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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칠고 엄격한 가풍의 선지식
아찬 마한 부와는 대선지식으로서 태국 북부지방에 있는 전통적인
숲속 수도원의 유명한 원장이다. 명상 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여러 해
동안 기초적인 불교 교리를 공부하고 불교경전의 원어인 팔리어를 마스
터했다. 아찬 마하 부와는 숲속의 승려로서 여러 해 동안을 명상 수련
하는 데에 보냈으며, 라오스어를 사용하는 유명한 선사인 아찬 문으로
부터 많은 가르침을 받았다. 아찬 문은 금세기 태국과 라오스의 숲속
선사 중 가장 유명한 선사로서 특히 선정(사마타)과 지혜 수련(위빠사
나)에 정통하고, 위대한 능력과 맹렬한 가르침의 가풍으로 유명하다.
전해지는 말로는 그가 아찬 문을 친견하러 가기 전에 수행자로서 오랜
수련을 거쳐 선정 명상 중 일부를 이미 마스터했다고 한다. 이러한 마스
터만으로도 대단한 성취이다. 아찬 문은 그를 만난 즉석에서 그에게 깨달
음의 지혜와 선정에서 오는 희열 상태와의 차이점에 대해서 명확한 설명
을 한 후에 그를 숲속으로 보내어 좀 더 수련을 하도록 했다.
이러한 꾸지람(경책)을 들은 후 여러 해 동안 아찬 마하 부와는 전과는
달리 희열로 충만한 높은 선정 상태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한번 그러한 것들을 최종적으로 숙달했을 때는, 그것은 대단한 지혜와
통찰을 가져올 수 있었다.
아찬 마하 부와는 지혜 수련의 전주자(前奏者)로서 강하고 지속적인 선
정 계발을 강조한다. 또한 선정과 고요함을 계발하기 위하여 몸과 마
음의 관찰을 통한 지혜를 이용하는 방법도 설명한다.
이러한 선정은 훨씬 더 깊은 지혜로 안내한다. 비록 마하 부와는 정신
적인 도의 세 가지 전통적인 부분(戒·定·慧)을 얘기했지만, 이러한
것들이 반드시 어떤 특별한 순서에 입각해서 계발될 필요가 있는 것
은 아니라고 설명한다.
그 대신 수련이 ‘단계별로 선정을 계발’하는 것이 되어져서는 안되고 마
음속에 번뇌가 일어나는 대로 번뇌를 제거하기 위하여 계·정·혜가 동시
에 작용하는 것이라야 한다고 강조한다.
수련에 입문할 때 아찬 마하 부와는 기본적인 선정을 계발하기 위하여
반복하는 말, 즉 만트라를 심상(心象)하여 사용하든가 아니면 만트라
만을 이용하길 권장한다. 그러고 나서 일단 고요함이 자리잡혀지면,
이 집중을 이용하여 몸의 본성을 관찰하도록 한다. 그 후에는 바로 마
음의 본성을 직시하고, 어떻게 무명과 착각이 ‘나’라는 잘못된 견해를
일으키게 되고 윤회의 수레바퀴 속에서 커다란 고통으로 이끌게 되는
가를 알게 한다.
아찬 마하 부와는 선정이 효과적으로 계발될 수 있도록 특히 수행 중에
일어나는 이미지와 시각적인 상(像)과 관련된 방법들을 상세히 설명한다.
그는 또한 명상 중에 나타나는 내·외적인 현상들과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이용하는가를 구분한다. “이러한 것은 모든 경우에 나타나는 것이 아
니다.”그리고 “어떠한 형태의 선정을 계발하더라도, 지혜는 항상 중요한
것이다.”라는 중요성을 강조한다.
나는 초보자들이 선정 계발에 나타나는 여러 가지 현상이나 이미지
들을 중요시하고 거쳐야 할 필수적인 경험들로서 집착할까 두려워서
그러한 현상들을 상세히 설명하기를 망설인다. 그러한 현상들을 기대
하거나, 진보의 표시로서 간주하거나, 자신의 명상에서 그러한 것들이
나타나도록 하고 그렇게 노력하는 것은 하나의 함정이 될 수 있다.
만약 자신의 수련 중에 선정을 계발하기 위하여 그러한 것들을 선택
해서 수련하길 원한다면, 스승의 지도하에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
다. *집중된 마음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경험이나 기이하게 보이는 것
같은 설명에 흥분해서는 안 된다. 그러한 것들은 가치 있는 것이 아니
다. 오직 지혜만이 중요하다.
마하 부와는 가슴이라는 말을 자주 사용한다. 이것은 동정과 같은
특정한 감정적 성질의 의미로 말하는 가슴은 아니다. 여기에서의 가슴은
마음을 뜻한다. 가슴을 마음이 머무는 장소로 간주하는 것은 불교의
전통이다. 이것이 가르침에 대한 숲속 법문의 특성을 보존하는 것이다.
비록 어떤 말들은 경전 상의 해석들과 일치하지 않지만, 그러한 것들은
대부분의 실제적인 의미에서 명상을 계발하기 위한 지침으로서 사용되어
진다.
아찬 마하 부와의 숲속에 있는 사원 ‘왓바반탈’은 태국 북부의 우도론
(Udron)지방에 있는 약 100에이커 되는 땅 위에 있다.
* 더욱 상세한 것은『청정도론(淸淨道論)』참조
승려와 막사의 숫자는 20개 이하로 적다. 수련은 대단히 엄격하다.
아찬 마하 부와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신에게 엄격했던 스승의 방법
대로 가르친다.
상당수의 서구인들이 그와 함께 공부했으며, 그들 중 얼마는 아찬이 항
상 새로 들어온 제자에게 바라는 대로 여러 해 동안 그와 함께 있었다.
태국과 라오스의 다른 숲속 사원과 마찬가지로 그의 사원에서 가르치는
대부분의 실수련은 엄격하고 극도로 단순한 생활방식을 통해 이루어
진다.
하루 한 번의 간단한 식사, 조그만 막사, 목욕을 하기 위한 우물, 이
른 아침에 나가는 탁발, 오랜 기간 동안의 침묵, 다소 고립된 생활, 이와
같은 모든 환경은 세속적인 것을 거의 생각나지 않게 하는 생활을 만
든다.
그리고 숲속 사원은 집중적인 명상을 위한 기능뿐만 아니라 특별한
교육환경을 위한 곳으로서의 역할도 한다.
단순한 공동체적인 환경에서, 침착하고, 단순해질 수 있고, 마음과
생활의 진행을 관찰할 수 있으며, 그리고 지혜를 계발할 수 있다. 마
하 부와는 가끔씩 가르침을 펴기 위하여 방콕에 온다. 영어로 발행
된 그의 법문은 방콕에 있는 왓 바보르니오즈 사원을 통해서 얻어볼
수 있다.
정(定)
모든 종류의 명상은 마음에서부터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을 조절
하기 위한 것이다. 명상에 의해서 길들여지지 않은 마음은 일생 내내 바깥
을 향해서 구한다. 어려서부터 늙을 때까지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똑
똑한 사람이나 어리석은 사람이나, 지위가 높거나 낮은 사람이나, 시
각장애인, 청각장애인, 소아마비, 장애인 등 모든 경우에도 마찬가지
로 해당한다.
불교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여전히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을 가진
마음의 단계에 있다고 본다. 그들의 마음엔 숭고함이 없다. 지족(知足)도
찾아볼 수 없고 마음의 행복에 대해서는 병들어 있다. 그들이 죽을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마치 많은 가지, 꽃, 열매를 가진 나무가 뿌리에
상처를 입을 때 시들어 죽어서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
달마[法,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 마음은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로
부터 오는 해독으로 결코 진정한 행복을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설사
행복을 추구하여 행복이 온다 하더라도, 그러한 것은 배우가 한 부분의
연기를 하고 있는 것과 같은 형태의 것이다.
그리하여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의 증대는 마음을 나쁜 방향으로
흐르게 하여 참으로 만족스러운 행복에 이를 수 없게 한다. 마음의 안정
과 평온함을 의미하는 집중[定]은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에 반대
되는 것이다. 마음은 ‘마음의 약’을 복용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약은
명상이다.
약을 복용한다는 것은 달마로써 마음을 훈련하여 제멋대로 방황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마음은 동반자로서 ‘정화되지 않
은 외적 표출’과 같이 다니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약
을 복용한다는 것은 마음이 달마를 마음의 감시인으로서 마음속에 배치
시키는 것을 의미한다. 달마는 명상이라고 불리워지는 마음의 약이다.
붓다는 각기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에 따라 다양하게 적용되는 40가지
종류의 명상을 가르쳤다. 이러한 방법 중에서 일반적으로 널리 사용
되고 만족할 만한 결과를 주는 몇 가지 방법을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1. 머리의 머리카락, 몸의 털, 손톱, 발톱, 이빨, 피부, 가죽 등을 포함한 신체에
대한 32가지 부분을 관(觀)하는 것.
2. ‘붓도[佛]’, ‘달모[法]’, ‘상고[僧]’를 염하는 것.
3. 호흡의 출입에 집중하는 것.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더라도 본인의 개성에 맞아야 한다. 왜냐하면
각자 개성이 모두 다 틀리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들이 한 가지 방법만
을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치게 된다면 어떤 사람에게는 오히려 방해가
되어 수행으로부터 좋은 결실을 얻지 못하게 한다.
자신의 개성에 맞는 명상법을 발견했을 때(그런 방법을 가르쳐 줄 믿
을 만한 스승이 없을 때는 시행착오를 거쳐서 알 수 있다) 우선 몸에
대한 명상으로서 ‘머리카락(몸에 대한 32가지 부정관)’과 같은 말을 예
비적으로 반복하면서 수행을 시작해야 한다. 그때에 그 말을 소리 내
는것이 아니고 마음으로 반복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주의를 머리카락
에 고정시킨다. 그러나 머리카락을 관하는 것으로 마음을 포착할 수
없다면 염불하듯이 예비적인 반복을 되풀이하여 그 소리가 마음을 포
착하도록 하여 마음이 고요하고 정적인 상태가 되도록 해야 한다. 마
음이 고요해질 때까지 예비적인 반복을 되풀이한다. 이때에 중단해도
된다. 그러나 어떠한 형태의 예비적인 반복을 하더라도 그 명상에 대
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예를 들면 ‘머리카락’을 계속 집중할 때
에 머리의 머리카락에 대한 알아차림을 유지해야 한다.
만약 ‘붓도’, ‘달모’, ‘상고’ 중 하나를 반복적으로 염한다면, 반복하는
제 4 장 아찬 마하 부와 (Achaan Maha Boowa) 233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대상에 대한 알아차림을 마음속에 확립시켜 두어야 한다. 이것은 다
른 형태의 명상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붓도’(혹은 ‘달모’ 혹
은 ‘상고’)의 염송이 계속해서 마음과 접촉되어지고 예비적 반복의 ‘
붓도’를 ‘되풀이하는 마음’과 마음속에 그것이 누구인가를 ‘아는 마음’
이 합일되어질 때까지 ‘붓도’를 반복해야 한다. ‘아는 마음’은 사실 마
음의 한 형태이다.
예를 들면 누군가에게 거짓말을 할 때, 자신의 행동, 말, 생각이 거
짓말에 맞추어 행해진다. 그러나 가슴 어디엔가에 ‘아는 마음’이 있
다. 이것은 거짓말이라는 것을 항상 알아차리고 있다. 그러나 아주 드
문 경우를 제외하고는 아직도 ‘아는 마음’은 무명(無明)의 영향하에 있
다. 비록 알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잘못 알고 있다.
호흡에 대한 수련은 호흡을 마음의 대상으로 사용하고 호흡의 출입
에 대해서 마음집중하여 알아차림으로써 향상되어 나간다. 호흡을 알
아차리게 됨에 있어서 코끝이나 입천장*에 닿는 호흡의 느낌에 우선
집중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기가 호흡이 처음 접촉되는 부분이고 이
부분에 주의력을 유지하기 위한 표시점으로 이용해도 좋기 때문이다.
숙달될 때까지, 그리고 호흡의 출입이 더욱더 섬세해질 때까지 이렇
게 하면서 호흡출입의 접촉에 대한 본성을 점차적으로 이해하고 알게
된다. 마침내 호흡이 가슴의 중앙 부근이나 명치에 위치한 것처럼 느
껴질 것이다.
* 실수행에 있어서 입을 벌리고 해서는 안된다. 호흡이 들어오고 나감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이 부분에서 강한 느낌을 받는다.
이렇게 된 후부터는 자신의 호흡에 대한 주의력을 그 지점으로 옮겨서
고정시켜야 한다.
더이상 코끝이나 입천장에 호흡이 부딪히는 곳에 집중할 필요는 없
고, 호흡의 출입을 따라가면서 알아차릴 필요도 없다. 호흡을 집중하
는 데 있어서, 호흡과 관련하여 ‘아는 마음’을 명확하게 하고 ‘아는 마
음’을 보조하기 위하여 호흡출입을 감독하기 위한 예비적인 반복으로서
호흡과 병행하여 ‘붓다’를 염송해도 된다. 그렇게 하면 호흡은 더욱더
명확하게 마음에 나타날 것이다.
일단 호흡에 숙달되면, 매번 호흡에 집중할 때마다 가슴의 중앙이나
명치에 주의를 고정해야 한다.
특히 마음챙김을 확고하게 해야 한다. 마음을 조절하기 위한 마음챙김
을 확고하게 해야만 호흡출입시에 매 순간 호흡을 느끼며, 길고 짧은
것을 알아차리고 마침내 매 호흡의 상태가 점점 더 미묘하고 예리하게
되어져 감을 분명하게 느낀다. 즉 가장 예리하고 미묘한 호흡과 마음이
챙김되어 하나가 된다(다른 말로 하면 마음이 호흡처럼 느껴지고, 호
흡이 마음처럼 느껴진다.) 이 단계에서는 마음속에 있는 호흡에만 집
중해야 한다. 예비적 반복(염송)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왜
냐하면 호흡의 출입이나 장단(長短)을 알아차림에서, 예비적인 염송은
마음을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만 이용하기 때문이다.
호흡의 가장 예리한 수준에 이르게 되면, 명상자는 밝고 초연하고 평
온하게 되고 단지 마음만을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에 있다. 어떠한 방
해에도 영향받지 않는다. 마침내 호흡이 사라진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
제 4 장 아찬 마하 부와 (Achaan Maha Boowa) 235
붓다의 후예, 위빠사나 선사들
요는 없다. 왜냐하면 모든 짐을 벗어버리고 마음의 알아차림만 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그것은 비이원화(非二元化)이다. 이것이
선정의 계발이다. 이것이 호흡에 대한 마음챙김 수련을 계발함으로써
얻어지는 결과이다. 그러나 언제라도 명상을 수련할 때나, 누구라도
명상을 수련할 때 이것이 얻어져야 할 결과임을 이해해야 한다.
마음을 조절하기 위해 예비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명상 중 하나를 이용
함으로써 명상자는 차츰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을 조복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때에 평온함과 행복함이 증대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에
영향을 미치는 유일한 하나가 있다. 그것은 어떠한 방해나 흐트러짐
없이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러한 상태를 이루지 못하
게 마음을 초조하게 하거나 방해할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이
것이 마음의 진정한 행복이다. 마음은 모든 공허한 상상과 생각의 창
조물로부터 자유로워져 있다.
어떤 한 가지 형태의 명상을 수련하고 있는 중에 사람에 따라 그 명상형태
의 특성들이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면 머리털이나 몸의 털, 혹은 손
톱, 발톱, 이빨, 가죽, 살, 근육, 뼈 등이 마치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마
음에 선명하게 나타날 수도 있다. 만약 이러한 것이 일어나면 그것에
주시를 해서 자신의 마음에 그 대상이 고정될 때까지 그것을 분명하
게 봐야 한다.
이러한 대상이 마음속에 분명하게 고정되었을 때, 명상자는 그 대상이
불쾌하고 구역질나는 면에 주시함으로써 바르게 관해야 한다. 왜냐하
면 이것이 몸의 내외적인 모든 부분들의 성질이기 때문이다. 명상자
는 그러한 대상들을 더 상세하게 관찰하기 위하여 그러한 것들이 썩
고 부패하게 되는 것, 화장터에서 타고 있는 것, 독수리, 까마귀, 개
에 의해서 뜯어 먹혀지는 것을 직접 눈으로 봄으로써 몸이 기본적인
원소, 즉 지(地)·수(水)·화(火)·풍(風)으로 분해되는 것을 관찰해
도 좋다.
이런 식으로 수행하는 것이 몸의 성질과 관련된 착각을 줄이고 제거
하는 데 있어서 대단히 유용하다. 몸에 대한 착각은 성적 욕망을 불러
일으킨다. 그것은 마음의 ‘정화되지 않은 외적 표출’의 일면이다. 이
렇게 수행함에 따라 마음은 점차적으로 점점 더 고요해지고 섬세해져
서 지혜가 성장하게 된다.
모든 예비적인 명상은 마음을 고요하고 행복한 상태로 이끌기 위한
것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러한 수행법 중 어떠한 것
에도 의심을 일으키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것들은 모두 다 마음을 평온한
상태로 이끈다. 그러고 나서 나중에 지혜로써 위험*을 보게 한다.
명상자는 어떠한 명상을 수련할 것인지를 결정하고 자신에게 맞는
어떠한 염송도 포기하지 말고 낙담하지 말고 반복해야 한다. 어떠한
명상법을 수련하더라도 그것은 각기 다른 방법을 통하여 같은 목적지에
도달한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모든 이러한 달마의 방법들은 모든
명상법의 궁극인 평화와 행복, 즉 열반으로 이끈다. 그러므로 자기자신의
명상 수련에 전념해야 한다. 다른 명상법에는 신경쓰지 말아야 한다.
* 여기에서 위험은 목숨이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오욕의 위험이 고통으로 이끌고 나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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