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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나해 7월26일 연중 제17주일
[청주] 기적을 낳는 믿음의 사랑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제1독서 2열왕 4,42-44
† 제2독서 에페 4,1-6
† 복음 요한 6,1-15
오늘 전례
◎ 오늘은 연중 제17주일입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식탁에
우리를 초대하시어, 우리에게 생명의 빵을 주십니다. 성체성사를 통하여
우리에게 믿음과 희망을 더해 주시고 또한 우리를 주님 안에서 서로
일치시켜 주시기를 청하며, 기쁜 마음으로 주님의 초대에 응답합시다.
★ 엘리사 예언자는 하느님의 능력으로 여러 기적들을 일으켜 “하느님의
사람”이라 불렸다. 어느 날 그는 빵 스무 개로 백 명을 먹였는데, 이는
주님의 말씀에 따라 이루어진 일이었다(제1독서).
★ 에페소서에서는 신자들에게 성령 안에서 일치를 보존하라고 권고한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고, 하느님도 한 분이시며 믿음도 하나이다
(제2독서).
★ 예수님께서는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 먹이시어, 당신께서 이스라엘이 기다려 온 종말의 예언자이심을
드러내신다. 요한 복음 6장에서 생명의 빵에 관한 말씀은 성체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다(복음).
◈ 오늘의 묵상
일반적으로 음식을 준비할 때 대부분의 주부들은 양을 조절하여 음식을
남기지 않으려고 합니다. 실수로 음식의 양을 맞추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래도 정확히 계산하여 준비하는 것이 주부의 마음일 것입니다.
혹시라도 음식이 모자라면 덜 먹으면 되겠지요. 그런데 적지 않은 주부는
이와는 달리 생각합니다. 음식은 남아야지 부족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특히 명절이나 잔치 음식은 많이 장만하여, 찾아오는 이들에게 싸
주기까지 하는 것이 넉넉한 인심이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을 지지하시는 듯합니다.
제1독서에서 엘리사도 보리 빵 스무 개로 백 명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는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는데, 과연 빵은 남았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께서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장정만도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을
전하는데, 먹고 남은 조각만 해도 열두 광주리입니다. 열두 광주리, 충만한
양을 뜻합니다. 남은 것이 이렇게 많다는 것은 그 빵을 먹은 이들이
배고픔만 간신히 해결한 것이 아니라 가득 채워졌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표징을 본 이들은 “이분은 정말 세상에 오시기로 되어 있는 그
예언자시다.” 하고 말합니다. 그분을 통하여 인간의 기다림이 남김없이
충족되는 순간입니다.
오늘 복음 다음에 이어지는 요한 복음 6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 빵을
먹는 이들에게, 당신께서는 배를 채울 빵만이 아니라 생명의 빵을 주시는
분이심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분명 빵의 기적은 위대합니다. 그러나
성체성사의 기적은 더 위대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우리 영육 생명의
근원이시고, 또한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 몸을 우리에게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당신과 결합시키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주님, 그분께서는 우리를 넘치도록 가득 채워 주십니다. “당신은
손을 펼치시어,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은혜로 채워 주시나이다”
(화답송 참조).
- 매일 미사 -
◈ [수도회] 알타반의 말씀사랑
2015년 나해 7월26일 연중 제17주일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십시오.> (에페 4,1)
여러분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났다고 생각하세요?
왜 미국땅이 아니라 한국땅에서 태어났고 왜 이런저런 보잘것없는
가정에서 태어났으며 왜 가톨릭 신자가 되었고 왜 지금의 짝을 만나서
살게 되었고 왜 이런 직업을 가지고 살게 되었을까요?
내가 원해서 그렇게 된 것도 있겠지만 대부분은
내 뜻과는 상괸없이 주어진 것이지요.
우리 신앙인은 하느님께서 나를 그렇게 불러주셨다고 믿고
그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사는 것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지요.
오늘은 내가 어떤 삶을 살도록 하느님께서 불러주셨는지
그리고 어떤 소명을 주신 것인지 되새겨 보고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 한번 찾아보면 어떨까요?
나는 잘 모르지만 분명 하느님께서는 뜻한 바가 있어
나를 이런 모습으로 불러주셨을 겁니다.
그걸 찾아야 내 인생은 참으로 의미있는 인생이 됩니다.
- 작은 형제회 오상선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한상우 바오로 신부 |오늘의 강론 묵상
2015년 나해 7월26일 연중 제17주일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 요한 6,1-15
버려진 것을 모으시는 분은 언제나 사랑의 주님이십니다.
관계의 조각을 모으면 언제나 깨닫게 되는 놀라운 신앙의 신비입니다.
조건없이 주님께서는 우리를 받아들이십니다.
주님의 사랑으로 우리의 삶이 충만하여집니다.
나누어야 채워지고 흘러가야 충만하여지는 새로운 기쁨입니다.
나누기에 충분한 우리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사랑을 지니고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입니다.
사랑으로 끌어안을 때 모든 것은 감사가 됩니다.
하느님 사랑을 가장 잘 알게하는 성사는 단연코 성체성사입니다.
모든 것에서 우리를 살게하시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에서부터 십자가를 지고가는 모든 삶을 통해
주님의 섭리는 계속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랑의 섭리로 살아가기에 과거와 오늘 이 모든 것은 사랑이 됩니다.
내려놓아야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버려진 것을 사랑으로 끌어안는 감사의 주일되시길 기도드립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주님 말씀과 주님의 성찬입니다.
주님 사랑의 양식에 참여하는 길은 봉헌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성체성사는 봉헌으로 더욱 충만하여집니다.
봉헌이 영원한 생명의 길입니다.
- 구속주회 한상우 바오로 신부 -
◈ [수도회] 하느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2015년 나해 7월1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하느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공생활 절정기 예수님의 행적은 그야말로 거칠 것이 없었습니다. 발길
닿는 곳 마다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향해 몰려왔고, 평생 괴로움 속에
살아왔던 환우들이 그분 치유의 손길을 통해 해방과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교활하고 야비하기 짝이 없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도
예수님의 명쾌한 논리 앞에 꼬리를 내렸습니다.
당시 예수님의 인기가 얼마나 대단했는지는 빵과 물고기를 많게 하는
기적을 통해 잘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는데,
장정만도 그 수가 오천 명쯤 되었다.”(요한복음 6장 10절)
보십시오. 빵과 물고기로 배를 불린 군중의 수는 장정만도 오천
명이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신앙 공동체 신자 수를 주도하는 분들은
여성입니다. 그렇게 따지면 장정 오천 명에다가 장정에 두 배 정도 되는
여성 만 명에다가, 아이들까지 합하면 거의 2만 명에 달하는 군중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엄청난 수효의 군중을 이끌고 다니시며, 그들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고 더불어 그들의 평생소원을 원 없이 채워주시던 예수님의
모습이 우리를 부끄럽게도 만들며 부럽게도 합니다. 때로 달콤한 들 꿀
같고 때로 시원한 생명수 같은 예수님의 말씀이 얼마나 좋았으면
사람들은 식음까지 잊고 예수님 뒤를 따라다녔습니다. 거기다가 군중들의
주린 배까지 헤아리는 참으로 자상한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예수님께 매료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 앞에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과제 한
가지를 떠올려봅니다.
이제 기적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이제 더 이상 하늘만을 바라보지
말아야겠습니다. 이제 더 이상 특별하고 신기한 현상을 추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더 이상 예수님을 졸라대서는 안 되겠습니다.
이제 기적은 우리 각자의 손에서 시작되어야겠습니다. 우리 각자 안에
잠재되어 있는 무한한 가능성을 들여다봅니다. 인간이 때로 아주 나약하고
부족한 존재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가능성과 무한한 성장의 능력을 지닌
존재이기도 합니다. 그러한 가능성을 최대한 발휘해서 이웃과 세상의
선익을 위해 아낌없이 사용하는 것, 바로 이 시대 기적입니다.
어제의 죄, 과거의 어둠, 지난날 우울의 장막을 걷고 또 다시 내일을 향해
활짝 창문을 여는 행위 역시 이 시대 기적입니다.
정말이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용서하는
모습이 또 다른 기적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는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또 다시 사랑의 역사를 써내려가고자 하는 마음, 이
시대 기적입니다.
나도 배고프지만 더 굶주린 이웃을 향해 내 손에 들려있는 빵 한 조각을
양보하는 일이 또 다른 기적입니다. 내일 하느님께서 부르신다할지라도
오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그 사랑의 길을 걷는 발걸음이 또 다른
기적입니다.
때로 한심해보이고 때로 실망스러워보일지라도 또 다시 나를 존중하고
나를 소중히 여기며 내 인생이 가치와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또 다른
기적입니다.
수많은 군중을 배불리시기로 결심한 예수님 앞에 필립보가 말합니다.
“저마다 조금씩이라도 받아먹게 하자면 이백 데나리온 어치 빵으로도
충분하지 않겠습니다.”(요한복음 6장 7절)
인간의 눈으로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 앞에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 [서울] 서로 내놓아 나눈 게 아닐까.
2015년 나해 7월1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서로 내놓아 나눈 게 아닐까.
수십 년 전엔 주먹밥, 요센 김밥, 햄버거 샌드위치 등 야외용 식사지요.
아빠랑 애들이랑 가족들이 모두 나갈 때 식사 대책 없인 못 나갑니다.
남자만도 오천 명 넘는 대중이 먹을 것 없이 모였다는 건 이해 안갑니다.
어린이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갖고 있었다는 걸 생각합니다.
아마 자기 가족 아빠 엄마와 함께 먹을 게 아닐까 생각할 때 달라집니다.
모두가 예수님 말씀 듣고 감명 받아 서로 내놓아 나눈 게 아닐까 하고요.
"예수님께서는 빵을 손에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물고기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다.
그들이 배불리 먹은 다음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버려지는 것이
없도록 남은 조각을 모아라." 하고 말씀하셨다.(요한 6,11-12)"
- 서울 대교구 이기정 사도요한 신부 -
◈ [수원] 2015년 나해 연중 제17주일 - 원하기만 하라
2015년 나해 7월1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황창연 신부님은 신학생 때부터 교회의 미래가 어떻게 변화될 것인가를
직감하고 있었습니다. 외국처럼 소득이 높아지고 5일제 근무가 시작되면
주일에 미사 드리기 위해 집에 남는 사람이 많지 않을 것이란 예측을
하였고, 그래서 사람들이 놀러갈 수 있는 곳에 성당을 지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신학생 때부터 경치 좋은 곳에 땅을 보러 다녔다니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실이 알려져서 교구에 기부 받은 땅이 황 신부님에게
맡겨졌습니다. 모금을 해야 했지만 김창린 필립보 원로신부님이 가진
모든 재산을 내서 평창 생태마을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여주에 더
큰 땅이 주어졌고 제 2 생태마을이 지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잠비아에서
알게 된 수녀님들을 도와주다가 그 곳에도 엄청난 땅을 받아서 농기계들을
보내 농사도 짓게 하고 앞으로 생태마을도 세울 계획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어떤 분이 수십억을 기부해서 인도에 대학을 세운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일 년 동안 그분의 손을 거쳐 나가는 돈의 액수가 수십억이 될지 수백억이
될지 모르는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보통 사람은 꿈도 꾸기 힘든 액수가
들어오고 나가고 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분이 열심히 일해서 그만한
돈을 벌 수 있었을까요?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이 가졌던 유일한
보물은 ‘원의(願意)’였습니다. 이웃을 돕고 자연을 돕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하느님은 그 원의만을 바라십니다. 나머지는 당신께서
다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 원의의 차이가 결국 우리 이웃은 물론 우리들
또한 가난하게도 하고 부유하게도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필립보를 ‘시험’하십니다. 장정만도 5천 명이나
되는데 그들을 먹일 빵을 어디에서 구하면 되겠느냐고 물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미 당신이 하시려는 일을 이미 잘 알고 계셨습니다.
세계에서는 아직도 5초에 한 명씩 굶어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그러면 우리는 대답합니다. “저도 먹을 것이 부족합니다, 그런 돈을
어디서 구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저들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그러나 아주 가끔 어떤 이들은 “제가 가진 것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습니다”라며 예수님의 눈을 쳐다볼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그렇게 바쳐진 것을 가지고 당신의 능력으로 배고픈 이들을 다
먹이고도 열두 광주리가 남게 만드십니다.
과연 우리가 세상 모든 사람을 배고프게 할 수 없을까요? 내 작은 것을
봉헌하여 주님께서 그것을 기반으로 모든 이들을 먹이시게 하고 싶은
‘원의’만 있으면 됩니다. 예수님은 아직도 그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그런 마음만 있으면 축복이 넘치도록 그 사람을 통해 전달되게 해
주십니다.
마더 데레사는 “저는 하느님 나라를 가난한 사람으로 꽉 채우고야
말겠습니다”라는 원의를 지니셨습니다. 어느 날 대규모 고아원을
건립하겠다고 발표를 했습니다. 한 기자가 수녀에게 물었습니다.
“준비 되어 있는 건축자금은 얼마나 됩니까?”
데레사 수녀는 주머니에서 동전 3개를 꺼내 보이며 “가진 것은
이것뿐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기자들은 그 말을 농담으로 여기고
실소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데레사 수녀는 정색을 하며 진지한 낯으로
말했습니다. “이 동전과 저는 아무 일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이 동전이 합하면 무엇이든 하실 수 있습니다.”
마더 데레사 수녀님은 예수님의 ‘시험’을 통과하신 것입니다. 더 주고
싶다면 더 많이 채워주십니다.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이태석 신부님도
수단의 가장 가난한 이들을 위해 무언가 해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6년 만에 말기 암 진단을 받고 그들을 더 이상 도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그리고 당신이 한 그 일을 다른
사람들이 이어서 하고 있습니다.
재물은 피와 같습니다. 피는 흐르면 모두를 살리지만 멈추면 그 곳이 썩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해외원조는 매우 저조합니다.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더 잘 살려는 원의만 가득해서 썩어가는 냄새를 풍깁니다.
사해가 되지 말고 갈리래아 호수가 되어야합니다. 물을 끊임없이 빼내
주어야 우리나라가 살아납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가진 것들로 가난한
사람들을 물질적으로도 영적으로도 배부르게 하여서 그들도 살고 우리도
살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해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를 시험하고 계십니다.
“저 사람들이 먹을 빵을 우리가 어디에서 살 수 있겠느냐?”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시다.
“저희가 가진 것을 드리겠습니다. 당신이 그것으로 저들을 배불리실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을 원합시다. 다른 것을 원하면 주님이 원하는
것을 원할 수가 없습니다. 그분이 원하는 것은 서로 사랑하라는 것뿐입니다.
사랑은 주는 것입니다. 내가 주는 것으로 예수님은 저들을 먹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 것도 열두 광주리나 가득 차게 만드실 것입니다. 세상을
적시고 배부르게 하고 깨우쳐주는 축복의 통로가 됩시다. 원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동안 묵상을 올리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이제부턴 주일만이라도
올리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홧팅 ^^
- 수원 교구 복음화국 전삼용 요셉 신부 -
◈ [청주] 기적을 낳는 믿음의 사람|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5년 나해 7월1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기적을 낳는 믿음의 사람
찬미 예수님, 사랑합니다. 주 하느님께서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우리의 허물과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을 느끼려면 그만한 믿음이 필요합니다. 이 시간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는 은총을 입으시길 기도합니다. 기도를 많이 해서
주님의 사랑을 많이 받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함으로써 주님께서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알게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믿음으로 기도를
하시기 바랍니다.
열왕기 하권 4장 42절-44절에 보면, 어떤 사람이 맏물로 만든 보리빵
스무개와 햇곡식 이삭을 자루에 담아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엘리사는 시종에게 “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하고 일렀습니다. 그러자 시종은 “이것을 어떻게 백 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 내 놓을 수 있겠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그때 엘리사가
“사람들이 먹도록 나누어 주어라. 주님께서 이들이 먹고도 남을 것이라고
하셨다” 하고 대답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내 놓으니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사람들이 먹고도 남았습니다.
우리 삶에도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 일이겠는가?”하는 의문이 있습니다.
“저 많은 사람들에게 무슨 소용이 될까?” 계산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 인간적인 생각을 뛰어넘어 풍요롭게 하시는 분입니다. 바로 그러한
분을 믿는 것이 신앙입니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기껏해야
보잘것없고,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는 너무 부족해!’라는 생각을 접고,
“나누어 주어라” 는 말씀만을 기억할 때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납니다.
그야말로 기적이 믿음을 낳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기적을 낳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믿게 하려고(탈출4,2-5), 그리고 복음 전파를 위해
(마태11,4-6)서 또한 말씀이 참되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마르16,20)
기적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기적을 위한 기적을 일으키지 않으시고
믿음을 기반으로 능력을 체험케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신비스러운 일이 일어났다고 하는 곳을 쫓아다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모두 믿음을 성장시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습니다. 사실 믿음으로 내 삶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만들지
못한다면 신비로운 것을 아무리 많이 본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적의 체험은 특별한 체험이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게
됩니다. 더 큰 신비한 것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다져진
믿음이 중요합니다. 말씀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어떤 신비한 현상이
기적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서 하느님을 더 많이 사랑하고 하느님의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이 기적입니다.
예수님에 대해서 또는 성모님에 대하여 많은 지식을 얻는 것보다
하느님을, 성모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더 필요합니다. 아버지
하느님께 순종하며 우리를 위한 사랑에 목말라 하신 예수님의 삶을 오늘
내가 살아야 합니다. 어머니의 삶도 마찬가지 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주님의 뜻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기에 복되십니다. 그러므로
기적을 쫓지 말고 기적을 낳으시길 바랍니다. 기적이라는 현상을 과거에
묶어놓지 말고 오늘 내가 주님의 손이 되고 발이 되어 기쁨과 평화를
이루십시오. 그것이 기적입니다.
요한복음 6장 1절에서 15절을 보면, 배고픈 군중을 바라보는 예수님과는
달리 필립보는 빵을 살 돈을 걱정했고 시몬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아도
“보리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진 아이가 있습니다만, 저렇게
많은 사람에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하고 실망스러운
모습이었습니다. 이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현실적인
자기입장에서 바라보고 자기 생각에만 갇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함께
계신 주님을 간과 했습니다. 주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인간적인 계산을
먼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끊임없는 유혹입니다. 이 유혹을
단호하게 끊어 버리십시오! 그리하면 그 때 비로소 주님의 능력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많은 사람이 먹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보리빵 다섯 개를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자리 잡은 이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물고기 두 마리도 그렇게 하시어 사람들이 원하는 대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먹고 남은 조각으로 열 두 광주리를 가득 찼습니다. 인간의 생각은
불가능해 보여도 주님의 손을 거치면 가능합니다.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아무리 적어도 모두를 내놓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적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아도 내 놓을 수 있는 마음이
없다면 결코 많은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작아도 전체는 항상 부분보다
큽니다. 아무리 많아도 부분은 모두보다는 적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한 말씀으로 모든 것을 이루실 수 있는 분이시지만 한
아이가 건네준 빵과 물고기를 사용하여 배고픈 이들의 부족함을
채워주셨습니다. 인간의 협력을 높이 사신 것입니다. 많든 적든, 크던
작던 상관없습니다. 주어진 모두를 가지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먹고도 남았습니다. 이렇게 주어진 것에 감사하면 더 크게 감사할 수 있는
은혜를 입게 됩니다.
덕이 출중한 성자가 여행 중에 다른 두 명의 여행자를 만났습니다. 이들은
동행이 되어 함께 걷다가 헤어질 때가 되었는데 성자가 말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난 것이 은총이니 당신들에게 선물을 주겠소. 소원을
하나씩 이루어줄 테니 청하시오. 그런데 먼저 말한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지면 다른 사람은 그 사람의 두 배를 받게 될 것이오.”
무엇이든지 소원을 하나씩 들어준다는 성자의 이야기를 듣고 두 사람은
너무 좋아서 얼른 소원을 말하고 싶었지만 말을 하려다 말고 멈췄습니다.
두 번째로 말하면 앞사람의 두 배로 받는다는 것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서로에게 눈치를 주다가 결국 한 사람이 고심한 끝에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제 한 쪽 눈을 멀게 해 주십시오.”그렇게 해서 동시에 한
사람은 애꾸눈이 되고 나머지 한 사람은 장님이 되었답니다. 자기만
생각하는 이기심과 끝없는 욕심은 삶을 파멸로 몰고 갑니다.
로또 당첨자의 자살 소식이 있었습니다. 40대의 젊은이는 1등에 당첨이
되었는데 상금이 23억 원이나 되었습니다. 세금을 제외하고 18억 원을
수령했으나 5년 만에 다 잃고 급기야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로또
당첨자3명중 1명은 5년 내 파산을 한다는 통계도 있습니다. 외국의
사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살, 알콜중독, 마약, 도박, 이혼등 행복보다는
불행한 삶을 사는 이가 더 많답니다. 저도 로또복권을 선물로 받은 적이
있는데 당첨이 안 된 것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릅니다.
사도 바오로는 “적게 뿌리는 이는 적게 거두고 많이 뿌리는 이는 많이
거두어 들입니다"(2코린9,6). 하고 말했습니다. 은총을 심는 이는 은총을
거둡니다. 사랑을 심으면 사랑을 거둡니다. 비록 보잘 것 없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이것이라도”하고 사랑을 담아 내 놓으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풍요롭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나눔의 기적을 낳는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나누면 나눌수록 풍요로워지고 버리면 버릴수록
자유로워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풍요와 자유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배고픔에 지친 사람들이 빵을 먹고 배불렀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은 또
배고프게 됩니다. 그러므로 수천 명이 배부르게 빵을 먹은 현상에만
관심을 두지 말고 이 사건을 통해 가르치신 바가 무엇인지를 알아들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능력을 지니시고 우리와 동행하십니다.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을 통해서 기적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주님께 대한 믿음을 새롭게 하여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나눔의
기적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당신의 생명을 내놓기까지 사랑하십니다. 더더욱 미사
안에서 당신자신을 성체의 형상으로 끊임없이 내어 주심으로써 우리를
영적으로 살찌우고 풍성하게 하십니다. 영성체를 할 때 마다 사랑의 실천을
다짐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성급하게 주님의 낙원을 꿈꾸고 기다리며 기적을 쫓지 말고 지금 여기서
주님처럼 사랑하고, 주님처럼 섬기고, 주님처럼 내어주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나의 주님, 예수님의 능력을 힘입어 삶의 자리를 기적의
자리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기적을 낳는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고와야 여자지!
그러나 요즘은 착하면 곰이라고 놀리고, 안착하면 여우라고 욕한답니다
@@ 한번 마음이 구부러지면 모든 게 굽어보인답니다.
마음을 곧게 펴시기 바랍니다.
- 청주교구 청주 성모병원 반영억 라파엘 신부 -
◈ [인천]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입니다.
2015년 나해 7월16일 연중 제17주일
제1독서
<먹고도 남을 것이다.>
◎ 열왕기 하권의 말씀입니다. 4,42-44
제2독서
<그리스도의 몸은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 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며
세례도 하나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에페소서 말씀입니다. 4,1-6
복음
<예수님께서는 자리를 잡은 이들에게 원하는 대로 나누어 주셨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15
저는 새벽 묵상 글을 올린 뒤에 전자 우편을 확인하고 자료들을 모으기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합니다. 그리고 아침 운동을 하지요. 그런데 어제
새벽에는 뜻밖의 일이 생겼습니다. 묵상 글을 올린 뒤에 전자 우편을
확인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컴퓨터가 퍽 꺼지는 동시에 제 주변에 암흑이
찾아온 것입니다. 하려고 했습니다. 글쎄 제가 살고 있는 아파트 전체에
정전이 된 것입니다.
아침 운동을 하려고 했지만 비가 오고 있어서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식사라도 하려고 했지만 전기가 들어오지 않으니 준비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직 날이 밝지 않은 상태라 책을 읽기도 힘들었습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자 점점 기분이 나빠집니다.
언제 전기가 들어오는지를 묻기 위해 관리실로 인터폰을 해도 받지를
않고, 직접 찾아가니 관리실은 비어 있을 뿐이었습니다. 더군다나 정전이
한 시간을 넘어서자 마음속에서 화가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까요? 한전에서의 문제로 정전이 되었다는
공지가 두 번 정도 나온 뒤에 드디어 전기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그제야
저는 제가 해야 할 일들을 할 수가 있었습니다. 문득 예전에는 전기를
사용하지 않아도 불편함을 잘 몰랐던 것 같은데, 이제는 전기 없이는
살기가 힘들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너무나 당연하게 사용하면서
지내면서 감사하지 않고 살았던 것이지요. 그러면서 주님과의 관계를
떠올려 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그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감사하게 살지 못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내 뜻에 차지 않으면
불평불만을 던지기도 했었던 것은 아닐까요? 전기 없이 살기가 쉽지 않은
것처럼, 주님 없이 살기란 불가능한데도 말이지요.
오늘 복음은 빵의 기적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만으로 예수님을 찾아온 수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신다는
것이지요. 이 놀라운 기적에 군중들의 반응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모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 사람들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추대하면 예수님도
좋아하리라 생각했겠지요. 세상 사람들은 높은 자리, 즉 남을 누르고
지배하는 자리에 오르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예수님을 바라보고, 세상의 지위로 예수님께 환심을
사려고 했을 때, 예수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복음은 “혼자서 다시
산으로 물러가셨다.”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기준과 세상의 지위로는
예수님과 함께 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전기 없이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은 것처럼, 예수님 없이 단 한 순간도 살아갈 수 없음을 기억한다면
어떻게 함께 할 것인지를 늘 마음속에 담아야 합니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주님의 기준을 따라야 할 것이며, 세상의 지위를 탐내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그 뜻을 실천하는데 최선을 다해야 언제나 함께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 없이 살 수 없는 우리입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는다면 지금 해야 할
것들이 명확해지지 않습니까?
뒤처졌다고 분노하거나 좌절해서는 안 됩니다. 앞서 가는 자의 뒷모습도
소중한 교훈입니다. 포기하지 않는 당신도 누군가의 길이 될 것입니다
(김원준).
이스라엘의 오병이어 성당.
행복한 삶이란?
건강검진을 받습니다. 그런데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검진 결과를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아까운 시간과 비싼 돈을 치러 받은 건강검진에
대해서 후회를 할까요? 그래서 돈 낭비했다고 괴로워하면서 ‘다시는
건강검진을 받지 않겠다.’라고 다짐하십니까? 아닙니다. 병이 있다는
사실보다는 병이 없다는 사실에 더 기분이 좋아집니다. 중요한 것은 내
몸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감사할 수 있는 것이지요.
주님을 믿는다는 것에 대해 의심을 갖는 분들을 봅니다. 그분들은 지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신앙생활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식으로 말씀하십니다. 어렵고 힘들 때에만 주님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오히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음에 감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믿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면서 굳이 성당에 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주님과 일치하면서 그 안에서 참
기쁨과 행복의 삶을 살 수 있음을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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