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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약을 회복할때
(사무엘하 21 : 1-9)
어느 목사님이 교회에 출석하다가 중단하고 있는 교우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목사님, 진정한 신앙생활을 위해 꼭 예배에 출석해야하고 교회 봉사를 해야 할까요? 저는 요즈음 저 혼자만의 하나님과의 관계의 유지를 통해 믿음의 삶이 가능한가를 실험하고 있는 중입니다.
정말 교회 없는 신앙생활이 불가능할까요?”
목사님이 답신을 썼다.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상상해 보십시오.
군대에서 훈련이나 소집에 불응하는 군인이 정상일까요?
병원이 없이 치료를 구하는 환자가 정상일까요?
학교나 스승이 없는 학생이 정상일까요?
팀을 생각하지 않는 축구선수가 정상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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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 아이슈타인은 교회에 대하여 부정적인 견해를 갖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조국 독일이 나치의 학정아래 신음하고 있었을 때 희망을 접지 않고 주일마다 교회에 모여 조국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는 작은 교회 공동체의 진지함을 지켜본 어느 날 그는 회중 앞에서 눈물을 흘리며 “내가 교회를 오해했습니다.”라고 고백했다고 합니다.
자동차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꼭 가야하는 두 곳이 있습니다. 하나는 주유소이고, 다른 하나는 주차장입니다. 차 운전을 하지 않을 때는 주차장에 넣어야 되고 연료가 떨어지면 주유소로 가야합니다. 교회는 주유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예배를 통하여 하늘의 연료를 공급받는 곳입니다. 하늘의 연료, 은혜를 공급받는 날이 주일입니다. 주일 예배를 통하여 은혜의 연료를 공급받은 차는 주요소에 머물지 말고 도로를 향하여 출발을 해야 합니다.
주유소에 주차하기 위해 가는 차는 없습니다. 주차는 주차장에서 해야 하고 주유소는 연료를 넣기 위해 가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교회에서 은혜 받았으면 은혜를 실천하기 위해 나가야 합니다.
오늘은 종교개혁주일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5대 강령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입니다.
디모데후서 3장 16절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에베소서 2장 8절에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갈라디아서 2장 16절에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 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고린도전서 10장 31절에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마틴 루터는 진리를 파단하는 최종 권위는 교회가 아니라 '오직 성경'이며,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오직 은혜에 근거한 것으로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받을수 있습니다. 존 칼빈은 루터의 세강령에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더해 종교개혁 5대 강령을 완성하였습니다.
종교개혁 507년이 되었지만 여전히 지금도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에 있었던 3년 기근과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후손을 처형한 사건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성경에서 승리교회 성도들에게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1. 다윗시대에 삼년기근이 있었습니다.
다윗시대에 오랫동안 비가 내리지 않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 여겼기에, 다윗 왕의 통치시대에 3년이나 기근이 있었다는 것은 매우 중대한 문제였습니다.
생각에 따라 하나님이 다윗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합당하게 여기시지 않는다는 의미로 여겨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재앙의 원인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묻게 되었고, 하나님께서는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죄’로 인함이라고 응답하셨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을 불쌍히 여기지도 말고 그들과는 어떤 언약도 하지 말고 그들을 완전히 진멸하라고 단단히 명령하셨습니다(신 7:1-2).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먼 데서 온 사람들로 위장한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아 그들과 언약을 맺고 말았습니다(수 9:3-21). 하지만 그 언약은 속아서 맺은 언약이었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은 언약이었기에 이미 맺은 이상,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했습니다. 만일 그 언약을 어긴다면 그것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2절에 기록된 것처럼, 민족적인 배타성이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잘 보이고 싶어서 이방인인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하는 악한 죄를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죄는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언약과 공의가 무너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당사자인 사울이 이것을 회개할 리는 만무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을 떠난 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사람 다윗의 시대에 이스라엘에 3년간이나 기근의 재앙이 임하게 하심으로 다윗과 백성들이 그들 가운데 있는 죄를 깨달아 그것을 해결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기독교 종교개혁은 자신의 죄를 깨닫는 것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깥이 내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기뻐하는 자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시는 말씀이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입니다. 죄를 회개하는 것이 기독교가 살 길입니다.
죄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란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죄란 십자가와 부활없이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란 하나님께 영광돌리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1장 7절에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으로 살아갈 수밖에 업습니다.
마태복음 8장 13절에 “예수께서 백부장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은 대로 될지어다 하시니 그 즉시 하인이 나으니라”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기도하여야 합니다.
2.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복을 빌겠느냐
3절에, 다윗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내가 어떻게 속죄하여야 너희가 여호와의 기업을 위하여 복을 빌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기브온 사람들은 4절에서 “사울과 그의 집과 우리 사이의 문제는 은금에 있지 아니하오며 이스라엘 가운데에서 사람을 죽이는 문제도 우리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물질적인 보상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은 사울의 악행으로 인해 파기되었던 이스라엘과 자신들과의 언약이 바로 세워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5-6절에, 자기 족속을 죽인 사울의 자손 가운데서 일곱 사람을 내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것은 자기 족속을 죽인 사울의 자손들을 죽임으로써 사울로 인해 깨어진 언약이 새롭게 회복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여러분, 만일 기브온 사람들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갚았다면 그 원한은 계속 돌고 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깨어진 언약이 회복되기를 원했습니다. 그를 위해 필연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속죄의 제물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속죄의 제물을 바치므로 깨어졌던 이스라엘과 기브온의 언약이 회복되었습니다.
이처럼 죄값은 은금으로 갚을 수 없습니다, 오직 목숨으로 갚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값을 대신 갚아 주셨기에 잠시 실수로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기더라도 우리의 목숨으로 갚지 않고 예수님의 공로를 의지하여 회개함으로써 언약을 계속해서 유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절에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11절에 “예수를 죽은 자 가운에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오늘, 사울의 죄악과 그의 후손들의 희생을 보면서 죄의 삯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다시 돌아보며, 죄로부터 구원받은 자로서 믿음의 길을 흔들림 없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언약을 회복하는 역사가 성령과 말씀으로 이루어지를 축복합니다.
3. 하나님의 언약은 계속 이어간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다윗은 요나단과의 맹세를 생각하여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속죄 제물 대상에서 제외하고 사울의 두 아들과 사울의 외손자 다섯 아들을 붙잡아 기브온 사람들에게 주어 그들의 목숨으로 죄값을 갚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째서 사울이 저지른 죄악을 다윗 시대에 징계하셨을까요? 이스라엘을 속이고 맺은 이방인과의 언약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그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이토록 혹독하게 징계하신 것일까요?
우선 하나님은 사울 시대나 다윗 시대가 모두 택하신 백성의 역사라는 점에서 단절되지 않고 연속되는 것으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브온과 맺은 언약을 파기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을 징계하신 것은 그 언약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맺어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은 이런 징계를 통해 자신과 다윗, 자신과 당신의 백성 간에 맺은 언약의 중요성을 각성시키시고, 자신이 백성들과 맺은 언약은 반드시 지킬 것임을 분명히 하시며 그 사실을 다시 한 번 깊이 교훈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기독교는 언약의 신앙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성경은 구약과 신약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 이전의 약속과 그리스도 이후의 약속으로 되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과 시시 때때로 언약을 맺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통해 하나님의 구속의 섭리를 이루시고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 펼쳐 가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언약의 초점이시며, 성경 언약의 알파와 오메가가 되십니다.
언약신앙이 가장 빛을 발하는 시간은 우리가 역경의 광야를 지날 때입니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어둡고 험해도 우리가 서있는 자리에 부는 바람이
아무리 거세고 추워도 우리가 흔들리지 아니함은 그분의 약속의 견고함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언약속에 감추인 하나님의 인자와 성실을 확인하며
미래를 변함없이 소망하며 살 것입니다.
언약의 신앙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존재의 기반입니다.
다윗이 언약을 지켜 주심으로
사무엘하 21장 14절에 “... 그 후에야 하나님이 그 땅을 위한 기도를 들으시니라”
이로써 당시 이스라엘 땅에 임했던 3년간의 기근이 마무리 되고 비가 쏟아졌다(10절)는 것입니다.
임종을 앞두고 웨슬리는 마지막 말을 전하기 위해 온 가족을 모았습니다. 그는 마지막 60초간 자리에 앉아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누워 두 손을 높이 들고 마지막 숨을 모아 다시 힘주어 말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출애굽기 23장 25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라 그리하면 여호와가 너희의 양식과 물에 복을 내리고 너희 중에서 병을 제하리니”
마가복음 2장 5절에 “예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작은 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은 오늘도 가장 필요한 이시대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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