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자는 비록 28자 뿐일지라도 전환이 무궁무진하고,
간단하지만 요체는 다 들어 있고, 정밀하여 모두 통한다.
그러므로 슬기로운 사람은 아침이 끝나기 전에 다 깨칠 수 있고,
어리석은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다 깨칠 수 있다.”
오늘날 한글을 배우는 외국인들은
이처럼 쉽게 배울 수 있는 한글의 장점을 들어 ‘아침 글자(morning letter)’라고 부른다.
이 글자는 어떻게 해서 만들어 졌고,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학창시절 ⟪국어⟫시간에 잠깐 접한
⟨훈민정음(訓民正音)⟩ 서문을 다시 살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 한자와 서로 통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마침내 그 뜻을 펴지 못하는 이가 많다.
내가 이를 어여삐 여겨 새로 스물여덟 글자를 만드노니
사람마다 쉽게 익혀 나날이 쓰기에 편하도록 하고자 할 뿐이다.”
이 문장은 인류 역사상 문자 창제에의 이유를 밝힌 유일하며 가장 뚜렷한 명문(名文)이다. “나랏말씀이 중국과 다르다”는 차별화 대선언과 함께 만든 이가
이 글자를 통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 뚜렷이 드러내 준다. 그 지향점은 - 소통이다.
일반 백성들이 쉽게 접근할 문자가 없을 당시의 소통 불능 상태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답답했을 것이다. 그 암흑의 불통 시기,
세종은 문자를 창제해 소통의 세상을 열어젖히고자 했다.
문자 창제는 그가 한 일 중 가장 혁명적인 활동이었다.
하지만 이 계획은 전무후무한 것이었다.
우리 역사상 문자를 창제하려는 온갖 시도들이 있었으나,
5천 년 간 끊임없이 실패했고, 누구도 성공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그 불가능, 불가침의 영역에 과감히 온 몸을 던진 것이다.
창제의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수많은 고전(古篆) 참조와 연구가 뒤따랐고,
장장 15년이라는 비밀 연구 시간을 필요로 했다.
새로운 문자가 탄생하기까지
문자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은 치열하다 못해 눈물겨울 정도였다.
글자 창제 후 세종이 국왕으로서
철저한 자기반성과 애절한 심정을 섞어 고백한 것은 이 때문이다.
세종보다 한살 많은 정인지의 설명은 당시의 처절했던 상황을 잘 설명해 준다.
⟨해례⟩에서 그는 한자로 통하려는 것은 서로 걸리고 막히는 삽질(澁窒)에 불과하다
(지금에까지 행하는 데 이르러 한자를 빌어다 쓰고 있어 혹은 걸리고 혹은 막혀.
至今行之然皆假字而用 或澁或窒)고 말하고 있다.
그로 인해 우리 뜻에 전혀 맞지 않았다고.
이 난통(難通)의 상태는 뛰어넘어야 할 조건이었고,
새로운 문자 창제야말로 이런 난통·불통을 깨뜨려 버리려는 대역사의 결정판이었다.
문자 창제는 이 처럼 시대의 절박한 요구이자, 절대요구였던 사안이다.
이것이 문자 창제에의 동기다.
⟨훈민정음〉을 파고들면 또 다른 세상이 보인다.
정인지가 말하는 글자 구성의 3가지 창조기법이 바로 그것이다.
①전환무궁(轉換無窮, Transform-ability, 옮기고 바뀌는 것이 끝이 없고)
②간이요(簡而要, Simplicity, 간단하고 요긴하고)
③정이통(精而通, Insightness, 정묘하고 통한다)이 그것이다.
한글이 지닌 불변적 핵심가치로 자유자재성, 간단명료성, 정밀성을 들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한글의 원리이자 특장점이다.
한글이 완전한 소통 수단을 지향한 것은 처음부터 이 같은 보편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 글자는 어떤 조합 방식으로 이루어진 것일까?
글자 구성은 자음(닿소리)과 모음(홀소리)의 단순 결합으로부터 이루어진다.
하지만 그 결합 원리를 꼼꼼히 살펴보면 엄청난 우주적 철학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우선 , 자음(닿소리) 을 보면, 아(ㄱ), 설(ㄴ), 순(ㅁ), 치(ㅅ), 후(ㆁ)의 기본음에
한번 획수를 더해 ㄷ, ㅂ, ㅈ, ㆆ을 만들고 여기에
다시 가획해 ㅋ, ㅌ, ㅍ, ㅊ, ㅎ를 만들어 낸다.
(ㄱ은 예사폐쇄음으로ㄱ만 곧바로 ㅋ으로 변환된다.)
여기에 ㄹ, ㅿ, ㅇ과 ㅸ이 투입돼 새로운 발성자원을 확보한다.
기본음에 계속 가획해 기본, 가획, 연서가 이루어지고,
다양하고 더 많은 소리를 낼 수 있게 되어 있다.
이렇게 5개 기본음에 터럭을 뗐다가 붙이는 원리를 ‘분호자변(分毫字辯)’이라고 부른다.
이어 같은 자음을 동종 복제해 ㄲ, ㄸ, ㅃ, ㅆ, ㅉ, ㆅ, ㆀ을 만들어 내고,
다시 이종 2중 결합시켜 ㄺ, ㅼ, ㅶ, ㄳ를 만들어 낸다.
다시 삼종3중 결합시켜 ㅴ, ㅵ, ㅩ를 만들어 낸다.
이런 방식으로 음을 무한확장해 나간다.
자음을 이렇게 구성한 것은 발음기관의 모양을 드러내고자 했기 때문이다.
자음 중 ‘ㅸ ㅿ ㆆ 、’ 가 지금도 쓰이고 있다면
글자 사용이 어떻게 달라졌을지 자못 궁금하다.
모음(홀소리)의 원리도 같다.
하늘(・, 圓, [陽]), 땅(ㅡ, 平, [陰]), 사람(ㅣ, 立)을 뜻하는 삼재(三才)가 전부다.
이 3요소는 모음의 원리로 모음 전체를 이끈다.
우주적 원리, 인간의 본성, 태극의 역학 원리를 담고 있다.
이 같은 천지인 삼재는 유학적 철학 원리에 기초한다.
⟪주역⟫⟨분(賁)⟩편에는 ‘천문을 살펴 때의 변화를 알아내고,
인문을 살펴 천하의 교화를 이룬다(觀乎天文, 以察時變, 觀乎人文, 以化成天下)’는 말이 나온다.
이 말은 천과 인을 짝지은 말이다. (이 말에서 ‘문화(文化)’라는 말이 나온다.)
또 ⟨계사전(繫辭傳)⟩에는 ‘위를 올려다보고 천문을 살피고, 아래를 내려다보고 지리를 알아낸다(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는 말이 나온다. 모두 하늘, 땅, 사람을 말하며, 앞서 둘을 관장하는 사람이 등장한다. 이 세 가지 축이 모음의 원리이다.
〈해례〉에서 풀이한 글자 쓰임새를 보면, 하늘은 만물의 시초이기 때문에 글자의 머리는 하늘(・)이 된다. 그래서 ・ ㅡ ㅣ 3자의 으뜸은 하늘(・)이다.
이 하늘(・)은 땅(ㅡ)과 사람(ㅣ)과 어우러진다.
이 세 글자가 기본이 되어 한 번 열고 닫는다.
이어 하늘(・)이 모두 개입해 ㅗ, ㅏ, ㅜ, ㅓ, ㅛ, ㅑ, ㅠ, ㅕ 8자를 만들어 낸다.
이것이 모음 본문 11자이다.
ㅗ과 ㅜ는 하늘과 땅이 처음으로 사귀는 뜻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고,
ㅏ과 ㅓ는 하늘과 땅의 작용이 사물에서 피어나되 사람을 기다려서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만들어졌다. 한글을 가리켜 표음문자라 하여 ‘뜻이 없는 글자’라고 배웠는데,
이는 옳은 풀이가 아니다.
우리 글자는 모음이 결합하며 뜻을 담아내고 있다.
한글은 우주적 질서가 만나는 기원이자, 거대한 상징체계인 것이다.
또 ㅗ, ㅜ, ㅏ, ㅓ의 넷은 모두 하늘과 땅에서 비롯되었으니 초생의 뜻을 갖는 초출(初出) 글자가 된다. 이 초출자에 사람의 뜻을 가진 사람(ㅣ)을 겸하여 ㅛ(ㅗ+ㅣ, ㅣ는 이중모음의 시작), ㅑ, ㅠ, ㅕ를 만들어 낸다. 재생의 뜻을 가진 재출(再出) 글자가 이것이다.
그리고 하늘(・)이 위와 밖에 놓인 것은 양(陽), 아래에 놓인 것은 음(陰)이라고 부른다.
또 하늘(・)이 8자 모두에 있는 것은 양이 음을 거느려 만물에 두루 흐름과 같고, ㅛ, ㅑ, ㅠ, ㅕ에 모두 사람(ㅣ)이 있는 것은 사람이 만물의 영장이 되어 하늘과 땅에 참여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초성자 11자의 모양을 만들 때 하늘, 땅, 사람에게서 가져왔으니, 이는 삼재의 이치가 두루 갖추어진 것이다. 이렇게 삼재가 각기 늘어나면서 모음의 구성이 풍부해 진다.
한글 모음은 이처럼 하늘, 땅, 사람 삼재가 결합된 것으로,
각기 다른 삼재가 두개 쓰이려면 다른 요소를 만나야 한다.
천지인이 상호작용할 때 우주적 원리가 작동하는 철학을 지니고 있다.
이처럼 한글은 천지자연의 글은 천지자연의 음에서 비롯되었다는 원리에 따라
말소리를 글자꼴에 합쳐 문자가 만들어 졌다.
이 원리는 영원히 변함없을 것이다.
훈민정음 원리는 인간 문제에 대한 해법과 더불어 세상을 움직이고 구성하는 원리와도 맞닿아 있다. 글자는 부챗살처럼 활짝 펼쳐지며 인간 세계를 향해 달려나간다.
그렇다면 이 대목에서 한번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세종은 왜 글을 쓸 때 자음을 먼저 쓰게 하였던 것일까?
또 자음과 모음의 구성에서 자음은 왜 맨 위 왼쪽에서 먼저 쓰이면서 받침으로도(아래 ‘황’자처럼) 쓰이고,
모음은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또한 밑에서 위로 향하도록( ‘최’자처럼) 구성하였던 것일까?
그 까닭은 자음은 땅[지도(地道)]과 결부되어 있고, 모음은 하늘[(천도(天道)]과 결부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초성(자음)과 중성(모음)은 상호작용 한다. 이 같은 해석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하지만 내 생각은 좀 다르다. 자음을 먼저 써야 할 특별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세종은 어리석은 백성들이 제 뜻을 펴지 못하는 난통 상황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고자 글자를 만들었다. 그 구성에 있어서 ‘민음(民音)’을 먼저 듣고자 구강계로 내는 소리음인 자음(닿소리)을 먼저 쓰도록 배려했다.
말소리에 유교적 원리와 뜻을 지닌 모음이 따라붙으며 한글은 소리와 뜻이 부합하는 글자가 된다. 말이 글로 변환되고, 글이 말로 바꾸어지는 ‘상유통(相流通)’의 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모음 자체로도 음양이 결합되어 있지만, 자음과 모음의 결합 방식은 음양이 어우러지는 원리를 따르고 있다. 천지간에 가장 조화로운 결합 방식, 남녀 간의 사랑처럼 뜨거운 열정이 내재한 결합 방식을 취하고 있다. 만약 세종이 뜨거운 사랑을 알지 못했다면 어찌 이런 글자를 만들 수 있었을까?
그 답은 ‘훈민정음(訓民正音)’이란 네 글자와 서문에 뚜렷이 밝혀져 있다.
‘민음(民音)’이 바로 답이다.
서문에서 말하였듯, “어린 백성들이 제 뜻을 시러펴지 못하는” 애처로운 상황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진 이 글자는 구강계를 통해 백성들이 낼 수 있는 모든 소리를 먼저 내게끔 글자 구성에서 우선순위로 배려했다. 당연히 ‘백성 소리 먼저’다. 백성이 내는 소리(자음)에 철학적 원리인 뜻(모음)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밑에서 위로 단단하게 받쳐주어 ‘뜻있는 말’이 되게 했다. 마치 글이라는 건 허투루 쓰는 것이 아니라는 걸 알려주듯이 말이다.
자음과 모음의 결합 원리를 자세히 살펴보면, 어떻게 결합하든 태극 문양과 닮아 있다. 어느 글자든 자음(군)과 모음(군)을 묶어보면 이 같은 원리는 뚜렷이 드러난다. 소리와 뜻의 결합을 통해 음양의 조화를 꾀했다. (‘응’자의 경우는 삼태극 원리 내지, 양이 음 사이에 개입하여 나뉘거나 붙게 하는 걸 뜻한다.)
또한 글자를 씀에 있어서 마지막 종성 글자는 별도로 만들지 않았다. 대신 초성자(자음)를 쓰도록 했다. 받침이 있는 글자의 경우, 왜 받침 글자를 별도로 만들지 않았던 것일까? 그것은 처음(초성)이 되었던 것이 마지막(종성)이 되어 돌아가는 우주적 이치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이 땅에서 나서 땅으로 돌아가듯 우주 적 창조와 순환 원리를 담고 있다.(불교식으로 말하자면 ‘윤회’가 이것이다.) 한글 구성의 원리는 만든 이가 우주적 창조 활동에 뛰어드는 과정이자, 스스로 중계자임을 자임하고 있다. 이 우주와 인간의 중계자는 글자의 구체적 의미와 쓰임새를 매우 겸허하게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