공용어인 영어, 스페인어를 앞질러서
배우기 쉬운 한글로 된 성경이 세계 공인 성경이 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한글은 글자와 소리가 일치하여 쉽게 배울 수 있는 글 자체가 발음 기호이다.
모든 나라의 말과 소리를 글로 비슷하게라도 표현할 수가 있다.
인도유럽어는 문자가 있고 조합된 단어가 있고 단어를 읽는 발음기호는 따로 있다. 배울때에는 발음기호를 별도로 배운다.
한글은 별도의 발음기호가 없어도 온갖 소리를 기록할 수 있다. 그 자체가 발음 기호이기 때문이다.
한글은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러시아어 중국어 베트남말과 몽고말과 인도말과 그들의 문자를 사용하지 않아도
그들의 말을 표기할 수 있다. 한글은 만국 언어의 발음기호이면서 동시에 말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의 사람들은 자신의 생활을 편리하게 하기 위해서 모국어에 관계없이 한글을 배우면 몸에 이롭다.
한글로 적을 수 있는 발음은 11,000 개, 영어 1,000 개, 중국어 400 개, 일본어 400 개로 한글은 무엇이든 거의 다 쓸수 있다.
2014년 현재 전세계 237개 나라 가운데 자기나라의 글을 가지고 있는 나라는 30 개 나라이다,
사용언어별 순위를 보면 1위(중국어 사용국가 33개국,사용인구(쓰거나 읽을줄 모르는 문맹률 30%) 12억),
2위스페인어(31개국, 4억1천),
3위 영어(99 개국,3억 3천만), 4위(인디어 4 개국, 2억6천만), 5위 아랍어(60 개국, 2억 4천만), 6위 포르투칼어(12 개국, 2억),
7위(벵골어(4개국, 1억 9천만),8위(러시아어 16개국,1억 7천), 9위(일본어 3개국,1억2천만), 10위(자바어,3개국, 8,400만),
11위(란다어(파키스탄),6개국 8,200만),12위(독일어 18개국, 7,800만),
13위(한국어 5개국 7,700만),14위(프랑스어 51 개국 7,400만) 이다.
2018년 현재 세계 최대 규모 온라인 외국어 학습 사이트 듀오링고(Duolingo)는 급속한 수요 증가로 인해
작년 한국어 과목을 새로 개설했다.
개설하자마자 수강생이 2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으로 유학을 오는 학생도 늘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어 연수를 받으려고 입국한 사람들은 3만명으로, 일반 유학생(2만8000명)을 처음으로 넘어섰다.
"한류 소비자들이 단순히 콘텐츠를 좋아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한국이라는 국가 자체와 한국어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고 한다.
한글의 우수성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학자들의 주목을 끌었다.
언어 연구에서 세계 최고인 영국의 옥스퍼드대 언어대학은 과학성, 독창성, 합리성 등을 기준으로
세계 모든 문자에 대해 순위를 매긴 적이 있었다. 그때 당당히 1위를 차지한 문자가 바로 한글이다.
또한 1996년 프랑스에서 세계 언어학자들이 참석한 학술회의에서는
한국어를 세계 공용어로 쓰면 어떻겠냐는 토론이 오간 적도 있었다.
한편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제어드 다이어먼드 교수는 한글이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문자이며,
이 때문에 한국이 세계에서 문맹률이 가장 낮다는 논문을 1998년 과학잡지 ‘디스커버’ 6월호에 발표하기도 했다.
과연 한글은 왜 그처럼 우수하고 뛰어난 문자 대접을 받고 있는 것일까.
우선 IT의 대표상품이라고 할 수 있는 컴퓨터와 휴대폰에서 그 예를 찾아본다.
컴퓨터 자판을 보면 왼쪽에는 자음이 배열되어 있고 오른쪽으로는 모음이 배열되어 있다.
때문에 우리는 양손가락을 리드미컬하게 움직이기만 하면 모든 글자를 컴퓨터 화면에서 자유롭게 조합하고 생성할 수 있다.
휴대폰의 경우 자판은 겨우 12개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문자 메시지를 보내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그것은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들 때부터
마치 미래의 정보화 시대를 예견이나 한 것처럼 과학적으로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1443년 훈민정음(한글의 옛이름) 해례본 서문(머릿말)을 쓴 정인지는
한글은 똑똑하면 한나절, 좀 어둔해도 10 일 이면 깨칠 수 있는 글이라 하였다.
사실 요근래 애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앞에 한글을 다 깨치는 경우가 많아도
가정 교육을 많이 받지 않는 아이들을 위해서 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한글을 제2외국어나 외국어로 가르치는 학교수는 2010년 540개, 2011년 695개, 2012년 827개, 2013년 1053개,
2014년 1111개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학생수는 5만7464명, 6만4611명, 7만7712명, 8만6415명으로 해마다 늘어 2014년에는 9만3144명을 기록하면서
큰 폭의 증가세를 보여주고 있다.
“한글의 우수성과 위상이 점점 높아지고 있고, 대한민국의 경제적 위상 증대와 K-POP, 한국 드라마 등
한국의 대중문화가 널리 퍼지면서
외국의 일반인 및 학생들의 한국어 학습 수요가 꾸준히 증가하는 것이 중요한 요인으로 분석된다”며
“한글을 제2외국어로 사용하게 되면 한국에 대한 친근감과 이해가 높아져 한국 문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기 때문에,
한글 전문교원 양성, 한글표준교육 프로그램 개발 등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한글 교육 확산에 적극적인 대책과 관련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어 능력 지원 현황은 1997년(2700명), 2006년(34,000명), 2010년 (10 만명), 2016년 (25만명), 2019년 (37만명) 이 되었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문자로 꼽히는 한글.
그 명성에 걸맞게 ‘한글’은 지난 2009년 열린 제1회 세계 문자 올림픽대회에 이어
2020년 열린 제2회 세계 문자 올림픽대회에서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세계 문자 올림픽은 가장 쓰기 쉽고, 가장 배우기 쉽고,
가장 풍부하고 다양한 소리를 표현할 수 있는 문자를 찾는 대회다.
과연 ‘큰 글’이라는 의미를 지닌 이름값을 톡톡히 하고 있다.
또한 한류열풍에 힘입어 한글을 배우고자 하는 세계인들이 많아지면서
‘한글’은 그야말로 전 세계 곳곳으로 빠르게 보급되고 있다
세종학당은 2022년 기준 전 세계 84개국 244개소로 확대됐다.
세종학당은 ‘국어기본법’ 제19조 및 제19조의2에 근거해 운영하는
한국어·한국문화 교육기관이다
2007년 몽골 울란바토르에 처음 개설할 당시 전 세계 3개국 13개소,
수강생 연간 740명에 불과했던 세종학당이
2022년 현재 전 세계 84개국 244개소로 약 19배가 늘었으며,
연간 수강생은 2021년 8만 1476명으로 약 110배 증가하는 등 빠른 성장을 보이고 있다.
2007년부터 2021년까지 누적 수강생 수는 58만 4174명에 달한다.
특히 지난 15년간 다양한 수강생들이 한국어로 자신들의 꿈을 이뤄
세종학당은 ‘한국어로 꿈을 이루는 곳’이라는 수식어도 붙는다.
교회안의 작은 모임의 이름도 '사랑방'이 좋을 것 같다.
사랑이라는 말은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서 노는 곳을 뜻하면서 있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과 뜻은 다르지만
어떻던 우리귀에 익은 말이고 오래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예를 들어서 종로 사랑에 종로 1 사랑방 종로2 사랑방 종로 3 사랑방 등등
이미 우리 나라에는 2010년에 100 만명,2014년에 160만명 이상의 외국인들이 들어와 살고 있다.
중국843,000, 베트남 186,000, 파키스탄.스리랑카 등 남부 아시아 76.000. 미국 71,000, 필리핀 65,000.
우즈베키스탄 27,000,몽골 25,000 등
그들에게 한글로 된 성경을 가르치도록 해야 한다.
요근래 들어 온 외국인들은 한국에 돈 벌려고 들어 왔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글들은 알고들 있다.
그들에게 복음도 알리고 한글도 가르치면 된다.
그리고 신약에서 몇몇 자주 사용되는 사람이름과 지역이름명은
신약 성경이 기록된 헬라어 원어에 더 가까운 발음으로 표기 했습니다.
구약은 신약에서 다루는 사람이름, 지역이름은 헬라어 중심으로
구약에서만 언급되는 부분은 히브리어 중심으로 표기했습니다.
히브리어는 현재 'ㅅ' 발음으로 표기된 부분의 'ㅉ' 발음이 많습니다.
앞날을 생각하여 기존 눈과 귀에 익어 사용하였던 단어들도 생소하지만
헬라어 발음에 더 가깝도록 표현하면 다른 나라 인명인 장소 이해가 더 빠를 것입니다.
크리스토(영어 크라이스터 , 그리스도), 페트로(영어 피터,베드로), 파울로(바울), 마르코(마가) 등등
참고로 요즈음의 지역 이름이 생긴 유래도 쉽게 알 수 있다.
상트페테르부르크(聖 페트로 城), 상파울로( 성 파울로), 카나안( 가나안)등등
주로 'ㅂ'으로 표기된 부분은 'ㅍ'의 표기가 맞습니다. ( 페트로, 파울로 등), 받침 "ㅅ"은 'ㅌ' 'ㄷ'표기가 발음에 더 가까워요.
( 롵(롯), 룯(룻), 다뷛(다윗. David) , 찌바(영어 Ziba, 시바), 므피보쉩(므비보셋), 즐로프핱(Zelopehad, 슬로브핫),
아마쯔야(Amaziah, 아마샤), 플레쉩 (영어Palestine 팔레스틴, 블레셋), 등등)
영어 성경의 단어들과 비교해보면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멸망 후 서기 70년-1948년 까지 이스라엘 사람들은 나라도 없이 떠돌이 생활하다가,
1948년에 현재 이스라엘 땅에 자리잡아 국가를 이루면서,
죽은 언어와 같았던 히브리어가 다시 살아 나기 시작했다.
BC 587년에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잡혀 가면서 부터 히브리어는 거의 사용하지 않고 그 대신
당시 아람어라든가 주위 정세에 따라 그들이 배우는 언어도 달랐다.
히브리어는 회당에서 구약 성경을 읽을 때나 몇몇 유식한 유대학자들이 폼을 잡을 때에만 사용되었다.
그러다가 1881년 팔레스타인 땅으로 이주한 엘리에제르 벤 예후다(1858-1922년)가 앞장서서
히브리어를 다시 살리기 시작하였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이 되면서 부터, 본격적으로 히브리어를 다시 살리기 시작하였다.
한글은 세종 때엔 1446년 어리석은 백성이 자기의 뜻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도록 만들었다고 널리 알려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그 다음 약 500년 가까이 유림 사대부의 반대로 한자가 공식 글자 이었다가 1894년 갑오경장 다음 부터
고종황제가 법률과 공식문서에 국문을 사용하도록 발표했다. 한글이 제대로 사용된 것은 120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그 시기도 일본의 강점기 36년을 빼면 실로 100년도 되지 않은 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하여
모든 국민이 한글도 못 읽는 사람은 0.1 % 정도로 세계최대 문명국가가 되었다.
그 힘을 바탕으로 50년 전만 하더라도 세계 60위권 밖에 되지 않던 국가 경쟁력이
15위권 안으로 들어섰다.
1900년 대 초까지 언(상말,속된 언)문, 또는 통시글(화장실에서도 쉽게 배울 수 있다는 뜻),
(집안에서 조용해야 하는 여자들도 쉽게 배우는)암클, (아이들도 쉽게 배우는)아햇글 이라 하면서,
한문을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기의 학문을 자랑하는 사람들로 부터 천대 받아왔다.
1920년대쯤 글도 못읽는 사람이 조선 인구 2,000 만명 가운데, 1700만이나 되었다.
이승만 대통령이 1948년 대한민국 나라를 세울 때 한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200만 정도나 되었다.
1930년대 경북 김천시 감문면 대양리 출생으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선교사로 가 있는 서공섭 선교사는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여 전쟁통에 전사한 동네의 젊은 총각의 전사 통지서가 오자
너도 나도 교회당에 와서 '우리 아들 살려 주세요, 우리 형님 살려주세요' 하며
밤새도록 기도하는 사람들로 가득 찼고, 이때에 한글을 모르는 동네 대부분의 부인들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니,
군대에간 남편들에게 편지를 쓰려고 교회당에 나와서 예수 믿는 일이 되기도 하였다 한다.
1937년 생인 편집자의 장모도 20살도 되기 앞에 초등학교 졸업하고,
1948 년 즈음 마을 사람들을 사랑에 모아 놓고 호롱불 켜 놓고
낮에는 일하고 밤에 한글 가르키다가 너무 힘들어서 졸기도 하였다 한다
글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사니까그러니 부정 선거가 있었고,
초등학교는 의무 교육을 하도록 하여 글을 읽게 만들어서 그리하여 나라가 발전 하였다.
성경이 순 한글로 번역된 다음 부터 한글이 많은 발전을 하였다.
불과 1906 년에 발표된 최초의 신소설 이인직의 '혈의 누(血淚)' 같은 책은 불과 100 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세로로 쓰기에다가 한문 공용, 아래아 같은 글 혼용 때문에 대학을 졸업한 나도 읽기 쉽지 않은 소설이다.
1896년 순 한글로 만들어진 독립신문을 발간하여 획기적이 한글 발전을 도우고
이승만이 대한민국 첫째 대통령이 되도록 도운 서재필,
한글 발전에 많은 공을 세운 이윤제, 김윤경,최현배 등 한글 학자들도 예수 믿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예수 믿고 성경 공부를 한 여자들이 교육도 많이 받고 여자들의 인권을 향상 시켰다.
1900년 대 초 까지만 하더라도 먹고 살기가 힘들어 여자들은 심지어 돈이 필요한 부모들에 의해 팔려 가는 사람이 많았고,
결혼한 남자들의 첩으로 들어 가는 여자들도 많았다.
여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 가는 유관순의 스승 하난사(김(난사,Nancy의 한국식 이름) 이야기를 봐도 알 수 있다.
이화학당 출신의 박에스더는 의대생 최초의 미국 유학생이었다,
한국 최초의 여자 의사인 김점동(박 에스더)의 경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감리교 여선교사인 닥터 셔우드의 조수였던 김점동(박 에스더)은
어머니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때 떠돌이 노동자였던 예수믿는 박유산(홀박사의 조수)과의결혼을 강행하였다.
하란사는 인문계에서 처음으로 미국에 유학, 문학사 학위를 받은 ‘신여성’이다.
특히 조선 여성의 처지를 ‘꺼진 등불’로 묘사하며 이화학당에 입학한 일화는 유명하다.
이런 가운데 하란사의 신상 기록 일부가 잘못됐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하란사 남동생의 손자 김용택(68)씨는
“할머니는 기생 출신으로 관리의 첩으로 산 것이 아니다”며
“무역업을 하는 집안 장녀로 태어나 당당히 공부해 조국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하란사의 남동생, 김동연(金東淵)의 장남 김정국(金正國)의 5남이다.
하란사는 딸이 한 명 있었으나 일찍 숨졌다.
김씨에 따르면 하란사는 1872년 평양에서 부친인 김병훈과 모친인 이씨 사이에서
1남 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이후 한양(서울)으로 이사해 서울 평동 32번지에서 부모에게 한학을 배우며
아버지의 무역업을 도왔다.
1911년 아버지는 무역업에 전념하기 위해 인천으로 이사갔다.
하란사라는 이름은 이화학당 입학 후 세례를 받고
‘낸시(Nancy)’라는 이름을 얻은 뒤 한문식으로 바꾸어 ‘난사(蘭史)’라 붙여졌다고 한다.
성씨도 남편 성을 따라 ‘하란사’ 또는 ‘김하란사’로 불렸다는 게 대체적 정설이다.
김씨는 “당시 여자들은 이름이 없었다.
세례명을 받았다는 얘기는 나중에 역사가들에 의해 쓰여진 것 같다”며“원칙적으로는 ‘김란사’가 맞다.
하란사란 이름은 미국 유학길에 올랐을 때 입국심사관이 남편 성을 묻자‘하’씨라고 답한 것에서 유래했다”고 말했다
가장 큰 오해는 하란사가 기생 출신으로 남편인 하상기의 첩이 됐다는 설(說)이다.
김씨는 “터무니없는 말이다. 글 쓰는 이들이 확인 없이 인용했다”며
“할머니는 무역업을 하던 부친 밑에서 풍족한 생활을 누렸으며,
결혼 역시 하상기의 전처인 조씨 부인이 죽은 이후 시집을 갔다”고 반박했다.
23살의 나이에 아들 하나와 딸 넷이 있는 45살의 하상기와 재혼을 하였던 것이다.
하란사는 1894년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가 일본에 패한 것을 보고 교육의 중요성을 자각했다.
하지만 공부하기 위해 찾아간 이화학당은 입학을 거부했다.하란사가 기혼여성인 데다 유력한 집안이라는 게 이유였다.
하란사는 이에 굴하지 않고 몇 차례에 걸쳐 학교를 찾았고 하루는 교장 룰루 프라이 앞에서 등잔불을 직접 끄면서 말했다.
“내 인생은 이렇게 밤중처럼 캄캄합니다. 나에게 빛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겠습니까…
어머니들이 배우고 알아야 자식을 가르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의연한 조선 여성의 발언 앞에 프라이 교장도 어쩔 수 없었다.
학비는 자비 부담하겠다는 조건으로 하란사를 입학시켰다.
이 일화는 선교사였던 프라이 교장이 미국에 보낸 보고서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이화학당을 졸업하고 일본에 유학, 도쿄 게이오기주쿠(慶應義塾)대에서 1년을 공부했다.
한국에 돌아와 정동교회에서 서재필의 ‘미국의 남녀 평등한 활동’이란 강연을 듣고는
미국 유학길에 올라 1897년 12월 15일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에 도착했다.
‘하란사’란 이름은 여기서 처음 사용했다.
그는 1898년부터 2년간 워싱턴DC의 하워드대학과 디커니스인스티튜트에서 공부했다.
하란사 귀국 후 국내에서는 여성 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강조됐다.
숙명과 진명여학교 등이 세워졌고 정부에서는 해외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여성 3인에 대해 환영 행사를 열었다.
1909년 황성신문(5월 5일자)은
“박에스더와 하란사, 윤정원씨가 귀국해 여자 교육에 종사함과 생명에 근무함을 감복해 경희궁에서 환영회를 열었다”며
“여자를 교육함은 초유한 미사(美事)라 여자 학업이 앞으로 발달됨은 가히 찬하하겠도다”라고 밝혔다.
하란사는 이화학당 설립자인 메리 스크랜턴 대부인을 도와 여성 계몽운동에도 앞장섰다.
그러면서 이화학당에 학생 자치단체인 ‘이문회(以文會)’를 조직,
지도했는데 여기서 유관순은 이문회 회원으로서 하란사의 지도를 받았다.
이듬해인 1910년 9월 이화학당에 대학과가 신설되면서 하란사는 유일한 한국인 교수로 참여했다.
하란사는 교사와 기숙사 사감을 거치며 이화학당의 교감으로서 활동했다.
열렬하고 치열한 삶을 살았던 여성 하란사는 서울 남대문 상동교회에서 앨버슨 선교사와 함께
교회 부인영어학교를 부인성경학교로 바꾸며 전도부인 양성에 힘을 썼다.
전도활동도 열심이었던 하란사는 1911년에만 14차례 전도를 나갔으며
1426차례 가정 방문을 했고 250여명의 여인들이 교회에 나왔다.
하란사는 1916년 미국 뉴욕 사라토가에서 열린 세계감리교 총회에 참석했다.
마침 이 무렵 시카고대에서 신학공부를 하려고 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에 파이프 오르간을 보내기 위해 재미한인 동포에게 호소문을 보내고
순회강연을 다녔다. 은혜로운 예배를 돕자는 게 취지였지만
실제로는 한국의 독립사상을 고취시키고 애국운동에 참여하도록 종용하자는 게 목적이었다.
그렇게 모금운동을 벌여 1918년 우리나라 최초의 파이프오르간이 정동교회에 설치됐다.
오르간은 하란사의 나라사랑과 민족애가 녹아있는 애국의 상징이었다.
후손인 김씨에 따르면 하란사는 오르간이 정동교회에 설치되자 직접 연주를 했으며,
연주를 들었던 교인 모두가 감격해 울었다고 한다.
애석하게도 하란사는 이듬해 4월 10일 파리국제강화회의의 한국대표로 비밀 파송됐다가
중국의 베이징에서 목숨을 잃고 말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아직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
그러나 시신이 검게 변해 있었다는 증언으로 독살설이 유력하다.김난사는 1919년 4월 10일 45살에 죽고,
그의 남편 하상기는 1920년 69살에 죽었다.
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하란사에게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여자들은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 예가 차 섭섭이다(딸만 위로 낳은 부모에게 6 번째도 딸이라고 그랬다.)
나중에 차미리사라고 세례명을 받앗다.
17살에 시집 가서 남편이 3 년 후에 죽고, 그 다음에 예수를 믿고 중국으로 미국으로 다니면서 힘들게 공부하고 한국에 돌아와서는 학교를 세워서 여자들도 배울수 있게 하였다 한다.
하난사(김난사)와 차미리사는,
그렇게 힘들게 외국에서 공부하고 국내로 와서는 후배들을 야무지게 가르치겠다고
1910 년대 여학교 기숙사 사감으로 있으면서 학생들에게 훈시하는 내용을
"시어머니 지랄"이라는 이름을 듣게 되었다.
1948년 대한민국이 세워져서 교육을 중요시했고
그 교육의 결과로 우리나라는 여자들도 투표를 할 수 있었고(이는 유럽 선진국보다 빨랐다.)
우리는 투표라는 민주주의의 꽃을 누릴 수 있게 됐다.
1900년 대 까지는 학교가 없었기 때문에 서당에서 특별한 교육을 받은 사람 즉 약 10 % 미만의 사람들만이
한자로 된 글을 읽을 수 있었다.
요근래는 1900년대 앞의 옛글들이 책이나 인터넷에 많이 있기에 쉽게 알아볼 수 있다.
한글도 배우기는 쉬워도 천대시하여 집에서 배우는 경우 밖에 다르게 가르쳐 주는 곳도 배울 수 있는 시간과 여건이 없었다.
남자들의 대부분과 바깥 나들이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던 여자들 거의 모두가,
어려운 한자는 물론, 쉬운 한글도 읽을 수 없는 사람들이 많았다.
1945년 해방 앞에는 국어 사전도 없었다.
거저 먹고 자고, 일찍 결혼 해서 애낳고, 남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 일하고,
여자들은 무명이나 삼으로 실을 만들어 집에서 베틀에 앉아 옷감 짜서 옷 만들어서 빨래하기 바빴다.
남자들은 군대가서 보초를 서 보면 보초서는게 얼마나 힘드는 일인가 알 수 있다.
군대에서 보초설 때에는 잡생각 가지지 말고 눈을 뜨고서 나라와 대통령과 같이 근무하는 친구들과 적들도
예수믿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습관을 걸러야 한다.
그리고 1960 년 대 앞까지만 하더라도 한국은 한자와 한글이 같이 사용 되어야 뜻을 쉽게 이해한다는 주장이 많아서
거의 모든 문서들에 한자와 한글이 같이 사용되었다.
1961년에 초등(국민학교)에 입학하였던 편한성경 편집자(1954 - ) 도 6 학년 국어책에 한글 옆에 괄호로 한자어를 배웠다.
그리고 중학교 때 이름표는 한자, 국어 책은 국한문 혼용, 그러다가 1968년 쯤 한글을 전용하라는 방침 때문에
한글 전용 하다가 고등학교 국어 시간에는 고전은 한자이기에 한자를 공부하고 선생님들이 한자를 잘 알기에
출석부 이름도 한자 이었다.
그래서 어떤 한자 실력이 적은 선생님은 학생들 이름도 어려운 글자는 잘 못 읽는 웃지 못할 일들도 있었다.
아직도 한글 전용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국한문 혼용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1940년 앞 까지의 사람들은 학교도 없고 굶주려서 먹고 사는 일에 바빠서
초등학교 교육도 받지 못한 사람이 50% 정도로 쉬운 한글도 읽을 수 없었다.
현대 그룹 창시자 이었던 정주영이 보통학교에 다닐 때, 1930년대 초반에는 보통학교 취학률은 4 %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 환경에서 교육 받은 번역가들이 한자 용어를 많이 사용하자고 주장한 것은 마땅한 결과이다.
세종대왕이 창제한 한글은 한국 현대사에서 위정자들의 편견과 친일인사들로 인해 갈지자 횡보를 이어왔다.
1964년 당시, 정부는 미군정 때부터 한글로만 표기된 교과서를 일제강점기처럼
한자혼용으로 바꾸고 1963년에는 ‘이름씨, 그림씨’같은 순 우리 한글 토박이말을 ‘명사, 형용사’ 같은
일본식 한자말로 쓰도록 강요했다.
한자로는 예수를 耶蘇라고 쓰고 중국발음으로 예수라고 읽었다.
이것이 우리나라에 와서는 한국식 발음에 의해 耶蘇(야소)로 읽혀진 것이다.
초기선교사들도 예수를 야소라고 읽었는데 한자 번역본을 사용한 까닭이다.
이후 번역 작업이 본격화되면서 원래의 호칭으로 "예수"라고 바로 잡은 것이다.
기독(基督)이라는 말은
크리스토라는 말로서 히브리어로 "메시야"이며 헬라어로 "크리스토스"다.
중국 사람들은 크리스토를 基利斯督라 쓰고 "지리스뚜"라고 읽었다. 이에 대해 조선 사람들은 基利斯督(기리사독)으로 읽었다.
기리사독은 한자의 우리말 발음인 것이다.
중국 사람들은 지리스뚜를 첫 자와 마지막 자만을 따서 基督이라 쓰고 "지뚜"라고 읽으며
크리스토를 약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크리스토를 나타내는 약자 지뚜(基督)가 조선 발음에 의해 基督(기독)으로 표기 된 것이다.
기독이라는 말은 크리스토를 중국 사람들이 맞는 한자가 없어서
다른 한자를 빌려서(가차하여) 사용한 것의 준말이다.
그래서 발음도 맞지 않고 뜻도 없는 '기독교'라는 말은 사용하지 않아야 한다.
차라리 크리스토교, 혹은 예수교, 예수 크리스토교라 해야 한다
일본사람들도
基利斯督과 그 축약형인 基督을 받아들여 자기네 발음으로 읽는다.
그래서 외래어 표기부호인 카다카나를 사용하면
キリスト라고 쓰고 "키리스토"라고 읽는다.
일본사람들도 基督이라는 한자어 이름을 사용하지만
그것을 읽을 때는 반드시 キリスト라고 읽는다.
반면에 음운체계가 훨씬 탁월한 한국말로는
크리스토스를
중국식 基利斯督나 일본식 キリスト보다 훨씬 원음에 가깝게 음차할 수가 있다.
그게 바로 '그리스도' 이다.
한국의 성경 번역자들은
중국과 일본이 채택한 基利斯督를 채택하지 않았다.
그대신 순한국말로 '그리스도'라고 음차 번역을 해 낸 것이다.
한국말 특성을 살린 대단히 훌륭한 번역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렇게 훌륭한 번역을 완성해 놓고서도 여전히
基利斯督이니 基督이라는 말을 쓸 뿐 아니라 그걸
'기리사독'이니 '기독'이라고 읽고들 있었다는 것이다.
이건 대단히 어이없는 일이다.
컴퓨터를 개발해 놓고서 주판알 퉁기는 격이니까.
基利斯督이나 基督은 중국말로
"크리스토스"라는 헬라어 이름을 음차하기 위한 방편이었을 뿐이다.
원어에 그다지 가깝지는 않지만
그래도 그게 자기네 나라 말글을 사용해서 음차할 수 있는 최선이었던 것이다.
반면에 한국말로는
基利斯督의 중국식 발음보다 훨씬 원음에 가깝게 음차할 수가 있다.
'크리스토스'라고 쓰면 거의 완벽한 음차가 된다.
또 우리나라도 1900년대 초 번역 당시는 이스라엘 나라는 세워지지도 않았고,
히브리어나 헬라어 표현을 공부한 사람이 없어서,
아마 기존 사람 이름이나 지역 이름들의 표기들은 한자에서 옮기다 보니 그런 것 같습니다.
한자도 중국식 발음은 원문 발음에 더 가깝다(예:'마태'의 중국식 발음 (마타이), 헬라식 발음 (마타이) )
'이방'은 거의 이스라엘 밖의 다른 나라를 의미하므로 '외국'으로 표기했습니다.
가장 두드러진 단어는 데바림(뜻:말씀들(신명기(뜻:申다시말한命율법記 율법의 반복 헬라어 제목)의
히브리어 제목) '말 더듬이 모쉐' (입이 뻣뻣하고 혀가 둔한 모쉐),
뛰넘절(유월절 Pass over),
샤밭날(안식일,히브리어(샤밭),헬라어(사바톤),영어(sabbath),쉬면서 예배하는 날),샤밭년(안식년),
페리토메(헬라어, 히브리어:브리트 밀라, 한자어:할례,포경수술),펜테코스테(오순절),바르게 살아가는 (의로운),
레뷔(레위), 빈야민(베냐민),이사앜(이삭),예사야(이사야),대추야자나무(종려나무), 올리브나무(감람나무),
탈란토(달란트) 등 이다.
그리고 소설처럼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입니다.
마타이오 복음 맨 뒤에 구약과 신약의 중간 역사를 간추린 것을 덧붙여서,
구약 선지서와 신약 이해에 도움이 되도록 하였습니다.
그리고 루카복음 맨 뒤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패망의 예언을 이해하기 쉽도록 하기 위해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을 요약해서 덧붙였습니다.
글씨체도 엉망이고 단거리 달리기에는 재능이 없는 나에게 주님이 글 다듬는 재능은 선물로 주었다고 봅니다.
저는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아니고,
1973년 경북 김천고등 졸업, 1974 - 1978년2월 울산공대 조선과를 졸업하고,1978-1980 군복무,
1981-1986년 현대중공업 설계부, 1986 - 2010년 까지 거의 조선소 협력회사 설계부에서 생활을 하였습니다.
신앙생활은 10살 때(1963년)부터 정도이고 공예배는 빠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1976 년 까지 5독 정도 하고 그 이후는 1년 1독 하고 있습니다. 2009년 현재 약 50독 정도 했겠지요.
"GOOD NEWS" 영어성경 1994-2008년 2번 필사 했습니다.
이렇게 적는 것은 신학자도 아니고, 신학도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
감히 성경을 편집하여 배포하느냐 할까 싶어서 적었습니다.
모든 조건을 구비한 성경집필 사람은 찾기 어렵겠지요.
언어 전문가도 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를 공부한 3명 이상은 되어야 하는데
그 사람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다면 될 수 없고,
젊은 사람들은 사회적 경험이 적어서 지나간 일들을 이해 하기 힘들고,
결혼도 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남자들 마음이나 몸, 여자들 마음이나 몸에 대해서 몰라서 그렇고,
하여튼 완벽한 적격자는 거의 없다고 봐야 겠지요.
교회 출석은 거의 합동측이었고 대학교 다닐때는 통합측 교회도 4년 정도 다녔습니다.
살다가 보니 부인은 성결교 출신, 처남들은 성결교 목사,동서들은 순복음,통합측 목사 이렇게 되었습니다.
이 작업은 2009년 2월에 시작하여 8월에 1차, 2010 년 2월에 2차, 7월에 3차,
2011년 2월에 4차, 8월에 5차,
2012년 1월에 6차, 6월에 7차, 10월에 8차,
2013년 2월에 9차, 5월에 10차,
2014년 6월에 16차, 9월에 17차, 10월에 18차, 12월에 19차,
2015년 2월에 20차,3월에 21차,4월에 22차, 5월에 23차,6월에 24차,9월에 25차,12월에 26차,
2016년 3월에 27차, 7월에 28차, 10월에 29차, 12월에 30차,
2017년 5월에 31차, 10월에 32차,
2018년 2월에 33차,5월에 34차, 8월에 35차,10월에 36차,
2019년 2월에 37차, 6월에 38차,10월 39차,
2020년 3월에 40차, 4월에 41차,6월에 42차,10월에 43차,
2021년 2월에 44차, 2021년 9월에 45차,
2022년 1월에 46차, 4월에 47차, 6월에 48 차,9월에 49차, 12월에 50차,
2023년 2월에 51차, 7월에 52차,
2024년 5월에 53차, 9월에 54로 마쳤습니다.
2014년 12월달에 6일 동안 '편한성경' 집필에 도움을 얻으려 이스라엘을 다녀 왔습니다.
성경을 더 편하게 이해하고, 읽기 쉽도록 하여 더 많은 사람들이 읽어서
주님에게 돌아와 조금이나마 주님나라 확장에 도움이 되고 하나님이 빛나도록 하는게 목적입니다.
호산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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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번역의 역사
히브리어로 기록된 구약은 본래부터 유대교의 경전이었고,
구약과 신약을 합친 성경전서는 개신교의 경전이고,
여기에 히브리어에서 당시 세계어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한 구약 70인역에서
‘제2경전(외경)’을 합친 것이 가톨릭교의 경전이다.
하나님의 깊은 뜻을 글로 나타낸 것이 성경이다
맨 처음 구약 성경을 기록한 사람은 모쉐 이었다
모쉐는 이집트 왕궁에서 자랐기 때문에
(사도행전 7:22절 참조)
그 당시 그림 글자인 이집트의
상형 문자를 배울 수 있었다
상형 문자는 나폴레옹이 이집트 원쟁에서
로제타 석을 발견 한 때 까지 읽을 수 없었던
굉장히 어려운 글자 이었다
BC 196년에 기록된 로제타 석에는
BC 9-7 세기 이집트 상형 문자. 이집트 민중 문자,헬라어
모두 3 가지로 적혀 있는 것을 통해서
여러 학자들의 피나는 노력으로
이집트의 그림 문자를 읽을 수 있었다.
모쉐는 구약 모쉐 5 경을 히브리어 언어로 기록 하였다.
그 다음 약 1,000년 기간에 걸쳐서
여러 성경 기록을 히브리어로 하였다
히브리어로 기록된 성경을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하여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보관용으로
이스라엘 12 지파에서 각 지파마다 6 명식 뽑혀서
모두 72 명이 참여 하는
70인 역이 기원전 2 세기 무렵에 구약 성경이 만들어 졌다
신약 시대에는
헬라어 (그리이스어)로 기록 되었다.
그 이후 유고 슬라비아 출신
히에로 니무스(영어 이름 제롬)에 의하여
당시 로마 시대의 대중 언어 라틴어로
398년 신구약 성경을 번역 하였다
라틴어 성경에서 각 나라 말로 번역한 성경은
카톨릭 교회 권력에 대한 도전이었다
목숨을 내 놓고 번역 하였다
영국 옥스퍼드의 존 위클리프(1328-1384년)는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에서
대중들이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중세 영어로 번역은 했지만,
그가 죽고 로마 카톨릭에서 다 불 태워 버렸다.
그래서 위클리프가 벅역한 성경은 존재 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가 죽은지 44년이 지나서 그를 무덤에서 파내서
그의 뼈를 불 태워 버렸다
그가 성만찬시 빵과 포도주가
예수가 십자가에서 죽은 것을 기념 하는 것이지
예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로마 교황청의 귄위에
반역하는 행위 였다고 주장하기 때문이었다.
라틴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성경을 번역 하다가
윌리엄 틴들(1494-1536년)은 신약 성경을 번역하고,
구약 성경을 번역하다가 체포되어 순교 당했다.
마틴 루터 (1483-1560년)는
비텐베르크 대학의 철학 교수 멜란 휘톤(1497-1560년)가
바르트부르크 성에 갇혀 있던 루터에게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 해보라는 권유를 받고
마틴 루터는 헬라어와 라틴어 성경을 기본으로
서민들이 이해하기 쉽게, 표준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 하였다.
1522년에 신약 성경 번역을 마치고,
1534년에 신구약 성경 번역을 마쳤다.
그것이 루터 성경이다
주일 미사에 참석한
서민들은 어땠을까요.
라틴어로 읽어주는 성경 구절과
라틴어로 진행되는 주일 미사는
그저 하나의 격식과 소리에 불과했다.
거기에 담긴 뜻과 메시지는
전혀 몰랐으니까.
가톨릭 사제였던 독일의 마르틴 루터는
이런 사실에 절망했다.
당시에는 귀족이나 지식인이 아니고서는
라틴어를 알 수가 없었으니까.
결국 종교개혁을 주창한 루터는
머리와 수염을 잔뜩 기른 채
자신을 지지하는 귀족의 성(城)에 숨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는
‘혁명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루터의 독일어 성서가 구텐베르크의 인쇄술덕분에
빠르게 보급됨으로써 크리스토인들은 성경을
성직자의 해석을 거치지 않고도
그들의 이성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이러한 역사는 성경을 축자 영감설의 성경적 해석에서 벗어나,
사회학, 수사학, 사본들과의 비교, 역사등의
학문적인 방법들을 이용하여 객관적으로 이해하려는
성경 비평이 태동하는 거름이 되었다
그외에 여러 사람들이 성경을 번역 하다가
죽거나 감옥에 갇혔다.
이런 번역가들 덕분에
우리가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읽게 될 수 있었다는 것 잊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고마워하면서
살아들 가야 한다
1382 년 무렵에 존 위클리프는
신구약 성경을 라틴어서에서 중세 영어로 번역 하였다
1611년 (KJV) 영어 성경이 출판 되었다
라틴어에서 표준 독일어로 성경 번역 마틴 루터는
목숨을 걸었다.
독일의 구텐 베르크는 1455년 무렵에
42 행(줄)으로 된 성경을 인쇄할 수 있는
금속 활자를 발명하여서,
성경이 널리 읽혀 질 수 있었다
현재의 모습으로 장 구분을 한 이는
대체로 영국교회의 켄터베리 대주교였던 랭튼(Stephen Langton)일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한편 스테파누스(Stephanus Robertus)는 신약성경을 절로 구분하여 1551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출판했다.
1270년 파리대학 교수 렝킨은 성경의 장을 나누었다.
유대인 랍비들도 받아 들인다고 하였다
1553년 프랑스의 궁정 인쇄 기술자
스테파누스는 성경의 장절을 나누어서 출판 하였다
윌리엄 캐리는 1797년 벵골어로 번역된
신약성경 초안을 하였다가
1801년 출간을 하였다.
아도니람 저드슨(1788-1850년)은
신약 성경을 버어마(마얀마) 어로 번역 하는데 7 년이나 걸렸다.
한글 성경 번역에도 여러가지많은 어려움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소속 존 로스(1842-1945년) 선교사는
중국의 선교사로 왔지만
1873년 30 살 때
그의 부인이 아이를 낳다가 죽었다.
민주지방 선교사로
일하다가
존 매킨 타이어(1837-1905년)를 만났다
만주에서 조선인
서상륜, 이응찬, 백홍준, 이성하 등을 만나서 조선어를 배워서
1877년에 신약 성경 번역을 마쳤다.
신사 유람단으로 일본에 간 이수정은 츠다센을 만나서 예수를 믿고
신약 성경을 '한자에서 한글'로 번역을 마쳤다
언더우드 선교사와 아펜젤라 선교사는
이수정이 번역하여 만든 신약 성경을
가지고 와서 선교 활동을 하였다.
언더우드 선교사는 건강을 돌보지 않아서 57 살에
하나님의 부름을 받았다.
아펜젤라 선교사는 목포에서 열리는
성경 번역자 회의를 위해 배타고 가다가
44 살에 순직 하였다.
(성경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 게일 선교사는
아내와 아들을 잃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지역)의 유대인 출생으로
알렉산더 피터스(1872-1958년)는
지질이도 마누라 복이 없어서
구약성경 번역 평생에 아내 4 명을 잃고
은퇴 후 미국으로 돌아가서 죽었다.
레이놀즈 선교사는 첫 아들을 잃었다.
한 자매는 10일 동안의 성경 공부를 위해
쌀자루를 이고서 214 킬로를 걸어 왔고,
또 한 자매는 아이까지 업고 왔는데 그들의 손에는
손 떼 묻은 성경이 들려져 있었다.
이러한 선교사들과 믿음의 선조로 부터 물려 받은 성경을 통해서
한글이 널리 보급될 수 있었다
1910- 1938년 에는 번역된 성경을 고쳐서
개역 성경을 완성 하였다
1804 년 웨일즈에서 대영성서 공회 설립
몇년 뒤 독일 성서 공회
1814년 네들란드 성서 공회
1816년 미국 성서 공회
1821년 러시아 성서 공회
1946년 세계 성서 공회(UBS) 145 개 언어, 200 여 국가 참여
2010년 현재
469 개 언어 신구약 완역
1231 언어 신약 완역
2527 개 언어 쪽복음으로 번역
70인 역(BC250-200)은 팔레스티나를 떠나서
지중해 연안 지방에 흩어져서 살고 있는 유대인들,
즉 히브리어 구약성경을
히브리어에서
당시 헬라가 세계를 통일하여
세계어인 헬라어(그리스어)로 번역한
70인 역(BC250-200)이 가장 오래된 번역 성경이다.
크리스토교(기독교)의 경전을
우리나라에서는 ‘성경’ 혹은 ‘성서’라고 부른다.
중국에서는 성경(聖經)이라고 하고
1882년에 '중국어 완역 성경'이 번역 되었다.
일본에서는 성서(聖書)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크리스토(기독)교는 이 두 이름을 함께 쓰고 있다.
우리가 성경이나 성서라고 하는 것을 영어로는 The Bible,
도이칠란드어는 Die Bibel, 프랑스어로는 La Bible이라고 한다.
이 이름들은 모두 ‘책’을 뜻하는
그리스어 biblia (biblos의 복수형)에서 유래한 것이다.
성서는 여러 권의 책을 한데 모아놓은 작은 문집과도 같다.
그래서, 크리스토(기독)교의 경전 전부를 포함하여 부를 때에
『성경전서(聖經全書)』라고 한다.
‘구약전서’ 안에는 낱권 책 39권이 들어 있으며,
‘신약전서’ 안에는 낱권 책 27권이 들어 있고,
‘제2경전’ 혹은 ‘외경’이라고 부르는 묶음 속에는
우리나라 가톨릭에서 사용하는 낱권 책 일곱 권과
구약에 속한 두 책 ‘에스테르기’와 ‘다니엘서’의 내용을 첨가한
별권 두 권이 들어 있다.
우리가 성경 혹은 성서라고 하는 것을,
달리, 영어로는 The Holy Scripture,
독어로는 Die Heilige Schrift,
프랑스어로는 La Sainte Ecriture,
라틴(로마)어로는 Sacra(Divina) Scriptura라고 한다.
유대교에서도 그들의 경전을
‘성서(Sepharim Kithbe Haqqodesh)’라고 부르기는 하지만
거기에는 크리스토(기독교)에서 ‘구약’이라고 부르는
부분만 들어 있다.
그 책을 그들은, 달리,
‘율법서와 예언서와 성문서(Torah Nebhim Ketubhim)’라고도
부르고,
머리 글자를 따서 ‘타낙(TaNaKh)’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구약은 주로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며, 일부가 아람어로 쓰여 있다.
신약은 헬라어(그리스어)가 원어이고,
외경(또는 제2경전)은 그 원어가 헬라어(그리스어)로
전해져 오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는 구약과 신약과 외경(또는 제2경전)이
1882년이래 지금까지 번역, 개정, 새 번역의 과정을 거쳐,
모두 우리말로 번역되었다.
구약 성경 70 인 역과 신구약 성경 불가타 성경
히브리어에서 알렉산더 대왕 이후
세계어가 된 헬라(그리스)어 로 번역한 70 인 역과,
70 인 역과 신약 헬라어에서
로마시대의 세계어인 라틴(로마)어로
이탈리아의 북부지방(유고슬라비아)에서 태어나서
예루살렘에 갔다가 예수가 태어난 곳의 베들레헴에서,
히에로니무스가 교황 다마소 1세의 명령으로
(382년-404년)에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을
로마의 일반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게 번역한 것이
불가타(뜻: 보통 사람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는
'서민(라틴어)판') 성경이다.
70 인역 (Septuaginta 셉튜아진타(70 이라는 뜻),
Greek version of the Old Testament; LXX)
헬라 프톨레미 필라델포스 시대(BC 283-246)에
그가 유대 율법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구약 성경을 히브리어에서
그 당시 세계어인 헬라어로 번역 되도록 하여,
세계적으로 퍼져 나가서 읽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은 이렇게 사람들이
꿈도 꾸지 못했던 사건들을 사용하여,
그의 뜻이 온 세계로 퍼져 나가도록 하였다.
신약 성경도 처음부터 헬라어로 기록된 것은 아니었지만,
당시의 세계어인 헬라어로 완성되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하였다.
헬라어를 이어서 라틴어(로마 시대 언어)로,
라틴어를 이어서 독일어,영어, 스페인어 등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세계로 뻗어 나가게 하였다.
과학적인 글자 한글로 된 성경도
세계적인 공인 성경이 되도록 기도하며 준비하면 된다.
(다른 언어들에는 없기 때문에) 외국인들이
배우기 어려워 하는 높임말도 없애거나 쉽게 바꾸면,
충분히 한글이 세계적인 글이 될 수 있다.
필라 델포스 당시 알렉산드리아는
아이귚토스(이집트)의 수도로,
인구가 100 만명 가까이 되어,
로마의 인구와 맞먹는 세계적 도시였다.
프톨레미 필라델포스가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장이었던 데미트라우스 파레니우에게,
유대의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하도록 했다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남겨 있다.
" 내 도서관에 꼭 있어야 할 책들 가운데,
탐구해볼 만한 유대인의 율법서가 있다는 것을 들었소.
그 책들은 유대인의 언어와 문자로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헬라어로 번역하기에 매우 힘든다고 했소.
그 글자는 수리아(아람, 시리아)의
고유 글자와 비슷하며 발음도 비슷한 것 같이 보이지만,
나름대로 독특한 특징이 있다고 하오.
그러나 우리가 그 (두루마리로 만든) 책들을 번역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오.
그 책들이 우리 도서관에 있으니
번역하는데 필요한 것들은 다 갖추지 않았소?"
그리하여 유대 12 지파에서 지파마다 6 명씩 대표를 뽑아서
72 명의 유대인 학자들이 모여서 번역한 성경이
70 인역이다.
이 70인역 헬라어 성경은 BC3세기 무렵에
이집트(아이큎토스)의 알렉산드리아 지방에서,
처음에는 모쉐 율법(토라) 5경만을 번역했으나
나중에는 200년간에 걸쳐
점차 히브리어로 된 39권 성경이 다 번역되었다 .
70인의 성경학자들이 구약성경의 부분 부분을
나누어서 번역했다고 해서 70인 역이라고 한다.
기원전 2세기 중엽의 아리스테아스Pseudo-Aristea 편지에
기록된 전설에 의하면,
헬라어(그리스어)를 정확하게 잘아는
72 사람 (열두 지파에서 각각 6 사람씩 뽑아낸 72 사람)의
유대인 율법학자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프톨레마이오 필라델푸스(BC 285-247)가 다스리는 기간인 BC 3세기 중엽부터 BC 2세기 말까지
번역을 마쳤다고 한다.
이러한 번역의 필요성은 당시 유대인들 사이에
홀소리(모음)도 없는 히브리어보다도,
헬라어가 더 익숙한 언어였기 때문이다.
BC 6세기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간 다음에,
히브리어는 이미 일상 언어로서의 자리를 잃어버려,
BC 20세기부터 팔레스티나 지방에서 사용되어온 아람어가
일상어로서의 일상 언어가 되었으며,
BC 4세기 알렉산더 대왕의 팔레스티나 점령 다음부터는
헬라어(그리스어)가 공용어로서
생활언어가 되었다
불가타 성경:
불가타라는 말은 '서민(라틴어)판'이라는 뜻의
라틴어 에디티오 불가타(editio vulgata)에서 나왔다.
당시 라틴어는 몇몇 귀족 계층은
고전 라틴어에 가까운 말을 사용했지만,
대다수 서민들은 로망스어로 분화하기 바로 앞 단계의
라틴어를 사용했다.
불가타라 이름 붙인 것은 성경을 번역할 때
상류층이 쓰는 라틴어가 아니라,
대다수 대중들이 사용하는 라틴어에 기준하여 번역했단 뜻에서
붙인 이름이다
당시 서로마 제국의 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뜻의
'대중 라틴어 성경'
불가타(Vulgata) 성경은
5세기 초에 (당시 로마의 공용어) 라틴어로 번역된 성경이다.
불가타의 시초는 AD 382 년 교황 다마소 1세가
당시 로마 국경의 변두리이었던 현재 유고슬라비아 출신의
라틴어 이름으로는
히에로니무스 ((Hieronynus, 영어 이름 :제롬)
(AD348년-420년) 에게
성경 번역을 시킨데서 시작한다.
한편 구약성경의 경우 히브리어 타나크에서
라틴어로 번역한 맨 처음의 성경이며,
이 앞에는 헬라어 70인 역에서 라틴어로 번역했었다.
역사적으로 불가타는 로마 카톨릭의 절대적인 정본이 되었고,
그래서 "번역된 출판"이라는 뜻의
불가타(versio vulgata)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2014년 현재 베들레헴의 예수가 태어났던 곳의 옆에
살아있는 동안 36년간, 성경 번역에 힘을 기울였던
히에로니무스(제롬)를 기념하는 곳이 있다.
쿰란 동굴의 사해사본
BC 150- AD 50년 까지 약 200 년 간
걸어서 예루살렘에서 약 3 시간, 예리코에서는 12 킬로 떨어져서
사해 북쪽 끝의 사해에서 높이 약 600 미터의
외진 유대 광야의 산 아래 동굴에서 숨어서
에쎄네파(열심당원) 공동체 사람들이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일하고, 저녁에는 모여서 신앙 생활을 하였던 곳으로
11 개의 동굴에서 많은 유적들이 발견 되었다.
성경 사본들
(가장 늦게 기록된 에스테르 서를 제외한 모든 구약 성경들)
몸을 씻는 정결탕, 포도주 만드는 곳, 참빗, 등잔,잉크.
동전 수 백개,
바구니 쪼가리 등의 유물들이 나왔다.
로마가 망하고 지진이 나서 무너져서
사람들 머리속에서 잊고 있을 때
1947년 목동이 양을 찾다가 우연히 1번 동굴을 발견 하였다.
1955년 까지 11번 동굴까지 발견 하였다.
4번 동굴에 예사야 1장-66 장까지 등
가장 많은 구약 성경 사본들이 있었다.
그곳 날씨는 건조하고 특이해서
양 가죽 껍질을 잘 다듬어서 만든 곳에
구약 성경 기록물이 2,000 년 가까이
보관 될 수 있었다.
끝에는 예수 시대도 겹쳐지지만
신약 시대 기록물은 찾지 못했다
많은 비판자들이 성경은 가짜라는 입을 다물게 만들었다
사해(옆의 쿰란동굴) 사본
몇 개의 단편(짧은 문장이 기록 된 것)을 제외하고,
1947년에 사해 두루마리를 찾기 앞까지 알려진
가장 오래 된 히브리어 성경 사본들은
기원 9세기 말부터 11세기까지의 것이었다.
사해 두루마리는 그보다 약 1,000 년 앞 (예수 당시)의 것이다.
사해 사본은 말라키서가 기록된 지 불과 270여 년밖에 되지
않은 때 기록된 것이었다.
마소라(마소레틱) 사본이 1,300년이나 다음에 기록되었다고
비난이 심했는데,
사해 사본의 발견 덕분에 공백기를
1,100년이나 줄여 놓게 되었고,
구약 성경 마지막 책 말라키서 원본이 쓰인 후
270 년으로 사본의 연대를 좁히게 되었다.
그 이후에 많은 고고학자가 사해 바다 부근
쿰란 지역의 11개의 동굴에서
구약 성경 사본뿐 아니라 신약 성경사본도 일부 찾게 되었다.
사해 사본은 약 4만 개의 작은 단편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조각들로부터 500개 이상의 책들을 엮을 수 있었다.
사해 사본과, 1,025년 후에 만들어진 마소라 사본,
이 두 개가 얼마나 비슷한가를 비교해 보았더니 놀랍게도
두 사본은 완전히 일치한다는 것이 밝혀졌다.
마소라 사본은 사해 사본과 똑같은 성경이었고,
이 앞의 성경의 원본과도 똑같을 것이라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우리가 가진 성경은 모쉐가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성경과 똑같은 성경이다.
그렇다면 1947년 앞에는
히브리어 성서 본문이 확실하지 않다는 말인가?
그리고 고대 히브리어 사본의 수가 매우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우선 두 번째 질문부터 고려해 보면,
전통 유대인 제도에서는 계속 사용 하기에,
너무 낡았다고 생각되는 히브리어 성경을 베껴쓴 것은
회당의 보관실인 게니자에 보관하였다.
그 다음에 낡은 베껴쓴 것들이 쌓이면 꺼내서 땅 속에 묻었다.
유대인들이 이렇게 한 것은 성경이
불경스럽게 잘못 사용하는 일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어로 흔히 "여호와"라고 표현되는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뜻하는,
히브리어 글자들인 테트라그람마톤이
그 성경에 들어 있기 때문이었다.
"극치"
고대 히브리어 본문은 대부분 시작할 때 부터
충실하게 이어져 내려왔다.
예를 들어, 케테르 즉 "극치"라고 불리는 원래 히브리어 성경 혹은 "구약" 전체가 들어 있었다.
그 베껴쓴 것들은,
이슬람교인이 우세한 도시인 시리아, 알레포에 사는
유대인들의 유서 깊은 작은 마을의 가장 오래 된
회당에 보관되어 있었다.
그보다, 앞서 예루살렘의 카라이파 유대교인들이 베껴쓴 것을
보관하고 있었지만,
1099년에 십자군이 빼앗아 갔다.
도로 찾게 된 그 베껴쓴 것들은 이집트의 옛 카이로로 옮겨졌다.
늦어도 15세기까지는 알레포로 옮겨졌고,
그리하여 알레포로 책자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적어도 기원 930 년의 것으로 짐작되는 그 베껴쓴 것은
이름이 넌지시 알려주듯,
마소라 학문의 극치로 간주되었다.
그 베껴쓴 것은 성경 본문을 옮기는 데,
어느 정도의 주의를 기울 였는가를 설명하기 위한
훌륭한 예가 되며,
실로 본보기가 되는 히브리어 사본이다.
근대에 와서 이 뛰어난 베껴쓴 것을 보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거룩한 물건이 더럽혀지지 않을까하는
미신적인 두려움에서,
학자들이 참조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았다.
더욱이 단 한 장도 촬영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에,
연구용으로 복사판을 발행할 수도 없었다.
1948년에 영국이 팔레스타인에서 물러가자,
알레포에서 유대인들을 반대하는 폭동이 일어났다.
유대인들의 회당이 불에 탄 데다 귀중한 책자본도 보이지 않게
되자 없어진 것으로 짐작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놀랄만하게도,
약 10년 후에 이 책자본 가운데 약 4분의 3이 보존되어
시리아에서 예루살렘으로
밀반입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마침내 1976년에 천연색으로 된 양질의 복사판
500권이 발행하였다.
대가의 작품
이 베껴쓴 것을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히브리어 성경을 베끼는 데 숙련된
저명한 학자로 손꼽히는 아론 벤 아쉐르가 기원 930년 무렵에
원래의 자음 본문을 교정하여 거기에 모음절을 표시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사본은 본보기가 되는 책자본으로,
후세의 덜 능숙한 필사자들이 만든
사본의 표준이 되었다.
원래 이 사본은 380장(760면)으로 된 것으로,
앙피지에 대체로 삼단으로 기록하였다.
현재는 294장으로 되어 있어, 모쉐 오경과 마지막 부분
즉 예레미야 에카, 쉬르 하쉬림(아가), 다니엘, 에스테르,
에즈라, 느헴야로 구성된 부분의
대부분이 빠져 있다.
[참조주 신세계역 성경]에서 그 사본은 "A1"로
표시되어 있다. (예호슈아 21:37, 각주) 기원 12세기의 저명한
중세기
유대인 학자 모쉐 마이모니테스는 알레포 팩자본이라고 발표하였다.
13세기부터 15세기까지의 히브리어 본문 필사본은, 마소라 본문과 관련하여
주요 두 가문인 벤 아쉐르와 벤 낲탈리 가문에 의해 만들어진,
혼합본문이었다.
16세기에 야콥 벤 하임은 그 혼합 본문을 근거로 하여
히브리어 성서 본문의 인쇄본을 만들었으며,
이 본문이 그 후 400년 동안 인쇄된
거의 모든 히브리어 성경의 기초가 되었다.
1937년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인쇄된 히브리어 본문) 제 3판에서 벤 아쉐르의 전통 방식이 참조된 것은,
그 내용이 러시아에 간직하고 있는 페테르부르그 B19A는
기원 1008년의 것이다.
예루살렘의 히브리 대학교에서는 사해 두루마리를 포함하여,
여타의 모든 중요한 사본과 함께,
알레포 히브리어 본문 전체를 상당 기간에 걸쳐 발행한 계획이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성경 본문은 믿을 수 있다.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것으로
꼼꼼하게 일한 능숙한 베껴쓰는 사람들에 의해
여러 세기에 걸쳐 전하여져 내려왔기 때문이다.
1947년에 사해 가까이 쿰란 동굴에서 찾은 예사야
두루마리와 마소라 본문을 비교할 때,
사해 두루마리가 현존하는 가장 오래 된 것인데도 놀랄 만큼 거의 차이가 없다는사실에서
성경을 베껴쓰는 사람들이 아주 조심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해 사본 원본;
사해사본은 기원전 250년에서 기원후 68년 사이에
70인 역의 히브리어 에서 헬라어로 번역되어 양피지에 씌어진
성경으로,
2000년 동안 예루살렘에서 당시에는 외딴 곳인 동쪽 약 40 킬로에 있는 사해 근처 광야의 동굴에
에쎄네파 사람들이 모여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낮에는
대추야자 나무를 키우는 등 일을 하고 밤에는 모여서,
구약성경을 공부 하거나 배껴 쓰던
수백개의 성경을 배껴 쓰던 것이 있었다.
에쎄네파 공동체 사람들은
1년을 364일로 하는 태양력을 사용하였다.
4 동굴에서는 예사야서 전권이 발견 되었고,
1-11 동굴의 나머지 동굴에서도 구약 성경이나
수백개의 등잔 , 동전, 겨울철 우기에 빗물을 모아 두었다가
정결 의식을 하던 곳이 있다.
에스테르서를 제외한 모든 성경이 다 발견 되었다
1947년 발견된 후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이자,
구약성경이 기원 후에 쓰여졌다는 의심을 일축시키는 자료로
크리토도교인들뿐 아니라
역사적으로도 큰 가치를 지니고 있어 세기의 발견으로까지
평가 받고 있다.
이스라엘박물관의 ‘책의 전당’에서 적은 수의 사본을 진본으로
관람할 수 있을 뿐,
현재 사해사본의 진본을 보유하고 있는 이스라엘박물관과
록펠러박물관에서는 진본을 잘 공개하지 않고 있다
더욱이, 학자들이 알레포 책자본을 이용할 수 있기 때문에,
히브리어 성경 본문의 확실성을 믿을 만한 이유가 한층 더 제공될 것이다.
실로,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끝없이 서 있을 것이다."
1947년 이후 사해 사본이 발견되기 전까지의
구약 본문 단편이 기록된 가장 오래된 자료는
십계명이 기록된 기원전 2∼1세기의
나쉬 파피루스(Nash Papyrus)였다.
이것은 1902년에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으로서,
출애굽기 20장과 신명기 5장
그리고 신명기 6장의 '셰마'(6:4-5) 등이
섞인 본문이다.
이 본문은 성서 사본이 아니라 예배서에 인용된 본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 쓰는 데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 이것보다 더 오래된 자료가 발견되었다.
1979년에 예루살렘의 케텝 힌놈(Ketef Hinnom)에서
아주 작은 은(銀) 두루마리(minute silver roll) 조각
두 개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에는 민수기 6장 24-26절이 고대 히브리어로 쓰여 있었다.
이것은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7∼6세기의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것 역시 성서 사본이 아니고 성서 구절을 인용한 단편이므로
본문 비평을 위한 자료로서는 한계가 있다.
*****구약 고대 번역 역사*****
기원전 5,6세기 경부터 페르시아 제국에서는
아람어가 공식 언어로 사용되었고,
팔레스틴 유대사회와 디아스포라(여러 나라로 흩어진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아람어를 쓰게 되자,
유대인 회당에서는 예배 때에
"통역자(메투르게만 meturgeman)"가 등장하여
예배 때 낭독되는 율법서와 예언서 관련 본문 등을
히브리어에서 아람어로 통역하였다.
처음에는 구두로 통역되고 전승되던 것이
후대에 이르러 통역 내용이 일정한 형식으로 굳어졌고
드디어 기록으로 정착되었다.
율법서, (히브리어로 씌어진 구약성서를 아람어로 번역한) 타르굼 (오경 번역)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온켈로스(Onkelos)'의 타르굼으로 알려진 『바빌로니아 타르굼(Babylonian Targum)』이다.
이것은 본래 팔레스틴에서 만들어진 것이었으나
바빌론으로 건너가서 거기에서
개정되고 큰 권위를 인정받게 되었다.
기원후 9세기 직후에
이것이 다시 팔레스틴으로 들어와 거기에 있던
다른 여러 종류의 타르굼들을 제치고 독립적 위치를 차지한다.
전체적으로 볼 때에, 온켈로스의 타르굼은 문자적인 번역이면서도 랍비들의 주석을 번역에 반영시키고 있다.
팔레스틴 타르굼들 가운데서 제일 유명한 것은
소위 '요나단(Jonathan)의 타르굼'이다.
여기 '요나단'은 14세기 경부터 생긴 이름으로서
예루살렘 타르굼(Targum Jerusalem)을 뜻하는
히브리어 약자 'TJ'를 요나단의 타르굼(Targum Jonathan)으로
잘못 읽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
이것은 옛 팔레스틴 타르굼(the Old Palestinian Targum)과
온켈로스의 초기번역을 뒤섞은 것이다.
랍비들의 주석, 설교, 교훈등이 번역에 많이 첨가되어 있다.
사마리아 오경을 번역한 타르굼도 있다.
유대인의 타르굼이 문자적인 번역인데 비해
이것은 좀 자유스러운 번역이다.
그것의 본문이 공식적으로 확정된 적은없다.
예언서 타르굼도 본래는 팔레스틴에서 나왔으나
바빌로니아로 건너가서 최종적으로 개정되었다.
이것 역시 여러 세기에 걸쳐서 완성된 것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기원전 1세기 말에서부터
기원후 1세기 초까지 활동한
유명한 랍비였던 힐렐의 제자
요나단 벤 우지엘(Jonathan Ben Uzziel)의 번역으로 본다.
이것이 엄격한 문자적 번역은 아니지만
온켈로스에 의존한 증거가 많이 나타난다.
성문서의 아람어역은 모두가 기원후 5세기 이후에 나온 것들이다.
*****70 인 역****
70인역 성서(LXX)는 B.C. 300년경에 번역된
헬라어(그리스어) 구약성서를 말한다.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본국에서 초정받은 72명의 유대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번역한 것으로 전해진다.
후에 70인역 성경의 권위가 사람들 사이에서 높아지는 과정에서
70인역의 번역과정이 모세가 율법을 수여받는 과정에
유비(유추)되어 아리스테아스의 편지에 따르면
72명이 번역에 참여했음에도 불구하고
70인역이라는 말로 불리게 된다.
70인역 성서에는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없는 성서들이 포함되어 있다.
소위 이 제2정경들은 70인역의 번역에
처음부터 포함된 것은 아니다.
70인역의 근본(대본)은
마소라와 다른 제2의 히브리어 본문이라고 학자들은 추정한다.
실제로 마소라 본문과 70인역 본문은
주목할 만한 차이를 드러낸다.
이 때문에 마소라 본문 비평가들에게
70인역은 중요한 자료가 된다.
70인역이 번역된 것은
오늘날 성경이 한글로 번역된 것과 같은 과정이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 2, 3세들은
더이상 히브리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모국어인 헬라(그리스)어 로된 성경이 필요하였다.
이런 필요에 의해 히브리어 성경/구약 성경이
헬라(그리스)어로 번역된 것이다
*****신약 번역 역사******
이집트의 사막에 보관되어 있던 파피루스 사본들은
2∼8세기의 신약 사본들이다.
금세기 최근 20여 년 동안에 발견된
신약 파피루스 단편 사본들이 출판되었다.
76개의 신약 단편 사본들 중에 반 이상이 2∼4세기의 것이다.
파피루스 사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P52이다.
125년 경의 것으로서
현존하는 신약 사본 가운데서 가장 오래된 것이다.
한 쪽 면에는 요한복음 18장 31-33절이 기록되어 있고,
다른 한 쪽면에는 18장 37-38절이 기록되어 있는
(요즈음책 같은)코덱스형 사본 조각으로서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와 비슷하다.
현재 맨체스터의 존 라일렌스(John Rylands)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다.
1930년대 초 영국의 채광 기술자 체스터 비티(A. Chester Beatty)가 3세기의 파피루스 사본 셋을 이집트에서 취득했다.
이것이 1934∼37년에 출판되었는데,
P45,P46,P47로 분류된 것으로,
더블린에 있는 그의 개인 도서실에 소장되어 있다.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일부는 비엔나에 있음) 사본은
30쪽이나 되는데,
3세기 초나 중엽의 (요즈음 책같은)코덱스로서,
마타이오, 마르코, 루카, 요한, 사도행전의 본문을 보여 준
복음서들은 제각기 서로 다른 본문 형태를 보이고 있다.
지워진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가 주로 나타난다.
전(前) 가이사랴 본문 형태로 생각된다.
일명 '비티 성서 파피루스 II'(미시간대학교의 파피루스 222를 포함하여)는 86쪽이다.
3세기 초(200년)의 코덱스로서,
파울로 서신이 로마서, 히브리서, 코린도 알파,베타,
에페소서, 갈라티아서, 필맆포서,콜로싸이서,
데쌀로니케 알파.베타의 순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떤 부분은 많이 지워져 있으나,
알렉산드리아 본문 형태를 반영한다.
##### 우리말 번역#####
스코틀랜드에서 중국에 파송된 로스 목사를 중심으로
존로스의 매형 매킨타이어(John Macintyre)가
쇄국 정책으로 조선에 들어 오지 못하고
만주의 고려문에서
상인 이응찬(李應贊), 백홍준 (白鴻俊), 서상륜(徐相崙)등을 만나서
조선 상인들에게 성경을 가르쳐 주고
조선 말도 배워서 신약 성경
누가복음과 요한복음을 각각 개별 낱권 으로 번역해서
출판한 것이 1882년이었다.
구약 성경 번역은 러시아의 유대인 출신
알렉산더 피터스 가 하였다.
한편, 발췌성경이 선을 보이기도 하였는데,
우리나라 최초의 교회 신문인 「죠션크리스도인회보」가
창간호부터
매주 공과 공부용 성서 본문을 연재하였는데,
1897년 2월 2일자부터 같은 해 7월 14일까지
연재된 사무엘기상하와 열왕기상의 번역이 주목할 만하다.
1898년 6월 22일부터 그 다음 해 1899년 6월 14일까지는
창세기도 번역되어 연재되었다.
1898년에 나온 피터스(彼得)의 「시편촬요」는 시편 150편 가운데에서 62편을 골라 번역한 것이다.
성공회 쪽에서 나온 「照萬民光」 (1894), 「舊約撮要」(1899), 「聖經要課」(1902), 「聖經選要」(1906),
「聖詩選篇」(1937), 「聖詩全篇」(1961) 등도 발췌 번역들이다.
그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 세기가 지났다.
우리말 성서 번역의 한 세기 역사에는
성격상 몇 개의 마디와 매듭들이 있었다.
먼저 성서공회가 신구약 성서를 완역해 낸 1911년은 우리말 성서 번역사에 있어서 획기적인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이 시기에 신약 27권이 낱권으로,
또는 몇몇 낱권의 합본으로 출판되었기 때문이다.
열거해 보면, 로스 팀의 번역들로서,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1882), (1882),
「예수셩교누가복음뎨, (1883),
「예수셩교셩셔말코복음」(1884), (1884), (1885) 등을
들 수 있다.
*****우리말 번역본 특징*****
1911년까지 '번역위원회'를 해체하고
'개역위원회'로 이름을 바꾼다.
그들은 그 동안 서둘러 번역한
우리말 성서 「舊譯」을 서서히 고치고 다듬기 시작하여
1936년에는
「구약 개역」을 출판하였고,
1938년에는 「신약젼셔 개역」을 출판하였으며,
같은 해에 「셩경개역」을 내기에 이른다. 「개역」과 구별하여,
1900년의 신약과 1911년의 구약을 합친 것을 편의상 「옛번역」, 혹은 「구역(舊譯)」이라고 일컫는다.
1938년 「셩경젼셔 개역」은 문체를 많이 다듬고,
번역을 더러 고쳤다.
현 시점에서 볼 때 고어체가 여전히 나타나기는 하지만
어휘는 현재의 표준어에 가까운 어휘와 표현으로 대폭 바뀌었다.
이 때 나온 "주의 기도"는 다음과 같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옵시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니다 아멘
‘한글판’이라는 이름이 이 때 처음 사용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국한문(國漢文)판과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이 아니라,
옛 철자법 성서와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따르는
새 철자법을 구별하려는 의도에서 사용된 것이다.
그 후, 번역 내용과 표기법을 더 손질하여 내놓은
「개역」결정판이 나온 것은 1961년이다.
이것의 이름이 바로 「성경전서 개역한글판」
(표제지 연도 1956)이고,
이것이 지금 우리 나라 개신교에 널리 유포되어 사용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1967년에
우리 나라 학자들만으로 구성된 성서번역 위원들이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새 번역을 출판하였다.
그것이 바로 「신약전서 새번역」(1967)이다.
기존의 「개역」을 개정하지 않고
새로운 번역을 시도한 것이다.
우리말을 모국어로 사용하는 우리 학자들이 번역한
최초의 신약전서이기도 하다.
새 번역 시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원천언어(히브리어나 헬라어(그리스어) 전문가와
수용언어(우리말)
전문가가 따로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 있어서 「신약전서 새번역」는
외국 선교사들이 여러 번역판에서 간접적으로 번역했거나
고친 「개역」 성서와는 다르다.
이 「새번역」은 「개역」이나 「구역」에 익숙한
크리스토(기독)교인들보다는, 성서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
특히 당시 우리 나라 인구의 7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던
30세 이하의 청년들을 위한 전도용으로 번역한 것이다.
번역 원칙은 "풀어쓰기나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엄격한 의미에서 번역하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요 의무였으나,
누구나 읽어서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무시할 수 없었다"는
초판 머리말의 진술이 보여주듯이 기계적인 축자역과 자유스러운 풀이역 둘 다를 삼가는 태도를 취하였다.
현대 한국어로 되어 있을 뿐 아니라, 본문의 지문(地文)이
모두 “합니다”체로 되어 있는 것도 특징이다.
새로운 번역의 시대에 특기할 만한 또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가
공동으로 성서를 번역해낸 것이다.
대한성서공회가 「공동번역 신약」을 내놓은 것은
1971년 부활절이었고,
구약 및 외경을 완역해 내놓은 것은 1977년 부활절이었다.
이 큰 계획 때문에 한국 천주교 중앙 협의회 쪽에서는 선종완 신부의 구약번역을 도중에서 중단하였고,
개신교 쪽에서는 「신약전서 새번역」만 출판하고
「구약전서 새번역」은 중단했다.
특히 영·미 계통의 크리스토(기독)교 세계가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종래 사용해오던 1611년의 「제임스왕역」(KJV),
혹은 1901년의 「미국표준역」(ASV), 1946년의 「영어표준개역」(RSV) 등에 대한 개역이나 수정을 보류하고,
「새영어성서」(NEB),「영어복음성서」(GNB),
「새국제역」(NIV) 등과 같은 새로운 번역을 시도하였듯이,
우리 나라 성서공회 역시 이들과 때를 같이하여
그 동안 필요성을 절감해온 새로운 번역에 착수하였다.
그것을 개신교만의 단독 사업으로서가 아닌
신.구교 공동 사업으로 추진하여 결실을 맺기에 이르렀다.
이것이 바로 공동번역 성서」(1977)이다.
공동번역성서는 우리나라의 개신교와 카톨릭이 공동으로 번역했다는 점,
이미 나와 있던 「개역」의 번역이 형식일치의 번역,
곧 직역에 가까운 번역이었는데 반하여
내용동등성 번역 곧 의역의 성격을 보이는 번역이라는 점,
한국의 현대인이 쓰고 있는 현대어로,
그리고 알기 쉬운 말로 번역된 점 등이 그 특징이다.
신약성서는 1971년에 출간되었고, 구약성서는 1977년에 개정된 「공동번역 신약성서」와 합본되어
「공동번역 성서」라는 이름으로 출간되었다.
「공동번역」은 원문과의 문법형식의 일치보다는
의미의 전달에 역점을 둔 번역이다.
우리말 표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 번역이다.
****개역 개정판*****
1961년에 최종적으로 개정하여 사용하고 있는
「성경전서 개역한글판」은
역사적으로 한국 교회의 사랑을 받아 온 자랑스러운 성경이다.
그러나 이 성경을 그대로 계속해서 쓰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학교 교과서와 일반 출판물에서 쓰는 한글 맞춤법이 변하였고,
사람들이 사용하는 현실 언어도 많이 변하였으며,
성서학 및 관련 학문들도 눈부시게 발전하여,
성경을 개정할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대한성서공회에서는 가능한 한 현재의 「개역」성경의 특징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최소한으로,
꼭 필요한 부분만 개정한다는 원칙 하에 개정 작업을 시작하였다.
문법상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어휘 선택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다.
개역당시 어휘 선택이
현재 그 의미가 바뀌어 오해가 있을 경우 현대 어휘로 고친다.
과거에는 통용되었으나
현재에는 잘 쓰이지 않거나 어려운 말은 쉬운 말로 바꾼다.
제3인칭 대명사 ‘저’와 ‘저희’는 각각 ‘그’와 ‘그들’로 고친다.
사투리는 표준말로 바로잡는다.
준말은 그 원말로 바꾼다.
수치감이나 혐오감을 유발시키는 말은 다른 말로 대치한다.
명사나 대명사에서 의미 전달에 꼭 필요한 경우 소유격과 복수형을 밝힌다.
오역임이 확실한 것은 바른 번역으로 고친다.
***** 표준 새번역 *****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한국교계의 많은 목회자들과 신도들로부터,
앞으로 교회에서 「개역」 성경의 뒤를 이어 사용할 새 번역 성경을 준비해 달라는 요구가 강력하게 제기되어,
「표준새번역」 성경 번역을 계획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지금 쓰고 있는 「개역」성경의 수정이나 교정이 아닌,
전적으로 새로운 번역을 하되, 「개역」 성경의 보수적인 정신과 한국 교회의 전통을 존중한다는 원칙을 정하였다.
구약 번역자들은 독일성서공회에서 출판한 히브리어 구약전서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1967/77년)에
실려 있는 히브리어 마소라 본문을 사용하였고,
신약 번역자들은 세계성서공회연합회에서 출판한
「그리스어 신약전서」(제3판 1983년)를 사용하였다.
「표준새번역」에서는 원문의 뜻을
우리의 어법에 맞게 표현하려 하였다.
그래서 형식을 일치시키는 번역을 해도 우리의 어법에 맞고 원문과 똑같은 뜻을 전달할 수 있을 때에는
그렇게 번역을 하였고, 글자 그대로 번역하면 전혀 딴 뜻이 전달되거나 아무런 뜻도 없는 번역이 될 때에는
뜻을 살리는 번역을 하였다.
구체적인 번역 원칙 및 지침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10대와 20대,
그리고 우리말을 아는 사람이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현대어로 번역한다.
원어의 뜻을 분명하게 파악한 다음에,
그것을 우리의 어법에 맞게 표현한다.
번역 본문에서 번역어투를 없애고,
우리말 관용구를 활용하여 원문이 뜻하는 바를
우리말로 분명하고 정확하게 번역하며, 더 나아가서,
우리말을 쓰는 신도들이나 독자들이 쉽게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번역한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와
교회학교 교육에 사용할 수 있는 번역이 되도록 한다.
「개역」을 바탕으로 교회에서 이미 널리 쓰이는 용어들은
「표준새번역」에서 그대로 받아들였다.)
장과 절 구분이 번역판들마다 약간씩 다른 경우가 있는데,
「표준새번역」은 장과 절 구분도 「개역」의 전통을 따랐다.
또 성경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유행어나 저속한 표현은 쓰지 않았다.
고유명사의 음역은 「개역」을 따른다. 이 지침에 따라, 인명과 지명 또는 음역되는
특수 단어는 모두 우리 나라 개신교 신도들이 익숙하게 쓰고 있는 「개역」의 음역을 그대로 따랐다.
다만 지금 우리 나라 중,고등학교의 교과서에 나오는 성경의 몇 가지 고유명사들은,
성경 독자들이 성경을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구체적인 역사 속에서 말씀하신다는 것을 더욱 실감할 수 있도록,
교과서의 표기를 따라 바꾸었다. 애굽, 바사, 구스, 서바나, 구브로 등을
이집트, 페르시아, 에티오피아, 스페인, 키프로스 등으로 음역한 것이 그것이다.
우리 나라 개신교에서 특별히 중요하게 여기는 용어는 할 수 있는 대로 바꾸지 않는다.
이에 따라 하나님, 독생자, 인자, 홍해, 언약 등 <개역>의 용어들은 거의 다 「표준새번역」에서 그대로 썼다.
*****초기 번역 ******
최초의 한국어 성경은 1882년에 만주에서 스코틀랜드 선교사 로스와 매킨타이어에게서 성경을 공부하고 세례를 받은 후
그들에게 성경을 조선어로 번역 하도록 조선글을 가르쳐준
서상륜, 백홍준 등의 도움으로 한국어로로 번역함으로서 나온
<예수셩교누가복음젼셔>이다.
이후 1885년에는 <마가의 전복음셔언해>가
일본에서 크리스토(기독)교
신앙을 가진 이수정을 중심으로 한문에서 한글로 번역되었는데,
조선에서 활동한 개신교 선교사들은
이수정이 번역한 성서를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옛번역(구역) (1911년) ******
대한성서공회에서 번역하여 1900년에 출간된 신약전서와 1911년에 출간된 구약전서를 합쳐 구역 성경전서라고 한다.
이 시기까지는 주로 중국 한자어에 익숙한 한국의 학자들과,
영어에 익숙한 선교사들이 나뉘어져
각자 다른 방법으로 한글 성경을 번역하였다고 한다.
*****성경전서 개역(1938년) ******
1911년 번역된 구역을 개정하여 1936년에 출간된 구약성경과
1938년에 출간된 신약성경을 합쳐 성경전서 개역이라고 한다.
개정작업은 문어체 번역의 개정보다는
바뀐 한글 맞춤법을 따르는 데 큰 비중을 두었다.
******성경전서 개역 한글판(1961년) *******
성경전서 개역판의 번역을 일부 수정하고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맞춰
한번 더 개정한 것이 현재의 개역 한글판(1961년) 성서이다.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에서
거의 모든 교단이 공인한 표준 성경이었다.
그후 표준새번역이 등장했고,
개역 한글판을 개정한 개역 개정판이 등장하여
지금은 다양한 공인 성경이 존재한다.
이들 중 어떤 것을 예배에 쓸 것인지는
교단과 교회마다 선택이 다르다.
*******신약전서 새번역(1967년) *****
한국의 개신교 학자들이 성서 원문에서 직접 번역한 첫 한글 성경. 현대 한국어로 되어있으며, 직역에 비중을 두었다.
원래 구약성경의 번역도 계획되어 있었으나,
이후 추진된 공동번역에 의해 구약성경의 번역이 잠시 중단되었다.
****공동번역성서(1977년) *****
한국의 개신교와 천주교 학자들이 함께 번역하였다고 해서
공동번역성서라 부른다.
1968년 번역 위원회가 구성되었고, 1971년 신약성서의 완역,
1977년 신약성서의 개정 및 구약성서의 번역을 마치고
그 해 부활절에 간행하였다.
당시 번역에 참여한 번역자 중에는
구약성서학계의 권위자인 고 문익환 목사와
동화작가인 이현주 목사 등이 있어서
한국어의 장점을 살린 아름다운 문체로 번역될 수 있었다.
실례로 공동번역성서에서는 '거뭇', '잠뱅이', '정승', '임금님' 등 순한국말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직역에 의한 형식적인 일치보다 의역을 통한 쉬운 이해,
내용의 동등성을 얻는 것을 목표로 번역하였으며,
현재 한국어로 번역된 성서 중 가장 현대말에 가깝고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다. 한때 천주교에서 사용했으나,
현재는 대한 성공회와 한국 정교회의 표준성서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번역본에 사용된 신을 가리키는 하느님이라는 단어에 대한 대다수 개신교 교단들의 반발과 기존에 간행되었던
개역한글판을 계속 사용하려는
개신교의 고집으로 인해 거의 사용되지 않는다.
하지만 개신교내에서도
일부 성직자들은 공동번역을 사용하고 있다.
1999년 맞춤법 등을 수정한 공동번역 성서의 개정판이 발간되었다.
한편 1984년경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개신교 단체인 조선그리스도교련맹에서는
공동번역 성서를 바탕으로 하여
대한민국의 맞춤법에 따른 것과
그 밖의 일부 표현 등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실정에 맞게
수정한 번역본을 내놓았다.
고유명사는 대체로 개역한글판과 일치한다.
대한성서공회에서는
이 번역본을 편의상 공동번역 평양교정본이라고 한다.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성서 *****
한국 천주교회의 창립 200주년을 기념,
정양모 신부등의 천주교성서학자들이 모여
1974년부터 200주년 기념성서 번역작업을 시작하였다.
의역 중심의 공동번역과 달리 직역을 했으며,
성서의 형성과정과 해석에 대해 자세한 주석을 달아놓았다.
주로 천주교 서적들을 출판하는 기독교출판사인 분도출판사에서 신약성서의 번역작업을 완료해
2001년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를 발간하였다.
구약성서는 서강대학교에서 11권의 소예언서를 번역하였다.
****표준새번역(1993년), 새번역(2001년) *****
표준새번역은
개신교 대한성서공회에서 현대어로 번역한 성경이며,
1993년에 완성되었다.
원어 번역 성서이다.
구약은 마소라 사본은 저본으로 한
히브리어 성경 Biblica Hebraica Stuttgartencia를,
신약은 국제성서공회의
헬라(그리스)어 성서 Novum Testantum Graece를 사용하였다.
주요한 특징은, 쉬운 우리말 번역,
히브리어 네 글자로 된 하나님의 이름을 '주'(LORD)라 번역,
관습적으로 남성으로 쓰인
'형제'와 같은 말을 평등하게 번역하였다.
2001년에 나온 '표준새번역 개정판'의 공식적인 이름은
'새번역'이다.
*****개역개정판(1998년) ******
1938년에 발행된 개역을 바탕으로, 문체는 그대로 두고 원전과 비교하여 몇가지 단어상의 문제에 대한 수정을 거친
역본. 각종 교단에서 인준했으나 어색하다는 이유로 널리 쓰이지 못한 때도 있었지만
개역한글판 성경의 저작권 만료 기간이 도래함에 따라 2007년부터 점차 보급이 확대되고 있다
또한 일부 장로교 교단(한국 기독교 장로회, 대한 예수교 장로회 내 대다수 교단),
크리스토(기독)교 대한 복음교회, 크리스토(기독)교 한국 루터회, 크리스토(기독)교 대한 감리회등에서
표준 성경으로 인정하고 있다.
대한성서공회와 각종 교단간의 결의로 인해 새로 고친 번역에 대해 한 교단이라도 특정 구절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경우 다음 개정시에 개역한글판의 내용으로 다시 돌아가는 특징이 있다.
총 4차 개정(현재의 최신판은 2006년 5월 개정되었다.)을 거쳤고,
개신교 종파에 따라 일부 다른 단어(예) 세례/침례)를 가진 성서를 보급하고 있다.
*****킹 제임스 흠정역(2006년) *****
그리스도 예수 안에에서 출판한 성경으로 자신들이 권위역이라
주장하는 킹 제임스 판을 직접 번역한 것이다.
부록에 킹 제임스판의 무오성과 새 국제판과
킹제임스판의 여러 말씀을 비교해 놓기도 했다.
또 다른 킹 제임스판을 번역한 성경으론
말씀 보존학회에서 출판한 한글킹제임스 성경이 있다.
******바른성경 (2008년) ******
대한성서공회의 표준새번역 성경의 기조에 반대하여 몇몇 교단이 만든 한국성경공회가 9년동안 번역하여
새로 번역한 성경이다.
하지만 한국성경공회가 소수교단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개역개정판등의 사용과 배치되는 것을 감안할 때
보급에 있어 어려움이 있다.
*****쉬운 성경 ******
구약성경 (舊約聖經)은
비블리아 헤브라이카 슈투트가르텐시아(BHS)-맛소라
본문중에서도
11세기 벤 아셰르의 본을 기본으로 택했으며
신약성경은 UBS(Unitde Bible Sociey) 4판을 기본으로 삼았다.
개역한글판이 초신자들이나
어린이들에게 읽히기 어려운 점을 감안하여 새로 번역하였다.
일부 교회에서 교회학교 용으로 채택하여 사용하고 있고,
일부 신자들도 사용하고 있다.
*****우리말 성경 ******
2004년 두란노에서 자체적으로 새로 번역한 성경이다
1. 개역 성경이 나오기까지
우리 나라에서 가장 먼저 번역된 성경은
러시아의 유대인 출신 알렉산더 피터스(A. A. Pieters)가
번역한 '시편촬요'였습니다.
그 후 1882년에 존 로스가 누가복음을 번역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계기로 해서 선교사를 중심으로 한 '성경번역위원회'가 구성되었습니다.
그들은 번역작업을 시작하여 1900년에 신약을 모두 번역했고,
1911년에는 구약을 모두 번역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최초로 '신구약 성경'이 출판되었는데,
이 성경은 1938년에 다시 개역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현재 우리가 사용하는 '개역 성경'의 모체가 되었습니다.
1956년에 이 성경은 개정된 '한글 맞춤법 표기'에 맞추어서
다시 한 번 부분적으로 개정이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대부분의 한국 교회에서 공식 성경으로 받아들여져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습니다.
2. 공동번역
그러나 개역 성경은 원어 성경이 아닌 영어성경(흠정역)과 한문 성경을 기초로 해서 번역되었고,
자국인이 아닌 외국 선교사들을 주축으로 번역되었다는 점에서 한계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1968년에 대한성서공회는 레닌그라드 비평 자료인 BHK를 기초로 해서
천주교와 공동으로 번역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 결과 대한성서공회는 1971년에 신약을 완역하였으며,
1977년에는 구약과 외경을 완역하여 "공동 번역 성경"을 출판하였습니다.
3.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공동번역성경은 외경 문제로 인해서
개신교 내에 전혀 수용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생명의 말씀사에서 개신교인들을 위해서
현대어로 된 '현대인의 성경"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 성경은 1977년에 신약이,
그리고 1985년에 신구약 완역본이 나왔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주로 영어판 성경인 Living Bible에서 번역을 했습니다.
이 성경은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전을 번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개역성경을 대체하기에는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성경을 새로 번역한 것은 기존의 개역 성경을 대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고어로 된 성경을 현대어로 쉽게 번역함으로서 개역 성경이 가진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번역자들은 개역 성경과 현대인의 성경을 함께 사용함으로 독자들이 어려운 개역 성경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서
이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성경은 개신교인들에게
새롭고 쉬운 한글 성경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리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Living Bible은 많은 영어 번역 성경 중에서 가장 풀어쓰기(의역)를 한 성경이며
가장 읽기 쉬운 성경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이 이러한 Living Bible을 번역했기 때문에
주요 번역 원칙이나
특징은 Living Bible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4. 현대어 성경
현대인의 성경이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서
번역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후에 성서교재 간행사에서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기초로 해서
현대어 성경을 출간했습니다. 신약은 1978년에 출간되었고,
신구약 완역은 1991년에 출간되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원전으로 히브리어와 헬라어 원문 성경을 사용했고,
현대인의 성경과 Living Bible처럼
쉬운 풀어쓰기(의역)를 따라 번역을 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현대인의 성경처럼 고어로 된 성경을 현대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을 참고해서 번역하여
그 의미를 보다 정확하게 했습니다.
현대어 성경은 성도들이 쉽게 이해하는 데 역점을 두었습니다.
원문의 내용이 모호한 부분은 권위있는 주석을 참고해서 성도들이
그 뜻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이 성경의 번역자들은 현대어 성경을 만들면서 '주석을 바탕으로 풀어 옮긴 성경',
그리고 '주석의 도움 없이도 쉽게 읽을 수 있는 성경'을 만들려고 했습니다.
5. 표준새번역
개신교가 "공동번역성경"을 사용하지 않게 되자,
대한성서공회는 다시 개신교 단독으로 원문에 근거해서 충실한 번역 성경을 만드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93년에 '표준 새번역 성경'을 출판했습니다.
그러나 이 번역판은 여러 가지 교리 문제와 용어 문제로 인해서
각 교단에 수용되지 못했습니다.
6. 개역 성경 개정판
각 교단이 표준 새번역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사용하기를 꺼리게 되자,
대한성서공회는 이 성경의 내용을 더욱 더 보완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랜 작업 끝에 대한성서공회는 2000년에
"개역성경 개정판"을 내놓았습니다.
이 성경은 고어를 현대인이 알기 쉽게 고치는 동시에,
원문의 의미를 손상시키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도 여러 교단들에서
이 성경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했으며,
대한성서공회는 그 지적을 수용하여 수정 작업을 거쳐왔습니다.
이 성경은 처음에 몇 교단과 단체에서 공인 성경으로 받아들여졌고
최근에는 상당히 많은 교단과 단체들이
이 성경을 공적인 성경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예장 합동측과 같은 보수 교단에서는
이 성경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대한성서공회는 이 부분을 수정할 것을 수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이 작업이 이루어지게 되면
개역 성경 개정판이 한국 대다수의 교단과 단체들에게
공인 성경으로 받아들여지게 될 것입니다.
이 성경은 비교적 쉽고 원문의 의미를 최대한 반영하고 있습니다.
7. Good News Translation(GNT, 1976/1992)
(전 Today's English Version(TEV))
미국성서공회는 전통적인 어휘와 문체를 벗어나
영어를 처음 배운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한정된 어휘와 단순한 문법, 간단한 문장으로
평이하게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이 성경은 의미 중심 번역으로 이해를 돕기 위한
600개의 삽화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미국 영어와 영국 영어의 차이 때문에
미국판과 영국판이 따로 출간되었으며,
1992년 전체적으로 개정되어 다시 출간되었습니다.
8.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1978/1984)
킹제임스 성경(1611)의 고어체로 인해 성경을 어렵게 여기고
거리감을 두는 성도들을 위해 시작된 성경 번역입니다.
하지만, 지나치게 현대의 일상 영어로 의역하여
자유주의적 신학으로 빠지는 것에도 반대하여,
가장 보수적인 입장에서 히브리어, 헬라어 원문을 번역한 것이
바로 이 NIV(신 국제역)입니다.
문자적 번역과 의미 중심 번역이
균형적으로 조화되어 있는 번역으로
공예배와 성경 연구뿐만 아니라,
개인적인 묵상과 성경 읽기,
암송에도 사용되는 명료하고 문학적으로도 뛰어난 번역입니다.
현재 국제성서공회의 전신인 뉴욕성서공회와
다양한 개신교 교단들에서 후원하여
115명의 영어권 개신교 복음주의 학자들로 구성된 위원회에서
번역되었습니다.
일상적이거나 특정 문화적 배경을 가진 영어 표현보다는
성경 시대의 표현 그 자체를
평이하고 정확한 영어로 옮기는 데 충실하여,
NIV의 표현과 어법은 생활 영어라기보다는
국제 영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낭독과 암송에도 적절하게 사용될 수 있도록
운율이 탁월하게 맞추어져 있으며,
문체의 측면에서도 공을 들인 번역으로 문장이 매우 유려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의 길고 오랜(유장)함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은 특히 문어체로 번역하였으며,
킹제임스 성경과 비교하여 NIV에 빠져있는 부분은
난외주에 수록되어 있습니다.
원문에 충실하면서도 읽기 쉬운 영어 번역본으로 영어를 사용하는
모든 크리스토(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다목적으로 사용되는 복음주의적 영어 성경인 NIV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가장 대중적인 기념비적 영어 성경입니다
9. 킹 제임스 성경
영국 국왕 제임스가 승인한 학자 54명 가운데
47명이 7년 동안 3곳에서 6개 집단으로 나뉘어
과거의 영역 성서들과 원래의 언어로 된 본문들을 사용해
작업했다.
그결과 등장한 영역 성서는 영어 문체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고,
300년 이상 표준 영어 성서로 널리 받아들여졌다.
오늘날의 킹 제임스 성경은 안티오크 교회가 번역한
“올드 라틴(로마)어 성경”(The Old Latin Bible) 혹은
“원(原) 라틴 벌게이트 역본”(The Latin Vulgate)을
그대로 전수한 것으로서,
현재 부분적으로만 남아있는 구 라틴어 성경 본문은 학자들에 의해
킹 제임스 성경 본문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① 킹 제임스 성경 번역
엘리자베스 여왕 통치 시대가 끝나갈 무렵(1558-1603)
새로운 성경 역본을 만들기 위한 의회의 조례안이 나오게 된다.
“영어로 되어 있는 성경들의 다양성을 줄여서 원문으로부터
번역된 단 하나의 영역본을 만들기 위한 조례”가 바로 그것이다.
1568년에 나온 비숍 성경(The Bishop's Bible)이
비록 그레이트 성경(The Great Bible)을 압도하기는 했으나
제네바 성경과는 여전히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통치하던 때에는
이 조례안이 실행에 옮겨지지 못하다가
1603년 튜더 왕조에서 스튜어트 왕조로 영국 왕조가 바뀌면서
제임스 1세가 37세로 왕위를 잇게 되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 남겨 놓은 것은 집권 초기 지독히도 가난하고 무방비상태에서
45년이 지난 이후 부유하고 막강한 나라로서 광대한 제국이 되어가고 있었다.
제임스 왕이 권력을 잡은 지 정확히 일 년이 된 후,
왕은 “교회 안에 잘못된 점들을 논의하기 위하여 햄프톤 코트 궁전으로 크고 작은 정당들로 구성된 회의를” 소집했다.
이 때, 옥스퍼드에 소재한 Cortus Christi 대학 학장이며
청교도인 존 레이놀즈(John Reynolds) 박사가
새로운 영어 성경 역본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왕은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 대학의 가장 학식 있는 학자들이
새로운 성경을 번역하도록 허락했다.
이 때 예수회 요원들이 회의장에 폭탄을 설치하여
제임스 왕을 암살하려는 음모가 있었으나
시작 전에 발각되고 말았다.
이 회의에서 승인되고 1604년 2월 10일에 공포된 결의안은
다음과 같다.
“원어인 히브리어와 헬라(그리스)어에
철저히 일치하는 전체 성경의 번역을 시행한다.
이 성경은 난외주 없이 제작 출판되어
영국의 모든 교회에서 예배 시에 사용될 것이다.”
성경 번역의 다음 단계는 번역위원을 선정하는 작업이었다.
1604년 제임스 왕은 뱅크로프트 감독에게 편지를 써
자신이 성경의 번역을 위해
54명의 학자를 임명하였다고 알렸다.
이들은 당시의 최고의 성경 학자요 언어학자들이었다.
제임스 국왕에 따르면 다른 인물도 찾았는데 이는
“우리가 시도하는 번역이 우리 왕국 안에 있는 모든 주요한 학자들의 도움과 참여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함이라”고 했다.
비록 54명의 학자들이 임명되기는 했지만
번역에 실제 참여한 사람은 47명으로 알려져 있다.
② 번역과정
번역은 6개 그룹으로 나누어 실시되었고,
이들은 웨스트민스터, 캠브릿지, 옥스퍼드 세 곳에서 각각 모였다.
웨스트민스터에서는 10명의 학자가 창세기부터 열왕기하까지,
일곱 명의 학자가 로마서부터 유다서까지의 번역을 담당하였다.
캠브릿지에서는 8명의 학자가 역대기상에서부터 전도서까지,
그리고 일곱 명의 다른 학자는 외경을 담당했다.
옥스포드에서는 일곱 명이 이사야에서 말라키까지
다른 여덟 명이 사복음서, 사도행전 및 요한계시록을 담당하였다.
그들은 반드시 따라야 할 세밀한 규칙과 규정을 만들었다.
이들 중 일부를 예를 들면
“ⓐ 교회에서 일상적으로 읽히는 흔히 감독 성경이라 일컫는 성경을 따라야 하며 가능한 원본의 진리가 허용하는 정도에서만
변경한다.
ⓑ 대언자와 성경 저자의 이름과 본문에 나오는
다른 이름들은 가능한 대중들이 사용하는 대로 그대로 따른다.
ⓒ 틴데일, 메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 등이
감독 성경 보다 훨씬 더 원문에 일치 된 경우는
언제든지 그것들을 사용해야 한다.”
드디어 이 여섯 그룹의 작업이 완전히 끝난 후에야
그 결과가 6인 위원회(번역을 맡아서 세 그룹에서 각각 2인씩)에 보내져서 최종적인 교정과 출판을 위한 준비를 하게 했다.
개개의 번역자들은
먼저 개인적으로 주어진 성경 한 장이나 적은 부분을 번역하여
그의 동료들에게 검토와 수정을 하도록 제출한다.
결코 개인적인 생각에 치우침이 없이 수많은 상담자들의 집단적인 지혜를 끌어 모아
개개의 집단은 어느 책 한권의 번역이 집단적으로 완성되면
즉시 원고를 다른 5개의 집단에 차례차례로 송고한다.
이 작업은 결코 부주의란 찾아볼 수 없다.
그 후 최종교열은 마일스 스미스와 토마스 빌슨에 의해 완료되었고, 서문은 스미스가 작성하였다.
③ 번역 대본과 출판
번역 작업은 1604년에 시작하여 1611년에 끝났다.
여기에 사용된 성경은 이전 영어 번역판 뿐만 아니라
트레멜리우스와 베자의 라틴역, 스페인역, 프랑스역, 이태리역 판들도 포함된다.
원칙상으로는 킹제임스 역본은 주로 감독성경을 사용했다.
그러나 감독성경이 “원어 성경의 진리를 조금도 변경할 수 없다”는 조건이었다.
만일 틴데일, 매튜, 커버데일, 대성경, 제네바 성경이
본문의 의미에 더 가까울 경우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베자의 제5판과 순수하게 보존된 올드 라틴 벌게이트가 중요한 대본이 되었다.
1611년 킹제임스 성경이
로버트 바커(Robert Barker Press)출판사에서 출판되었다.
이리하여 안티오크 이래 수많은 사본들이 있었으나
킹제임스 성경만이 유일하게
“권위를 인정받은 성경”(The Authorized Version Bible)이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받았다.
번역자 중 한 사람인 마일즈 스미스 박사는 말하기를
“우리가 행한 개역을 우리가 경멸하지 않도록 했고
우리가 두들긴 망치질이 침골(砧骨, 모루뼈)을
다시 들어가지 않도록 하였다.
느린 것은 꾸짖지 않았고
빠른 것은 지나치게 칭찬하지 않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였다.
그 결과 오늘 날 영어권의 모든 사람들이 당당히 여기는 자랑스런 권위성경이 나온 것이다.”
이후 권위역으로 알려진 이유는 교회나 국가의 어느 한 편의 공적인 행동에 기인된 것이 아니라
그것 자체의 위대한 본질적인 장점 때문인 것이다.
이 성경은 1629년과 1638년에 두 번의 적은 부분의 오탈자가 수정되었다.
1653년의 의회는 또 다른 개정 요구안을 제기했으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킹제임스성경>은 초판에서는 그레이트 성경(Great Bible)보다도 그 크기가 더 컸다.
검은 활자로 인쇄된 이 성경은 원어에 없는 낱말들은 작은 이탤릭체로 된 로마 타입 활자로 표시했다.
번역자들은 “자신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진리가 더욱더 알려지도록 하는데 쓰임받은 부족한 도구에 불과할 뿐”이라고 고백하고 있다.
이와 동시에 이들은 “교황의 추종자들”(Popish persons)이 사람들을
“무지와 어두움” 가운데 가두어 놓으려고 한다고 분별 있게 지적하고 있다.
④ 킹제임스성경에 대한 반대자들의 평가
알렉산더 지리스(1802 사망)라는
로마 카톨릭 사제가 1792년 자신의 번역본 첫 권을 출판하였는데
당시의 성경이었던 <킹제임스성경>에 대해 다음의 찬사를 보내었다.
“제임스 1세의 역본에 대해서는 국내외를 망라하고 최대의 찬사가 쏟아졌다.
훌륭한 역본의 자격인 정확성, 충실성 및 원문의 철자에 대한 철저한 주의 등이라고 한다면
이 공인역본이야 말로 최고의 성경으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모든 문장, 모든 작업, 모든 음절, 모든 철자 및 구두점까지도
정확하게 측정하여 된 것으로 보이며
본문이나 난외주 역시 정밀하게 표현되어 있다.”
<킹제임스성경>이 공식적으로 “공인”된 적이 있었는가에 대해서 대표적인 성경 변개자인 웨스트코트도 다음과 같이 말했다.
“<킹제임스성경>은 17세기 중반부터 전세계에 걸쳐 영어를 사용하는 민족들 사이에서
인정받는 유일한 성경이었는데
이는 이 성경이 최고라는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거의 1세기 간의 노력의 결실을 구체화시켰으며
위대한 크리스토(기독)교인들의 종교적 본능에
강력한 호소력을 지닌 이 성경은
그 자체의 특성으로 인해 어떤 통치자의 칙령도 확보할 수 없는
최고의 권위를 획득했다.”
&&&&&
성경의 분류
구약성경의 분류
구약성경은 주로 히브리어, 극히 일부는 아람어로 씌어져 있다.
히브리어 정전의 본문은 원해 히브리어의 자음뿐으로 되어 있어서,
모음도 구두점도 없었다.
이것이 주전 5세기까지 계속되었다.
1. 구약성경의 구분(區分)
유대교에선 구약성경을 가리켜 '타나크'(TaNaK)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는 세부분 즉, 토라(Tora, 율법), 느비임(Nebim, 예언서), 그리고 케투빔(Ketubim,
성문서)의 히브리어 앞 글자들을 따서 부르는 것이다.
이렇게 구약의 세 부분이 모두 언급되는 가장 첫 보도는 기원전 125년경의
예수 시락(Sirach)서이다.
1) 모쉐오경(모쉐 五經)
유다교에서 처음 정전(正典)으로 주전 450년경에는 모쉐 5경만이 정경이었다.
모쉐오경을 처음 경전으로 확정해 공포한 사람은
에즈라인데 기원전 398년경으로 추측되고 있다.
2) 예언서(豫言書)
(1) 전기(前記)예언서
이 책들은 이스라엘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을 정복하고 생활하기 시작한때부터(BC 1220년경)
바빌로니아로 포로로 끌려 가기 (BC 587)까지의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다.
이 책들을 전기예언서라고 부르는 이유는 고통스러웠던
과거역사가 주는 교훈과 예언자들이 주는 메시지를 동일한 것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2) 후기(後記)예언서
하나님을 대변하여 예언자들이 직접 이스라엘의 죄상을 고발하며
참된 진리와 생활태도를 가르치고 있다.
3) 성문서(聖文書)
히브리성경의 모쉐오경과 예언서를 제외한 모든 문서들을 통칭한다.
이 책들은 정전목록 중에서 가장 늦게 수집,
쓰여졌는데,
신약성경 시대에 이르러서야 정전으로 인정받게 된다.
2. 구약성경의 분류(分類)
1) 24권 분류의 경우
(1) 토라(Torah, 율법서) 5권 : ① 창세기, ② 출이집트기, ③ 레뷔기, ④ 민수기,
⑤ 데바림.
(2) 느비임(Nebim, 예언서) 8권 :
- 전기 예언서 4권 : ① 예호슈아, ② 사사기, ③ 사무엘서, ④ 열왕기서.
- 후기 예언서 4권 : ① 예사야, ② 예레미야, ③ 에즈켈, ④ 12 소예언서.
(3) 케투빔(Ketubim, 성문서) 11권 :
- 시가서 3권 : ① 시편, ② 욥기, ③ 미쉴레(잠언),
- 오축 5권 : ④ 룯기, ⑤ 쉬르하쉬림(아가서), ⑥ 코헬렡(전도서), ⑦ 에카, ⑧ 에스테르,
- 역사서 3권 : ⑨ 다니엘, ⑩ 에즈라-느헴야, ⑪ 역대기서.
2) 22권의 분류
(1) 토라(Torah, 율법서) 5권 : ① 창세기, ② 출이집트기, ③ 레뷔기, ④ 민수기,
⑤ 데바림.
(2) 느비임(Nebim, 예언서) :
- 전기 예언서 4권 : ① 예호슈아, ② 사사기-룯기, ③ 사무엘서, ④ 열왕기서.
- 후기 예언서 4권 : ① 예사야, ② 예레미야-에카, ③ 에즈켈, ④ 12 소예언서.
(3) 케투빔(Ketubim, 성문서) 9권 : ① 시편, ② 욥기, ③ 미쉴레(잠 언),
④ 쉬르하쉬림(아가서), ⑤ 코헬렡(전도서),
⑥ 에스테르, ⑦ 다니엘, ⑧ 에즈라-느헴야, ⑨ 역대기서.
3) 39권의 분류
주후 100년경 랍비 요하난 벤 자카이(Johanan ben Zakkai)의 주재 하에
이스라엘의 텔아비브(요페) 남쪽 20 킬로에 있는
얌니아에서 개최된 종교회의에서 이루어졌다.
그 39권(929장/23,214절)이 이두메아의 현인 욥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이스라엘 사람들인 30여명에 의해 씌어 진 것이다.
1) 오경 5권 : ① 창세기, ② 출이집트기, ③ 레뷔기, ④ 민수기, ⑤ 데바림
2) 역사서 12권 : ① 예호슈아, ② 사사기, ③ 룯기, ④ 사무엘상, ⑤ 사무엘하,
⑥ 열왕기상, ⑦ 열왕기하,⑧ 역대상, ⑨ 역대하, ⑩ 에즈라, ⑪ 느헴야, ⑫ 에스테르.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는 바빌로니아 포로 시기 때
언약과 율법으로 꾸짖어서
왜 나라가 망하였는가를
선지자적 관점에서 기록한 것이고,
역대상하는 바빌로니아 포로에서 돌아온 다음에 성전을 중심으로
백성을 보다듬는
제사장적 관점에서 기록하였다
3) 시가서 5권 : ① 욥기, ② 시편, ③ 미쉘레(잠언), ④ 코헬렡(전도서),
⑤ 쉬르하쉬림(아가).
4) 에언서 17권 :
- 대선지서 5권 : ① 예사야, ② 예레미야, ③ 예레미야 에카, ④ 에즈켈, ⑤다니엘.
- 소전시서 12권 : ① 호쉐아, ② 요엘, ③ 아모스, ④ 오바댜, ⑤ 요나, ⑥ 미카, ⑦ 나훔, ⑧ 하밬쿸, ⑨ 즈판야 , ⑩ 학가이 , ⑪ 즈카르야, ⑫ 말라키
3. 구약성경의 정경 기준(基準)
1) 유일신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배할 것을 천명하고 있는가?
2) 그 책 속에 그 책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증거하는 본문이 있는가?
3) 예수님과 사도들이 그 책을 정경으로 인정해 주었는가?
4) 그 책이 성령께서 영감을 쓴 책이라는 것을 알 수 있는가?
5.아크로스틱(두(앞)자음(頭字音) 시)
예레미야 에카 1,2,3,4장,
시편 9,10,25, 34,37, 111,112,119,145편 시편 모두 9편)
이 말은 그리스어로 '끝에'라는 뜻의 'akros'와 '행'
또는 '시'라는 뜻의 'stichos'에서 유래된 것이다.
신약 성경의 분류
다음 도표는 동일 양식을 가진 책들을 한 묶음으로 한 다음
전체적으로는 논리적 순서를 고려한
신약 성경의 배열 및 양식 분류를 한눈에 보여 준다.
1. 문학 양식에 의한 분류와 배열
신약 성경 27권은 대략 A.D.50-100년 사이에 기록된 것이다.
그러나 신약 정경이27권으로 확정 된 것은
이 보다 대략 300년이 지난 후인 A. D.397년의 (튀니지의 옛도시)카르타고 공회(the Carthago Council)때였다.
이 공회는 모든 이단의 도전으로부터 교회의 신앙을 보존시킬 기준이 될 신약 정경을
여타교회의 문서로부터 구분하여 확립하였을 뿐 아니라
그 배열 순서도 오늘날의 신약 배열 순서와 같은 순서로 정하였다.
그 배열은 먼저 같은 양식의 책을 함께 묶고, 전체적으로는 논리적 순서를 고려한 것이었다.
사복음서: 마타이오 복음, 마르코 복음, 루카복음, 요한 복음
역사서 : 사도행전
파울로 편지 : 로마서, 코린도 알파 베타, 갈라티아서, 에페소서, 필맆포서, 콜로싸이서,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티모데 알파 베타, 티토소, 필레몬서
공동편지: 히브리서, 야코보서, 페트로 알파 베타, 요한 알파 베타 감마
예언서: 요한 계시록
사복음서(the four Gospels) : 예수는 구약을 성취하고 새 언약을 주신 우리의 메시야요 구속주로서
결국 우리는 주 안에서 죄에서 건져내는 것을 확증하기 위하여
예수의 생애에 있었던 각종 사역과 교훈을 기록한 책들이다.
이 책들은 우리가 주 안에서 죄에서 건져냄을 얻을 수 있다는 좋은 소식 곧 크리스토교의 기본 진리요
핵심 메시지인 복음(福音) 의 기원인 예수의 생애를 신앙고백적 차원에서 증언,
안내하는 책들이므로 복음서(福音書)라고 불린다.
사실 이들은 일부 서신서들보다는 나중에 기록되었지만 논리적으로 그리고 역사적으로
주의생애가 모든 신약의 시초요 근거이므로 다른 책들보다 앞서 배치되었다.
한편 이 사복음서는 역사서, 전기문학 등과 유사하나
그들과는 구별되는 독특한 신앙고백서 및신학서로서의 특징도 갖고 있으므로
일반 역사서와 구분하여 복음서라고 분류한다.
사도행전(the Acts) ' 예수의 부활 승천과 오순절 성령 강림 후 열두 사도에 의하여 창설된
초대교회의 설립 및 전 로마제국을 향한 선교 사역을 기록한 책이다.
이는 비교적 뚜렷한 역사서적성격을 갖고 있다.
사도행전은 전반부는 페트로의 사역을, 후반부는 파울로의 사역을 중심으로
초대교회사를 전개하고 있음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서신서(the Epistles) .사도들이 전 로마제국에 걸쳐 갓 선교를 개시한 초대교회 당시는
아직 교회의 각종 제도와 조직이 미비한 상태였고,
각 지역의 주요 신자의 가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각 지역별 교회가 설립되던 때였다.
이 당시 사도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을 사역지로 삼아
순회하거나 항상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선교여행을 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이 자리를 떠났을 때 교회에 크고 작은 각종 문제가 생기거나
아니면 사도가 전할 말이
있을 때 사도들은 사도권을 가지고 서신을 작성하여 각 지역 교회에 보내어
그 지역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차례로 돌려가며 보도록 하였다.
서신서는 바로 이런 사도 서신의 일부로서 특별히 성경의 영감으로
그 당시의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전 시대의 교회들에게 보편적인 구속사적 진리를 전할수 있는 내용의 서신들이
정경화 된 것들이다.
신약 서신서는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서신서를 기록한 파울로 서신과
그 외의 사도들이 기록한 공동서신으로 크게 나뉘며
파울로 서신은 다시 다음처럼 보다 작게 나뉘기도 한다.
·피울로 서신 : ① 교리서신(여행서신)-로마서 코린도 알파 베타, 갈라티아서,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⑦ 옥중서신 ' 에페소서, 필맆포서 , 콜로싸이서, 필레몬서
③ 목회서신 티모데 알파 베타, 티토서
공동서신-히브리서, 야코보서, 페트로 알파 베타, 요한 알파 베타 감마, 유다서
계시록(the Revelation) 여타 신 ·구약 성경은 태초 천지창조부터 사도들의 행적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각종 구속사의 사건들과 거기에 담긴 구속의 섭리에 대하여 기록하여 왔다.
반면 신약의 마지막 책이요 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직접적으로는 A.D.1세기 말경에 심각한 박해에
처해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하여 세상 끝날의 대 심판과
그 종말이후에 천국에서 있을 성도의 승리와 영광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종말을 향하여 진행하는 현 세상의 역사 전개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섭리를 전해주고 있다.
한편 이처럼 세상 역사의 전개와 종말에 대한 계시인 계시록은
소위 심오한 묵시문학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인간의 섣부른 속단을 금지시키면서 더욱 더 조심스러운 해석을 요구한다.
2. 기록 순서에 의한 신약 성경의 재 배열
앞서도 지적했지만 신약 성경은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열된 것으로서 기록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
아니다. 아울러 각 책에 기록된 신약 시대 사건들의 역사 순으로 배열된 것도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신약을 그 집필된 순서대로 다음처럼 재배열 해보는 것은 신약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신약 각 책들의 기록 연대별 순서)
1. 야코보서-A.D.46-49년
2.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A. D.51년
3, 코린도 알파 베타 -A. D.55년
4. 갈라티아서 -A.D.56년
5. 로마서-A.D57년
6. 마르코 복음-A. D.55-68년
7. 루카 복음-A. D.60-63년
8. 마타이오 복음-A. D.60-70년
9. 에페소서 -A.D.61-62년
10. 필리포서, 콜로싸이서-A.D.62-63년
11. 사도행전 -A. D.63-64년
12. 디모데 알파 - A. D.63-65년
13. 페트로 알파-A.D.64년 전후
14. 히브리서-A.D.60년대 후반
15.티토서-A.D.66년
16. 페트로 베타-A. D.66-67년
17. 디모데 베타-A. D.66-67년
18. 유다서-A. D.65-70년
19. 요한복음-A. D.85-90년
20. 요한 알파 베타 감마 -A.D.90년
21. 계시록 -A.D.81-96년
&&&
구약성경 차례
책명 (장) 책명 (장)
창세기 (50장) 코헬렡 (전도서) (12장)
출이집트기 (40장) 쉬르하쉬림(아가) (8장)
레뷔기 (27장) 예사야 (66장)
민수기 (36장) 예레미야 (52장)
데바림 (34장) 예레미야 에카 (5장)
예호슈아 (24장) 에즈켈 (48장)
사사기 (21장) 다니엘 (12장)
룯기 (4장) 호쉐아 (14장)
사무엘상 (31장) 요엘 (3장)
사무엘하 (24장) 아모스 (9장)
열왕기상 (22장) 오바댜 (1장)
열왕기하 (25장) 요나 (4장)
역대상 (29장) 미카 (7장)
역대하 (36장) 나훔 (3장)
에즈라 (10장) 하밬쿡 (3장)
느헴야 (13장) 즈판야 (3장)
에스테르 (10장) 학가이 (2장)
욥기 (42장) 즈카르야 (14장)
시편 (150) 말라키 (4장)
미쉴레(잠언)) (31장)
'서신서(the Epistles) .사도들이 전 로마제국에 걸쳐 갓 선교를 개시한 초대교회 당시는
아직 교회의 각종 제도와 조직이 미비한 상태였고,
각 지역의 주요 신자의 가정에서 입에서 입으로 복음이 전파되어
각 지역별 교회가 설립되던 때였다.
이 당시 사도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지 않고 광범위한 지역을 사역지로 삼아
순회하거나 항상 새로운 선교지를 향해 선교여행을 하거나 하였다.
그리하여 사도들이 자리를 떠났을 때 교회에 크고 작은 각종 문제가 생기거나
아니면 사도가 전할 말이
있을 때 사도들은 사도권을 가지고 서신을 작성하여 각 지역 교회에 보내어
그 지역 교회에 속한 성도들이 차례로 돌려가며 보도록 하였다.
서신서는 바로 이런 사도 서신의 일부로서 특별히 성경의 영감으로
그 당시의 초대교회 뿐만 아니라
전 시대의 교회들에게 보편적인 구속사적 진리를 전할수 있는 내용의 서신들이
정경화 된 것들이다.
신약 서신서는 개인으로서 가장 많은 서신서를 기록한 파울로 서신과
그 외의 사도들이 기록한 공동서신으로 크게 나뉘며
파울로 서신은 다시 다음처럼 보다 작게 나뉘기도 한다.
·피울로 서신 : ① 교리서신(여행서신)-로마서 코린도 알파 베타, 갈라티아서,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⑦ 옥중서신 ' 에페소서, 필맆포서 , 콜로싸이서, 필레몬서
③ 목회서신 티모데 알파 베타, 티토서
공동서신-히브리서, 야코보서, 페트로 알파 베타, 요한 알파 베타 감마, 유다서
계시록(the Revelation) 여타 신 ·구약 성경은 태초 천지창조부터 사도들의 행적에 이르기까지
전개된 각종 구속사의 사건들과 거기에 담긴 구속의 섭리에 대하여 기록하여 왔다.
반면 신약의 마지막 책이요 성경 전체의 마지막 책인 계시록은 직접적으로는 A.D.1세기 말경에 심각한 박해에
처해 있던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위로를 주기 위하여 세상 끝날의 대 심판과
그 종말이후에 천국에서 있을 성도의 승리와 영광을 집중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또한 그 과정에서 종말을 향하여 진행하는 현 세상의 역사 전개에 대한 하나님의 기본적인 섭리를 전해주고 있다.
한편 이처럼 세상 역사의 전개와 종말에 대한 계시인 계시록은
소위 심오한 묵시문학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인간의 섣부른 속단을 금지시키면서 더욱 더 조심스러운 해석을 요구한다.
2. 기록 순서에 의한 신약 성경의 재 배열
앞서도 지적했지만 신약 성경은 논리적 순서에 따라 배열된 것으로서 기록 순서대로 배열된 것이
아니다. 아울러 각 책에 기록된 신약 시대 사건들의 역사 순으로 배열된 것도 더더욱 아니다.
따라서 신약을 그 집필된 순서대로 다음처럼 재배열 해보는 것은 신약 성경을 새롭게 이해하는 좋은 참고자료가 될 수 있다.
(신약 각 책들의 기록 연대별 순서)
1. 야코보서-A.D.46-49년
2. 데쌀로니케 알파 베타 -A. D.51년
3, 코린도 알파 베타 -A. D.55년
4. 갈라티아서 -A.D.56년
5. 로마서-A.D57년
6. 마르코 복음-A. D.55-68년
7. 루카 복음-A. D.60-63년
8. 마타이오 복음-A. D.60-70년
9. 에페소서 -A.D.61-62년
10. 필리포서, 콜로싸이서-A.D.62-63년
11. 사도행전 -A. D.63-64년
12. 디모데 알파 - A. D.63-65년
13. 페트로 알파-A.D.64년 전후
14. 히브리서-A.D.60년대 후반
15.티토서-A.D.66년
16. 페트로 베타-A. D.66-67년
17. 디모데 베타-A. D.66-67년
18. 유다서-A. D.65-70년
19. 요한복음-A. D.85-90년
20. 요한 알파 베타 감마 -A.D.90년
21. 계시록 -A.D.81-96년
&&&
구약성경 차례
책명 (장) 책명 (장)
창세기 (50장) 코헬렡 (전도서) (12장)
출이집트기 (40장) 쉬르하쉬림(아가) (8장)
레뷔기 (27장) 예사야 (66장)
민수기 (36장) 예레미야 (52장)
데바림 (34장) 예레미야 에카 (5장)
예호슈아 (24장) 에즈켈 (48장)
사사기 (21장) 다니엘 (12장)
룯기 (4장) 호쉐아 (14장)
사무엘상 (31장) 요엘 (3장)
사무엘하 (24장) 아모스 (9장)
열왕기상 (22장) 오바댜 (1장)
열왕기하 (25장) 요나 (4장)
역대상 (29장) 미카 (7장)
역대하 (36장) 나훔 (3장)
에즈라 (10장) 하밬쿡 (3장)
느헴야 (13장) 즈판야 (3장)
에스테르 (10장) 학가이 (2장)
욥기 (42장) 즈카르야 (14장)
시편 (150) 말라키 (4장)
미쉴레(잠언)) (31장)
신약성경 차례
책명 (장)
마타이오 복음 (28장)
마르코 복음 (16장)
루카 복음 (24장)
요한 복음 (21장)
사도행전 (28장)
로마서 (16장)
코린도 알파 (16장)
코린도 베타 (13장)
갈라티아서 (6장)
에페소서 (6장)
필맆포서 (4장)
콜로싸이서 (4장)
데쌀로니케 알파 (5장)
데쌀로니케 베타 (5장)
티모데 알파 (6장)
티모데 베타 (4장)
티토서 (3장)
필레몬서 (1장)
히브리서 (13장)
야코보서 (5장)
페트로 알파 (5장)
페트로 베타 (3장)
요한 알파 (5장)
요한 베타 (1장)
요한 감마 (1장)
유다서 (1장)
요한계시록 (2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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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
편 한 성 경
(Comfortable Bib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