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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략 프로필
본명:Gabriel Omar Batistuta
키:185cm
몸무게:73kg
프로데뷔:1988 년 뉴웰스 올드 보이스 입단
별명:그라운드의 로맨티스트,그라운드의 예수,바티골,천재 골잡이
특기:폭발적인 슈팅,절묘한 위치선정,타고난 골감각
▲바티스투타의 경력
1988 ~ 1989 - 뉴웰스 올드 보이스 (아르헨티나) 선수
1989 ~ 1990 - 리버 플레이트 (아르헨티나) 선수
1990 ~ 1991 - 보카 주니어스 (아르헨티나) 선수
1991 ~ 2000 - AC 피오렌티나 (이탈리아) 선수
1991 ~ 2002 -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1994 ~ - 미국 월드컵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1998 ~ - 프랑스 월드컵 아르헨티나 국가대표
2000 ~ 2003 - AS 로마 (이탈리아) 선수
2003 ~ 2003 - 인터 밀란 (이탈리아) 선수
2003 ~ 2005 - 알 아라비 (카타르) 선수
2005.03 ~ - 현역 은퇴
*P.S 바티스투타... 수상과는 거리가 머시더군요..ㅜ
▶간단명료 바티골 프로필아르헨티나의 국가대표 축구선수. 폭발적인 슈팅과 절묘한 위치선정, 타고난 골감각으로 ""득점기계"", ""바티골(BatiGoal)""이라는 애칭을 갖고 있다.
당당한 체구에 파워풀한 슈팅과 감각적 볼 트래핑 능력까지 갖춰 스트라이커의 대명사로 불린다.
1969년2월 1일에 출생한 그는 원래 야구선수였으나 17세에야 비로소 축구선수로 새 인생을 시작했다.
1991년 브라질과의 친선경기에 국가대표로 데뷔전을 치렀으며, 그해 남미선수권(코파아메리카) 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아르헨티나의 우승을 이끌어 스타로 떠올랐다.
이후 이탈리아의 피오렌티나로 이적했으며, 94-95 시즌 세리에 A리그에선 32경기 26골을 기록, 득점왕을 차지했다.
이후 2000년 5월 축구 역사상 두번째로 많은 이적료인 2,200만프랑(약387억원)를 받고 AS로마로 옮긴뒤 1년 만에 20골을 넣으며 팀을 83년 이후 18년만에 세리에 A리그 정상에 올려놓았다.
1994년, 1998년, 2002년 월드컵에 출전했으며, 94, 98 월드컵에서는 연속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바티스투타...그를말하다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천재골잡이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축구천재' 마라도나를 뛰어넘고 아르헨티나 A매치 사상 최다골을
넣은 선수로, 그의 긴 이름인 바티스투타를 다 부르기도 전에 골을 넣는
다는 뜻에서 '바티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바로 이 '바티골'이라는 별명이 붙었을 시기가 세계 빅3 리그로 불리는
곳 중 하나인 이탈리아 세리에A에서 활약했을 때이다.
피렌체를 연고로 하는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던 그는
1994년 피오렌티나가 2부리그인 세리에B로 강등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미 세계적인 골잡이로 이름을 날리던 바티스투타였기에,
많은 사람들과 피오렌티나의 팬들마저 그가 팀을 떠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로 유럽의 많은 명문클럽에서 거액을 보장하며, 그를 영입하려
하였으나 바티스투타는 이를 모두 거절한 채 피오렌티나를 선택했다.
돈과 명예를 쫓아 수시로 팀을 옮겨다니는 시기에 바티스투타가
보여준 행동은 피오렌티나의 팬들을 감동시키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2부리그인 세리에B에서 바티스투타는 신들린 감각으로 골을
뽑아내며 1년만에 바로 팀을 다시 세리에A로 승격시키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지만 나이가 30이 되도록, 피오렌티나에서 우승컵 하나 들어보지
못한 바티스투타는 눈물을 머금고 이적을 결정하였다.
이탈리아의 수도인 로마를 연고지를 하는 명문팀 'AS로마'였다.
AS로마에서도 역시 수많은 골을 뽑아내며 팀의 우승에 기여하며,
우승컵을 들어올리는 데 바티스투타는 성공했다.
하지만 AS로마가 우승하던 그 시즌, 피오렌티나의 팬들은
바티스투타때문에 또 한번 감동을 받았다.
AS로마아 이전 소속팀인 피오렌티나가 경기를 가지던 날,
바티스투타는 먼 거리까지 응원온 피오렌티나의 환호에 아무런 답변없이
경기에만 몰입했다.
1:0으로 AS로마가 승리한 이 경기에서 결승골이나 다름없는 골을
터뜨린 선수가 다름아닌 바티스투타. 하지만 바티스투타는 골을 넣고
선수들이 흔히 하는 골세레머니를 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하위권에서 부진하던 팀에게 미안한 나머지,
자신을 응원하던 피오렌티나의 팬들앞에서 세레머니를 하지않고
터벅터벅 자신의 진영으로 돌아온 것이다.
자기 진영으로 돌아오던 바티스투타의 눈에는
눈물이 글썽거렸다.
피오렌티나 팬들은 비록 경기는 졌지만, 바티스투타에게는
엄청난 환호를 보내주었다. 아직도 피오렌티나의 홈구장에 가면
바티스투타의 동상이 있을 정도라니, 피오렌티나의 사람들이 바티스투타를
얼마나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것인가.
이 경기가 끝난 날, 한 신문에서 바티스투타에게 이런 말을 붙여주었다.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바티스투타
◆바티골의 이야기...들어보실래요?
내 이름은 바티스투타, 내 이야기 들어볼래?
-초반 프로 경력은 그다지 화려하지 않았다.
-1988년 뉴웰스 올드 보이스에서 나의 프로 생활을 시작한다.
-나는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고 아르헨티나에서 수차례 팀을 옮겼다.
-팀의 이적은 항상 새로운 시작을 의미했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나는 파워를 이용한 골결정력으로 팀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는데는 성공한다.
-보카 시절(당시 강팀은 아님) 1991년 1월 오스카 타바레즈가
보카의 새 감독으로 부임하면서 대대적인 팀개편이 이루어졌고,
나 역시 큰 변화가 있었다.
-보카는 점점 강팀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비록 아르헨티나 챔피언쉽을 차지하는데는 실패하지만,
꾸준히 득점을 하며 나의 존재를 알리기 시작했다.
-1991년 국대로부터 호출을 받았다.
90년대 초반 아르헨티나 팀은 최강무적이였다.
그러나 마라도나 시대에 이어 나의 시대도 올 것이다.
-나에게 가장 잊혀지지 않는 첫 대회는 91 코파 아메리카 였다.
이 대회에서 아르헨티나는 우승을 거머줬고,
나는 6게임에 출장하여 6골을 터뜨리며 대회 득점왕을 차지했다.
-많은 유럽의 명문 구단들이 나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결국 세리에A의 피오렌티나가 나를 데려갔다.
-나는 득점을 하기 시작했고, 나의 골들이 팀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또한 피오렌티나 팬들도 점차 아르헨티나에서 온
나에게 응원을 보내기 시작했다.
-1992년 2월 26일, 유벤투스전에서 성공시킨 결승골을
시작으로 '바티골'의 신화가 시작된다.
-유벤투스전 이후로 아무도 나의 득점 행진을 계속 되었고,
제노아전에서 두 골, 포지아전에서 해트트릭 그리고
올림픽 스타디움에서 두 골을 넣는등 골폭풍을 몰고왔다.
-그러나 이런 대활약에도 불구하고 어떤 개인상도 받지 못했고,
팀도 리그 12위의 성적에 만족해야 했다.
-다음 시즌 나는 팀의 중심이 되었으며,
세리에 B로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팀에 남기로 결심했다.
-아르헨티나는 94 미국 월드컵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였다.
-많은 아르헨티나인들은 자국 대표팀이 월드컵을 차지할 수 있다는 야망에 휩싸여 있었다.
비록 피오렌티나는 세리에 B로 강등 되었지만
나의 실력을 다시 한번 전 세계에 알리고 싶었고,
월드컵에 대비해 만반에 준비를 했다.
또한 당시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마라도나의 컴백으로 더욱 주목받고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예선 첫 경기에서 나의 해트트릭과
마라도나의 골로 그리스를 4 : 0으로 대파했고,
두번째 경기에서는 나이지리아를 2 : 0으로 완파했다.
-그러나 마라도나가 팀의 상승세에 제동을 건다.
경기 후 실시된 약물 검사에서 마라도나가 양성반응을 보인 것이었다.
이것으로 인해 팀 분위기는 급속도로 악화되었고,
결국 아르헨티나는 16강전에서 하지가 이끄는 루마니아에게
2 : 3으로 역전패를 당하며 94 월드컵 우승의 꿈을 접어야 했다.
-그리고 피오렌티나로 복귀했고,
나의 용기와 승리에 대한 집념이
세리에 B에서 뛴다는 수치심을 극복하게 했고,
마침내 피오렌티나를 세리에 A로 다시 복귀시켰다.
-다시 세리에 A로 돌아온 나는는 11주 연속골 이라는
새로운 골 기록을 세우며 30년 동안 볼로냐의 파스쿠티가
가지고 있던 연속골 기록을 갈아치웠다.
-또한 이 해는 'la bandierina(코너 깃발)'의 해로 기억될 것이다.
왜냐하면 바로 골을 넣은 후 나는 코너 깃발을 이용해 하는
아주 인상적인 골 세레모니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95-96 시즌에 다가올 전주곡에 불과했다.
-피오렌티나는 돌풍을 일으키며 리그 3위를 차치해 당당히 UEFA컵에 출전했으며,
베르가모에서 아탈란타를 물리치고 '코파 이탈리아'를 차지했다.
4개월 후, 나는 '산 시로'에서 바레시가 이끄는 밀란 수비진을 농락하며
멋진 2골을 뽑아내 피오렌티나에게 '수퍼 코파'를 선사했다.
-나의 활약이 절정에 달했을 때...
아르헨티나의 상황은 좋지 못했다.
이 사이 나를 둘러싼 귀화설이 번졌다.
그러나...
-" 나 바티스투타는 나의 뿌리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다.
귀화하기엔 나의 조국 아르헨티나를 너무나도 사랑한다"
-포르투갈로 귀화하라는 피오렌티나 시절 절친한 동료 루이코스타의 말에-
-또한 이 해에 나는 세리에 100경기 출장을 달성하고,
그리고 피오렌티나에서 직접 제작한 실제 나의 사이즈의
대형 이미지 동상을 받았다.
이러한 팬들의 선물은 선수에게 너무나 값진 선물이였다.
나는 피오렌티나 팬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다음 시즌 나는 세리에 A 통산 100번째 골을 성공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막판 우승 경쟁에서 나의 부상으로 3위에 머물고 말았다.
-또한 아르헨티나는 98 월드컵에서 다시 한번 불운을 맛봐야 했다.
비록 5골을 넣으며 대활약을 펼쳤지만 팀은 어딘가 모르게 불안해 보였다.
결국 8강전에서 네덜란드에게 패하면서 탈락하고 만다.
-그리고 또 다음 시즌, 이번에도 우승 타이틀을 얻지 못했다. 결국....
나는 오프 시즌에 정 들었던 피오렌티나를 떠나 AS 로마로 팀을 옮겼다.
너무나도 팬들에게 미안했다.
하지만 AS 로마로의 이적은 좋은 결과를 낳았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프란체스코 토티라는 불세출의 스타와 함께
로마에서 이탈리아 제패의 꿈을 이루었다.
00/01 시즌에 나는 무려 20골을 폭발시켰고,
그러나 더욱 인상적이었던 사건은 바로 내가
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피오렌티나의 홈구장을 방문했던 일이었다.
-차라리 지금 부상을 당했으면 한다. 그러면 경기에 나가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AS로마 이적후 첫 피오렌티나 전을 앞둔 기자회견-
-피오렌티나 팬들은 나를 뜨거운 환영을 맞이 했고,
종료 직전에 대포알같은 중거리슛이 무심하게도 골로 연결됐다.
결승골을 성공시킨 뒤 나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속도 모르고 좋다고 달려오는 토티 자식...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루이 코스타는 나를 따뜻하게 안아주었고,
관중들 또한 울음을 참지 못하며 과거의 영웅 '바티스투타'의 이름을 연호했다.
내 심장 속에 피오렌티나가 남아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2002 한일 월드컵.
나는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또 다시 전세계 축구팬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사람들은 내가 33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 늙지 않았다고 말했다.
모두들 내가 독일의 게르트 뮐러가 갖고 있는
월드컵 최다 득점 기록(14골)을 뛰어넘을 수 있기를 바랬다.
나는 94년과 98년 대회에서 각각 4골과 5골씩을 성공시켜
총 9골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었다.
-월드컵이 시작되기 전 아르헨티나의 경제는 최악이 이르렀다.
모든 아르헨티나인들은 절망 속에 빠져들었다.
선수들의 어깨는 무거웠다.
-월드컵 우승컵을 반드시 고국에 안겨주고자 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는 잉글랜드, 스웨덴, 나이지리아와
함께 죽음의 조인 F조에 편성되었다.
-"모든것이 무너져도 우리에겐 축구가 있다"
"한달만이라도 우리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힘이 되고 싶다"
-2002년 한일 월드컵 출전하기 직전 기자회견 (당시 매우 열악한 경제의 아르헨티나)-
-첫 경기 나이지리아 전에서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순조롭게 출발하는 듯 했다.
-그러나 숙적 잉글랜드와의 두번째 경기
98 프랑스 월드컵 16강에 만난 뒤 양국의 사이는 좋지 않았다.
사이타마 경기장은 최고의 스타 베컴을 연호하는
팬으로 가득차 아르헨티나를 야유했다.
-98 월드컵에서 퇴장당한 베컴이 이번에는 결승골을 성공시켰다.
결국 이 골로 패하며 16강행 적신호가 켜졌다.
-그리고 운명의 스웨덴 전,
반드시 이겨야 하는 상황이였다.
그런데...
신은 아르헨티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1 : 1 무승부의 휘슬이 울리는 순간...
경기장의 시간은 정지됐다.
벤치에서 나의 눈물이 앞을 가렸다.
아르헨티나의 눈물
모두가 경기장에서 절망에 빠졌다.
많은 축구팬들은 아르헨티나의 눈물을
지켜보며 아쉬움을 금치 못했다.
오, 나의 사랑하는 조국 아르헨티나여!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로마에서 인터 밀란으로 이적해 잠시 짧은 시간을 보내고
카타르로 건너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불태웠다.
-바티스투타는 은퇴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를 잊지 않는다.
경기장에서 가장 열정적이고 뜨거웠던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 바티스투타
★사람들 마음 속에 바티스투타의 열정은 언제나 남아있을 것이다
"왜 슛을 약하게 하는가?
-바티스투타-
★바티스투타에게 한 명언들...
"나는 많은 팀의 감독을 맡아봤지만 바티스투타만큼 훌륭한 골잡이를 본적은 거의 없다."
- 지오바니 트라파토니(전 피오렌티나, 현 이탈리아 대표팀 감독)
"내 소원이 하나 있다면 바로 바티스투타를 포르투갈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 마누엘 루이 코스타(현 벤피카, 98'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후 대표팀의 골잡이 부재를 아쉬워하며)
"단 한 번만이라도 바티스투타의 슛 하는 것을 정면에서 보고 싶다. 얼마나 강력하고 남성적인가?"
-로마인 이야기의 일본인 여성작가-
"바티스투타는 정말 놀라운 선수다. 그는 항상 어떻게 하면 골을 넣을 수 있을지 깊게 생각하며 다양한 방법으로 그것을 성공시킬 수 있다. 더욱 놀라운건 지금 내가 보고 있는 바티스투타의 컨디션이 불과 20%밖에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 프란체스코 토티(현 AS 로마, 바티스투타가 AS 로마로 이적해온 직후 기자들이 바티에 대한 소감을 묻자)
"바티스투타의 위대함은 그와 같은 팀에서 뛰게 되면 100% 깨달을 수 있다."
- 프란체스코 토티(00/01 시즌 세리에A 우승을 달성한 이후 인터뷰 중에서)
"내 생애 바티스투타같은 공격수는 본적이 없다. 그는 사람이 아닌 것 같다."
- 나카타 코지(현 일본 대표팀/FC 바젤 수비수, 2002 월드컵 직전에 아르헨티나와 가시마의 연습 경기에서 바티스투타가 혼자 4골을 터뜨리자)
"바티스투타는 아르헨티나 역사상 최고의 공격수다. 하지만 나 역시 지난 몇년간 유럽 무대에서 꾸준히 좋은 모습을 보여왔다. 나와 바티가 함께 뛸 수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서로를 매우 잘 알고 있으며, 투톱으로 뛰게 된다면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거라 확신한다."
- 에르난 크레스포(현 인터 밀란/아르헨티나 대표팀 공격수, 2002 월드컵을 앞두고 비엘사 감독이 자신과 바티스투타를 함께 기용하는 전술을 채택하지 않자)
"바티스투타와 크레스포가 세계 최고의 공격수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최고의 선수를 갖고 있어도 기용하지를 않는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도 없는 일이다."
- 디에고 마라도나(전 아르헨티나 대표팀 미드필더/86' 멕시코 월드컵 우승 주역, 2002 월드컵에서 바티스투타와 크레스포를 투톱으로 기용해야 한다며)
많은 축구팬들이 바티스투타의 축구에 감동했습니다.
바티스투타 덕분에 국내에 많은 아르헨티나 팬들이 있죠.
그라운드 위의 마지막 로맨티스트라... 바티가 진정한 아르헨의 예수가 아닐까요?
-바티스투타 조사끝-
첫댓글 근데 커리어가 별로인...ㄷ..듯??;; 제일 높은 팀에 갔던게 로..마인가?;
마라도나는 ??
피렌체면 ㅎㄷㄷ이죠..바티의 피렌체 말년에는 7공주시절이죠..물론 7공주 중에서 밀리는 감이 있던 피렌체지만 그래도 강팀은 강팀이었음.
뉴웰스 올드 보이스 이팀 지금도 존재하나요 ? 궁금하네요 ...ㅎㅎ
네, 아직도 있는걸로 알아요.
저의; 우상
누구임?
헐... 바티모르는분들도 꽤 있으시네...게다가 커리어가 별로라는 말까지 듣다니...ㅠㅠ OTL..
ㅠㅠ호나우도 다음으로좋아하는 스트라이커..정말최고죠
바티가 듣보잡되는건 한순간이군하..ㅠ_ㅠ
"왜 슛을 약하게 하는가?" 멋지네
피오렌티나전 골넣고 우는거 캐안습ㅠㅠ
진짜 왜 바티와 크레스포투톱을 잘 안썼는지 모르겠음... 오르테가가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당시 컨디션 완전 최악이었거늘... 그리고 베론대신 아이마르를 택하고.
약간 더블타겟 느낌 아닌가요. 아?!!! 바티는 빠르기도 했군요-ㅁ-
그라운드의 마지막 로맨티스트...영원히 잊지 못할겁니다...
정말 너무나도 매력적인 스트라이커 ㅜ_ㅜ
또다시 축구하는모습을 보고싶네 ㅠㅠ
속도 모르고 좋다고 달려오는 토티 자식...
어시가 필요하면 바티에게 패스를ㅋ 너무 멋지고 멋진 사나이!!
리버풀선수들빼고 가장 좋아하는선수..
그는 소원을 들어줘.ㅋㅋㅋ
90년대 최고에 스트라이커 시어러VS바티스투타
이거아는분있을라나? "바께쓰똥따~"
모르시는분들은 그냥 타깃형본좌신급공격수라보심됨니다
최고임 바티 ㄷㄷㄷㄷㄷㄷㄷㄷㄷ
존경하는 선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