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아주 예전에 습장당이 활발하게 활동할 시절 한 회원분이 우석훈 박사님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쪽글만 써도 생각이 늘고, 글이 늘 수 있을까요?”
박사님은 이렇게 답을 하셨죠.
“주제 당 한 10번씩 쓰면....”
이상하게도 저는 이 대화가 돋을새김처럼 머리에 남았습니다. 기억이 왜곡되었을지도 모르고, 박사님의 대답이 그냥 임기응변이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저 대화를 율법이나 진리처럼 여겼습니다. 그냥 그러고 싶은 저의 얄팍한 마음이겠지요.
스승이라 여기는 자에게 배운 방법은 일단은 반복 학습. 그리고 제가 제일 좋아하는 전략은 시행착오법. 그래서 쪽글을 다시 또 다시 써보기로 했습니다. 재밌는 주제라면 10번 넘게 쓰기도 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주제라면 한번만 쓰거나 못 본 척 넘어가지는 않고, 형식적으로 아무 말로 조건만 채워서 제출이라는 의미뿐인 쪽글 쓰기를 할 수 있겠지만. 일단 계획은 쪽글 당 10번씩 써보기입니다.
똑같은 글을 필사하는 것은 아니니 같은 주제에 대해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다 보면 제 깜냥파악이라도 될 것 같습니다. 깜냥파악이라. 저승가면 소크라테스한테 ‘참 잘했어요.’ 도장 받을 수 있겠습니다. 인증사진은 SNS에 올리겠습니다. 이승까지 닿는데 어느 정도 시간이 들지는 모르겠지만.
똑같은 이렇게도 써보고, 저렇게도 써보다 보면 하던 재주는 늘 것 같습니다. 생각의 힘의 향상은 모르겠고 제법 웃겼던 말장난이 더욱 반지르르 해지고, 더 빛나지 않을까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한여름 노을 직전의 윤슬을 닮길 바랍니다.
저는 모든 글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정리해보지 않았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아무 생각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욕망은 있습니다. 내가 몹시 좋아하는 것. 또는 사랑하는 것이 생기면 그 마음을 만족스러운 표현으로 적어 글로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생깁니다. 말이 아닌 가장 아름답운 단어와, 독창적이며 매력적인 표현으로 마음을 적어 전하고 싶습니다. 최근 ;귀여우면 끝난 거다(‘좋아하는 마음을 거둘 수 없다’라는 의미 인 것 같습니다)‘는 표현이 유행하였는데 저는 어떤 대상에 대하여 글을 잘, 아주 잘 쓰고 싶어지면 좋아하는 마음이 생긴 겁니다. 욕심이 과해서 일까요? 욕망을 욕망으로만 모호한 상태로 방치해 두어서 일까요? 막상 그런 대상에게 한 번도 저의 마음을 적어 전달하지 못해봤습니다. 하여 언제나 해소되지 못한 욕망에 목이 탑니다.
정리해보면 저는 진짜 생각과 마음을 아직 글로 자아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단지 수다를 활자로 떨었던 것 같습니다. 아주 조금 공허하지만 놀랍지는 않습니다. 저도 어렴풋이 알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도 저의 활자 수다가 조금이라도 재미가 있었다면 그건으로 만족합니다. 무엇보다 수다를 좋아하는 저에게 떠둘 수 있는 판이 있었고 들어주셨던 여러분들에게 감사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최고의 수혜자는 저였습니다.
그나저나 회원 분들이 작성하신 쪽글(특히 쪽글1) 정말 재밌네요. 당시에는 왜 열심히 읽지 않았는지 후회 되고. 그땐 미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읽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하고. 결론은 다들 영화같이 사셨고, 매의 눈으로 자신을 통찰하며 제작에 성공할 시나리오처럼 글을 잘 쓰십니다. 부럽고 멋지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