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10월 3일 수요일 [(녹) 연중 제26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욥은,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며, 누가 그분과 겨루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고 하시며,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하신다(복음).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 욥기의 말씀입니다. 9,1-12.14-16 욥이 친구들의 1 말을 받았다. 2 “물론 나도 그런 줄은 알고 있네. 사람이 하느님 앞에서 어찌 의롭다 하겠는가? 3 하느님과 소송을 벌인다 한들 천에 하나라도 그분께 답변하지 못할 것이네. 4 지혜가 충만하시고 능력이 넘치시는 분, 누가 그분과 겨루어서 무사하리오? 5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산들을 옮기시고 분노하시어 그것들을 뒤엎으시는 분. 6 땅을 바닥째 뒤흔드시어 그 기둥들을 요동치게 하시는 분. 7 해에게 솟지 말라 명령하시고 별들을 봉해 버리시는 분. 8 당신 혼자 하늘을 펼치시고 바다의 등을 밟으시는 분. 9 큰곰자리와 오리온자리, 묘성과 남녘의 별자리들을 만드신 분. 10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 11 그분께서 내 앞을 지나가셔도 나는 보지 못하고 지나치셔도 나는 그분을 알아채지 못하네. 12 그분께서 잡아채시면 누가 막을 수 있으며 누가 그분께 ‘왜 그러십니까?’ 할 수 있겠나? 14 그런데 내가 어찌 그분께 답변할 수 있으며 그분께 대꾸할 말을 고를 수 있겠나? 15 내가 의롭다 하여도 답변할 말이 없어 내 고소인에게 자비를 구해야 할 것이네. 16 내가 불러 그분께서 대답하신다 해도 내 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리라고는 믿지 않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57-62 그때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57 길을 가는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어디로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59 예수님께서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셨다. 그러나 그는 “주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0 예수님께서는 그에게, “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이 지내도록 내버려 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셨다. 61 또 다른 사람이 “주님, 저는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측량할 수 없는 위업들과 헤아릴 수 없는 기적들을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기적과 자비는 하느님 아버지의 뜻에 따라 이루어진 것입니다.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이 사방을 돌아다니시며 하늘 나라의 복음을 전하십니다.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일은 모든 일에 앞서야 하고 짧은 시간도 아껴야 하는 과업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부모의 장례보다 주님의 일을 먼저 하려는 각오를 해야 합니다. 혈육의 정에 얽매이기보다 주님을 따르는 발걸음을 앞세워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삶은 고난과 가난의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쟁기로 땅을 갈아엎고 농사를 짓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일을 하지 않고 쉬는 사람이 됩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은 힘차게 앞으로 걸어가는 투신이 필요합니다. 온 힘을 다하여 구원의 소식을 전하는 헌신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뒤를 돌아보는 행위는 여러 가지 핑계를 대며 주님의 일을 하지 않고 미루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최상의 가치를 향하여 나아가는 자세로 구원 사업을 수행해야 합니다. 구원의 열매는 타성에 빠지지 않고 날마다 새로운 결심을 함으로써 이루어집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구원 사업을 수행할 쟁기 하나씩을 맡기십니다. 그 쟁기로 구원의 농사를 짓고 열매를 맺기를 바라십니다. 보금자리를 포기하는 노력과 희생으로 구원의 열매를 맺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류한영 베드로 신부) |
시련은 더 큰 그릇이 되라는 주님의 초대장입니다! 구약 성경의 여러 책들 가운데, 참으로 재미있는 책이 있는데, 바로 욥기입니다. 욥기는 우리를 무죄한 의인들이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에 대한 깊은 묵상에로 초대합니다.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 한 가운데서도 욥이 온 몸으로 겪었던 무죄한 의인들의 고통을 자주 접할 수 있습니다. 악인들은 그 숱한 죄를 짓고 과오를 범하고도, 저리도 건강하게 떵떵거리면서 잘 먹고 잘 사는데, 무죄한 이들, 평생토록 신앙 안에서 올곧게 살아온 사람들이 겪는 끔찍한 고통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게 됩니다.
채 인생을 꽃피우기도 전, 청춘의 나이에 끔찍한 사고로 세상을 떠난 자녀, 그를 잃고 슬피 우는 부모, 아직 죄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어린 아이의 불치병, 평생 주님 마음에 드는 좋은 일만 해온 의인의 요절...가만히 들여다보니 이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이해하지 못할 일들로 가득합니다.
평생토록 하느님을 경외하고 신뢰하면서 악을 멀리해온 욥 역시, 어느 날 갑작스런 큰 시련과 마주합니다. 그는 동방에서 가장 큰 부자였으며 아들 일곱과 딸 셋을 둔 행복한 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주님께서는 그가 소유하고 있던 수많은 가축들과 종들을 불살라버리십니다. 뿐만 아닙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금쪽 같은 아들과 딸들도 데려가십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욥은 머리 꼭대기부터 발바닥까지 심한 부스럼증을 앓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은 하느님이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외쳤습니다.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욥기 1장 21절)
차라리 주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는 아내의 조롱에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에게서 좋은 것을 받는다면, 나쁜 것도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소?”(욥기 2장 10절)
욥이 자신에게 닥쳐온 큰 시련 앞에 처음에는 그리도 당당했지만, 점점 증폭되는 고통 앞에 얼마나 괴로웠던지 이런 독백을 남겼습니다. “차라리 없어져 버려라. 내가 태어난 날.”(욥기 3장 3절) “어찌하여 내가 태중에서 죽지 않았던가? 어찌하여 내가 모태에서 나올 때 숨지지 않았던가?”(욥기 3장 11절)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는 자신의 고통 앞에 욥은 큰 시험에 빠집니다. 하느님의 부재와 현존 체험 사이에서 긴 내적 갈등을 거듭합니다. 위로하러 찾아온 친구들과의 대화 중에, 위로보다는 죽음보다 더 큰 고통도 느낍니다.
동시에 자신의 지난 인생을 세밀하게 스캔하면서 혹시라도 주님의 뜻을 거슬렀던 요소가 있었는지 성찰합니다. 한 인간이 이 세상에서 겪는 우여곡절, 성공과 실패, 병고와 죽음에 대한 진지한 공부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결국 나름대로의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에 불과한 한 인간이 그분의 의지, 그분의 처신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그 자체가 천부당만부당한 행위라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 상관없이 나를 사랑하시고 축복하신다는 결론에 도달합니다.
우리 인간은 그 누구를 막론하고 꿈꿉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지속되는 상승 곡선, 이 세상에서의 거듭되는 성공, 고통과 시련 없는 평화로운 인생. 그러나 근본적 결핍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인간 존재들에게 시련 없는 인생은 없습니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듯이, 우리 인생 안에 행복한 순간이 있었다면, 반드시 불행한 순간도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 인생의 단계 안에 화사한 꽃봉오리 같은 순간이 있었다면, 반드시 꽃이 떨어지는 낙화(落花)의 순간도 있기 마련입니다.
욥은 자신에게 다가온 참혹한 시련 앞에서, 하느님을 원망하기도 하고 부정하기도 하지만, 결국 그 시련을 통해 하느님을 더 깊이 생각하게 되고, 그분의 현존을 더 깊이 체험하게 됩니다.
결국 광대무변하신 하느님 앞에 자신은 한낱 티끌같은 피조물에 불과함을 깨닫습니다. 결국 자신의 인생사 모든 것, 성공도 실패도, 재산도 가족들도, 병고도 죽음도 그분 손길 안에 의탁해야 함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큰 시련이 다가올 때 우리는 더 자주 하느님을 찾아야겠습니다. 더 자주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 추구해야곘습니다. 더 그분께 집중해야겠습니다.
또한 갑작스레 우리에게 다가오는 참혹한 고통은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한 하느님 측의, 징벌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시련은 우리에게 하느님을 더 자주 생각하고 더 인격적 관계를 맺으라고 초대하는 초대, 더 성장하고 더 큰 그릇이 되라는 초대임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
<양립할 수 없는 두 욕구>
영화 ‘안시성’에 고구려 신녀가 한 명 등장합니다. - 영화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 고구려 수호신인 주몽의 활을 지니고 있으니 보통 신녀는 아니었나봅니다. 환시를 통해 미래를 본다는 이 신녀는 어렴풋하게나마 안시성의 몰락을 보게 됩니다. 그녀가 원하던 것은 자신이 사랑했던 안시성 성주 양만춘의 안위입니다. 안시성이 항복만 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는 당나라 황제의 말에 신녀는 목숨을 걸고 성주를 설득하려고 합니다. 5천 밖에 안 되는 안시성 군사들이 20만이 넘는 당나라 군사들과 맞서 싸우며 지쳐가던 때였습니다. 성주도 이제 당 태종의 마지막 공격 앞에서 처음 가졌던 기개를 잃어갑니다. 그래서 자신을 살리고자 하는 신녀를 반역죄로 칼로 칠 수 없습니다. 그도 사랑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때 성주를 시해하기 위해 들어왔지만 결국 성주를 위해 싸우기로 결심한 사물이란 사람이 그녀의 목을 벱니다. 싸움을 멈추게 만드는 욕구를 계속 자아내는 그 신녀를 살려두고는 안시성의 모든 군인들의 패기가 떨어질 것이기에 개인적인 사랑은 접어두어야 합니다. 그렇게 그녀의 목을 베고 다시 전의를 불사릅니다.
우리 안에는 이렇게 양립할 수도 없고 양립해서도 안 되는 두 욕망이 있습니다. 내 욕구와 하느님의 욕구입니다. 어떤 심리학자들은 자기 자신과 화해하라고 말합니다. 물론 맞는 말이지만 이것이 욕망과 관련될 때는 큰 문제가 제기됩니다. 심리학은 인간의 이해가 바탕이 되어야하는데 세속에서 인간을 이해하는 방식과 하느님께서 알려주신 진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특별히 심리학에서 정의하는 ‘자아’는 각자의 방식대로 설명이 되어 어떤 이들은 자아가 내 자신이라고 하고 그 자아의 욕망에 어느 정도는 맞춰줘야 정신이상이 생기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세상에서 허용되는 정도는 그 욕망을 풀어주고 지나치게 율법적으로 자아의 욕망을 억누르지 말라고 합니다.
일면 맞는 말 같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 것도 맞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아와 참 자신과 구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아를 참 자신과 동일시하면 우리 입장에서는 하와와 뱀이 하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뱀은 참 나의 육체적 욕구에 불과합니다. 그 육체적 욕구를 너무 억압하면 사람이 미쳐버릴 수 있다고 하여 육체적 욕구와 어느 정도 화해하라는 말은 어느 정도는 죄를 지으며 살라는 말과 같습니다. 매우 위험한 가르침입니다. 만약 안시성 성주가 신녀와 화해하였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자신과 성 주민들은 당나라 군대에게 몰살당하였을 것입니다. 자신의 욕구와는 절대 화해해서는 안 됩니다.
기원전 44년 3월 15일, 순백의 토가를 새빨간 선혈로 물들이며 줄리어스 시저는 그렇게 쓰러졌습니다. 광란의 상태에서 그를 찌른 암살자들은 모두 열네 명. 그들은 모두 한 때 시저와 반대편에 서서 그에게 칼을 겨누었던 인물들이었지만, 내전에서 승리한 시저가 그들을 아무런 조건 없이 용서해 준 이후 그를 도와 일하게 된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저가 베푼 관용은 비수로 돌아와 그의 심장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그는 지나간 과거를 깨끗이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였지만, 암살자들은 그러한 그의 뜻을 끝내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이해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우리 안의 악이 선으로 돌아오는 일은 생기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그러면 쟁기를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소의 힘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소는 앞으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뜻의 상징입니다. 그리고 내가 뒤를 돌아보는 것은 나의 뜻입니다. 뜻을 다른 말로 바꾸면 욕구라고 해도 되겠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원하시는 것과 내(자아)가 원하는 것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합니다. 문제는 이 두 욕구가 양립할 수 있다고 믿는데 있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가가형사 시리즈’, 네 번째 작품인 ‘악의’에 ‘노노구치 오사무’라는 사람이 나옵니다. 그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문단에 등단하기까지 줄곧 ‘히다카 구니히코’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았지만 결국 그를 살해함으로써 그의 육신뿐 아니라 작가로서의 성취까지 모두 지워버리려 했습니다. 이에 ‘가가 형사’는 노노구치가 자백했음에도 그가 살인을 한 진짜 동기에 대해 추적하던 끝에, 그의 ‘악의’가 바로 살인의 진짜 동기임을 밝혀냅니다. 노노구치는 히다카로부터 어두운 과거를 용서받고 그의 도움으로 작가의 꿈 또한 이룰 수 있었지만 그것을 굴욕과 패배로 받아들이고 그 ‘악의’를 주체하지 못한 끝에 히다카를 살해했다는 것입니다.
[출처: ‘친구 혹은 은인, 그 양립할 수 없는 두 이름’, jinks30님의 블로그]
선의와 악의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어느 하나가 강하면 다른 하나는 약해집니다.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면 소의 힘은 약해집니다. 자아의 욕망에 자꾸 시선을 주다보면 주님이 바라시는 것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자아의 욕구와 화해해서는 안 됩니다. 죽기까지 싸워 이겨야 주님의 뜻을 따를 수 있습니다. 자아의 욕구는 그 자체로 ‘악’이기 때문입니다.
|
오늘의 성인
성녀 테오도라 게랭(Theodore Guerin)
신분 : 수녀원장, 설립자
활동연도 : 1798–1856년
같은이름 : 게렝, 구에린, 데오도라,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라,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로, 테오도루스
안느-테레즈가 태어난 때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로랑과 이자벨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안느-테레즈와 마리-잔느(Marie-Jeanne)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안느-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가톨릭 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0살 때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는데, 당시 본당신부는 그녀가 언젠가는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안느-테레즈는 종종 집 근처의 해안가 바위에서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묵상과 반성 그리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안느-테레즈가 15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집으로 오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안느-테레즈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책임뿐만 아니라 가사와 정원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난과 희생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25살 무렵에 안느-테레즈는 루이에 쉬르 루아르(Ruille-sur-Loir)의 천주 섭리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오도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젊은 수녀 공동체였다.
그 후 테오도라 수녀는 렌(Rennes)의 생토뱅(Saint-Aubin) 본당 학교와 앙제(Angers) 교구의 술렌느(Soulaines)에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육하였다. 이 기간 중에 그녀는 앙제 학술원의 장학사로부터 교육적 공로에 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이어 테오도라 수녀는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아나(Indiana) 주(洲)의 빈세네스(Vincennes) 교구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개척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녀원의 미국 모원을 설치할 책임자로 사명을 부여받았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테오도라 원장수녀와 다섯 명의 동료 수녀들은 프랑스를 떠나 1840년 10월 22일 저녁 미국 인디아나 주의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Saint Mary-of-the-Woods)에 도착했다. 슬픔과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테오도라 원장은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하며 현명하게 수녀들을 이끌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자신을 맡기라”고 강조하였고,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테오도라 수녀 일행이 도착한 1840년 가을,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의 현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성당과 사제를 위한 숙소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장이 전부였다. 처음 맞이한 겨울 내내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작은 농장을 뒤흔들었고, 수녀들은 종종 추위와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리오?”라고 말했다. 사실 사도직 초기에 수많은 시련들이 몰려왔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편견, 특히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편견, 배신과 오해, 프랑스 본원과의 분리 작업, 참담한 화재로 모든 수확물을 잃고 곤궁함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질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테오도라 원장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견디어냈다.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고, 1842년 인디아나 주의 재스퍼(Jasper)와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세인트 프랜시스빌(St. Francisville)에도 학교를 열었다. 1856년 5월 14일 선종할 때까지 테오도라 원장은 인디아나 주 전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천주 섭리의 수녀회 또한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사랑은 테오도라 원장수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천주 섭리의 수녀회 수녀들과 가톨릭 교회 그리고 그녀가 섬겼던 모든 사람들을 사랑했다.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부당한 대우마저도 기회로 받아들였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여인으로 남았다.
테오도라 수녀는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간 동안 수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선물은 성덕과 덕행, 사랑과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녀의 삶 자체였다. 테오도라 원장수녀는 1998년 10월 25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그를 시성되었다.
첫댓글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