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원 빌기
이정자
미장원에 갔다가 원장 언니로부터 소원 빌기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죽은 이를 매장할 때, 하관 시 흙을 놓으며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십년 전 아버지 돌아 가셨을 때, 언니도 동생들에게 소원을 빌라고 했다는 것이다. 언니는 결혼이 많이 늦었으니 결혼 하게 해달라고 소원을 빌고, 막내 여동생은 결혼 후 몇 년 동안 아이가 없으니 아이 갖게 해달라고 기원했다. 그런데 언니는 나름대로 고집이 있는 사람이라 ‘뭐 그런 일이 있겠어. 돌아가신 분이 무슨 일을 하겠어.’ 라는 생각에 소원을 빌지 않았다. 일 년쯤 지나 막내 동생은 정말 아이를 낳았는데 물어보니 그때 소원을 빌었다고 했다. 본인은 아직 결혼을 못해 50이 다 되어가니 그때 소원을 빌었으면 좋았을 껄 하며 후회를 한다. 어머니는 아버지보다 더 일찍 돌아가셔서 그 후론 관에 흙을 놓을 일도 없으니.
소원이 많은 나는 그 이야기를 꼭꼭 새겨들었다.
늦은 봄 날, 시이모께서 돌아가셨다는 전갈이 왔다. 그동안 폐암으로 7년 동안 고생을 많이 하셨다. 담배도 전혀 안하는 분인데 병이란 알 수가 없다. 장수시대이니 여자 나이 74세면 아직 젊으신데 하는 아쉬운 생각이 들었고, 투병중일 때 춘천에 내려가 뵙지 못해 너무나 죄송했다.
영안실에선 그 죄송함 때문에 눈물이 많이 났다. 병원 진료 차 서울에 오면서 동생인 어머니 댁에 들리시고, 그러면 겨우 가서 얼굴을 뵈었다. 일요일이 장례식이라 우리 가족 모두 장지까지 갈 수 있었다. 장지에 가니 문득 미장원에서 들었던 소원 빌기가 생각이 났다. 관에 흰 국화를 놓고, 삽으로 흙을 떠서 관에 놓을 때 나는 내 소원을 빌었다. 한참 뒷줄에 서서 하얀 국화를 들고 순서를 기다리는 아들에게 다가가 작은 소리로 소원을 빌라고 얘기했다. 아들은 어안이 벙벙해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해놓고 옆을 보니 시이모 친 손녀딸이 서있었다. ‘내 말을 저 애가 들었나.’ 생각하니 갑자기 내가 부끄러운 일을 하다가 들킨 것처럼 얼굴이 붉어졌다. 그 애에게 할머니 돌아가신 슬픔보다 소원을 비는 내 욕심을 들킨 것만 같았다.
김동리의 <등신불>을 읽었을 때의 느낌이 생각났다. ‘만적의 어머니는 이복형을 독살하려 하였고 이를 안 이복형은 집을 나갔는데, 만적이 이복형을 다시 만났을 때 형은 문둥병 환자가 되어 있었다. 만적은 소신공양을 결심한다. 소신공양을 하는 그때 마침 비가 쏟아졌으나 만적의 타는 몸을 적시지 못하고 보름달 같은 원광이 비치었다. 모인 사람들이 크게 불은을 느껴 몸의 병을 고치니 다투어 사재를 던져 새전이 쌓였다. 그 이후에도 그 등신불에 빌은 소원은 효험이 있어서 많은 새전이 쌓였다.’ 라는 구절이었다. 그 글을 읽고 인간의 욕심에 대해 놀라웠다. 자신의 몸을 불태운다는 소신공양도 충격이었는데 몸을 불태우며 소신공양하는 사람에게 돈을 던지며 자신들의 소원을 비는 사람들의 모습은 더 충격이었다. 그들에게 가득 찬 욕심과 이기심을 보았었는데 내가 그런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성당에서 사제서품을 받아 신부님으로 탄생하면 첫 미사를 봉헌할 때 안수기도를 해 주신다. 신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머리에 손을 얹어 기도를 해주는 예식인데 그때는 아이 못 갖는 여자도 아이를 갖게 된다는 은총이 있다하여 많은 신자들이 모인다. 자녀를 적게 갖는 세태이니 신부님 되겠다는 분들도 적어 신부님 첫 미사가 드문 요즘인데 우리 성당에서 얼마 전에 새로운 신부님이 탄생하셨다. 나는 부랴부랴 모든 가족을 설득하여 성당에 갔다. 신부님 안수 기도를 받으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며 며칠을 얘기한 터였다. 그런데 바로 해줄 줄 알았던 안수기도를 점심 식사 후에 해준다고 했다. 선배 부부와 점심 약속을 해놓아서 시간이 안 된다고 하는 남편 때문에 우리 가족은 그냥 올 수밖에 없었다. 너무 속상해서 남편에 대한 불만을 입속으로 되뇌었다. 남한강가에 있는 전망 좋은 식당에 가서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점심을 먹었지만, 소원 빌기의 아까운 기회를 놓쳤다는 속상함에 즐거운 줄도 몰랐다. 한달이 되도록 마음의 앙금이 남았고 가끔 속이 부글거렸다.
성당 반 모임을 하는 날이었다. 반 모임은 한달에 한번씩 성당에 다니는 사람들이 모여서 성경도 읽고 기도도하고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이다. 이번 달 모임의 이야기는 당연히 새 신부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았다. 남편 때문에 안수기도 못 받은 내 사연을 툴툴거리며 이야기 했다. 성당에 잘 다니지 않는 남편을 둔 사람들은 이래저래 힘들고 손해라고도 했다. 안수기도 받았다는 분들을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반장이 이야기 할 차례가 되었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 동안에는 이런 저런 여러 가지 소원들을 입속으로 막 외웠다고 한다. 남편과 아이들을 위한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를 생각했는데 막상 순서가 되어 신부님 앞에 가니 신부님이 땀을 뻘뻘 흘리며 안수해 주시는 그 모습을 보고 본인의 소원은 모두 잊고 신부님을 위한 기도가 생각나서 “이 신부님이 앞으로 훌륭한 신부님이 되시고 오랫동안 좋은 일을 많이 하시는 신부님이 되게 해주세요.” 하고 소원을 빌었단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정신이 번쩍 났다. 어떤 깨달음이 왔다고나 할까. 반장은 삼십대이고 나는 오십대인데 내 그릇의 크기가 반장을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었다. 부끄러웠다. 나는 남편에게 안수기도 받는 기회를 뺏겨서 축복 못 받았다고 한 달 동안 불평하고 다니기만 했지 신부님이나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는 생각도 못해봤다. 그런 기회가 언제 또 오겠나 하는 생각만 했었다. 성녀 테레사 수녀님 같은 훌륭한 분으로 인해 우리 주변에 어떤 영향이 주어지는가를 잘 알고 있으면서도 남을 위한 그런 기도를 하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 하느님의 모습을 볼 수도 없고 목소리를 듣지도 못해’ 신의 존재를 느낄 수 없는 고통을 기도와 고해로 호소한 테라사 수녀님. 수녀님은 보통 사람이 겪는 번민과 고통을 똑같이 겪으면서도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에게 크나큰 사랑을 실천했기에 더
아름답고 빛나지 않은가. 정말 어떤 소원을 가져야 하는가 하는 반성의 깨달음을 얻은 날이었다.
첫댓글 정자의 신인 문학상을 받은 것을 축하하며, 여러친구들과 이 작품을 같이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올려요*^▽^*
벌써 책이 갔구나. 인숙인 빠르기도 하다. 고마워. 이 모든 것 사랑이 없으면 할 수 없지. 감사해.
세상이 점점 바빠지고, 생각도 급해지는 듯하여 안타까운 일상인데... 이제 우리 나이면 차분하게 되새기면서 반성이 뒤 따라야할 것 같다 ! 앞으로의 삶에 과거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더욱 값진 인생이 되기 위하여... 단풍이 고운 이가을에 잘 어울리는 좋은 글이네 !! 정자야 인생은 오십부터래 더욱 많은 좋은 글 기대해도 되겠지 ?
진정과 진심이 통하고 그것을 알아주는 ..그런 세상에서 그런 이웃들과의 관계를 꿈꾸고 사는데요. 우리들끼리 만이라도 그런 관계를 유지하고 ...이렇게 반가우니 우리가 정말 그렇네. 글이란 이렇게 잔잔하게 오래 가야 하는데... 뉴욕의 가을도 그래서 지낼만하구나...
정자야! 축하한다
뒤늦게 축하 합니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내려가서 글까지 써서 큰상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아요. 글을 써 당선된 정자님과 글을 올려준 인숙님에게 감사 드려요. 모든 님들 감기 조심 하시고 사랑 받는 행복한 날 되세요. 화 이 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