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바람과 함께 한 하루
문희봉
붕어찜으로 이름난 맛집을 찾아가는 날은 날씨가 맑고 청량하여 좋았다. 친구가 맛집이라 입에 침이 마르도록 칭찬하면서 소개해 준 곳을 찾아가는 길이다. 비가 오면 빗소리가 귓가에까지 와서 찰랑이던 고향 집에 가는 느낌이다. 사 차선에서 이 차선으로 바뀌고 나서도 일방통행 길 같은 비포장의 좁다란 길을 한참을 더 달렸다. 파란 하늘에 흰구름 몇이 모여 소근거린다. 밤에는 하늘과 반짝이는 찬란한 별들이 내려와 저희끼리 애정을 키울 것만 같은 곳이다. 하늘 한켠에는 아직 귀가하지 못한 낮달이 엄마를 애타게 찾고 있다.
심산유곡이다. 아흔아홉 구비는 아니더라도 초록은 싱그럽게 솟구쳐 흐른다. 바람 맛이 달고 고소하다. 가까운 곳에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와 붕어찜 집이란 단어가 잘 어울린다. 목적지에 당도하기 전 흰옷을 입고 푸른 날개를 단 마을 사람들이 논둑을 걷고 있는 모습이 마치 도시의 녹음공원을 날아다니는 비둘기같이 느껴진다. 낯선 이에게도 말을 건넨다. 목적지에 당도하니 주위가 모두 소나무밭이다. 마당에서도 한껏 멋을 부리며 소담하게 자란 소나무들이 나를 반긴다.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솔 향기가 얹혀 내게로 달려든다.
기와를 올린 한옥이다. 방에 들어서니 종업원인 듯한 중년 여인이 먼저 웃음을 보낸다. ‘어서 오세요. 바람이 시원하지요. 웃옷 주세요. 걸어드릴게요.’ 너무나 친절하다. 그러면서 문을 열어젖힌다. 이때 내 후각을 자극하는 솔향, 이렇게 고소하면서 부드러울 수가 없다. 깨끗한 식탁, 친절한 종업원, 반기는 솔향, 붕어찜은 먹어보지 아니했어도 그 맛을 미리 짐작할 수 있었다.
양쪽으로 열어놓은 문을 통하여 들어온 솔바람이 내 후각을 자극한다. 눈을 밖으로 돌리니 텃밭의 머위잎들이 나를 바라보고 웃음을 보낸다. 그 옆의 살구나무도 기분이 좋다고 몸을 흔든다. 삼박자가 척척 맞는다. 왼쪽으로 보이는 수십 개나 되는 장독대들이 보여주는 그림 또한 장관이다.
산과 들과 이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칠판이고, 책상이고, 이젤 같다. 나는 여기에 앉아 백묵으로 글을 쓰고, 시를 짓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면 된다. 진짜 그럴 것 같다. 영어 단어 하나 더 외우는 것보다 나무 이름, 곤충 이름 하나 더 외우는 게 창의력도 키워줄 것 같다. 아이들과 함께했으면, 금상첨화였을 것이었을 텐데. 그게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포근하고 아늑한 느낌이 내 가슴으로 파고든다.
오랜만에 고향에 온 느낌이다. 산에 가려면 십 리 정도는 나가야 하는 고향 마을, 넓디넓은 평야 한가운데 벼들이 더위를 먹는 짙푸른 녹음 속에서 나는 자랐다. 그 고향 마을 풍경을 떠올린다. 한여름 채전(菜田) 쪽 대청문을 열어젖히면 밖에서 안으로 청량한 바람이 날아 들어와 내 얼굴을 간지럽혔다. 여름이면 목침을 베고 누워 낮잠도 즐겼다. 농가의 여름잠은 달디달았다. 오이와 가지들이 서로 키 재기하며 충실도를 자랑했고, 논에 검푸른 빛을 띠며 자라고 있는 벼들은 일찌감치 풍년을 기약해도 좋았다. 버드나무 가지에 매달려 가야금과 거문고를 뜯고 있는 매미들의 연주 솜씨도 일품이었다.
‘내 고향’이라는 노랫말이 스멀스멀 기어 나온다. 고향 마을 저수지에 노닐던 몸집이 큰 메기와 가물치들이 유영하는 모습이 보이고, 연잎만큼이나 컸던 붕어들의 자맥질하는 모습도 보인다. 끊임없이 깨물던 순이의 꽈리 소리가 푸르름을 전해준다. 가슴 붉은 곤줄박이 한 마리 바람에 흔들리는 도롱이 집을 쪼을까 말까 몇 번 망설이다 주머니 속 애벌레 꿈틀거리는 걸 보고 부드러운 입맞춤 한 번 하고 포롱포롱 햇살 속으로 날아가던 곳이다.
사타구니까지 시원하게 만드는 솔바람이 그 옛날의 추억을 떠올려 준다. 어린 시절 불던 풀피리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린다.
이 집 안팎 풍경들과 솔바람은 붕어찜 맛을 한껏 높여주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서산으로 넘어가는 해, 별들을 붕어찜 집에 남겨두고 제집 찾아가 단꿈에 빠지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