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21:2
기도를 부탁하는 시드기야 왕의 말은 믿음에 대해 생각하게 만듭니다.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것이 아닌 명령하는 태도.
그리고 ‘혹시’ 하나님이 도우실지 모른다는 말, 영어로는 ‘perhaps’라고 표현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마음이 어떤지 고스란히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진정한 회개 그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 이토록 힘든 일일까 싶습니다.
돌아오기를 바라시는 아버지의 마음이 죄송하게 느껴집니다.
’ 믿음‘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오직 이것인데 우리는 참으로 고집불통이구나 싶습니다.
권고사직을 당한 교사의 동생 그리고 사촌동생 두 명.
세 명이 10일 사이에 한 명씩 사표를 냈습니다. 새 학기를 2달도 안 남기고 사직서를 낸 것도 문제이지만 어제저녁 마지막 사표를 보내온 미술교사는 IB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는데 다시 교사를 찾아 훈련을 시키기에는 실사를 앞두고 있기에 엄청 난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왜 이리도 힘든지 모르겠습니다.
기도하는 제 마음이 시드기야 왕 같은 믿음이 아닌지 ‘혹시’라는 단어 앞에 멈춰 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데 하나님의 통치하에 있는데 내 마음을 졸이고 있는 건 아닌지 말씀 앞에 잠잠히 기도하게 됩니다.
주님! 믿음의 말 믿음의 생각을 하는 자녀이고 싶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골짜기와 평원 바위의 주민아 보라 너희가 말하기를 누가 내려와서 우리를 치리요 누가 우리의 거처에 들어오리요 하거니와 나는 네 대적이라 (13절)
나의 생각대로 살면서 나의 판단이 하나님의 뜻에서 나온 것인 양 착각하며
살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하게 됩니다.
교회의 직분자로 거룩함을 가장한 채로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살핍니다.
말씀을 묵상하며 사는 날들이 지나갈수록 난 과연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
마 제대로 알고 있는지, 살려고 하는지 자꾸 의문이 듭니다.
오늘 말씀이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나는 네 대적이라'하시니 그보다 더 두려운 것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나의 생각대로 살면서 잘 사는 것처럼 치장하는 삶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합니다
교회 안에서 믿는다는 자들과만 어울려 살며 편협하고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삶을 살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게 합니다.
오늘도 성령님께서 함께하시므로 나의 생각과 나의 삶을 주장하여 주시기를,
나의 생각이 아닌, 성령님의 인도하심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바벨론의 압박에 시드기야왕은 사람을 보내어 예레미야에게 ‘혹시’라는 의심의 마음과 시험의 뜻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요청을 합니다.
자신이 직접 기도하지 않고 ‘간구하라’ 명령하는 시드기야의 믿음 없는 모습을 봅니다.
저 역시도 요새 하나님께 ‘간절함’이 빠진 기도를 드리고 있는 모습에 남일 같지 않음을 느낍니다. 그런 어리석은 저를 위해 매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간절함으로 중보 하시는 성령님께 감사드립니다. 그 간절함을 본받아 진실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제가 되길 원합니다.
하나님께선 이스라엘 백성을 늘 선택하시고 보호하셨지만, 그들은 늘 죄의 길만 선택하였습니다. 이제는 그런 유다백성을 심판하시며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 중에서 선택하라 명하십니다.
생명의 길은 바벨론에게 항복하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전리품이 되는 것, 사망의 길은 하나님의 뜻을 거슬러 바벨론과 싸우는 것이었습니다.
죄악뿐인 그들에게 은혜로 생명의 길을 주셨지만, 전리품이 되어야만 하는 하나님의 뜻이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습니다.
매일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습니다. 입술로는 되뇌지만, 정말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며 살지 못하고 내가 유리한대로 해석하며 내 뜻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회개드립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나의 자아가 죽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는 참된 믿음의 사람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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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건물을 청소하시는 이모님을 통해 지난 토요일 아침에 저희 건물 변압기가 터져 큰 불이 났었다고 합니다. 지나가시는 분이 119에 요청을 했고,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건물까지 다 타는 줄 알았다고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한전에서 와서 고치는 모습만 보았는데, 알지 못했던 내용을 듣고 보니 평소와 똑같은 일상으로 일을 할 수 있는 사업장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기도를 드렸습니다.
늘 당연하다고 느끼는 모든 것이, 숨 쉬는 이 시간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어떤 일에도 항상 기뻐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며, 범사에 감사하는 자녀 되길 소원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우리를 치니 청컨대 너는 우리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여호와께서 혹시 그의 모든 기적으로 우리를 도와 행하시면 그가 우리를 떠나리라 하니 (예레미야 21장 2절)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주님!!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며, 주님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늘 내 앞에 놓여있는 걱정과 근심 그리고 나를 위한 계획을 놓고 기도합니다.
그리고 기적을 기도합니다.
주님!!
제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하신 말씀처럼 살길 기도합니다.
9 이 성읍에 사는 자는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 죽으려니와 너희를 에워싼 갈대아인에게 나가서 항복하는 자는 살 것이나 그의 목숨은 전리품 같이 되리라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님께 느브갓네살로부터 보호해 주시고 도와주실 것을 부탁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칠 것이라 답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이 밉고 싫어서가 아니라 그들의 행위대로 벌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을 두시며 다시 한번 소망과 기회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은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돌이킨다 하여도 의심하며 그를 온전히 다시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데 만약 저들이 살기 위해서 그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항복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실과 마음까지 보시는 지혜로우신 하나님이시기에
그들이 온전한 마음으로 돌이킬 수 있는 상황을 만드셔서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의 선택 앞에 깨달은 이는 생명의 길로, 깨닫지 못하고 완악한자는 죽음의 길로 들어서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나의 삶의 앞에도 늘 생명의 길과 죽음의 길이 놓여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 두 갈래의 길 앞에서 매일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매일 매 순간 깨우치며 나의 생명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맡기며 순종함으로 죽음의 길이 아닌 생명의 길로 들어설 수 있는 온전한 믿음의 자녀 되길 기도합니다.
너무나도 어리석은 존재이지만 매일 매순간 돌이킬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깨닫고 회개하며 주께 향하여 주의 은혜와 자비를 누릴 수 있는 이가 되길 소망합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께서 측은히 여기 지도 긍휼히 여기지도 불쌍히 여기시지 않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복잡한 여러 가지 일들을 겪으며 저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 살기보다 저에게 편하고 저에게 좋은 대로 생각하는 습관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런 저의 생각들이 쌓이면 오늘 유다의 모습처럼 최악의 선택을 해야 하는 지경에 이를 것 같은 두려움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저의 잘못된 생각들을 고쳐 주시고 주님께서 주시는 바른 생각들로 채워주세요.
때로는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길과 생각이 내가 생각하는 것과 다르게 보일 때도 있지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과 생각들을 순종하며 잘 따라 행하게 하옵소서.
사랑의 하나님께 늘 긍휼함을 받고 회개하고 돌이킬 때 회복시키시는 은혜를 경험하며 사는 인생 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