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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척자(開拓者)★
1. 노숙 [186~1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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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일류신은 김명천의 통역을 맡은 신해봉의 말이 끝났을 때 빙그레 웃었다. 아무르 강가에 위치한 일류신의 별장 안이다. 이층 창밖으로 저녁노을이 아무르 강 위에 넓게 번져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렇다면.”
붉은 곰 일류신이 느리게 말을 이었다.
“우리가 제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에 북한 측은 철저한 방해 공작을 하겠군 그래.”
신해봉의 통역을 들은 김명천이 따라 웃었다.
“그래서 우리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일류신씨.”
김명천도 우리라는 단어를 끼워 넣었다.
“한랜드에는 러시아인 인구가 절반 이상은 될 테니까요.”
“그렇소.”
이제는 정색한 일류신이 붉은 얼굴로 김명천을 보았다.
“애써 준비해 놓은 저녁 식탁에 불청객이 나이프와 포크만 들고 달려든 꼴이야. 뻔뻔스런 놈들 같으니.”
“이번에도 일류신씨의 협조가 필요합니다.”
“당연히 해야지. 한랜드도 내 사업장이나 마찬가지니까.”
아직 해도 지지 않았지만 앞에 놓인 보드카 잔을 들어 한 모금에 술을 삼킨 일류신이 말을 이었다.
“러시아 내에서의 방해공작은 내가 주도해서 처리하겠소. 아무래도 러시아에서 기반을 굳힌 내가 당신들보다는 유리할 테니까.”
“고맙습니다.”
“한랜드 안에서의 치안은 당신 조직과 내가 합동으로 운영하도록 합시다.”
“알겠습니다.”
“내가 듣기로는 당신은 한랜드의 인력 공급에 대한 모든 권한을 위임 받았다던데.”
눈을 가늘게 뜬 일류신의 표정이 은근해졌다. 신해봉의 통역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일류신이 말을 이었다.
“김, 나에게 한랜드로 이주할 러시아인 20만명분의 권한을 떼어주지 않겠소?
내가 지금까지 한번도 댓가를 바라지 않았다는 것은 기억하고 계실거요.”
김명천은 신해봉의 통역을 듣자 빙긋 웃었다.
일류신은 지금부터 사업을 하려는 것이다. 한랜드로 이주할 러시아인들로부터 1인당 10불씩만 이주 커미션을 받는다고 해도 20만명이면 200만불이 될 것이다. 러시아인들은 100불도 내려고 할 테니 그렇게 된다면 2000만불이다.
“이주 커미션을 받으실 계획입니까? 그렇다면 고려인이나 조선족, 또는 북한인들을 모을 때에도 브로커가 생기게 되고 혼탁해질 텐데요.”
김명천이 부드럽게 말하자 일류신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머리를 한쪽으로 기울였다.
“아니, 김, 당신도 그럴 작정이 아니었소? 이주민에게 이주 수수료를 받아야 되지 않겠소?”
“난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조직원들은 뭘로 먹여 살릴거요?”
“각각 사업체를 세워 주던지 직장에 근무하도록 할 계획입니다.”
“조직 관리가 그렇게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붉은 얼굴을 굳힌 일류신이 다시 손가락 두 개를 펴 보였다.
“김 20만명이요. 난 그들에게서 1인당 100불에서 500불까지를 받고 이주시킬거요.
한랜드는 꿈의 땅이지. 아마 그들은 한랜드에서 수수료의 몇 만 배 소득을 올릴 테니까 돈이 아깝지 않을거요.”
일류신의 말은 점점 열기를 띄워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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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됩니다.”
김명천의 말이 끝났을 때 강철규가 단호한 표정으로 말했다. 밤 12시가 지난 시간이었지만 방안에 모인 세 사내의 얼굴은 긴장으로 굳어져 있었다. 시내 사무실로 돌아온 김명천이 강철규를 불러 신해봉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고 있는 것이다. 강철규의 말이 이어졌다.
“20만 명만 해도 엄청난 숫자이고 그놈은 거액을 챙기겠지만 그것으로 끝날 놈이 아닙니다. 곧 50만, 1백만으로 늘어났다가 한랜드의 모든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뜯어낼 것입니다.”
옆에 앉은 신해봉이 잠자코 있는 것은 강철규의 말에 공감한다는 표시로 보였다.
“제 생각입니다만.”
심호흡을 한 강철규가 조심스런 시선으로 김명천을 보았다.
“피터 일류신은 북한보다 더 한랜드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많습니다. 만일 그 놈이 한랜드안의 러시아 주민을 기반으로 마피아 조직을 확대한다면 지금의 러시아 상황보다 더 나빠질 것입니다.”
그러자 신해봉이 강철규의 말을 받았다.
“한랜드 내부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는 승리하건 패배하건 손해를 입게 됩니다.”
김명천은 팔짱을 낀 채 둘의 말을 듣기만 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신해봉과도 이야기를 나누었고 같은 말이 되풀이되고 있었지만 결론이 나지 않은 것이다. 그때 김명천의 마음을 읽은 듯이 강철규가 입을 열었다.
“사장님, 그렇다고 지금 당장 피터 일류신이나 북한 특무조의 제의를 거절해서 상황을 악화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며칠 여유를 갖고 대책을 검토 해보도록 하시지요.”
“이미 결론은 나 있소.”
김명천이 낮게 말했지만 방안에는 순식간에 무거운 정적으로 덮여졌다.
둘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한랜드에는 북한 세력도, 피터 일류신의 마피아 조직도 발을 붙이면 안됩니다. 한랜드는 때묻지 않는 한민족의 새로운 영토로 보존되어야 합니다.”
심호흡을 한 김명천이 정색하고 둘을 번갈아 보았다.
“조직을 확대해야겠소. 현재 기동 인력의 3배로, 가능하면 4배도 좋소. 모두 최신 무기로 무장시키고 철저한 훈련과 의식화 교육을 시켜야겠소.”
신해봉과 강철규가 머리를 끄덕였고 김명천의 열 띈 목소리가 방을 울렸다.
“결국은 한랜드도 힘이 있어야 지킬 수 있다는 것이 확인된 셈이오. 힘이 없으면 힘있는 자의 제물이 되는 것은 고금의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으니까.”
다음날 오전, 김명천은 일성회장 안재성을 찾아 쌍발 프로펠러 비행기를 타고 한랜드로 날아갔다. 지난번에는 헬기를 이용하여 장장 7시간에 걸친 비행을 했지만 이번에는 3시간 안에 한랜드의 중심부에 도착했다.
한랜드의 수도가 건설될 지역이었고 비행장 활주로가 임시로 닦여져 있었기 때문이다. 안재성은 이곳을 한성이라고 명명했는데 서울의 옛 이름이 한성이라는 뜻도 있었지만 한랜드와 일성에서 한자씩 떼어 붙인 느낌도 들었다.
“아니, 김사장, 왠일이야? 바쁠텐데.”
사무실로 사용하는 통나무 저택으로 들어섰을 때 안재성이 현관 앞까지 나와 김명천을 맞았다. 얼굴에 환하게 웃음을 띄우고 있다.
“상의 드릴 것이 있어서 갑자기 찾아뵈러 왔습니다.”
김명천이 인사하자 안재성은 손을 잡아끌었다.
“언제든지 좋아. 김사장 방문은 환영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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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나무 저택 창밖으로 한랜드의 광활한 대지가 보였다. 오늘은 구름 한 점 없는 푸른 하늘이 펼쳐졌고 아직 대지에 흰 눈이 쌓여 있었지만 지평선 쪽의 타이거 삼림지대는 검은 숲으로 끝없이 이어졌다.
이윽고 김명천의 말이 끝났지만 응접실 안에는 한동안 무거운 정적이 덮여졌다. 소파에는 안재성회장을 중심으로 비서실장 박수근, 전자사장 전기용까지 불려 와 있었으니 일성그룹의 최고 지도부가 모인 셈이었다.
안재성회장이 정적을 깨뜨린 것은 다시 몇 초쯤이 지난 후였다.
“그런 내막이 배후에 깔려져 있었군.”
건조한 목소리로 말한 안재성이 길게 숨을 뱉았다.
“산너머 산이라더니 만일의 경우에 일이 잘못되면 한랜드의 주인이 바꿔지게 되는 것 아닌가?”
“그럴수는 없습니다.”
김명천이 말을 받았다.
박수근과 전기용은 감히 나서지도 못할뿐더러 갑자기 대책이 생각날리가 없다. 모두 아연한 표정으로 눈만 껌벅이고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정색한 안재성이 김명천을 보았다.
“김사장, 자네는 어떤 대책이 있는가?”
“먼저 자체의 힘을 강화시키겠습니다.”
모두의 시선을 받은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고려인을 중심으로 자위대를 편성하도록 했습니다. 현재의 조직에서 4배의 병력인 2000명 수준의 자위대가 본격적인 한랜드 입주가 시작될 다음달 초까지 편성될 것입니다.”
“그런가?”
“구 소련군 출신의 고려인들이 자위대의 중심이 될 것이고 한국에서도 간부급을 모집할 계획입니다.”
“예산은 충분한가?”
“아직 부족하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전폭 지원하겠네.”
안재성이 머리를 돌려 박수근을 보았다.
“지원하도록.”
지시를 받은 박수근이 앉은 채로 머리를 숙였다.
“알겠습니다. 회장님.”
“무기는 러시아군에서 흘러나온 무기를 암시장에서 구입하면 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뭔가?”
“한랜드에서 자위대용으로 공식 통로를 거쳐 러시아 정부에 무기 구매 요청을 하도록 해주십시오. 여기 품목별 수량이 있습니다.”
탁자위에 서류를 내려놓은 김명천이 쓴웃음을 지었다.
“물론 여기에 적힌 공식적인 구매량은 우리가 암시장에서 구입할 물량의 30%정도 입니다.”
안재성이 잠자코 머리만 끄덕였다. 한랜드는 내부 치안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로 합의가 되어 있지만 무장 정도는 러시아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이다.
한랜드는 군대를 보유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심호흡을 한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따라서 한랜드는 공식 자위대 외에 별도의 군 조직이 설립되는 것입니다. 이 두 개의 조직을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됩니다. 회장님.”
“자위대만으로는 부족하지.”
안재성이 말을 받았다.
이제 그의 목소리에도 활기가 띄워져 있었다.
“김사장이 두 개의 조직을 맡아줘야겠어. 우리가 최대한 지원을 해줄테니까.”
“그래서 북한과 일류신 조직과는 당분간은 유화 정책을 쓰도록 하겠습니다.”
“그 방법밖에 없어.”
머리를 끄덕인 안재성이 동의했다.
“우리가 힘을 갖출 때까지는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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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에 안세영씨가 있다면서요?”
불쑥 민경아가 물었으므로 김명천은 몸을 돌렸다. 한랜드에서 돌아온 날 밤이었다. 밤 11시가 지난 시간이어서 저택은 조용했고 바람소리가 크게 울렸다. 저녁 무렵부터 불기 시작한 바람은 점점 강해지고 있었다. 김명천이 민경아를 정색하고 보았다.
“난 모르겠는데.”
“있다고 들었어요.”
창에 커튼을 가린 민경아가 시선을 내렸다.
흰 가운 차림이어서 맨발에 슬리퍼를 신었는데 화장기가 없는 얼굴은 야위어 보였다. 민경아는 며칠 전부터 아무르교역에서 자금 업무를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안세영이 한성에 있거나 말거나 무슨 상관이야?”
이제는 김명천이 웃음띈 얼굴로 물었다.
“왜 그걸 묻는거지?”
“왜냐하면.”
창가의 의자에 앉은 민경아가 가슴 앞의 가운 깃을 여미는 시늉을 했다.
“안세영씨가 오늘 오후에 나한테 전화를 해왔기 때문이죠.”
“그래서?”
김명천이 민경아의 앞쪽 의자에 앉으며 물었다.
여전히 알굴에는 웃음기가 배어져 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하려고 그래?”
“안세영씨가 당신을 오빠라고 부르더군요.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면서.”
“……”
“어느새 사이가 그렇게 되었지요? 정말 재빠른 사람들이야.”
김명천이 눈을 가늘게 뜨고 민경아를 보았다.
민경아는 머리를 방안의 TV쪽으로 향하고 있어서 옆 얼굴만 보였는데 차분한 표정이었다.
“오빠한테 내일 오전에 전화 해줬으면 좋겠다고 하더군요.”
“자자. 피곤하다.”
“먼저 자요.”
그러자 자리에서 일어선 김명천이 민경아에게 다가가 어깨를 움켜쥐었다.
“일어나.”
“싫어.”
“바보같이 투정부리지 말고.”
“기분 나빠.”
“제가 나한테 오빠라고 부르겠다는데 어쩌란 말이야?”
“어쨌던 구역질나.”
김명천은 민경아의 겨드랑이에 두 손을 넣어 안아 일으켰다. 안세영의 소행에 대해서 놀랍거나 화가 나지 않는 것은 그럴만한 성격임을 겪어왔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안세영은 갖고 싶은 것은 차지했고 군림하며 살아온 터라 약하고 가지지 못한 자의 좌절감과 인내를 배우지 못했다. 민경아의 다리까지 들어 안아버린 김명천은 침대로 다가갔다. 민경아의 숙소는 시내에 있었는데 요즘 자주 만나지는 못했다.
오늘은 민경아가 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다. 침대에 나란히 누웠을 때 눈을 감고 있던 민경아가 낮게 물었다.
“우린 어떻게 되는 거지?”
김명천이 머리를 들어 민경아를 보았다. 아직 불을 환하게 켜져 있어서 민경아의 감은 눈거풀이 떨리고 있는 것도 보였다.
“한랜드의 기반이 굳어지면.”
김명천이 민경아의 허리를 감아 안으면서 말했다.
“그때 결혼하자. 어때? 해주겠지?”
“생각해보고.”
그때서야 눈을 뜬 민경아가 두 손으로 김명천의 어깨를 미는 시늉을 했다.
“그동안 누이동생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까?”
민경아가 다시 안세영을 끄집어내었으므로 김명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김명천이 어제 한랜드에 다녀왔습니다.”
하명호가 보고하자 안국철은 머리를 들었다.
“안재성을 만난 모양이군.”
“그렇습니다. 특무장 동지.”
“결정을 해야 될테니 바쁘겠지. 아마 남조선 정부와도 상의를 할 것이고.”
차가운 표정으로 말한 안국철이 창문을 턱으로 가리켰다.
“하상위, 창문을 조금만 열어라. 공기가 너무 탁하다.”
“예, 특무장 동지.”
하명호가 창쪽으로 서둘러 다가가더니 창문을 반쯤 열었다.
그러자 차거운 바깥 공기가 휘몰려 들어왔으므로 안국철은 어깨를 움추렸다. 하바로프스크 외곽의 2층 저택 안이었는데 임대한지 일주일밖에 되지 않아서 내부 정리도 아직 마치지 못했다. 이곳이 시베리아 지역의 임시 본부인 것이다.
오전 8시가 되어가고 있었지만 저택에 상주하는 20여명의 본부 요원은 모두 일과를 시작한지 오래였다. 안국철이 미제 담배를 꺼내 물었으므로 하명호가 재빠르게 라이터를 켜 담배 끝에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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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위.”
담배 연기를 내뿜은 안국철이 정색한 얼굴로 하명호를 불렀다.
“예, 특무장 동지.”
“오늘 김명천에게 다시 연락을 하도록. 오전 10시경이 좋겠다.”
“예, 어떤 연락을 말입니까?”
“기한이 이틀 남았다고 해라. 모레 정오까지 결과를 통보 해달라고 전하도록.”
“알겠습니다.”
“이제 창문을 닫도록. 춥다.”
“예, 특부장 동지.”
창가로 다가간 하명호가 창문의 밑쪽 손잡이를 쥔 순간이었다. 안국철은 유리창에 무언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고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자 창 앞에서 이쪽에 등을 보인 채 서있던 하명호가 한걸음 물러서더니 머리를 숙여 제 가슴을 내려다보는 것이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하명호는 털석 무릎을 꿇더니 앞으로 넘어지면서 얼굴을 창틀 밑의 벽에 받았다.
“아니.”
외마디 고함과 함께 소파에서 벌떡 일어선 안국철의 시선이 창문으로 옮겨졌다. 그 순간 안국철의 몸은 석상처럼 굳어졌다. 유리창에 동전만한 구멍이 뚫려 있었던 것이다. 저격이다.
“비상!”
안국철이 악을 쓰듯 외친 것은 무의식적인 반응이었지만 현 상황으로써는 최선이었다. 방바닥으로 몸을 굴린 안국철이 다시 외쳤다.
“비상! 비상!”
그로부터 5분쯤이 지났을 때 안국철은 아랫층 응접실로 내려와 있었는데 주위에는 대여섯 명의 부하들이 둘러섰다.
“저격 각도로 보면 건너편 숲입니다.”
부하 하나가 흥분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여섯명을 숲으로 보냈습니다. 특무장동지.”
안국철은 이를 악문 채 서 있었는데 이제 얼굴은 차겁게 굳어져 있었다. 심복부하 하명호는 조금 전에 숨이 끊어진 것이다. 유리창을 깨고 들어온 총탄이 정확하게 하명호의 심장까지 관통했기 때문이다. 놈들은 자신을 노린 것이다. 창앞에 선 하명호를 자신으로 오인하고 저격했다.
“김명천이다.”
이윽고 잇사이로 말한 안국철이 번들거리는 눈으로 부하들을 둘러보았다.
“놈이 이렇게 회답을 해온 것이다.”
둘러선 부하들이 모두 숨을 죽였을 때 안국철의 목소리가 응접실을 울렸다.
“그렇다면 나도 행동으로 보여주지.”
신해봉이 서둘러 방안으로 들어서더니 다급하게 말했다.
“사장님, 큰일났습니다.”
머리를 든 김명천을 향해 신해봉이 말을 이었다.
“북한 특무장의 보좌관이 저격을 받고 죽었습니다. 특무장은 그것이 우리들의 소행인 줄로 알고 있습니다.”
신해봉이 테이블에 두 손을 짚고는 가쁜 숨을 골랐다.
“조금 전에 특무조에 심어놓은 정보원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지금 특무장은 우리에게 복수를 하겠다면서 이를 갈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긴장한 김명천이 크게 뜬 눈으로 신해봉을 보았다.
“피터 일류신이군.”
“그렇습니다.”
신해봉이 무겁게 머리를 끄덕였다.
“일류신이 경쟁세력을 제거하려는 것입니다. 그 자에게 북한인들은 장애물일테니까요.”
“오해를 풀어야 되지 않을까?”
“당장에 연락원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일단은 오해를 풀고 나서 정리를 하지.”
길게 숨을 뱉은 김명천이 다시 신해봉을 보았다.
“연락원으로 누구를 보내는 것이 낫겠나?”
“송규호를 보내지요.”
송규호는 고려인이지만 북한에 여러 번 왕래했고 북한인들과 교류가 많았으므로 이번 일에 적격이었다. 김명천이 머리를 끄덕이자 신해봉은 서둘러 방을 나갔다. 이번 사건은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일을 더 꼬이게 만든 것이다. 북한이 이쪽의 해명을 듣고 나면 피터 일류신 조직에 원한을 갚으려고 할 것이며 두 조직이 전쟁 상황이 된다면 이쪽도 온전해질 수가 없다. 다시 신해봉이 방으로 들어섰을 때는 30분쯤 후였는데 강철규와 동행이었다.
“송규호가 출발했습니다.”
앞쪽 소파에 앉은 신해봉이 말했을 때 강철규가 찌푸린 얼굴로 김명천을 보았다.
“사장님, 대책을 강구해 놓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두 세력 간에 전쟁이 일어난다면 우리가 중립을 지킬 수만은 없게 될 것입니다.”
김명천이 머리를 끄덕였다.
“우리가 입장을 분명히 하지 않으면 두 세력이 제휴할 수도 있겠지. 한랜드를 양분하자는 조건으로 말이야.”
혼잣소리처럼 김명천이 말했다.
“양측의 피해가 나도록 기다릴 수만은 없을거야.”
“그렇습니다.”
강철규가 정색하고 말을 이었다.
“우리도 어느 한 곳과 제휴를 해야 됩니다. 그래서 제 생각입니다만 아무래도 북한쪽하고 손을 잡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그때 김명천의 시선을 받은 신해봉이 강철규의 말을 받았다.
“제 생각도 같습니다. 두 세력 모두 우리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지만 북한은 아무래도 동족이니까요. 같은 조건이라면 동족에게 나눠주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해봉의 말을 마쳤을 때 김명천은 쓴웃음을 지었다.
“나눠준다구?”
김명천이 낮게 되묻자 신해봉과 강철규의 얼굴에도 일그러진 웃음기가 떠올랐다. 그때 김명천이 말을 이었다.
“오늘은 송규호가 갔으니까 저쪽 반응을 보고나서 내가 직접 안국철을 만나겠어.”
김명천이 앞에 앉은 둘을 번갈아 보았다.
“안국철하고 다시 협상을 하겠어. 그 자의 요구 조건은 다 들어줄 수가 없으니까”
강경한 말투였으므로 둘은 긴장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