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와 다윗 왕
사무엘하 16 : 1 – 14
믿음은 마음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감정을 참지 못하고 울분을 내고 혈기를 부리는 것은 믿음이라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아들 압살롬이 반란하고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믿었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를 죽이고 왕이 되려고 왕궁을 침범하였습니다. 왕궁을 탈출하여 머리를 가리고 맨발도 울며 피신하는 다윗 왕에게 시므이가 돌을 던지며 저주했습니다(15:30).
다윗은 그들과 얼마든지 대항하고 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들과 맞서 싸우고 대항했다면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을 여호와께서 주신 것으로 믿고 그들과 대항하지 않았습니다.
아들을 피해 왕궁에서 도망하고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참는 것은 다윗 왕으로서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고 믿음으로 참았습니다.
그와 같은 일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대항하고 싸우게 됩니다. 그들과 대항하고 싸우는 것은 덕이 되기 보다는 더 큰 환란을 당하게 됩니다.
시므이는 사울 왕의 친족의 한 사람입니다(5). 베냐민 족속으로 혈통이 같은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되었을 때 자부심을 가졌을 뿐이지 사울과 가까이 지내는 사람은 아닙니다.
사울이 죽고 다윗이 왕이 되었다는 소문을 듣고 그는 다윗이 사울을 죽이고 왕이 된 줄 알고 감정적으로 다윗을 적대시 한 것입니다. 사울만 죽인 것이 아니라 베냐민 문중의 이스보셋(삼하4:1-12)과 아브넬까지도 다윗이 죽였다(삼하3:8-27)고 생각했습니다.
시므이는 사울을 죽인 죄값으로 다윗이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왕궁에서 쫒겨나고 피신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다윗 왕에게 돌을 던지며 저주했습니다.
“피를 흘린 자여 사악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를 이어서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암살롬의 손에 넘기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느니라”(7,8).
정치적으로 여당과 야당이 서로 적대적인 감정으로 싸우는 것처럼 베냐민 지파와 유다 지파가 적대적인 감정으로 서로 다툰 것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을 죽일 수 있었던 기회가 여러 번 있었지만 죽이지 않고 왕의 옷자락을 벤 것도 마음에 찔렸습니다(삼상24:5).
사울은 어떻게 죽었습니까?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패전하여 블레렛 사람이 쏜 화살에 맞아 중상을 입어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사울 자신이 칼을 뽑아 그 위에 엎드러져 죽었습니다(삼상31:4).
사울이 죽고 다윗이 이스라엘의 왕이 된 것도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세우라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무엘 선지자가 세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므이는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네게로 돌려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암살롬에게 넘기고 너는 피 흘린 자이므로 화를 자초하였다’고 말하며 다윗을 저주했습니다(8).
다윗의 신하 아비새가 다윗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죽은 개’라고 말했습니다. ‘죽은 개라’고 한 것은 시므이는 싸울만한 상대도 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왕을 저주하는 시므이를 보고 아비새가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라고 하며 건너가서 그의 머리를 베겠다고 왕에게 말했습니다(9).
그러나 다윗은 분노한 아비새에게 ‘스루야의 아들들아’라고 다정스럽게 불렀습니다.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10) 라고 말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들었을 때 선지자 나단이 책망하고 전해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시므이의 저주가 정치적인 감정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저주하라고 하신 것으로 알았습니다.
다윗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와 동침하고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그의 남편까지 죽였습니다. 그때 나단은 ‘칼이 네 집에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하며 다윗 왕을 크게 책망했습니다(삼하12:10).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6)라고 말씀했습니다.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해 주는 말씀은 생명을 살리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잘못을 책망하고 바르게 하는 말씀이라야 생명을 살리고 영생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책망 없는 축복은 생명을 죽이고 영혼을 멸망 받게 하는 무서운 독입니다.
나단 선지자는 자신의 죄를 숨기고 있는 왕 다윗에게 ‘칼이 네 집에서 영원히 떠나지 않을 것’을 말하며 무섭게 책망했습니다.
뜻하지 않은 어떤 불행한 일을 당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는 것은 성도의 지혜입니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를 비는 것이 축복받은 믿음의 사람입니다.
다윗은 아비새와 모든 신하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숨기지 않고 다 말했습니다. 그리고 아들 암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가 자신의 죄로 인한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그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 ‘여호와께서 그에게 명령하신 것이니 그가 저주하게 버려두라’(10,11).
다윗은 아들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으로 여호와께서 주신 것이라고 말한 것은 다윗의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자신의 잘못은 말하지 않고 상대방을 잘못한다고 생각하며 그를 나무라고 정죄하고 몇 갑 절로 복수하고 저주 하고 싸웁니다.
신하들과 함께 하는 백성들에게 압살롬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가 여호와의 명령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왕으로서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다윗은 자존심을 버리고 그의 저주가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말했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남를 탓하고 정죄하는 사람을 모두 비웃습니다.
만약에 압살롬과 시므이를 대적하고 죽였다면 다윗은 여호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엄청난 죄를 지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단 선지자를 보내어 책망했습니다. 그때 다윗은 ‘내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었습니다. 다윗은 용서받았습니다.
사울 왕은 자신의 잘못을 책망하는 사무엘에게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삼상15:12,13). 사무엘은 변명하는 사울에게 잘못을 책망했지만 ‘나는 실로 여호와의 목소리를 청종하여 아말렉 사람들을 진멸하였다’(삼상15:20)라고 사울은 말했습니다.
그때 사무엘은 ‘왕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여호와께서도 왕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셨다’라고 말했습니다. 그후 사울에게는 하나님의 영이 떠나고 악령이 들었습니다(삼상15:23;16:14).
사울은 매우 불행하게 살다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아들과 함께 죽었습니다. 사울의 구원에 대해서 성경은 말씀하지 않아서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큰 죄를 범했을지라도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용서를 빌면 더 큰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작은 죄라고 해서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게 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다윗은 저주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로해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12).
‘혹시’란 말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어쩌다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희박하지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윗은 자비가 많으신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원통함을 보시고 혹시 그 저주를 내게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을 믿었습니다.
다윗은 시므이가 저주하는 것을 ‘나의 원통함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원통함’은 사악한 행동을 의미하는 말로서 시므이가 저주하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여호와께서 감찰하신다’는 말은 시므이의 저주가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여호와께서 다 아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윗이 합당하지도 않은 그의 저주를 듣고 원통하게 당하고 있다는 것도 여호와께서 감찰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저주를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이 다윗의 믿음입니다. 이러한 다윗의 믿음은 시므이의 저주를 참고 견딜 수 있게 한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비가 많으신 분이라는 것을 아는 믿음입니다. 자기를 긍휼히 여기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사람들은 사실이 아닌 말을 듣고 누명을 씌우고 저주할 때 화가 치밀어 다투게 됩니다. 다투면 화가 사그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화를 입게 되어 화병이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다투지 말고 다윗처럼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을 바라봅시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원통함을 아시고 갚아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원통함을 참고 견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를 참고 이겨내기가 얼마나 힘들고 어려웠던 가를 성경은 말씀하셨습니다. “왕과 그와 함께 있는 백성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14).
아들의 반역으로 머리를 가리고 맨발로 울며 피신하는 다윗에게 시므이의 저주는 아픈 상처에 소금을 치는 것과 같은 큰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시므이가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을 때 다윗과 함께 하는 그들은 피곤하여 쉬었습니다(14)
그들이 ‘다 피곤하여 한 곳에 이르러 거기서 쉬니라’라고 성경이 말씀한 것은 압살론의 반역과 시므이의 저주를 받으며 도망친 다윗과 함께 있는 백성들의 몸과 마음이 녹초가 된 것을 함축합니다.
사람들이 ‘자식들이 잘 되는가 봐라’, ‘물에 빠져 죽으라’, ‘쫄닥 망해라’라는 저주를 듣고 참는 것은 몸과 마음은 죽을 정도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러한 저주가 그대로 받는 것은 아닙니다. 도리어 그 저주 때문에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선으로 갚아 주십니다.
저주(咀呪)는 축복의 반대되는 말로서 사람들에게 재앙이나 불행이 닥치기를 기원하는 주술적인 말입니다.
저주 때문에 원통한 것이 다윗에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도 원통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는 여호와께서 그 원통함 때문에 선으로 갚아 주시는 복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 오시는 날까지 변함없는 믿음을 지키다가 주님 부르실 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합시다.
첫댓글 좋은 성경 자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늘은 더 높아만 가고 바람은 부쩍 차가워지며 바람에 흩어지는 낙엽들에 가을 정취가 가득하네요.
계절의 작은 변화에 삶의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시면서 오늘도 아름답고 힘차게 파이팅 하시길 기원하며
웃는얼굴 넓은 마음으로 행복을 담고 사랑을 담아 웃음보 터지는 아름다운 하룻길이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