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고곡과 어이곡은 형식적일까
관혼상제 중에서는 상례의 격식이 가장 엄격하였다. 죽은 이와의 멀고 가까운 관계에 따라, 상복의 복제와 복을 입는 기간이 세분되었다. 예를 들면, 상복의 복제 중에서 3년 간 복을 입는 참최(斬衰)와 재최(齊衰)가 있는데, 참최는 외간상(外艱喪: 아버지나 승중의 조부상)에 입고 재최는 내간상(內艱喪: 어머니나 승중의 할머니 상)에 입으며 그에 따라 상복의 모양도 달랐다.
참최에는 대나무 지팡이를 짚고, 재최에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 지팡이를 짚는데, 지팡이를 짚는 것은 슬픔이 지극하여 몸을 지탱할 수 없다는 뜻에서 나왔다. 외간상에 대나무 지팡이를 짚는 것은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동양의 세계관에서 나왔다.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모가 졌다는 사상으로, 아버지는 하늘이기 때문에 둥근 모양의 대나무를 지팡이로 삼은 것이다. 그리고 어머니 상에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를 짚는 것은 순전히 글자의 뜻에서 비롯한다. 오동나무를 뜻하는 동(桐) 자는, 같다는 뜻의 동(同)과 소리가 같고, 버드나무의 유(柳) 자는 비슷하다는 뜻의 유(類) 자와 음이 같기 때문이다. 즉 어머니는 아버지와 같은 하늘은 아니지만, 아버지와 거의 비슷하고 같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오동나무나 버드나무를 지팡이로 취한 것이다.
상제(喪制)는 부모 또는 승중상(承重喪 아버지를 여읜 맏아들이 당한 조부모의 상)에 있는 사람을 가리킨다. 그 중 맏상제를 상주(喪主)라 한다. 그러므로 아무리 가깝고 존경하는 분이라 하더라도 타인의 상(喪)에 상주가 되겠다고 하는 말은 써서는 안 된다.
그런데 상제는 부모상과 승중상에는 ‘애고애고’라고 곡을 하고, 그 이외의 상중에는 ‘어이어이’라 곡을 해야 한다. 전자를 애고곡이라 하고 후자를 어이곡이라 한다. 그런데 이에 대해서 어느 저명한 학자가 말하기를, 자연적인 감정의 발로인 울음에까지 규정을 둔 것은 형식 문화의 극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혹평하였다. 그러나 이는 그러한 예법이 나오게 된 밑바탕을 간과한 데서 나온 편견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것은 상제를 보호하기 위하여 생겨난 것이다.
효를 지상의 윤리 덕목으로 생각하고, 어버이 당상을 하늘이 무너졌다는 천붕(天崩)이라 한 이 땅에서, 그 슬픔을 표하는 것은 지극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다년간의 시묘살이를 위해서 벼슬을 그만두었고, 부모의 죽음을 자식의 불효 탓이라 생각하였다. 상제의 거처를 점괴(苫塊)라 하는데 이는 거적 잠자리와 흙덩이 베개란 뜻이다. 거적을 깔고 흙덩이를 베고 잔다는 의미다. 이런 도덕률 속에서 삶을 살았던 상주는 울음을 그칠 수 없었다. 그런데 계속하여 지통한 울음을 울어댄다면 상주는 어떻게 될 것인가? 몸이 상하고 말 것이고, 그러면 상조차 치를 수 없는 지경에 빠질 수도 있다.
이효상효(以孝傷孝)란 말이 있다. 효로써 효를 해친다는 뜻으로, 효성이 지극한 나머지, 부모의 죽음을 너무 슬퍼하고 사모하여 병이 나거나 혹은 죽기에까지 이르는 일을 가리킨다.
옛사람들은 이것을 염려하여 힘을 덜 들이고 울게 하는 방법으로 곡의 형식[곡례(哭禮)]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하면 쉬지 않고 눈물을 펑펑 쏟으며 큰소리로 통곡한다면, 몸을 지탱할 수가 없으니 ‘애고애고’ 또는 ‘어이어이’와 같은 가벼운 울음을 울게 하여, 상제와 그 가족을 보호하고자 했던 것이다.
대곡(代哭)이란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 나온 것이다. 대곡은 남이 상주를 대신하여 곡을 해 주는 것을 말한다. 얼핏 생각하면 우스운 것 같지만, 이 역시 상주를 보호하기 위해서 만들어졌다. 결코 형식 그 자체를 좋아해서 공연히 만든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