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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경시대의 토속과 삶의 풍경화
- 김여화의 수필세계
정목일(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
1. 사라져가는 농경문화의 소중한 기록
김여화 수필가는 2014년 봄에 월간 <한국수필>로 데뷔한 신예 수필가이다. 새내기 수필가이랄 수
있지만, 수필쓰기의 공력과 내공만은 만만하지 않다. 문단 데뷔와는 상관없이 수십 년간 수필쓰기에
정진해 왔다. 오랜 수필쓰기 공부 끝에 삶의 재출발을 확인하면서, 그 동안 써온 작품들을 일별하여
처녀수필집을 상재하게 되었다. 신인이지만, 오래 동안 수필공부에 심혈을 쏟아 온 저력과 남다른 노
력이 돋보이는 수필가이다.
이번 처녀수필집은 김여화 수필가가의 작품 중에서 선별하여 묶은 것으로, 오로지 작품을 통해 한
수필가의 진면목(眞面目)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보여준다.
김여화의 수필세계는 ‘우리나라 농경시대의 생활자취의 풍경화’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농경시대
를 자나 산업시대를 보내고 디지털시대에 살고 있다. 오늘의 젊은 세대들은 농경시대의 삶과 체취를
잘 알지 못한다. 김여화 수필가는 자연, 농사, 가난, 풍속, 인정이 있었던 농경문화의 삶과 자취를 수
필로서 남겨 놓고자 한다. 사라져가는 농경시대의 모습과 삶을 지워지지 않는 암각화(岩刻畵)로 새겨
놓으려 한다.
농경시대는 3대가 농사를 지으며 함께 살았던 시대였다. 산 아래에 옹가종기 마을을 이루고 논밭
에 나가 농작물을 기르며 인정을 나누며 살았다. 자연 속의 토속과 서정이 있었으며, 가난 속에서 누
리는 평온이 있었다. 사람들마다 하늘을 보고 기후를 짐작했으며 땅을 보고 시절을 알아차렸다. 기후
와 별들의 운행을 보면서 자연의 섭리와 삶을 조화시키는 지혜를 가졌다.
김여화 수필가는 농경시대의 풍속도를 남겨 놓으려는 화가처럼 우리 기억 속에서 희미해져 가는
농경시대의 모습을 수필로써 보여주고 있다. 우리 민족은 가난, 전쟁, 혁명, 산업화를 거치는 등 격동
기를 거치며 살아왔지만, 농경시대의 삶은 우리 민족의 전통과 정서를 바탕으로 동질성과 화합을 이
루는 바탕이 돼왔다.
김여화 수필가가 남겨놓은 ‘농경사대의 토속과 삶의 풍경화’ 속에는 가난 속에서 누리는 삶의 평화
가 있고, 정겨운 산하의 풍경과 인정이 있다. 오늘 날 도시의 아파트에 살면서 이웃을 잃어버린 사람
들에게 마을, 뒷산, 냇물, 언덕 빼기, 도랑 등의 자연 공간을 만나게 한다. 꿩, 새, 민물고기, 풀꽃이
어우러진 자연환경을 보여준다. 그 곳은 현대인들이 이미 상실해버린 삶의 고향이 아닐 수 없다.
김여화 수필가의 수필세계는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자연과 생명성에 닿아 있다. 현대인에게 익숙
해진 도시생활은 평리성은 있으나, 매연과 소음, 미세 먼지와 황사 등으로 숨도 마음대로 쉴 수 없는
환경이 되고 말았다.
삶의 주변에 산과 냇물과 들판이 있어서 자연 속에 유유하게 살아가면서 서로 인정과 대화를 나누
며 살아가던 농경생활의 모습과 체취를 남겨 놓은 것만으로도 따스함을 느끼게 한다.
특히 우리 강과 못에서 외국의 물고기 때문에 사라져가는 토속 민물고기들를 하나하나 수필작품으
로 담아 놓은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작업이다. 민물고기를 잡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던 체험을 바탕으
로 쓴 테마 수필들은 당시의 자연과 삶을 생생히 전해주는 값진 묘사로써 작가의식의 발로가 아닐 수
없다.
김여화의 이번 처녀수필집은 신변잡사(身邊雜事)류의 수필과는 달리, 농경시대의 삶의 자취와 정
서를 수필로 담아냈다는 점에서 개성과 차별성을 보여준다. 현대인들이 알지 못하는 농경시대 우리
삶과 토속과 생활상을 생생히 그려낸 풍경화인 것이다.
2. 다양한 삶의 체험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개달음
김여화 수필가의 삶의 길은 평탄하지 않았다. 빈농(貧農)의 아들로 태어나 어릴 적부터 굶주림을
견뎌야 했다. 석공, 건설현장 노동자, 경찰공무원 등 여러 직업을 거치면서도 ‘문학’의 끈을 놓치지
않았다. 노동의 땀에 젖은 일상을 보내면서도 글쓰기를 통해서 삶의 성숙과 생명력을 꽃피우길 열망
했다. 그에게 글쓰기는 어둡고 곤궁한 삶과 현실을 극복하는 불빛이었다. 김여화의 수필은 여유 자적
한 지식인의 글이 아니다. 노동의 땀과 가혹한 삶의 현실 속에서 피워낸 삶의 발견이자 깨달음의 꽃
이다. 그의 수필에선 땀 냄새가 난다. 어려운 현실에서도 비관하거나 실의에 허우적거리지 않고, 긍
정과 희망을 바라보는 눈과 신념이 있다.
신변잡사(身邊雜事)나 일상사(日常事)의 토로나 독백이 아니다. 자신의 겪은 체험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수필의 바른 길을 걷고 있다. 자신이 겪은 어려운 삶의 체험을
소재로 삶의 성찰과 농경시대의 서정을 그려내고 있다. 김여화의 수필이 삶의 고달픔과 노동 속에서
도 평온함과 여유를 느끼게 하는 것은 자연과 가족애에서 얻은 서정성과 마음의 온기 때문이다.
가랑이 찢어지는 듯한 애옥살이는 언제나 끝날까 기약이 없었고, 아버지의 한숨소리와 친구들에게
다리아랫소리 하기가 빈 쌀독 긁는 것보다 지겨웠다. 어쩔 수 없이 엄마는 십리 길을 걸어 무태에서
보리이삭을 주우러 다니셨다. 그것으로 풋나물과 묵은 된장국에 넣고 끓여 식구들의 주린 배를 채워
주셨다.
송화가 지고 밤꽃이 향기를 흩날리던 어느 해거름 땅거미가 져도 엄마는 돌아오지 않으셨다. 네 살
터울의 우리 네 남매는 엄마를 찾아서 등까지 붙은 배를 움켜쥐며 무태를 향해서 걸었다. 노을을 등
에 지고 집집마다 굴뚝엔 하얀 저녁 짓는 연기가 가마밥솥의 뜨거운 김처럼 피어오르고 어느 집에선
가 엄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함박꽃마냥 흩어졌다. 꽁치인지 고등어인지 모르는 생선 굽는 냄새
와 함께. 무태에 도달했을 때는 거울 같은 달이 별보다 밝았을 무렵이었다. 걷다가 쉬다가 우리는 만
나는 사람마다 보고
“우리 엄마 어디 있어 예?”
했지만, 그들이 ‘우리엄마’를 그 나이보다 조금 더 늙은 아줌마를 어떻게 알까?
무태에는 금호강을 가로지르는 수백 보 길이의 일본말로 아르방 다리가 놓여 있었다. 기어이 사단
이 난 건 구멍이 숭숭 뚫린 그 다리를 반쯤 엉금엉금 기다시피 건너던 작은누이가
“내사 죽어도 못 가겠데이.”
하며 대성통곡을 터뜨리고 털썩 무릎을 꿇은 뒤부터였다. 형은 싫다던 누이를 종주먹으로 윽박지르
며 건너기를 종용하였지만, 고사리보다 조금 더 굵은 손가락으로 철판의 가장자리를 움켜쥐고 도살
장가의 소처럼 다리를 부들부들 떨던 누이는 끝내 일어서지 않았다. 달은 가엾게 우리 정경을 내려
보았으나 강물은 나 몰라라 무심히 흘러가고,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영문 모르던 나는 작은누이 옆에
서 덩달아 목청을 높여 울면서 형의 성화를 돋우고. 마침 지나가던 마음 좋은 분의 도움으로 어찌어
찌 다리를 되돌아온 우리 형제들은 백사장에서 그 동안의 노고로 강아지새끼처럼 고개를 처박고 백
사장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피울음 우는 소쩍새 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잠이 깬 건 엄마의 등에서
였다.) 밤이 이슥해서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아이들이 그림자 하나 비치지 않자 심장이 멎는 것 같았
다.
“경아! 하이야!”
하고 아들들 이름만 부르며 이 골목 저 삽짝에 불이 났다. 온 동네를 소리 높여 우리 이름을 부르며
코고무신 신발도 잃어버리며 헤맸다. 누가 짜 놓았을까? 영화 각본처럼 우리를 다리에서 내려 주셨
던 그 어진 분이 아이들이 있는 곳을 알려줘서 엄마는 나는 듯이 우리에게 달려 오셨다. 여전히 달은
밝고 소쩍새는 두견화를 찾아 울고.
개밥바라기가 질 무렵 산으로 향하여 식은 보리밥 몇 덩이와 짤아 터진 신 김치 몇 조각으로 아침
을 때우신 후 종일 끼니를 거르셨을 텐데, 그 먼 산길을 소를 몰고 또 지게 짐을 지고 허위허위 늦둥
이 두 아들을 위하여 주린 배를 움켜쥐고 오셨을 아버지.
초등학교도 채 졸업하지 못하고 나는 월급도 한 푼 없이 밥만 얻어먹는 이발소의 머리 감겨주는 일
부터 시작해서 식당 보이, 다방 주방장 등 별별 일을 다 하며 소년기를 보냈다. 그야말로 도둑질 빼고
모든 일 하며.
타향살이가 너무 힘들고 지치면 나는 시도 때도 없이 고향집을 찾았다. 때로는 하얀 대낮에, 어쩌
다가는 별 총총한 밤중에.
그러면 고향집 개다리소반상에는 언제나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밥’이 있었다. 그것도 김이
모락모락 나는 하얀 ‘쌀밥’이.
엄마는 집 나간 식구가 객지에서 끼니를 굶지 않게 하려면 식사시간마다 그 사람 몫의 밥을 더 떠
놓아야 한다는 어른들의 말씀에 따라 끼니때마다 내 몫의 밥을 여분으로 지으셨던 것이다. 식으면 당
신께서 드시고. 아직도 나는 늦깎이 공부 덕택에 학교 도서관 앞 수돗가에서 빈 배를 채운다.
<밥>의 일부
<밥>을 읽어보면 김여화 수필가가 어린 시절에 얼마나 곤궁한 가정에서 한 끼의 ‘밥’으로 허기를
채워갔는지 알게 된다. 배고픔을 참으며 식구들의 밥을 구하러 간 어머니만을 기다리던 애처로운 이
야기는 평생을 통해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마음속에 극명하게 새겨놓은 자국이기도 하다.
<밥>이란 사람에 따라서 예사로운 말이 아니다. 굶주려 본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는 의식과 의
미가 다르다.
‘지금은 하늘나라 어디쯤에서 예의 손때 묻어 반질거리는 가마솥에다가 내 더운밥을 짓고 계실 손
거칠고 맘씨 고운 우리 어머니. 언제나 엄마 곁에 가서 그 까끌까끌한 보리밥을 열무김치에 쓱쓱 비
벼 꿀맛같이 먹어 볼꼬.’
<밥>의 결미 부분이다. 한 끼의 밥을 구하기 위한 어머니의 필사적인 노역과 어머니가 돌아오기만
을 기다리는 굶주린 형제들의 애처로운 모습 속에 ‘밥’이란 곧 생존의 끈임을 알게 된다. <밥>에서 보
이는 것은 궁색함 속에 기아에 허덕이는 모습이지만, 어머니의 헌신, 고향집, 형제애가 뜨겁게 한 덩
어리로 얼싸안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모습이야 말로, 농경시대 한 가족사(家族事)만이 아닌 우리
민족이 처절하게 겪으며 지나온 농경시대의 한 모습이다. 한 끼의 ‘밥’에 대한 재인식과 함께 오늘의
풍요는 궁핍시대를 거쳐서 얻어낸 것임을 알려준다.
김여화의 수필은 삶의 기록에 그치지 않고, 시대상황을 극명하게 그려냄으로써 농경시대의 삶을
증언해 주고 있다.
3. 농경시대의 정서와 정겨운 풍경
수필은 1인칭 글쓰기이다. 나의 삶, 나의 인생을 담는 그릇이다. 김여화 수필가는 농경시대 농촌에
서 나서 성장하였기에 농경 정서와 삶이 인생을 살아가는 바탕이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농경시대
엔 농한기가 있고, 양식이 떨어져 갈 ‘보리 고개’가 있다. 가난도 있었지만, 자연과 인정과 토속도 있
었다. 이웃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미풍양속도 있었다. 산에 가서 꿩을 잡고, 냇물에서 민물고기를
잡기도 했다. 자연에서 먹을거리가 생겨나고 흥과 맛이 어우러지기도 했다. 자연이 베풀어주는 은덕
을 입으며 오순도순 살아갈 수 있었던 정겨움과 인심을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우리나라 강, 내, 못에서 서식하고 있는 붕어, 잉어, 쏘가리, 은어. 미꾸라지 등 민물고기들의 생태
와 모습, 잡는 법과 요리법, 맛 등을 수필에 담아 놓은 것은 사라져가는 우리 민물고기들에 대한 애정
을 보여준다. 우리의 강과 못에는 외래종 물고기들로 인해 토박이 민물고기가 사라져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토속 민물고기에 대한 보호책이 시급함을 느낀다.
붕어는 귀족적인 어족이 아니다. 차라리 서민적인 담수어라 하겠다. 딱히 거울같이 맑은 물이 아니
라도 떼 지어 산다. 좀 탁하면 탁한 대로 적응하며 감사한다.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이 아니겠
는가!
붕어는 잉어마냥 깊은 소(沼)가 아니라도 산다. 미꾸라지처럼 흙탕물이 아니어도 오감타 한다. 그
냥 주어진 대로 맞추어 산다. 물이 맑지 않아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먹이가 넉넉하지 않아도 사람
을 탓하지 않는다. 불원천불우인(不怨天不尤人)이다.
붕어는 붕어만 넣고 찌개를 끓여도, 매운탕으로 고와도 별 맛이 없다. 그러나 메기, 모래무지 찌개
나 매운탕에 붕어 몇 마리가 들어가지 않으면 특유의 맛이 나지 않는다. 그러고 보니 붕어는 물가의
갈대와 같은 존재인가 보다. 혼자는 잘 서지 못하나 여럿이 무리를 이루면 아무도 막을 수 없는 강한
힘을 지닌 민중과도 같은.
붕어는 반두를 대어놓고 물풀을 밟아도 잡히고 투망을 던져 건져내기도 한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
도 낚시로 낚아내는 붕어가 가장 예쁘고 사랑스럽다. 밤새도록 찌 한 번 안 건드리다가 새벽 물안개
일 때 낚시 바늘을 물고 이끌려 나와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비늘은 얼마나 황홀한가.
붕어는 종일 찌를 응시하며 앉아서 평소에 조급한 현대인에게 기다림의 미학을 가르쳐 준다. 밥도
시간이 지나야 뜸이 든다는 걸 명시해 준다.
붕어는 낚시 미끼로도 이것저것 자신의 입맛을 원하지 않는다. 장어 마냥 땅강아지나 잉어처럼 떡
밥을 고집하지 않는다. 보리밥 알맹이를 끼워도, 지렁이로 유혹해도 마다하지 않고 낚싯밥을 물고는
순순히 낚싯줄에 끌려 나온다.
그 모습은 오체투지 절하는 불자처럼 겸손하다.
붕어를 가장 맛있게 먹는 방법은 푸른 등을 쪼개어 말린 뒤, 고추장을 발라서 아궁이에 구워먹는
것이다.
밥반찬으로만 좋을까. 막걸리 안주로도 더할 나위가 없다. 붕어가 굳이 썩 크지 않아도 된다. 손바
닥보다 좀 작은 것이 바싹 구워 놓으면 뼈째로 씹을 수 있어서 좋다. 꼭 화로가 아니어도 후라이팬에
식용유를 둘러서 구워도 괜찮다. 양념장에 소주와 된장을 한 조끔 넣으면 비린내도 별로 나지 않는
다.
가을날 따스한 햇살을 받아 건조해 가는 붕어들을 보면 참 예쁘다. 뒤집어 놓았을 때 등의 검푸른
빛이, 바로 놓았을 때 배의 은백색 색깔이 절로 침이 고여서 입맛을 다시게 한다.
사람들이 홀로 살기 어렵듯이, 나무들이 끼리끼리 모여서 살듯이 붕어들도 떼 지어 산다.
<붕어> 일부
우리나라 대표적인 민물고기인 붕어의 모양, 생태와 함께 낚시 법을 그려냈다. 민물 낚시꾼들은 붕
어 잡이에 많은 시간을 보내곤 한다. 붕어 낚시는 물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비우는 시간을 갖기도 한
다. 물과 붕어와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기도 하다. 붕어와 미꾸라지는 농촌 사람들의 입맛을 당기게
하는 대상이다. 마을 주민들은 주변에 강과 못이 있고, 서식하는 토속 담수어들이 살고 있어서 삶의
흥취를 불어 넣어 주었다. <붕어> 등 민물고기에 대한 10여 편의 테마 수필들은 농경시대 농민들의
삶과 생활 깊숙이 닿아있는 자연 속의 속살을 보여주고 있다. 강, 못, 개천은 농경시대의 삶과 직결되
는 생명의 원천이었다. 민물고기를 통해 한국의 자연성과 생명성의 울림을 담아내고 있다. < 붕어>는
고기잡이의 재미와 요리 방식까지 알려준다. 놀이의 흥과 맛의 추억과 강물의 감촉과 어울림의 즐거
움을 되살려 준다. 붕어가 어떤 물도 가리지 않고 서식하는 가장 친밀한 물고기임을 알려 준다.
미꾸라지 잡이는 마을 단위로 공동으로 이뤄지기도 했다. 큰 가마솥에 추어탕을 끓어 나눠 먹던 정
겨운 모습은 이제 사라지고 말았다. 농경시대는 농사를 지으며 공동체적인 삶을 살아왔다. 풍속과 협
동을 통해 가난을 견뎌내고 민족의 전통과 문화를 계승해 온 시기이기도 했다.
김여화의 수필은 농경시대 토속의 속살과 삶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으로
평가된다.
4. 수필정신과 삶의 길
김여화 수필가는 금년에 데뷔한 신인이지만, 작가 정신이 투철하고 인생에서 얻은 깊이와 무게를
지니고 있다. 수필은 논픽션이기 때문에 자신의 인생을 비춰 보이는 거울에 비유된다. 인생의 경지가
곧 수필의 경지라 할 수 있다. 김여하 수필가는 처녀수필집을 상재하지만, 수필세계는 남다른 인생의
경지를 보여준다. 수필의 경지는 곧 마음의 경지일 것이다. 부대끼는 삶을 살아왔지만, 이에 휩쓸리
지 않고 문학을 통한 자신의 길을 밝혀왔다. 마음을 정화하고 연단시켜 자신의 일생에서 얻은 체험을
의미의 꽃으로 피워내고자 한다. 수필이란 자신의 삶을 통한 인생의 발견과 깨달음임을 알고 있다.
수필이 유명 인사들에게 자신의 자랑과 성공 과정을 알리는 도구가 되어 허장성세(虛張聲勢)를 보일
때도 있다.
김여화 수필가는 자신이 걸어온 인생의 모습을 물에 비춰낸 듯 토로하고 고백하고 있다. 삶의 뼈와
영혼을 드러내 보여준다. 수필의 경지란 진실과 순수에서 드러난다. 과장이나 치장을 하지 않고 맨
얼굴과 속마음을 드러내는 데서 감동을 울려낸다.
수필의 길을 제대로 알고서 자신이 걸어가야 할 지평을 바라보고 있다. 많은 수필가들이 자신의 삶
과 인생을 기록하는 글쓰기에 열중하는 실정이다. 김여화는 수필의 주제가 분명하고 남다른 인생 체
험과 탐구력을 지녔다는 점에서 앞으로 더 기대되는 수필가이다. 한 사람의 바람직한 수필가의 출현
을 알리게 됨을 기쁘게 여긴다. 앞으로 더욱 진지하고 겸허하게 자신의 문학세계를 열어가길 바란다.
첫댓글 목현 선생님께 깊은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덕분에 편히 앉아서 김여하 수필가 님에 대한 많은 정보들 얻어냈습니다.
글 흐름이나 작가가 맞닥뜨렸던 세월들이 너무도 공감 가는 지라 더욱 기쁩니다.
<밥> 사러 가야겠습니다.
작가 님의 술 한 잔을 위해서.
그리고 제 삶의 위안을 위해서.
여하? 여화?
잘 읽었습니다
봄 날씨입니다. 주변에서 제가 술 마시면 주위에서 난리입니다. 병원에 몇 번 실려갔거든요. 끊을려고 참 많이 애쓰다가 포기했습니다. 정철의 '장진주사' 봐요. 거적대기에 덮혀기면 그만이지요. 다음에 향촌동에서 고갈비 구워놓고 한 잔 합시다. 막차타고 서울오면 되지요. 매주 수요일 매일신문 20난에 제 수필 만날 수 있습니다. 저 본 듯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한盞먹세그려또盞먹새그려
곳것거算노코無盡無盡먹새그려이몸주근後면지제우희거적더퍼주리혀매여가나
流蘇寶帳의萬人이우러녜나어욱새속새덥가나무白楊수페가기곳가면누른해흰달
가난비굴근눈쇼쇼리바람블제뉘한盞먹쟈할고
하믈며우덤우희잔나비파람불제뉘우친들엇디리
@목현 암만 읽어도 絶唱입니다. 저는 죽었다 깨어나도 이만한 글 못 씁니다. 중국에도 장진주사가 여러 편 있지만 정철만 못하더군요.
정목일 교수님이 작년에 대장암 수술하신 뒤로 제 정신이 아니랍니다. 이름 그렇게 하면 큰 실례인데 어쩌나요. 스승님이신데...
책, 몇 권 남았으니 서점에가서 사지 마시고 주소 가르쳐주세요. 제가 싸인해서 보내드리겠습니다. 물론 무료입니다. (대구, 경북분만)
감사합니다.
회장님 사무실(706-832. 대구 수성구 수성로 319-1. 힐링철학원)이 어떠하시오리까?
촌아낙, 솔향기, 수국, 박지평 님께......
몇 권 보내드릴까요?
회장님, 촌아낙, 솔향기, 수국, 박지평.
5권인데 너무 많아서 염치 없습니다.
한 가지 더 애걸하겠습니다.
박지평 선생께는 저자께서 싸인을 하시지 마시고 보내주시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지평샘은 자기 門으로 들어오는 情物을 삥땅꾼에게 膳物로 바치셨으니까, 그것도 죄인이 되지요.
이 77치못한88한분에게 정성으로 저서를 바칠 수 있겠습니까?
열 권 채우세요.
염치가 넘쳐서
다섯 권이면 됩니다. 저는 회원 이름을 잘 모릅니다.
정대요, 신미경, 오춘선,김희수, 박지평 선생님, 만 알고 있어서 그렇고 그렇습니다.
염치 코치 버리겠습니다.
우리 회는 수필가가 참 많습니다. 채워 보내 주신다면 홀딱 벗고 춤추겠습니다.
김한성, 박기옥, 조경숙, 방종현, 김상립, 김동혁, 김경환, 김성구 님이 더 있사옵니다.
13권이니까, 羞惡之心을 버린 지를 용서하시고, 측은지심의 김여하 님께 고개슥입니다.
@목현 ㅎㅎ 목현 선생님!! 늘 수긋이 계셔도
진짜 중요한 때는 총대를 매시는군요
감솨합니다 어리보기님 그리고 목현선생님~~
목현, 참 이쁜 이름입니다. 우리 딸애의 이름이 수련이지요. 수필론, 참 잘 쓰셨더군요.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서울 사는 프레미엄은 손광성 선생님 같은 분을 막걸리 마시며 뵙는것이지요. 그래도 저는 대구로 내려갈 것입니다. 수구초심이지요. 뵙을 날 기다립니다.
목현님 여러모로 감사합니다.
정목일 선생님의 제자 사랑이 손에 잡힐 듯 가깝습니다.
김장, 경주왕래... 미처 여하 님의 작품을 읽지 못했네요.
직선적이고 재치 번득이던 말투가 작품에서도 넘나듭니다.
보내준 책 삥땅 당한 터라 그저 목현님이 고마울 뿐.
두 분 사이가, 아니 벌써 ?
설왕설래 하시고 ! 삥탕까지 하시고 !
글 잘보았습니다
고맙습니다
목현님의 나체춤?
여하야, 제발 그건 막아야 한대이,
나훈아도 벗다 말았잖니?
우예됐던동 싸인 없어도 조코 77 88도 조으니
대여섯 권으로 대란부터 막꼬보제이.
그게 무슨 말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