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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해월루(海月樓) 원문보기 글쓴이: 시헌
I have arrived. I am home
이미 도착했네. 집에 있네.
Dear Still Water Friends,
친애하는 스틸 워터 친구들에게
It was brisk February morning in 1996. I was at the Winter retreat at Plum Village. Thich Nhat Hanh had given a Dharma talk in Vietnamese. After a tea break, he led walking meditation to a field 25 minutes away. As was the custom in those days, we then did mindful movements together. It was almost time for lunch and most of the lay and monastic practitioners had drifted away. Unexpectedly, Thich Nhat Hanh motioned to the forty or so of us who remained to gather around him. Then he began a mini-Dharma talk — really more of a pep talk — about walking meditation.
1996년 활기찬 아침이었습니다. 저는 플럼빌리지에서 겨울 수행 중이었습니다. 틱낫한 스님은 베트남어로 설법 하셨습니다. 차 마시며 쉬는 시간 뒤에 스님은 25분 거리의 걷기 명상을 이끌었습니다. 그런 날들에 있던 관례대로 우리는 그러고서 함께 알아차림(마음챙김, Mindfulness, 正念)하는 동작을 했습니다.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 재가자들과 수행자들 대부분은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예기치않게, 틱낫한 스님이 스님 곁에 모여서 남아 있던 우리 마흔 명 정도의 사람에게 손짓을 했습니다. 그러고서 스님은 걷기 명상에 관하여 소참(小參-작은, 일시적인, 즉흥적인) 법문(法門)을 시작하셨습니다.
He spoke in English, softly and with great intensity, looking directly at a few of us who were standing closest to him,
스님은 스님 곁에 다가가 서 있던 우리 몇 사람을 직시하면서 영어로 부드럽고 열성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
With each step you have to say: I have arrived. I have arrived. Whether your home is in Washington, D.C. or New Delhi, you have to come home to this moment. You have to be here with each blade of grass. This is Nirvana. This is the Kingdom of God … You have to be your own hero. No one else can do it for you. You need determination. You need concentration … This is the essence, the heart. If you can take one step, you can take two. The present moment is a teacher that will always be with you, a teacher that will never fail you.
걸음마다 너희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나는 도착했네. 나는 도착했네.” 집이 워싱턴에 있든 뉴델리에 있든, 이 순간이라는 집으로 와야 한다. 풀잎 하나하나와 같이 여기에 있어야 한다. 이것이 해탈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왕국이다. … 너희는 여기의 너 자신이 되어야 한다. 너희를 위해 아무도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너희에게 결심이 필요하다. 너희에게 집중이 필요하다. … 이것이 바로 요체이고, 핵심이다. 너희가 한 걸음을 걸을 수 있으면, 두 걸음을 걸을 수 있다. 현재의 순간이 너희와 언제나 함께할 스승이고, 너희를 실패하지 않게 할 스승이다.
I was touched by Thich Nhat Hanh’s generosity in giving us that little talk, and ever since, I’ve had a special fondness for walking meditation, especially slow walking as done in a meditation hall. When I am able to enter into it fully, there is a naturally integration of breath, mind, and body. Preoccupations and self-commentary fall away. Ease and joy arise.
나는 틱낫한 스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인자함에 감동했습니다. 지금까지 나는 걷기 명상, 특히 명상 홀에서 했던 것처럼 느리게 걷기를 각별하게 좋아했습니다. 내가 걷기 명상에 몰입할 수 있을 때, 호흡과 마음과 몸에 자연스럽게 집중했습니다. 선입관과 자의적인 해석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쉬움과 기쁨이 일어났습니다.
This Thursday evening, after our sitting meditation, we will extend our walking meditation time. As we walk, we will practice line by line with Thich Nhat Hanh’s walking meditation poem:
이번 목요일 저녁에 앉아서 하는 명상(坐禪) 뒤에 우리는 걷기 명상 시간을 연장할 것입니다. 걸으며 우리는 틱낫한 스님의 걷기 명상 시(詩-게송)에 맞추어 수행할 것입니다.
I have arrived. I am home.
집에 이미 도착했네. 집에 있네.
In the here, in the now.
여기서, 지금에.
I am solid, I am free.
견고하고, 자유롭네.
In the ultimate I dwell.
궁극자에 나는 머무네.
After our walking meditation, we will share our experiences with slow walking and with learning to trust the present moment.
걷기 명상 뒤에 우리는 현재 순간에 맡기는 배움과 천천히 걷기의 경험을 나눌 것입니다.
You are invited to join us. An excerpt on Walking in the Kingdom of God by Thich Nhat Hanh is below.
당신을 우리와 합류하도록 초청합니다. 틱낫한 스님이 지도하는 하나님의 왕국에서 하는 걷기 명상의 요점은 아래와 같습니다.
Many blessings,
축복있으시길
Mitchell Ratner
미첼 라트너
Walking in the Kingdom of God
<하나님 왕국의 걷기 명상>
By Thich Nhat Hanh from No Death, No Fear: Comforting Wisdom for Life
틱낫한, 허문명 옮김,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삶의 위안이 되는 지혜>>(나무심는 사람, 2003).
If you want to know where God, the Buddhas and all the great beings live, I can tell you. Here is their address: in the here and now. It has everything you need, including the zip code.
하나님, 부처님, 모든 살아 있는 위대한 존재들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싶다면, 나는 말해줄 수 있다. “여기”가 그들의 주소이다. “여기, 지금”이다. “여기, 지금”이 우편번호를 포함하여 당신이 필요한 모든 것을 가지고 있다.
If you can breathe in and out and walk in the spirit of "I have arrived, I am home, in the here, in the now," then you will notice that you are becoming more solid and more free immediately. You have established yourself in the present moment, at your true address. Nothing can push you to run anymore, or make you so afraid. You are free from worrying about the past. You are not stuck, thinking about what has not happened yet and what you cannot control. You are free from guilt concerning the past and you are free from your worries about the future.
“이미 도착했네. 집에 있네. 여기, 지금에서”라는 정신으로 들숨과 날숨을 하고 걸을 수가 있다면, 즉각적으로 더 견고하고, 더 자유롭게 되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현재 순간에, 참된 주소에 자신을 세운 것이다. 아무것도 당신을 더 이상 내달리게 떠 밀거나 두렵게 할 수가 없다. 당신은 과거에 관한 걱정에서 자유롭다. 당신은 아직 일어나지 않고, 통제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과거에 관한 죄의식에서 자유롭고, 미래에 관한 걱정들에서 자유롭다.
Only a free person can be a happy person. The amount of happiness that you have depends on the amount of freedom that you have in your heart. Freedom here is not political freedom. Freedom here is freedom from regret, freedom from fear, from anxiety and sorrow. "I have arrived, I am home, in the here, in the now."
오직 자유로운 사람만이 행복한 사람이 될 수가 있다. 당신이 가진 행복의 양은 당신의 마음이 가진 자유의 양에 달렸다. 여기서 자유는 정치적인 자유가 아니다. 여기서 자유는 후회로부터의 자유, 두려움으로부터의 자유, 근심걱정과 슬픔으로부터의 자유이다. “이미 도착했네. 집에 있네. 지금, 여기에서”
"I am solid, I am free." This is what you feel, what you become, when you arrive in the here and now. You’re not just telling yourself this — you will see it; you will feel it. And when you do, you will be at peace. You will experience nirvana, or the kingdom of God, or whatever you may like to call it. Even if you are not caught by a lot of worries, if you are not solid and free, how can you be happy? To cultivate solidity and freedom in the present moment is the greatest gift we can give ourselves.
“견고하네, 자유롭네.” 이것이 “지금, 여기”에 도착할 때 당신이 느끼는 것이고, 당신이 되는 것이다. 당신은 자신에게 이것을 다만 말하고 있지 않고, 당신은 그것을 볼 것이고, 느낄 것이다. 그런데, 당신이 이렇게 할 때, 당신은 평화롭게 될 것이다. 당신은 해탈이나, 하나님의 왕국이나 당신이 그것을 무엇으로 부르기를 좋아하든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많은 걱정거리에 사로잡혀있지 않더라도, 견고하고 자유롭지 않다면, 어떻게 행복해질 수 있겠는가? 현재 순간의 견고함과 자유를 가꾸는 것은 우리 자신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선물이다.
"In the ultimate I dwell." The ultimate is the foundation of our being, the ground of being. The ultimate, or God, or the divine, is not separate from us. We are in it all the time. It is not somewhere up there beyond the sky. But we have to live in our true home in order to dwell in the ultimate, in order to live in the ultimate.
“궁극자(窮極者) 안에 내가 머문다.” 궁극자는 우리 존재의 근본이고, 바탕이다. 궁극자, 하나님, 신성(神性)은 우리와 분리되어 있지 않다. 우리는 언제나 그 안에 있다. 그것은 하늘 저 너머 어디에 있지 않다. 그러나, 우리는 궁극자 안에 머물고, 살기 위해 우리의 참된 집("지금, 여기")에 살아야 한다.
It is like the wave and water. If we look into a wave, we see that a wave can have a beginning and an end. A wave can be high or low. A wave can be like other waves, or it can be different. But the wave is always made of water. Water is the foundation of the wave. A wave is a wave, but it is also water. The wave may have a beginning and an end, it may be big or small, but with water there is no beginning, no end, no up, no down, no this, no that. When the wave realizes and understands this, it is free from the fear of beginning and end, up and down, big and small, this and that.
그것은 파도와 물과 같다. 파도를 들여다보면, 우리는 파도가 시작과 끝을 가질 수 있음을 본다. 파도는 높거나 낮아질 수가 있다. 파도는 다른 파도와 같거나 다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파도는 늘 물로 되어 있다. 물은 파도의 근본인 것이다. 파도는 파도이지만, 그것은 또한 물이기도 하다. 파도는 시작과 끝이 되거나, 크거나 작을 수가 있지만 물로서는 시작도 끝도, 솟거나 내려가는 것도, 이것도 저것도 없다. 파도가 이런 사실을 깨닫고 이해할 때, 파도는 시작과 끝남, 솟음과 꺼짐, 큼과 작음, 이것과 저것이 되는 두려움에서 자유롭다.
In the historical dimension, we have time and space, and pairs of opposites: right and wrong, young and old, coming and going, pure and impure. We look forward to beginning and we are afraid of ending. But the ultimate dimension does not have any of these things. There is no beginning or end, no before or after. The ultimate is the ground that makes the historical dimension possible. It is the original, continuing source of being. It is nirvana. It is the kingdom of God.
역사적 차원에서 보자면, 우리에게 시간과 공간, 옳고 그름, 젊음과 늙음, 옴과 감, 깨끗함과 더러움 같은 반대되는 짝이 있다. 우리는 시작을 바라고 끝남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궁극적 차원에는 이런 것들이 없다. 궁극적 차원에는 시작도 끝도, 앞도 뒤도 없다. 궁극자는 역사적인 차원을 가능하게 하는 바탕이다. 그것은 존재의 원초적이고 지속적인 근본이다. 그것은 해탈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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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가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고, 토마스 머톤 신부와도 친했으며, 참여불교(Engaged Buddhism)를 개창한, 베트남 출신의 세계적인 스승인 틱낫한(釋一行, Thich Nhat Hanh, 1926-2022) 스님이 반야심경(般若心經)의 반야지혜(中觀, 中道)를 기독교 문명의 서양인이 알아듣기 쉽게 설법하고, 간단한 시(게송偈頌, 가타gatha)를 이용하는 마음챙김(알아차림, 正念, 사띠, Mindfulness) 수행(일상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리는 수행, 걷기 명상, 호흡 명상)으로 과거와 미래의 온갖 번뇌, 괴로움을 해소하고, 마음의 평화와 얼굴의 미소, 기쁨과 해탈과 행복을 되찾아준다.
2003년 3월 23일 목련꽃이 핀 날, 프랑스 남부 보르도 지방의 플럼빌리지에서 오신 틱낫한 스님과 제자들은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으로 희생된 원혼들을 위해 낮에는 화재 현장에서 제자들과 걷기 명상을 하고, 그날 저녁에는 경북대 대강당에서 수십 명의 가톨릭 수녀님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사람들에게 금강경의 "무상(無相-我相, 人상, 衆生상, 壽者상이 없음. 틱낫한 스님은 수자상을 수명lifespan이 있다는 고정관념으로 해석한다.)"을 주제로 불생불멸의 반야지혜(緣起法, 中觀, 中道)를 설법하고, 마음챙김 명상법을 지도했다. 이날 허문명이 번역한 한국어판 <<죽음도 없이 두려움도 없이>>를 청중에게 들어 보이며 읽어보기를 권유하셨다.
최근에 어느 기독교인이 '직장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우리말에서 죽음을 ‘돌아간다.’고 표현한다며, 궁극적인 구원은 교회에 가서 ‘하나님에게 돌아가는 데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그래서, 부처님께 '돌아가 의지하는(歸依)' 나는 즉각적으로 틱낫한 스님의 설법과 게송 “이미 도착했네. 집에 있네.(I have arrived. I am home.)”가 생각나서 어느 서양인의 글을 옮겨보았다.
기독교가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성령, 예수님, 성모 마리아)이라는 절대자에 대한 신앙과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구원을 얻는다면, 불교는 불보살에 대한 신앙과 부처님이 설법하는 지혜를 수행으로 깨달아 어리석음과 어리석음에서 발생하는 탐욕과 성냄, 슬픔과 회한, 질투와 오만 같은 번뇌가 일으키는 괴로움을 건지는 종교라 하겠다. 우주와 마음의 유일한 존재법칙인 "연기(因緣生起) 진리"를 부처님이 깨닫고 가르침을 주시지 않았다면, 인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사윤회(生死輪迴)의 고통에서 영원히 해탈하지 못할 것이다. 부처님의 탄생 게송인 “하늘 위 신들의 세계나 하늘 아래 인간의 세계에서 오직 나만이 존귀하다(天上天下 唯我獨尊).”고 한 것은 오직 부처님만이 연기 진리를 깨닫고 가르침을 베풀어 삼계(三界) 중생의 괴로움을 건지셨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