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김과 봉사의 리더십,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2015년 2월 우루과이에서는 5년 임기의 대통령이 교체되었는데, 특이하게도 세간의 이목은 신임 대통령이 아니라 퇴임하는 호세 무히카 전 대통령에게 쏠렸습니다. 임기 내내 지속된 섬김과 봉사의 리더십, 청빈하고 서민적인 삶에 국민들은 크게 환호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그를 가리켜 우리 시대 참지도자요 현자(賢者)라며 크게 칭송하셨습니다.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그는 웅장하고 화려한 대통령궁을 노숙자 쉼터로 내놓았습니다. 자신은 난방도 제대로 되지 않는 작고 허름한 부인 소유의 농장에서 기거했습니다. 대통령 사저 밖에는 언제나 손수 세탁한 빨래가 내걸려 있었고 필요한 식수는 본인이 직접 잡초가 무성한 마당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퍼오곤 했답니다. 폐차 직전의 털털거리는 고물 자동차를 손수 몰고 출근했으며 병원을 이용할 때도 일반 시민들과 똑같이 순서를 기다렸답니다. 나라로부터 받은 급여는 대부분 기부에 썼습니다. 임기 내내 월급의 90%를 절대빈곤층과 소상공인을 돕는 자선단체에 건넸습니다. 그의 손에 남는 월 소득은 우루과이 노동자의 월평균 소득 정도였습니다. 때문에 그는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대통령’이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우리에게 큰 경종으로 다가옵니다.
제 평생을 이렇게 살아왔습니다. 저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단순하게 살 뿐입니다. 사람이 사는 데 그다지 많은 것이 필요치 않습니다. 제 인생철학의 핵심은 절제이며 제 정치철학의 요점은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부적격한 지도자들, 언행일치가 안 되는 지도자들, 자기관리 등 기본도 안 되는 지도자들로 인해 얼마나 많은 백성들이 끔찍한 고통을 겪었습니까? 한자리 차지하면 갑자기 신神이라도 된 듯이 어깨에 힘이 들어가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며 아랫사람들을 억압하는 지도자들, 이제는 시대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지닌 리더, 백성들을 아끼고 섬기는 지도자, 자신에게 주어진 권위를 봉사를 위해서 사용하는 지도자의 시대가 왔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서간을 통해 지도자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명쾌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사실 감독은 하느님의 관리인으로서 흠잡을 데가 없어야 합니다. 또한 거만하지 않고 쉽사리 화내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술꾼이나 난폭한 사람이나 탐욕스러운 사람이 아니라, 손님을 잘 대접하고 선을 사랑해야 하며, 신중하고 의롭고 거룩하고 자제력이 있으며, 가르침 받은 대로 진정한 말씀을 굳게 지키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건전한 가르침으로 남을 격려할 수도 있고 반대자들을 꾸짖을 수도 있습니다."(티토 1,7-9)
성왕(聖王)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이런 면에서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멋진 국왕이 한 분 있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975∼1038년)입니다. 헝가리에 가면 얼마나 스테파노가 존경받는 인물인지 잘 알 수 있습니다. 그는 헝가리의 수호성인이면서도 정교회 쪽으로부터도 존경과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헝가리 국민들 가운데 스테파노란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아주 많습니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는 이 시대의 ‘대세남’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닮은 점이 많았습니다. 다른 무엇에 앞서 무척이나 청빈했습니다. 왕으로서 화려한 복장을 피하고 아주 소박하고 단출한 옷을 즐겨 입었습니다. 굶주리던 백성들을 위해 왕실의 곳간을 활짝 열어 아낌없이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자신의 왕관을 하느님께 봉헌했으며 자신의 손에 맡겨진 헝가리 왕국 안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최선을 다했습니다. 또한 세상과 하느님 나라를 자신의 생애 안에 잘 조화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더불어 신앙과 삶, 기도와 활동 사이에 균형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그는 현대 성인의 선구자요 리더의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스테파노가 아들 에메리코에게 보낸 편지 안에는 그의 탁월했던 신앙심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천천히 읽어보면 아들에게만 쓴 것이 아니라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 오늘을 살아가는 바로 나를 위해 남긴 편지라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더불어 이 땅의 모든 지도자가 귀를 기울여야 할 성왕 스테파노의 유언입니다.
사랑하는 아들아, 잘될 때 교만해지지 말고 역경에 처할 때 실망하지 않도록 굳건한 사람이 되어라. 하느님께서 현세와 후세에 너를 높여 주시도록 너 자신을 낮추어라. 중용지덕을 지니도록 하여라. 어떤 사람이건 너무 지나치게 처벌하거나 단죄하지 마라. 온유한 사람이 되어 정의를 거스르는 것을 피하여라. 성실히 처신하되 누구에게도 수모를 주지 마라. 정결한 사람이 되어 죽음의 충동인 사악한 유혹을 피하라. 이와 같은 것들이 왕관을 씌워 주는 덕행들이다. 이런 덕행이 없다면 이 지상에서 제대로 왕직을 수행하지 못하고 영원한 나라에 도달하지 못한다.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의 성모신심
스테파노의 성모님을 향한 사랑은 각별했습니다. 그는 헝가리 왕국이 성모님의 푸른 망토 안에 머물기를 간절히 원했습니다. 더불어 헝가리 모든 백성이 성모님을 사랑하고 공경하도록 적극 장려했습니다. 그래서 성모 승천 대축일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했습니다. 얼마나 성모님을 사랑했던지 그는 성모님 축일에 임종하기를 간절히 원했는데 마침내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는 1038년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선종했습니다. 임종의 고통 속에서도 그는 신생 헝가리 왕국을 성모님께 맡기고 성모님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그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숨이 멈추는 순간까지 성모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렇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스테파노는 하느님 앞의 한 신앙인으로서 성모신심에도 투철했지만 왕으로서 권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도 각별한 성모신심을 드러냈습니다. 그도 세상을 통치해야 하는 왕이었던지라 불가피하게 군대를 동원할 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공포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영주들이 반기를 들었는데 어쩔 수 없이 군대를 파견하게 되었습니다. 출정식 전에 스테파노는 성당에 들어가 무릎을 꿇었습니다. 모든 것이 하느님 뜻에 따라 평화로이 이루어지도록 오래도록 기도를 올렸고 성모님의 특별한 중재와 도움을 청했습니다. 그의 기도가 하늘에 닿았던지 사태는 원만하게 해결되었고, 반군을 진압한 후에도 그는 패장들을 관대하게 끌어안는 여유를 보여 주었습니다.
왕권의 상징이었던 왕관과 홀, 그리고 검까지도 하느님과 성모님께 봉헌했던 참신앙인 스테파노였습니다. 성모님께 자신의 왕관을 봉헌한 스테파노의 오른손은 아직도 잘 보존되어 매년 헝가리의 성 스테파노 대축일 때마다 부다페스트 거리를 순회하며 헝가리 백성들을 축복하고 있습니다.
* 양승국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저서로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 때까지』 『아저씨, 신부님 맞아요?』 『축복의 달인』 『친절한 기도레슨』이 있다.
[생활성서, 2016년 2월호, 양승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