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탄 한 장
안도현
또 다른 말도 많지만
삶이란
나 아닌 그누구에게
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것
방구들 선득선득해지는 날부터 이듬해 봄까지
조선팔도 거리에서 제일 아름다운 것은
연탄차가 부릉부릉
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네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알고 있다는 듯이
연탄은, 일단 제 몸에 불이 옮겨 붙었다 하면
하염없이 뜨거워지는 것
매일 따스한 밥과 국물 퍼먹으면서도 몰랐네
온몸으로 사랑하고 나면
한 덩이 재로 쓸쓸하게 남는 게 두려워
여태껏 나는 그 누구에게 연탄 한 장도 되지 못하였네
생각하면
삶이란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눈 내려 세상이 미끄러운 어느 이른 아침에
나 아닌 그 누가 마음 놓고 걸어갈
그 길을 만들 줄도 몰랐았네, 나는
(손진은 시인)
안도현 시인이 전라북도 익산의 원광대학교를 다닐 때 언덕길에 살았는데, 늦가을이면 가장 기억나는 게 이 시 2연에 나타나는 "연탄차가 부릉부릉/힘쓰며 언덕길 오르는 거"라고 그의 시창작론책('가슴으로도 쓰고 손끝으로도 써라', 한겨레출판)에서 이야기했지요. 그 때부터 '연탄시인'이라는 애칭을 받았답니다. 그래요 "삶이란/나 아닌 그 누구에게/기꺼이 연탄 한 장 되는 것"이고 "나를 산산이 으깨는 일" 이지요. 그래서 참 많이 알려진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너에게 묻는다') 같은 시도 나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