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제물을 기한 내 제출했지만, 첫 제출 때 불가피하게 멘트지를 파일로만 업로드하였고 생각을 피력한 부분이 빠져 이를 조금 수정하여 본문에 멘트지 이미지를 첨부해 재제출합니다. (이미 업로드된 게시물을 수정하려 했지만 이미지 첨부에 어려움이 있어 새로 재업로드 합니다.)
-매체 속 철학
2학기 때부터 ‘다자인’이라는 오디오 방송을 편성하여 제작, 진행을 담당하고 있다. 독일어 다자인의 ‘다’는 ‘거기에’라는 뜻이고 ‘자인’은 ‘존재’를 뜻하는데, 이를 직역하면 ‘거기에 존재’가 된다. 하이데거는 인간의 존재를 독립적인 것이 아닌 근원적인 차원에서 이미 맥락과 주변 세계 상황들이 들어와 있는 것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으로 청자들에게 다가가고자 방송명을 다자인이라고 지었었다. 다양한 층위와 상보적 앎 속에서 세계와 인간의 복잡성에서 오는 아름다움을 함께 공유해보고자, 1차 방송에서는 차이(the difference), 언어를 매개로 온전한 대화, 부분들이 아니라 부분들이 함께 작동하는 상태이며 부분들이 모이면 나타나지만, 부분들이 모이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는 현상을 소재로 방송했고 2차 방송에서는 장자의 이야기를 들어 자신감과 실재의 본질에 관해 방송했다. 과학자와 불교학자가 나눈 대화를 활용해 무엇에 중요한 가치를 두고 있는가에 따라 실재의 본질이라고 생각하는 데 큰 차이가 있으며 실재의 본질에는 얼마나 다양한 것들이 제시될 수 있는지 시사했다. 3차 방송 멘트지에는 탐욕과 인간성 그리고 지능을 소재로 삼은 내용이 담겨 있다. 그래서 방송했던 멘트지를 과제의 일부로 제출하려 한다.
https://youtu.be/bMb5yTpQ-BM?feature=shared
한편, 2화 실재의 본질이라는 소재에서 한 발자국 더 나아가. 동시대에 자신의 철학이 담긴 태도로 예술 활동에 족적을 남기고 있는 에콰도르 출신의 미술가 오스카 산틸란을 소개해보려 한다.
-다자인 1-3회 멘트지
1. 다자인 방송 1회차 줄있는 멘트지
2. 다자인 방송 2회차 줄있는 멘트지
3. 다자인 방송 3회차 줄있는 멘트지
-4. 오스카 산틸란
앞서 2화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실재의 본질은 다양한 층위에서도 상대가 그 기저에 무엇을 밑바탕으로 깔고 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나는 이러한 실재의 본질이라는 성격을 파악한 오스카 산틸란이 그 다양성을 실재의 무한성으로 파악했다고 생각한다. 에콰도르 출신의 미술가 오스카 산틸란은 형이상학과 진리의 개념에서 벗어나, 다양한 관점과 다른 감각으로 인식되는 세계를, 증식시킨다. 새로운 해석으로 이질적이고 우연한 사건들을 함께 둬 실재를 늘리기도 하고 변형한다. 그는 우리가 인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실이라고 생각 하는 익숙한 패턴을 변형하는 작업을 한다. 산틸란은 실재는 무한하지만 우리는 감각의 한계 때문에 그 실재의 전부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바케네>(2016)는 크리스토퍼 콜럼버스가 그린 아메리카 대륙 지도와 관련이 있다. 콜럼버스가 처음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했을 때, 타이노 원주민들이 그에게 황금과 보석이 가득한 보물섬에 대해 말해준다. 콜럼버스와 선원들은 두 달 동안 섬을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찾지 못했다. 산틸란은 콜럼버스가 그린 아메리카 대륙지도를 보다 현재 도미니카 공화국 북쪽 해안, 대서양의 한 가운데에 뚫린 작은 구멍을 발견한다. 이 구멍이 지도에서 유일하게 소실된 부분인 만큼 산틸란은 이 지점이 보물섬이라 지정하고, 배를 타고 나선다. 당연히 그곳엔 우리가 생각하는 섬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는 그 구멍에서 바닷물 100리터를 퍼와 물을 증발시키고 부유물과 소금 결정체로 이뤄진 섬을 만들어 낸다. 산틸란은 지각의 다른 방향을 제시함으로써 실재를 증식시킨다. 해석과 사건이 실재를 계속해서 만들어 내고 잊어버리기를 반복할 뿐이다. 산틸란의 바케네 섬은 그에 대한 것이다.
또한 그는 니체에 대한 작업을 했다. <덧붙이는 글>(2014-2015)은 니체를 ‘실제’로 살려낸 작품이다. 니체는 심령술사 집안에서 태어난 덴마크 출신의 박사가 발명한 타자기를 구입해서 글을 쓰려고 시도했다고 한다. 하지만 운송 중 고장이 난 타자기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니체의 원고는 오타와 낙서가 찬 채 미완으로 남았다. 산틸란은 이 원고를 아주 조금 가져와 영매에게 보여준다. 영매는 이 원고 조각을 통해 니체의 영혼과 접신하여 니체가 생전에 추던 춤을 춘다. 이 작품에선 이성과 문학, 진리와 환상 등이 모두 뒤엉킨다. 춤을 추는 영매의 퍼포먼스에서 육체와 정신의 구분은 허물어지고, 삶과 죽음의 경계도 모호해진다.
<허상본 뜨기>(2017)에서 산틸란은 퍼포머들을 고용하여 한쪽 다리가 없지만 그 없는 다리에 가짜 감각과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다리를 본뜨는 작업을 한다. 허상 감각을 느끼는 사람은 퍼포머들에게 다리가 어떤 형태인지, 어느 부분을 잡아야 하는지 등을 세세하게 설명해준다. 퍼포머들은 그 사람의 지시대로 다리를 조심히 본떠서 작은 상자에 옮겨 넣는다. 진짜보다 더 사실적인 감각과 통증을 느끼는 사람의 다리는 본떠져서 상자에 묵직하게 담긴다. 모두의 진지한 집중과 서로 의존하는 확장된 차원의 감각은 잃어버린 다리를 복제한다. 이 다리는 실제보다 더 실제 같다는 기대에 부응한다.
오스카 산틸란의 <침략자>에서 관념의 세계와 실제 세계가 만나는 순간이 있다. 산틸란은 영국에서 제일 높은 산에 올라가 대략 3센티미터 크기의 돌을 하나 주워와서는 영국을 아주 미세하게 줄였다고 말했다. 이는 영국의 상당한 반감을 샀는데 감히 영국의 크기를 줄였다는 것에 대한 반감인 것 같다. 산틸란은 전시장을 폭파시키겠다는 전화까지 받았다. 이 작품에서 산틸란이 주워온 돌은 매우 작지만 아주 무겁게 받아들여진다. 관념의 세계가 실제 세계로 침입하면서 지각의 균열을 만들어낸다. 작은 돌 하나를 가져오는 제스처가 한 국가의 실제 면적을 줄였고, 그 나라의 정신과 권위에 도전한 것이다.
첫댓글 교육방송국에 있나보네요. 예전에 신문방송사 주간을 했던 일이 있어서 반갑네요. 최초 게시물을 삭제하고 이 게시물을 올렸군요. 철학도로서 패기가 넘칠 뿐 아니라, 고민한 흔적이 많이 보이는 내용이로군요. 그런데 방송을 전제로 한 멘트지를 작성했다는 점에 착안해서 이렇게 묻고 싶어요. "과연 이 멘트지로 방송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이 멘트지의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청자는 얼마로 예상하는가?" "이 멘트지의 내용을 좀 더 쉽게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인가?" 사실 우리는 철학이라고 하는 것이 현실의 문제를 보정하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메타현실적 개념, 곧 형이상학적 개념에 집중하게 됩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현실을 분석하고, 방안을 제시할 필요도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