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An die Musik
음악이 우리에게로 왔다. 그것이 아폴론 (Apollon) 적(的)이든 디오니소스적이든 무관하다. 음악이 우리의 사단칠정(四端七情)을 다스려 준다면 아폴론 적이 될 것이며, 니체의 말과 같이 군중을 하나의 혼 안에 녹아낼 수 있고, 마음을 뒤흔든다면 디오니소스적일 것이다.
가장 디오니소스적인 악기는 타악기일 것이다. 옛 아프리카 원주민들이 만들어내는 북소리를 들으면 인간의 감정은 고조될 것이다. 더욱이 줄루족의 전투장면을 연상하면 그러하다. 전사들을 공격적 모드(Mode)로 만들며, 땅을 흔들어 사기를 북돋아 주는 소리의 울림은 곧 전투가 임박함을 알려주는 신호이다. 그래서인지 우리 선조들도 진군할 때는 북소리를 울리며, 퇴각할 때는 징 소리로 알렸다고 한다. 이는 음양오행을 따른 것으로, 북은 나무(木)와 가죽을 나타내어 시작을 뜻하는 봄이고, 징은 금속(金)을 뜻하여 거두어들이는 가을을 나타낸다. 그런데 6.25 전쟁 때 중공군은 밤에만 공격했고, 이상한 나팔과 꽹과리 소리를 울려대며 다가와 미군을 당황케 하는 심리전을 연출하였다. 이렇게 소리는 디오니소스적인 효과를 극대화(極大化)시킨다. 이처럼 음악은 우리의 영혼에 울림을 주는 선물이다. 아폴론 적이든 디오니소스적이든 그러하다.
여기서 우리가 하마 잊었던, 사라진 악기와 소리를 생각해보자. 그것은 우리 어머님과 누님이 두드리던 다듬이란 타악기와 그 정겨운 방망이 소리이다. 늦은 가을이나 겨울밤, 우리의 어머님과 누님들이 낮 동안의 힘겨운 노동을 마무리한 후, 정갈하게 빨래한 옷감을 다듬잇돌 위에 올려놓고, 마주 앉아, 마치 타악기를 연주하듯 장단을 맞추어, 다듬잇방망이를 두드리는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이다. 더욱이 차가운 밤의 정적을 가르고 흩어지는 다듬이 소리와 문풍지 창밖으로 비취는 두 여인의 그림자를 이제는 박물관에서도 다시 들을 수도, 볼 수도 없는 풍경이 되어버렸다. 이처럼 한국의 여인들은 고된 하루의 노동을 악기 소리의 미학으로 승화시켰다. 어쩌면 여인들은 그 소리에 취해, 마치 이슬람의 종교의식인 수피 춤(Sufi Dance)과 같이, 모든 한(恨)과 고통과 질고(疾苦)의 스트레스를 날려버리어 무아지경에 이르는지도 모른다.
역시 시나 음악도 슬픈 애조를 띄거나 비장한 비극의 탄생이어야 아름답게 느껴지나 보다. 호모사피엔스에게는 노래와 춤, 음악과 시가 하나였다. 시가 곧 음악이 되고 음악이 곧 시가 되었다. 그래서 공자는 ‘시를 배우지 않는 사람과 말을 할 수 없다’라고 했다, 이는 곧 ‘음악을 모르는 사람과는 말을 할 수 없다’라는 말과도 동어반복이 아닐까?
셋째 날 하마마쓰성을 본 뒤 악기 박물관을 다시 찾았다. 동서고금을 망라한 숱한 악기들이 마치 거대한 봄의 오케스트라를 연주는 하는 듯 가지런히 진열되어있다. 어느 것인들, 인간이 신과의 대화의 모습인 제의(祭儀)와 찬미(讚美)의 수단으로, 흔히는 축제의 모습으로, 때로는 슬픈 비가(悲歌)로, 미묘(微妙)하고 섬세한 인간의 감정을 전달하는 매개체로, 자연의 소리를 재연하는 기구로, 사용되었던 역사를 음미(吟味)할 좋은 시간이었다.
8. 소소한 풍경들
1) 신사(神社)에 왜 말(馬)이?
도착 다음 날 아침 일찍 호텔 부근으로 산책했다. 미에현(三重縣)의 조그만 시골이라 거리에는 사람이 다니지 않았다. 우연히 야산 쪽으로 가 보았더니 아주 작은 신사가 보였다. 아마 지역 신을 모시는 곳으로 여겨졌다. 본전 현판에는 희미하게 말이 그려져 있어서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그날 오후 이세신궁을 갔을 때, 내궁(內宮) 입구 쪽에, 잘생긴 흑갈색 말이 마구간으로 보이는 곳에서 검은 눈을 두리번거리며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어 놀랐다. 왜 신성한 신궁에 말을 가두어 놓았을까?
돌아와서 자료를 찾아보니, 고대부터 일본인은 말을 신사에 봉헌(奉獻)했다고 한다. 당시 말은 교통수단과 노동력제공의 동물이어서, ’신의 매개체‘(媒介體)로 귀하게 여겼다. 이는 천신(天神)이 말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올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신의 매개체인 말을 바침으로써 사람들은 소원을 더 강하게 전달하고 싶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세신궁의 그 말도 아마 누군가가 봉헌한 게 아닐까 생각이 된다.
그런데 요즘은 고가의 말을 구하기도 어렵고, 신사에서도 관리하기가 쉽지 않으므로, 나무로 말을 조각하거나 판자에 말을 그려 넣은 에마(えま, 絵馬)로 대신 봉납하기 시작했고, 말 이외에도 다른 동물을 그려 넣어 감사의 표시로 바친다고 한다.
2) 토바 전망대(甫鳥羽展望臺)
이세신궁을 가기 전 아침에 들른 곳은, 미에현(三重縣) 도바시(馬羽市)에 자리한, 이세시마 국립공원인 바다전망대였다. 이 전망대는 도바시와 시마지(志摩市)를 연결하는 진주도로(Pearl Road)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망을 할 수 있는 곳이다. 해발 163m의 언덕에 위치하여 일출을 감상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날씨가 좋으면 바다 건너 후지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그날은 우리에게 행운이 따르지 않았는지, 푸른 태평양 물결과 까마귀만 볼 수 있었다.
그 전망대 이름이 토바(甫鳥)여서인지 영국의 도버(Dover)해협이 생각났다. 밤이면 도버 해안에서 프랑스 해안의 칼레(Calais)의 불빛이 보인다. 19세기 영국의 시인인 매슈 아놀드(Matthew Arnold, 1822-88)의 ’도버 해안'(Dover Beach)이란 시가 불현듯 떠올랐다. 이 시는 과학과 기술의 진보로 영국 사회가 급격한 변화에 직면하여, 전통적 가치와 신념인 기독교 신앙이, 도버 해안의 밀려가는 파도처럼, 쇠퇴하고 상실하는 슬픔을 그린 내용이다. 그가 이 전망대에서 후지산을 바라보며 지금 시를 쓴다면 어떤 이야기일까?
3) 저 짙푸른 강물을 따라
둘째 날 저녁 처음으로 숲속 아담한 온천마을로 버스를 타고 갔다. 호텔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오쿠이세 숲 온천’(オクイセミヤガワオンセン,奧伊勢宮川溫泉)이었다. 이곳은, 오다이(おおだい)지역 산들에 둘러싸인 초록과 청류(淸流)의 성지인 미야가와(宮川)의 대자연에 안겨져, 휴양의 장소로도 유명하다.
하루해가 저무는 무렵, 산과 강변에는 하얀 벚꽃이 자지러지게 봄의 행렬을 잇고 있으며, 협곡을 흐르는 짙푸른 미야가와(宮川) 강물은 미지의 시간 속으로 빠르게 흘러가는 듯 보였다.
불현듯 저리도 짙어 신비스러운 청록색 물감에 빠지고 싶었다. 그리하여 신들의 고향으로 헤엄쳐 건너가고 싶었다. 강을 건넌다는 것은 또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의식(儀式)이다. 싯다르타가 강물의 소리를 들으며 문득 깨달음에 도달했듯이. 그래서 느낌을 서툰 시로 써보았다.
저 짙푸른 강물을 따라
산 벚꽃잎들이 강물 위에
그림자를 드리울 수가 없네
신비로운 청록물감으로 급히
흐르기 때문이지.
꽃은 제 색깔로, 강물은
물 아래 땅의 빛깔로
자연스레 완연한 봄날의
대조를 이루고 있어.
강물은 신들의 고향 마을
부근 협곡을 따라 시간
속으로 흘러가고 꽃들은
제철을 따라 공간 밖으로
잠시 소풍 나온 거야.
지금은 부활절이 지난
소생의 계절이니
온갖 생명이 약동하네
참 아름다운 풍광이야.
2024.4.2. 미야가와(宮川)
강물을 따라
(4) 봄날의 정취가 흐드러지다. (春爛漫 花霞の頃)
2018년 가을 시즈오카(しずおか,静岡)여행에서 묵었던 하마나코(はまなこ,浜名湖) 호텔(Lakeside Hotel)을 다시 찾아왔다. 그 가을 여행의 첫날 저녁 만찬 메뉴에는 ‘일엽지추(一葉知秋)’라는 시의적절한 시구(詩句)가 씌어있어 감동했는데, 이 봄의 첫날 저녁에는 봄의 정취를 한껏 표현하는, ‘봄이 화창하게 무르익어 꽃이 아득하게 피어나는 계절’(春爛漫 花霞の頃)이라고 썼다. 이는 하이쿠(はいく,俳句)의 한 구절 같아 따뜻한 정감이 서렸다. 자기 호텔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정성스러운 음식과 함께 운치 있는 메뉴를 각자 자리에 깔끔하게 진열해주는 일은 그들의 품격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그 호텔 온천장은 개축되어서 이름이 달랐다. 지난번 이름은, 만세까지 영원히 솟아나는 온천물이라는 뜻인, ‘만엽의 용’(萬葉の湧)이었는데, 이번에 보니, 만세까지 영원히 피어나는 꽃을 뜻하는 ‘만엽의 꽃’(萬葉の華)으로 바뀌어있었다. 아마, 온천이라는 직접화법보다는 꽃이라는 은유(隱喩)가 더 손님에게 다가설 것으로 생각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