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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길을 밟는 사람들
최 서 해
오늘은 일천구백이십구년 팔월 십구일이다. 나는 오늘 아침까지도 오늘이 그날인 것은 생각지 못하였다. 생각한대야 별일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어저께까지 생각하였던 오늘을 정작 오늘 와서는 잊었다. 아침부터 내가 다니는 C일보사에 들어가서 일을 마치고 오후에 한강으로 나가다가 버스 속에서,
‘오늘이 팔월 열아흐레…… 그날이로구나―’
하고 생각이 났다. 나의 눈앞에는 두 뺨이 쪽 빠져서 광대뼈가 유난히 드러난 핼쑥한 얼굴이 떠올랐다. 뒤따라,
“인제는 글렀어…….”
하고 절망에 가까운 어조로 자기 운명을 탄식하던 그의 소리까지 귓속에 흐르는 것 같다. 나는 나로서도 알 수 없는 짜릿한 기분에 잠겨서 버스가 한강 종점에 닫는 것까지 깨닫지 못하였다.
오늘은 K군의 일 주기다. 그는 병을 요양하려고 석왕(釋王寺)로 갔다가 회복이 못 되고 거기서 작년 이달 이날 새벽에 가냘픈 그 그림자를 마지막으로 감추어버렸다. 나는 작년 이날 인천 갔다가 그날 석간신문에서 그가 세상 떠난 것을 알았다. 나는 그 신문을 보고도 별로 놀라지 않았다. 얼마 전부터 그의 목숨은 오늘내일 한다는 말을 들었고, 그 안 날 편지와 전보로 그의 목숨이 이제는 분초를 다투게 된 것을 알았던 판이므로 무슨 의외의 일같이 놀라지는 않았다. 그러나 그의 형모(形貌)가 눈앞에 떠오르고 가슴이 자릿하여서 종일 월미도 바다 바람과 물 같은 달빛에 경쾌하여졌던 기분은 다시 무겁고 어둑한 기분에 흐리었다.
나는 그날 밤 막차로 집에 돌아와서 자리에 누워서까지 K군 생각으로 잠을 못 들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K군의 죽음은 남의 일 같지 않았다. 한편으로는 그가 죽었다는 것이 거짓말 같기도 하였다.
그날 밤 달빛은 몹시 밝았었다. 나는 자리에 누워서 창문에 흐르는 달빛을 바라보면서 K군의 죽은 창에도 저 달이 비치려니 생각하니까 가슴속이 이상스럽게 흔들렸다. 그의 그림자는 내 곁에 어딘지 와 서서 정력이 스러진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내려다보는 것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나의 그림자가 그의 그림자 같기도 하였다. 그 때문에 나는 여러 번 자려고 눈을 감았다가는 도로 뜨면서 돌아누웠다.
K군과 내가 알게 된 것은 내가 ×잡지를 편집하던 때였다. 그때 그는 O잡지를 편집하고 있었다. 하루는 인쇄소로 교정하러 가니까 맞은편 책상에서 보지 않던 사람이 교정을 하고 있었다. 보지 않던 사람이요, 또 무슨 잡지 교정을 하고 있기에 나는 동업자의 호기심으로 그를 유심히 보았다.
그는 그때에도 풍부한 머리를 보기 좋게 뒤로 넘겼었다. 머리를 뒤로 넘겨서 그런지 조붓한 이마가 좀 벗어져 보이었다. 이마가 좁은데 하관까지 빨라서 광대뼈가 그리 드러나지 않았건만 유난스럽게 눈에 띄었다. 입은 큰 입이나 보기에 흉한 입은 아니요, 코는 넓적한 코도 아니었고, 오똑한 코도 아니었다. 나를 언뜻 건너다보는 눈은 좀 가늘고 맑은 기운이 돌아서 쌀쌀하고도 상냥한 맛이 있었다. 좀 낡은 아청세루 오라 에리 양복을 입었는데 낡기는 낡았으나 가냘픈 몸에 잘 어울려서 보는 사람에게 경쾌한 기분을 주었다.
‘깔끔하고도 상냥한 사람이로구나.’
이것이 그가 나에게 준 첫인상이다. 그의 성격은 나의 첫인상에서 별로 틀리지 않았다.
나는 그 뒤로 그와 친하여져서 그를 자주 찾았다. 그는 그때 필운동 막바지 일본식 이층집을 얻어가지고 살림을 하였다. 나는 자주 상종하게 되는 사이에 O잡지는 그가 취미로 편집하는 것이고, 어떤 신문에 서양소설을 번역하고 생활을 겨우 지속해 간다는 것을 알았다. 생활은 넉넉지 못하여도 방 안에 들어서면 유리알처럼 깨끗하고 책장이며, 책상이며, 의복, 모자가 질서 있게 놓이고 걸려 있었다. 지금도 그를 처음 찾아가서 책망받던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 사람, 이게 무엇 인가…… 재떨이 에다 떨게나.”
그는 내가 흘린 담뱃재를 종이로 쓸어 재떨이에 담으면서 여지없이 톡 쏘았다. 피차간 허교하는 정도까지 친하기는 하였으나 처음으로 그의 집에 갔던 판이라,
“허, 이 사람이 손님 괄세를 단단히 하는데…… 허허……”
나는 태연한 말로 하면서도 불유쾌하였다. 그는 그렇게 톡 쏘아 놓고는 안 되었던지,
“자네 노했나? 하하……”
하고 커다란 입을 더욱 크게 벌리면서 상글상글하는 가느다란 눈으로 나를 건너다보고 웃었다. 나는 그 비슷한 책망을 그에게서 여러 번 받았다. 그러나 그의 성격을 알게 된 후로는 별로 그것을 개의치 않았을 뿐더러 어떤 때에는 그가 싫다는 것을 짓궂게 하여서 기가 막혀 하는 그의 웃음을 받고야 말았다. 그러면서도 모든 게 규칙적이요, 담백한 그의 태도가 옳다고 생각하였다.
그해 가을이었다. 나는 × 잡지사를 나와버리고 직업을 찾아다니느라고 그를 별로 못 찾았다. 그도 ○잡지를 집어치운 후로 별로 나를 찾지 않았다. 그렇게 서로 만나보지 못한 지 한 달이나 넘어서 어떤 가을 석양에 그를 찾아갔다. 필운동 막바지로 타박타박 찾아갔더니 그가 있던 집에는 다른 사람이 들어 있었다. 그 집에서 내다보는 젊은 부인을 보고 K의 소식을 물어보니까,
“그이는 벌써 떠난 지가 한 달 가까이 됩니다. 창성동 어디로 가셨다는데 잘 알 수 없어요.”
하고 대답을 듣고 나는 나와버렸다.
‘이상스런 일이다.’
나는 혼자 뇌면서 광화문 앞으로 나오다가 그를 만났다.
“잘 만났네…… 나는 자네를 찾아갔다 오는 길일세……”
나는 그의 앞을 막아섰다.
“어디 필운동 갔던가?”
그는 기운 없이 말하면서 호젓한 웃음을 웃었다. 어쩐지 그의 얼굴에서 활기가 스러지고 무슨 병색이 도는 것 같았었다.
“그럼 필운동 갔었지……그렇게 떠난 줄이야 누가 알았나……”
“가세 우리 집으로 가세. 바로 저길세……”
그는 그저 호젓이 웃으면서 나를 끌었다. 나는 그를 따라서 창성동 어떤 집으로 들어갔다. 누구의 집 사랑채인데 정쇄한 이칸방이었다.
“그런데 이리로 이사했나?”
나는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흥, 나 혼자 왔네……”
“그럼 식구들은?”
“귀찮아서 살림을 걷어치웠지·…‥”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허허 웃었다. 아까보다는 신기가 좀 편 것 같았다.
그는 확실히는 말하지 않으나 아내와 살림을 가른 눈치였다. 그가 어떤 신문에 번역하는 소설까지 끝나버리고 생활이 곤란하니까 그만 홧김에 살림을 떠엎었나 보다 하고 나는 생각하면서 자세한 것을 묻지 않았다. 물어야 대답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거 사람이 이러구 죽지 않는 것만 다행이야…… 구더기만도 못한 인간들이야……”
아니꼬운 꼴만 본 것 같았다. 우리 눈에는 대단치 않은 일이로되 그는 분개하는 일이 많았다. 어느 때 어떤 잡지사에서 그의 원고를 청하여 놓고 얼른 내지 않았다고 얼굴이 파랗게 질려서 그 원고를 가져온 이후에는 그 잡지사에 다시 원고를 보내지 않았다. 그날 그는 그처럼 몇 번이나 분개하다가 현대작가 단편집을 나와 같이 편집하여 어떤 책점에 팔아먹을 것을 약속하였다.
그럭저럭 그해도 지나갔다.
그 사이에 그와는 여러 번 만났다. 그해 여름에 나는 동소문 안에서 살림이라고 벌여 놓고 사람 사는 흉내를 내고 있던 때라 어떤 때에는 그가 반찬을 사들고 와서 저녁을 지어 먹고 놀다 간 일도 있었다. 그해 여름 소나기가 몹시 지나다가 청량리 어떤 전주에 벼락이 내린 이튿날이었다. 그는 문밖에 갔다 오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 그날 아침에 쌀이 떨어져서 아침을 못 짓고 점심 때가 가까워서 왜국수를 사다 삶아먹는데 그가 와서 마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문안 가세……”
그는 내가 국수 먹기를 기다려서 마루로 나오는 나를 보면서 말하였다.
“문안 가서는 뭘 하게…… 나는 싫어·…‥”
“글쎄 볼일이 있으니 가세……”
나는 그의 권을 못 이겨서 떠났다. 효자동 전차를 갈아 타고 광화문 저편 정류장에 내려서 그가 몸 붙여 있는 창성동 집으로 갔다. 그는 방안에 들어서더니 부리나케 두루마기를 벗어놓고 책상에서 제일 값나갈 만한 책 열한 권을 뽑아 내려놓더니 책상 위에 놓인 조그마한 좌종을 집어서 책과 함께 책보에 쌌다. 싸서 이리저리 보더니 의아한 눈으로 그것만 보고 섰는 내 앞에 내놓으면서,
“어따, 이것 갖다 끓여라!”
하고 나를 치어다보면서 벙긋 웃었다.
“그건 뭣 하게…….”
나는 무슨 영문인지 어리둥절하였다.
“뭣 하긴? 그깟 놈의 글이 밥을 주나! 이 책은 팔고 이 시계는 갖다 잡혀서 쌀 팔아다 먹게…… 돈 생기면 또 사지…….”
그는 내가 미안히 생각할까 보아서,
“이건 다 본 책이야…… 인젠 소용 없는 짓이니 팔아나 먹지.”
하고 여러 번 말하였다. 나는 사양치 않았다. 그가 주는 대로 받아 가지고 나섰다. 책을 유별히 아끼는 그가 나의 살림이 얼마나 보기 딱하였으면 이렇게 하랴. 나는 매일 얼굴빛이 글러가는 그가 딱하게 보이는데, 그는 내가 딱하게 보이던가 하고 혼자 웃었다. 나는 시계 초침 소리가 째깍째깍 하는 책 보퉁이를 들고 나오다가 광화문 앞에서 K군의 생활을 잘 아는 S를 만났다. 오래간만에 만나니 길바닥에 섰었으나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나는 이야기 끝에 K군의 살림 떠엎은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것들 늘 그 모양이야…… 어린애 장난두 아니고…….”
그리 걱정할 것、없다는 듯이 말하였다. 그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도 K군에게 대해서 S와 같은 말을 하게 되었다.
하루는 어디 갔다가 밤 아홉시가 가까워서 집으로 가니까 K군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윗목에 앉었고 아내는 아랫목에 앉았는데 아내의 곁에 보지 않던 부인이 쪽을 이쁘게 찌고 앉아 있었다.
“내 아낼세…… 인사하지……”
K군은 나와 그 부인을 번갈아 보면서 웃었다. 나는 어리둥절한 인사를 하였다.
남의 집에 오래 있으니까 의복 음식이 맞지 않고 또 돈푼이나 생겼으므로 신교동에 셋방을 얻어 가지고 다시 살림을 시작하였다는 것을 그 며칠 뒤에 K군에게서 들었다.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이상스런 사람도 있다, 하고 혼자 웃었다. 그러다가 그해 가을에 그들은 또 살림을 갈랐다. 하루는 종로에서 K군을 만나니까 그는 살림이 귀찮아서 걷어버리고 아내는 어디로 갔다 하였다.
그는 살림뿐만 아니라 무슨 일이나 하다가도 좀 귀찮으면 집어치웠다. 그 이듬해라고 기억하지만 문밖 어떤 학교에 가서 교사 노릇을 하였다.
“더러운 것은 사람이야!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할 수 있나…… 그 지긋지긋한 교원 노릇을 또 하네…….”
하더니 얼마 뒤에 나를 만나서,
“그놈의 교원 노릇 그만두었네…… 굶어 죽지 그 노릇을…….”
하고 말하였다. 입을 위하여 마음에 없는 노릇을 하는 괴로움은 나도 맛보고 오는 터이라 나는 어디 가서 안절부절못하는 그를 나무란다느니보다 귀찮으면 그만두어버리는 그와 같은 용기가 나에게 없는 것을 도리어 부끄럽게 생각한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지내는 사이에 나는 그의 건강이 나날이 틀려가는 것을 보았다. 빠진 뺨이 더욱 빠져서 광대뼈가 나날이 더 나오고 가느다란 눈에는 정력이 빠져서 곤한 잠을 깬 사람 같았다. 얼굴에는 나날이 노랑꽃이 돋고 웃음은 여전히 잘 웃으나 어쩌지 속없는 웃음이었다. 어느 때 그를 보고 그 이야기를 하였더니,
“이 꼴에 건강인들 부지할 수 있나…… 살아 있는 것이 다행 이지.”
하고 어디가 아프다는 말은 별로 없었다.
그 뒤에 그는 C신문사 기자가 되었다. 처음 얼마 동안은 C신문사가 활기를 띰에 따라 K군의 생활도 다소 안정이 된 모양이었다. 그는 어디인지 가 있는 아내를 또 다시 데려오고 시골 있던 늙은 어머니를 모셔다가 살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얼마 뒤 C신문사가 경영 곤란에 빠지게 된 뒤로 그의 생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일 년을 지내는 동안에 그는 더욱 히스테리컬하게 되고 그의 건강은 날로 상하게 되었다. 어느 때인가 그는 위산을 먹는 나를 보더니,
“자네 왜 위산을 먹나?”
하고 물었다. 나는 오래 전부터 위장병으로 신고한다는 설명을 병인의 버릇으로 앞에서 금방 죽는 듯이 말하고 위산의 효과를 설명하였다.
“나도 윗병이 있어…… 요새 와서는 더한데…… 그러니 약이나 변변히 쓸 수 있나……”
그는 남의 말 하듯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였다. 듣는 나도 심상하였다. 그러다가 얼마 뒤에 들으니 그는 병이 심하여서 사에 출근을 못한 지 오래라고 하였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위장병으로 처음은 신고하다가 나중에는 폐와 심장까지 좋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나는 항상 그를 찾아가 본다고 벼르면서도 공연히 분주하여서 이날 저날 미루다가 작년 이른 봄에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는 문밖 어떤 절로 나가 있는 때이므로 그의 아내에게서 그의 병이 조금도 낫지 않고 더하여 갈 뿐이라는 말만 듣고 돌아왔다. 그 뒤에 나는 그가 다니던 C신문사에 입사하게 되어서 그의 소식을 매일 듣게 되고 그의 성격에 그처럼 병날 만한 기분도 느껴 보았다. 어떤 친구는 K군을,
“이 생활에 병 안 나면 그건 참말 쇠로 부어 만든 사람이야.”
하고 말하였고, 어떤 사람은 K군을,
“그 사람은 성질이 고약해서 병을 못 고쳐.”
하고 말하였다. 나는 그 두 가지 비평이 다 옳다고 생각하였다.
나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든 사원들의 노랑꽃 핀 얼굴을 의미 있게 보았다.
그들은 축 처진 어깨를 어쩔 줄 모르고 이맛살을 펼 사이가 없었다. 간혹 무슨 일에 웃음이 없지 않으나 그것은 거개 속없는 웃음이요, 이맛살을 펴지 못하였다. 그것은 그들만이 아니었다. 그 속에 묻힌 나 자신도 그들과 같은 운명의 겉을 밟지 아니치 못하였다.
오늘이나 내일이나 하고 사의 운명이 펴기를 바라는 초조한 마음은 가슴에 재가 들어앉을 지경이었다. 그것은 대개 자기 생활의 안정을 얻으려는 초조한 마음이었다. 몸을 의지한 데가 흔들리니 따라 각자의 생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었다. 빚쟁이에게 쫄리고 먹을 것 입을 것에 쪼들리고, 별말은 없으나 집으로 들어가면 손을 치어다보는 식구들의 표정에 쪼들려서 이날이나 저날이나 기다려도 일은 되지 않고, 그러나 별수는 없으니 헛노력은 노력대로 하게 되고 나중은 홧김에 서로 눈을 붉히게까지 되니 신경이 둔하던 사람들까지도 조그마한 일에 흥분이 되어서 짜증을 내게 되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무슨 그림자가 두 어깨를 찍어 누르는 것 같고 마음은 바람에 뜬 듯이 어디가 지접할 곳을 몰라서 갈팡질팡하면서 무슨 큰일이나 앞에 닥쳐온 듯이 두근두근 하였다. 이렇게 되니 손발까지 떠서 어디가 오래 앉았을 수 없고 앉았대야 무슨 일에 마음이 잠기지 않았다. 그것도 하루나 이틀이면 또 모르지만 한 달 두 달 지나 해가 넘도록 그 꼴이 되니 애가 탈 대로 타서 신경이 마비되다시피까지 되었다. 이렇게 지내는 사이에 피가 마르고 고기가 시들어서 얼굴에 노랑 싹이 돋고 두 어깨가 축 쳐져서 속없는 웃음만 웃게 된다.
“이걸 이러구두 살았다구…….”
“엑, 구더기만 못한 인간들이……”
이 입 저 입에서는 매일 비탄과 저주만 흐르게 되었다. 일은 일대로 뼈 빠지게 하고도 학대받는 인간에게 저주가 없을 리 없다. 이렇게 지내는 사이에 모두 건강을 잃게 되었다.
검은 그림자가 시시각각으로 자기 생명을 아삭아삭 먹는 것을 보면서도 그것을 벗지 못하는 비탄까지 그 검은 그림자의 힘을 더하였다.
K군의 건강도 이 기분 속에서 희생이 되었다. 조금만 성가신 것을 보아도 얼굴빛이 파랗게 질리는 그가 벌써 병나지 않은 것만 다행이라고 할 것이다. 그는 병나 드러누워서도 두 첩 거푸 먹어본 약이 없었다고 들었다. 한 첩 먹어보아 듣지 않으면 다른 약을 먹어보고, 한 번 보여서 맞지 않으면 다른 의사를 찾다가 나중에는 혼자 화를 내고 푸닥거리를 노상 했다. 그렇게 되니까 의약을 믿지 않으면서도 의뢰에 의뢰를 하게 되고 병 요양을 갔다가도 좀 괴로우면 다른 데로 옮겼다. 그러나 그것도 자유로 못 되었다. 경제의 맥박이 미미한 그는 믿지 않는 약이나마 자유로 못 쓰고 전지요양도 자유로 못 하였다. 그것이 화가 되고 그 화가 병을 더욱 부채질하였을 것도 명약관화의 사실이다. 그의 성격이 그의 병을 더하였다는 것도 괴이치 않은 말이다.
뒷 숲에 매미의 소리가 시원스럽게 흘러 내려오는 어떤 여름날이었다. 사에서 일을 끝내고 신문을 보고 앉았는데 누가 들어오면서 K군이 왔다고 말하였다. 나는 그가 병이 좀 나았나 하고 밖을 내다보니 문 앞에 놓인 인력거에 그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만나본 지 얼마 되지 않는 사이에 그는 딴 사람이 되었었다. 인력거에서 단장에 의지하여 땅에 겨우 내려서는 그는 뼈만 남았었다. T군이 그를 부축하여서 편집실 한 귀퉁이 의자에 앉히었다. 그저 미미히 남은 강기로 막대를 지접하고 두어 걸음씩 걷기는 하나 보는 사람에게 무서운 예감을 주었다. 의자에 간신히 기대어 앉은 그의 얼굴빛은 아편쟁이처럼 푸르고 눈은 쑥 들어갔었다. 지금도 그를 생각하면 그때에 보던 유난스럽게 불거진 그의 광대뼈가 떠오른다.
“그렇게 얼른 낫지 않아서 됐나!”
나는 무어라 말하면 좋을는지 몰랐다. 크러나 그저 들여다보고만 앉았기가 뭣해서 입을 떼었다.
“배는 고픈데 무얼 먹나…….”
그는 한참 앉았다가 혼잣말처럼 뇌면서 먹을 것을 생각하고 있었다.
“밥 먹겠나? 소화가 될까·…‥”
“소화가 잘 되지는 않지만…… 밥 생각이 나는데 국물을 먹었으면……”
그는 나를 치어다보면서 기운 없이 말하였다.
나는 그의 의견을 들어 가지고 동아식당에서 보리죽을 주문하여 주었다. 그는 배달이 가지고 온 보리죽을 두어 숟가락이나 떠먹더니,
“이것 먹겠니! 쌀이 왜 이 모양이냐! 퍼지들 못하고……”
하면서 곁에 서서 기다리는 배달을 흘겨보았다.
“얼른 하느라구 잘못됐습니다.”
배달은 허리를 굽실하였다.
“얼른 하면 대가리도 걸어다니느냐?"
그는 목구멍으로 간신히 흘러나오는 소리에 열을 올려서 팩 쏘면서 죽 그릇을 집어던지었다.
“그 성벽은 그저 없어지지 않았구나.”
나는 죽값을 내주면서 그를 보고 웃었다. 그는 그저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다시 대구탕을 주문하였다. 그것도 두어 숟가락 먹다 말고 내던졌다.
“약은 늘 썼나?”
나는 담배를 피우다가 또 입을 열었다.
“약? 그놈들 모두 도적놈들이야! 병도 낫지 않는 약만…….”
하고 그는 공연히 의사와 약장수를 욕하다가,
“글렀어! 인제는…… 이제 살아보겠나.”
하고 자기의 운명을 내다보는 듯이 말하는 그 소리는 슬프게 떨렸다.
“별소리 다하네!”
나는 이렇게 말하였으나 어쩐지 그의 말이 헛된 말 같지 않았다. 다시 회복되리라는 생각은 십분의 이삼도 나지 않았다.
“병과 가난은 부부여!”
하던 그의 말마따나 병이 그처럼 되었더라도 믿는 구석이나 있어야 할 터인데 그것저것 이 없으니까 어찌 살려고 튼튼히 믿었으랴.
그는 두어 시간이나 그렇게 앉아 있다가 인력거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와 나와의 마지막 작별인 것은 나도 몰랐거니와 그도 몰랐을 것이다. 그가 나간 뒤에,
“죽게 된 사람이 돈 때문에 눕지도 못하고 저렇게 다니니……”
누구인지 자기 신세나 탄식하듯이 말하였다. 모두 K군의 신세가 남의 신세같이 보이지 않나 보다.
그 뒤 얼마 되지 않아서 K군이 석왕사로 갔다는 말을 같은 사에 있는 S에게서 들었다. K는 석왕사와의 인연이 깊은 사람이다. 그는 석왕사에서 경영하는 보통학교 교원으로 오래 있었다. 그런 관계로 석왕사에는 중과 속인 간에 천면 있는 사람이 많다고 들었다.
그가 떠난 뒤로 그의 소식은 종종 들었다. 그의 병은 나날이 더하여 간다고 하였다. K군과 친할 뿐만 아니라 척분이 있는 S는 늘 석왕사로 가 본다고 벼르면서도 노자가 변통이 못 되어서 하루 이틀 어물어물 보내게 되었다.
칠월 그믐께였다. 그에게서 엽서가 나한테 왔다. 그것은 내가 먹는 위장약이 효과가 있다고 하니 좀 사 보내달라는 글이었다. 어느 때 나는 그에게 나도 위장병으로 고생하는데 어떤 의사의 처방을 써보았더니 좀 차도가 있다고 말하였다. 그는 그 말이 생각났던가 보다.
나는 그 약을 지어 부치려고 여러 번 벼르면서도 약도 못 부치고 편지도 못 하였다. 지금 와서는 나의 일이 탐탐하여서 친구의 병보가 그렇게 신경을 찌르지 못하였다. 그런대로 그가 살았다면 모르지만 그가 죽고 보니 모든 것이 후회가 된다. 외로운 병석에서 부탁한 약을 얼마나 기다렸으랴.
내게 편지를 부친 며칠 뒤였다. S에게 편지가 왔는데 그것은 그가 친히 쓰지 못하고 남의 손을 빌어 대필한 것이었다. 사연을 안 보아도 대필로 보아 그의 병이 얼마나 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참 큰일인데…….”
할 뿐이요, 어떻게 하는 도리가 없었다. 한 손 떨어져 있는 친구의 죽는 것은 고사하고 지금 당장에 내 몸이 쓰러진 대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라 그저 살아 있는 입이나 벌리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그 편지가 온 며칠 뒤에는 K군이 있는 주인의 편지가 S에게 왔다. K군은 이제 음식도 못 먹고 뒷간 출입도 못하게 되도록 위중하니 속히 오라는 편지였다. 나는 S에게서 그 편지 사연을 들을 때 K군의 그림자가 눈앞에 보이는 것 같았다. 아부도 간호하는 이가 없는 외로운 병석에서 대소변까지 자유로 못 보게 되는 그의 괴로움이 얼마나 컸으랴. 남의 사폐를 조금도 보지 않는 배짱이라도 그 지경이 되면 눈치만 보게 될 터인데, 그렇지 못한 K군으로서 그처럼 되고 보니 자기 화에 더욱 괴로울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팔다리가 성한 우리는 그의 소식을 들을 때에만 안됐다 걱정 할 뿐이었고, 그 순간이 지나면 잊다시피 지내었다.
그러한 주인의 편지는 여러 번 왔었으나 S는 그저 오늘 내일하고 벼르면서 사정이 허락지 않아서 못 떠나다가 위중하다는 전보까지 받고 그가 죽던 안날에 떠나갔다.
S가 떠나던 이튿날, 즉 작년 오늘이었다. 나는 오후 차로 인천 갔다가 서울서 내려간 신문에서 그의 부음을 접하였다. 그때 나의 감상은 무어라 말할 수 없었다. 예기하였던 일이라 별로 놀라지는 않았으나 어쩐지 나 자신도 그와 같은 운명의 길을 밟는 것 같아서 그날 밤을 집에 돌아와서까지 잘 자지 못하였다. 암만 생각하여도 그는 제 명에 죽은 것 같지 않았다. 제 명에 못 죽을 것은 그의 운명만이 아닌 듯도 싶었다.
나는 며칠 뒤에 S에게서 K군의 임종 당시의 이야기를 들었다. S가 먼 하늘에 아침 볕발이 치밀락 말락 할 때에 석왕사 역에 내려서 K군이 있는 집으로 달려간 것은 K군의 목숨이 끊어진 뒤였다. K군이 운명할 때 곁에 있었던 주인의 말을 들으니까 그는 운명할 때까지 정신은 멀쩡하였다. 그러나 목이 붓고 가래가 끓어올라서 말은 못하고 눈만 힘없이 굴렸다. 그 눈은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것이요,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그 말을 듣는 나의 눈앞에는 마지막 보던 푹 꺼진 가느다란 눈이 떠올랐다.
S가 방에 들어서니 숨이 끊어진 K군의 옆에 삼십가량 되는 부인이 앉아서 울고 있었다. 그 부인의 차림차림은 얼른 보아도 보통 부인이 아니었다. 화류항(花柳巷)의 기분이 어디라 없이 흘러 있었다. S는 이상스런 감정을 금할 수 없었다. K군을 잘 아는 S는 군의 과거에 그런 종류의 여자가 얽힌 일이 없었는데 그런 여자가 그 자리에 나타난 것은 의문이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K군이 이만저만한 몸으로 내려왔을 새 그 사이에 순간의 달콤한 꿈이라도 없지 않았겠다고 믿겠으나 거의 죽게된 몸으로 내려온 사람이 딴 생각할 여유도 없었을 것이요, 설사 생각이 없지 않았다 할지라도 언제 대할 만한 근력이 있었겠느냐 하는 것도 의문이었다.
그러나 언제 그 의문을 풀려고 할 사이는 없었다. 송장 치울 것이 급한 일이다.
K군의 시체는 K군의 유언대로 석왕사 승려들의 손을 빌어서 화장을 하였다. 그들은 그들 전래의 화장법이 있었다. 산에 올라가 나무를 베어 쌓아 놓고 그 속에 송장을 넣어 사른다.
K군의 시체도 그렇게 재가 되었다.
지금도 나의 눈앞에는 보지도 못한 그 때의 광경이 활동사진 필름처럼 돌아간다. 승려들의 들채에 담긴 K군의 시체는 친구라고는 S의 외로운 그림자에 호위되어 푸른 산 나뭇잎 속으로 쓸쓸히 들어갔을 것이다. 쌓아 놓은 나뭇가리 속에 들어 온몸이 불길로 변할 때 혼령이 있다면 그는 세상을 어떻게 보았을까? 불길 뒤에 남은 재는 그것을 친히 본 S에게는 어떤 감상을 주었으며 멀리서 듣는 우리에게는 무엇을 보이는가?
K군의 시체 곁에서 울던 여자는 K군의 화장터에까지 술과 안주를 가지고 따라가서 이 세상에서 시체의 존재까지 감추는 K군을 슬퍼하였다. 곁의 사람들에게서 들으니 그 부인은 석왕사에 와서 술 파는 여자였다. K군과는 무슨 관계가 있는지 자세히 알 수 없으나 K군이 임종할 때에 K군 곁에 달려와서 섧게섧게 울고 감지 못하고 목숨이 끊어지는 눈까지 쓸어 주었다. 그리고 술까지 가지고 화장터까지 따라왔다. K군은 운명하던 찰나에 울고 달려드는 그 여자를 보고 눈물을 홀리었다. 그 사람은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하여튼 고마운 아낙네야! 술은 팔망정·…‥”
하고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S도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거기서 직접 보고 들은 S만 감격한 것이 아니라 S의 입을 빌려 간접으로 들은 우리까지 감격하였다. 무조건하고……
화장이 끝난 뒤 마을로 돌아와서 S는 그 여자에게 감사한 인사를 하고,
“K군과는 이전부터 친면이 있었어요?”
하고 물었다. 그러나 여자는 K군과 조금도 친면이 없다고 대답하였다. S는 더욱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 여자의 말을 들으면 이러하였다.
그는 부모도 없고 일정한 주소도 없이 동지서지로 술을 팔아 살아가는 신세이었다. 그의 동기라고는 손아래 남동생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어려서 그 남동생을 업어 기르다시피 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인가 땅인가 믿었던 부모가 구몰한 뒤에 가세가 넉넉지 못하고 일가친척이 없는 그들은 의지할 곳이 없었다. 어린 아우를 이끌고 남의 집으로 돌아다니면서 얻어먹다가 아우는 어떤 농사하는 집에서 심부름이나 시킨다고 두라고 하기에 주어버리고 그도 어떤 아는 사람의 지시로 아우가 있는 데서 멀리 떨어져 있는 어떤 읍에 나와서 객줏집 부엌 심부름을 하고 얻어먹었다.
예까지 말한 그 여자는,
“그때 춘삼(남동생)이는 열네 살이고 나는 열여섯 살이었지요…… 그때 춘삼이가 나를 따라 그 읍으로 간다고 울던 것이 지금도 눈에 선해요! 그때 데리고나 다녔다면…….”
하고 목 메인 소리로 외면서 눈물을 떨어뜨리었다. 여자는 다시 말을 계속하였다.
그 뒤 그는 어떤 사람의 소개로 좋은 데라고 가보니까 색주가(色酒家)였다. 그것이 그의 열아홉 되던 해인데 그가 오늘같이 되게 된 동기였다. 남의 집에서 떠날 수가 없고 무식한 여자라 글을 몰라서 편지도 못 쓰고, 교통이 드문 곳이므로 기별도 못하고 남모르게 항상 남동생 춘삼이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그곳서 몇 백 리 되는 원산으로 팔려온 뒤에는 더욱 소식이 아득하였다. 그럭저럭 육칠 년이나 팔려 다니다가, 어떤 사나이가 살림을 한다고 그의 몸값을 치르게 된 것이 그가 팔려 다니지 않게 된 원인이 되었다. 그 사나이와는 불과 일 년을 못 살았으나 몸은 자유롭게 되었다. 그러나 벌어먹을 길이 없어서 술장사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술장사로 돈푼이나 벌어 가지고 주야로 가슴속에 맺힌 춘삼이를 찾아 경상도 한끝으로 갔으나 만나지 못하였다. 춘삼이는 몇 해 전에 주인과 싸우고 떠난 뒤로 일본으로 갔다고도 하고 서울서 보았다는 사람도 있고 어떤 항구판에 가 있다고도 하나 자세히 알 수 없다는 것이 그 동리 사람들의 말이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하늘이 무너질 듯한 설움을 품고 돌아와 원산에 얼마 동안 있다가 작년 여름에 석왕사로 왔다. 업이 업인 것만큼 그는 많은 남자를 보았다. 보는 쪽쪽 춘삼이라는 이름을 물었으나 모두 몰랐다. 간혹 안다기에 자세히 물어 보면 그것은 이름은 같으나 사람은 달랐다. 그는 예까지 말하고 흐르는 눈물을 씻더니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도 젊은 남자만 보면 춘삼이 생각이 나서 가슴이 꿈틀꿈틀해요…… 어디 가서 죽은 것만 같아서 늘 마음에 걸리겠지요! 전달에 누가 이야기를 하는데 춘삼이라는 경상도 사람이 서울서 노동을 하다가 차에 치어 죽었다는데 나이를 물어 보니까 사십 넘은 사람이라고 하기에 내 오라비는 아니다 하면서도, 어디 가서 장가도 못 들고 그렇게 볕발 없이 죽은 것 같아서……”
하고 그 여자는 목 메인 눈물을 지었다.
이번에도 K군이 그렇게 와 있는 것을 모르다가 하루는 누가,
“웬 서울 손님인데…… 부모처자가 있다고도 하고 없다고도 하는 사람이 저렇게 와서 외로이 앓다가 죽는 줄도 모르게 죽게 되어서…… 없는 사람의 팔자는 다 같은 것이여.”
하는 말을 들으니 그로도 모르게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 염치를 불구하고 뛰어갔지요. 남의 사내란 생각은 나지 않고 우리 춘삼이가 어디 갔다가 그렇게 와서 죽는 것만 같아요…… 가 보니 아직도 새파란 젊은 어른인데 목에 담이 끓어올라서 숨도 바로 못 쉽디다. 벌써 알았다면 병구완이라도 해드렸을 것을…….”
하고 한숨을 쉬더니,
“우리 춘삼이도 어디 가 죽게 되면 저 모양이지 누가 들여다나 보겠어요. 그이(K)가 눈을 못 감으시고 돌아가시는 것을 보니(그는 코를 들이 마시고 나서)…… 조금 전에만 오셨다면 (S를 보면서) 돌아가시기 전에 보셨지요! 얼마나 보고 싶으셨겠습니까.”
이렇게 울음 절반 한숨 절반으로 이야기하던 그는,
“죽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열두 번씩 나다가도 행여나 춘삼이를 만나볼까 하는 생각에 모진 목숨을 끊지 못합니다. 춘삼이만 살았다면 이까짓 몸은 가루가 되더라도 고생을 하지 않도록 하겠구먼……”
하고 한숨으로 말끝을 막았다.
석왕사에 갔다 와서 K군의 화장과 그 여자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던 S는,
“참 고맙고도 이상한 여자야! 하하.”
하고 웃음으로 끝을 막았다.
그러나 나는 웃는 S의 얼굴에서 처참한 검은 빛이 흐르는 것을 발견하였다. S뿐 아니라 S의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은 약속이나 한 것처럼 다같이 초연한 빛이 흘렀었다. 그 속에 끼인 나의 얼굴에도 그러한 빛이 흘렀을는지 모른다. 아니 확실히 흘렀을 것이다.
S의 말을 들은 나의 가슴은 소발에 밟히는 것 같았다. 죽어 불에 재가 된 K군의 운명이나 동생을 생각하는 누이의 운명이나 누이의 가슴에 그림자를 남긴 동생의 운명이나 S와 S의 말을 듣고 슬퍼하는 우리들의 운명이나 무엇이 다르랴? 그들은 다 다른 사람들이로되 모두 같은 운명이란 궤도 위에 선 것을 나는 그윽이 느끼었다.
그 생각은 날이 갈수록 더욱 몹시 나의 가슴을 찔렀다. 지금도 버스에서 내려 한강으로 나가는 나의 눈에는 더위를 피하여 물을 따라 나온 모든 사람들이 무심히 보이지 않는다. 그들 가운데는 우리와 운명의 궤도를 같이한 이가 얼마나 되는지?
그들은 내일의 해를 어떻게 맞으려나?
-끝-
2016년 11월 14일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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