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탕 집에서
이상은
감자탕집입니다. 오랜만에 고향 친구들이 모였습니다. 고향 떠나 살면서 얼굴이나 한 번씩 보자고 만든 모임입니다. 오늘 모처럼 출석률이 좋습니다. 모임 장소에 들어설 때는 김 사장, 이 교수, 송 실장, 박 본부장 이런 점잖은 호칭을 부르며 악수하고 만나지만 조금 지나면 이놈아, 짜식, 너, 새끼 이렇게 부르게 되지요. 술잔이 오가고 분위기가 무르익으면 남부끄러워 못할 이야기도 털어 놓습니다. 우리는 불알친구들이거든요. 잠시 촌놈들 노는 꼴 한번 볼까요.
“이모. 감자탕에 감자가 없네요. 감자 좀 더 주세요.”
종업원이 감자 세 개를 김 사장 앞에 놓았습니다. 김사장이 그 중 가장 크고 실한 놈에다가 숟가락을 하나 거꾸로 꽂습니다.
“봐라. 감자는 불알 같고. 숟가락은 꼭 거시기 같지."
“요고 봐라. 퉁퉁하고 허연 것이 양놈 불알이네.”
김 사장이 젓가락으로 감자를 툭툭 치며 너스레를 늘어놓습니다.
“요즘 말이야 요기 숟가락 부분, 요 놈이 문제야. 감자는 별 문제가 없는데.”
감자에 꽂힌 숟가락을 젓가락으로 들어 올렸다 놓자 힘없이 툭 떨어집니다.
“봤제. 세우기도 힘들고 외부 세력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버티지도 못해.”
“이것이 요즘 내가 겪고 있는 중대한 역사적 시련이라.”
“누가 좋은 타개책이 있으면 말 좀 해봐.”
옆에서 앉은 박 반장이 김 사장에게 소주 한잔을 건넵니다.
“자랑이다. 자식아.”
김 사장이 끓고 있는 감자탕 국물 한 숟갈 떠서 감자에 끼얹습니다.
“야. 요놈 감자 봐라. 발갛다. 꼭 애기 불알 같네. 우리도 요런 좋은 시절이 있었는데.”
김 사장이 안주로 나온 꼬막 살을 발라서 감자에 꽂힌 숟가락에 올려놓습니다.
“봐라. 이것이 조갠데 줘도 못 먹잖아.”
김 사장이 제 허리춤 아래를 내려다보며 한숨을 쉽니다.
“돈이 있어도 아무짝에 소용이 없어. 이 녀석에게 예전의 패기를 찾아 줄 수가 없어.”
김 사장이 젓가락으로 숟가락을 들어 올리려는데 숟가락이 힘없이 미끄러집니다. 그 바람에 꼬막과 감자탕 국물이 박 반장 무릎으로 튀었습니다.
“야! 인마. 왠 지랄이야. 고이 술이나 처먹지.”
박 반장이 김 사장의 장난이 못마땅했는지 목소리를 높입니다.
“뭐. 지랄? 처무라? 새끼야. 기껏 바지에 국물 좀 튄 거 가지고 지랄이야.”
“뭐 돈이 소용이 없어? 돈 좀 벌었다고 이 새끼가 눈에 뵈는 게 없어. 나쁜 새끼. 내 작업복 바지가 우습게 보이냐.”
“그래 나 돈 좀 벌었다. 니 놈 바지 우습다.”
김 사장도 지지 않습니다.
“애 새끼 다 깠으면 그걸로 오줌이나 싸고 살면 되지. 뭔 개나발이야. 미친놈아.”
박 반장이 한마디 더 쏘아붙입니다. 김 사장이 박 반장의 멱살을 잡고 일으켜 세웁니다.
"죽도록 돈 벌어서 살만하니까 이 모양이라서 억울해서 그런다. 새끼야."
둘은 으르렁거리기만 하고 주먹질은 하지 않을 겁니다. 친구들이 말릴 테니까요. 아마 두 녀석은 그걸 알고 야단법석을 떠는 걸 겁니다. 그런데 두 녀석은 아주 오래 전에도 싸운 적이 있습니다. 옆 동네 숙이를 같이 좋아했어요. 숙이는 생각도 없는데 말이지요. 말하자면 둘은 연적이었습니다. 동네 뒷산에서 남모르게 싸웠답니다.
박 반장이 소주 네 잔을 단숨에 비웁니다.
“난 오줌 눌 때마다 내 물건이 싫다.”
“이 놈 때문에 애 생기고 마누라 고생시키고.”
"이게 내 몸에 달렸지만 원수다."
박 반장이 한숨을 내쉽니다. 피곤해 보입니다.
"하기야 이 세상에 오고 싶어 온 놈이 어디 있어? 어느 날 정신 차리고 보니 내가 남편이고 아버지더라."
박 반장이 벽에 머리를 기대고 졸기 시작합니다.
“왜 사느냐고? 미안해서, 쪽팔리지 않으려고 …….”
“석아. 저 새끼 또 덤빈다. 한 주먹꺼리도 안 되는 놈이.”
박 반장이 앞 뒤 없는 잠꼬대를 합니다.
“그 새끼 감자탕 좋아했는데. 병신 같은 새끼. 죽기는 왜 죽어.”
석이란 말에 모두 술잔을 내려놓습니다. 지난겨울, 그 친구 녀석은 뭐가 바쁜지, 아니면 못마땅한 것이 많았는지 자청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도 꿈이 있었는데. 망할. 지금 내 사는 꼬락서니 하고는."
아무래도 박 반장이 술이 과했나 봅니다. 박 반장이 잠이 들었습니다. 김 사장이 박 반장이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눈치 없는 새끼, 나도 웃지만 웃는 게 아니다. 이놈아.”
김 사장이 박 반장 앞에 놓인 술잔을 대신 마십니다.
“이제 좋아하는 술도 못 이기는구나. 박 반장. 그래 가지고 날 어떻게 이기냐. 이놈아.”
김 사장이 박 반장을 깨웁니다.
“새끼야 노래방 가자.”
박 반장이 배시시 웃습니다. 박 반장은 어릴 때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했습니다.
“김 사장 니가 잘못했제. 바지 세탁비 안 받을 테니. 술도 사라.”
“내가 호구냐 새끼야. 차라리 바지 하나 새로 사주께.”
“못 산다. 이놈아. 삼거리표 김씨 아저씨 수제품이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물건이다.”
박 반장이 김 사장을 따라 나섭니다. 나이는 쉰을 바라보는데 노는 꼴은 영락없는 엇부루기입니다.
‘임금 귀는 당나귀 귀’라는 동화가 있지요. 임금님 귀가 당나귀 귀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발사는 대나무 숲에 찾아가 비밀을 털어 놓잖아요. 속이 후련했겠지요. 이 모임에 오면 우리는 이발사가 되기도 하고 서로에게 대나무가 되어주기도 합니다. 말 못할 이야기들을 털어 놓고 들어주지요. 어디 가서 힘을 잃어가는 물건 이야기며 돈 못 벌어 힘든 속사정을 털어 놓겠어요. 아! 박 반장이 꿈 이야기를 했지요. 김 사장의 꿈은 맛있는 것 많이 먹기 뭐 그런 것이었어요. 박 반장은 꿈이 컸어요. 자동차, 비행기, 우주선도 만드는 그런 큰 회사의 회장님이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김 사장은 돈은 벌었는데 건강이 좋지 않아 잘 먹지 못하고 박 반장은 작은 회사에서 기계 부품을 만듭니다. 그 중에 비행기 부품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는 게 뭐 원래 다 그렇긴 하죠.
녀석들 모양새를 한번 볼까요. 김 사장은 집안 내력인지 몰라도 머리카락이 많이 빠졌고요, 박 반장은 셔츠가 삐져나와 홀쭉한 배가 보이네요. 그리고 그 옆에 있는 녀석은 무엇에 놀란 사람처럼 허둥거리며 쉴 새 없이 말을 합니다. 호떡집에 불난 것 같네요. 혹시 이웃집 개에게 쫒기는 수탉을 보신 적 있나요. 제가 본 수탉은 이랬어요. 개가 멀리 보일 때는 암탉과 병아리들 앞에서 목에 깃털을 세우고 위엄을 보입니다. 나만 믿으라는 거겠지요. 그러다 개가 가까이 오면 대거리를 합니다. 그 사이에 암탉과 병아리는 도망을 치지요. 제 식구들이 피했다 싶으면 수탉도 걸음아 날 살려라하고 도망을 칩니다. 아차하면 개한테 물립니다. 때마침 주인을 만나면 봉변을 면하지만 아니면 슬픈 일이 생기기도 하지요. 죽어라 도망가다 개가 안 보인다 싶으면 돌아서서 나 여기 있다하고 긴 울음을 웁니다. 제 식구들에게 알리는 것이겠지요. 그런데 그 꼴이 가관입니다. 벼슬에는 퇴비장 지나다 묻힌 똥이 한 덩어리 올라 앉아있고 날개에는 깃털이 빠져서 맨살이 드러나 있습니다. 어디에 찔렸는지는 눈가에는 피도 보이고요. 이웃집 개가 무섭기로 세상살이 만 하겠어요. 개가 쫒아오면 지붕으로 피하면 그만이고 복날까지만 잘 견디면 또 개를 피할 수도 있지요. 그런데 세상살이 요놈은 지치는 법도 없고 피할 자리도 주지 않잖아요. 아주 징그러운 놈이죠. 녀석들 꼬락서니가 정신없는 수탉 같습니다. 하기야 우리도 마누라, 자식들 거느리고 살아가고 있지요.
녀석들 얼굴을 보고 있자니 초등학교 시절 미술 시간이 생각나네요. 선생님께서 깨끗한 기름종이를 한 장씩 나누어주었어요. 거기에다 꿈을 적고 종이배를 접으라고 하셨어요. 우리는 종이배를 학교 앞 시냇물에 띄웠어요. 선생님은 종이배는 시냇물을 따라 흘러 흘러서 바다로 가고 꿈은 먼 훗날에 꼭 이루어질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때 종이배에다 꿈이 뭐라고 썼는지 생각이 나지 않습니다. 독한 세상살이 그놈 때문이겠지요. 이번 주말에는 바다 구경을 가봐야겠습니다. 종이배를 기다려봐야겠어요. 아직도 바다로 오고 있을 겁니다. 오늘만은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 수탉도 대거리를 하는데 저라고 못할게 뭐 있어요. 세상살이에 쫓기느라 잊은 걸 찾아봐야겠습니다. 모처럼 마신 술 때문이지 피곤합니다. 저는 노래방은 못가겠습니다. 거리를 혼자 좀 걸어야겠습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먼 훗날이 아직 오지는 않았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