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세 살 되던 해, 남편과 나는 사기를 당해 모은 돈을 전부 잃고 빚더미에 앉았다. 우리는 서로를 원망하며 말도 섞지 않았다. 하루는 아이 밥을 챙기려고 냉장고를 열어 보니 묵은지 말고는 반찬이라 할 만한 것이 없었다. 장을 보고 싶어도 돈 한 푼 없었다. 양가 부모님의 도움은 받지 못했고, 잘살 땐 뭐든 다 내줄 것 같던 지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연락이 끊겼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은 지병이 악화돼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했다. 아이는 어린이집 특별 활동비 5만 원을 내지 못해 등원할 수 없었다. 차오르는 서러움을 삼키며 아이를 안고 밖으로 나갔다. 차가운 겨울바람에 아이를 꼭 끌어안았다. 울다 잠들었는지 얼굴에 눈물 자국이 남은 아이를 보며 속삭였다.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정처 없이 한 시간쯤 걸었을까. 작은 가게 문에 붙은 종이를 발견했다. '돈가스 무료로 드립니다!' 아이에게 먹일 수 있겠다는 생각에 무작정 안으로 들어갔다. 사장님이 계산을 하고 있어 그 앞에서 말없이 기다렸다. 그 순간, 아이가 선잠에서 깨어나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했다. 식사하던 손님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 쪽으로 와닿자 너무 당황스러워 고개를 푹 숙였다. ‘사람들이 공짜로 음식 얻으러 왔냐고 뭐라 하면 어쩌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은 나밖에 없는 것 같은데….’ 오만가지 생각에 당장에라도 가게를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 가게 안에 있던 한 할머니가 손뼉을 치며 다가왔다. "아이고, 우리 공주님이 배가 고픈가 보네!" 계산을 마친 사장님도 푸근한 미소를 보이며 "밖이 꽤 춥죠? 여기 앉아 기다려 주세요."라며 자리를 안내했다. 얼떨결에 자리에 앉으니 곧 테이블에 따뜻한 유자차 한 잔이 놓였다. "아이 엄마는 밥 먹었어요? 가게에 우유 있는데, 아이한테 그것 좀 데워 줄까요?" 한사코 손사래를 치자 사장님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주방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사장님이 커다란 쇼핑백을 들고 나와 내게 건넸다. "사실 이 돈가스요, 납품하려고 만들었는데 취소당했지 뭡니까. 하하! 재료비 날리고 사기도 당해 빚만 늘었지만, 유기농으로 정성스럽게 만든 겁니다. 오늘 저녁에 가족과 함께 맛있게 드셔 주세요." 그 말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만 낭떠러지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모두가 각자의 삶을 견디고 있었다. 오랜만에 집 안에 기름 냄새가 풍겼다. 아프고 나서 방 밖으로 잘 나오지 않던 남편도 슬그머니 방문을 열었다. 모처럼 아빠를 본 아이가 해맑게 웃었다. 돈가스집 사장님에게 전하고 싶다. 돈가스 정말 맛있었다고. 지금은 그때 받은 마음을 조금이나마 나누며 살고 있다고. 김민지 | 경남 통영시 친절은 얽힌 것을 풀어 주고, 난해한 것을 수월하게 하며, 암울한 것을 환희로 바꾸어 놓는다. _ 필립 체스터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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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 합니다
반갑습니다
동트는아침 님 !
공유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
건강과 행운이 함께하는
행복한 주말보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