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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님의 느티나무에서 원문보기 글쓴이: 친타
+ 찬미 예수님
주님의 이름으로 평화를 빕니다.
오늘부터 요셉 이야기가 들어갑니다.
‘요셉’ 하면 무엇이 생각이 나십니까?
꿈 얘기도 생각이 나고요. 이집트로 팔려 간 이야기도 생각이 나고요.
또 보디발의 아내에게 성적 유혹을 당했을 때 물리치는 요셉의 모습에서,
성적 유혹을 당했을 때 우리가 어떻게 물리쳐야 하는지 하나의 원칙도 찾아내게 됩니다.
여러분들 꿈 잘 꾸십니까?
저도 꿈을 꾸기는 잘 꾸는데 깨어나면 생각이 거의 나지를 않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스토리 있는 꿈은 거의 아닌 것 같고요.
하지만 꾸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 꿈.
아버지가 2004년에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셨을 때가 76세 셨는데 한 번도 아버지는 제 꿈에 나타나질 않았습니다.
그래서 너무 좋은 곳에 가서 계시기 때문에 여기 오실 생각이 별로 없으신가 보다.
한편으로는 천국에 계신 것이 확실하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래도 가끔 제 꿈에 좀 오시어 천국이 어떤지, 또 예수님 만난 이야기,
성모님 만난 이야기들을 알려주시면 제가 교우들한테 전달할 텐데 한 번도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꿈에 관한 이야기도 많죠?
예를 들어서 새벽에 꾸는 꿈이 맞는 꿈이다, 뱀 꿈은 재수가 있다, 돼지 꿈도 재수가 있다,
응가하는 꿈은 돈이 들어오는 꿈이다, 이가 빠진 꿈은 몸에 불행이 온다 등등.
아무튼 동양 문화권에서는 이 꿈에 대한 신뢰가 은근히 큽니다.
창세기 37장에는 꿈해몽의 명인인 요셉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저는 가끔 꿈꾼 후 이 뜻이 무언지 괜히 궁금할 때 요셉 에게 한번 해몽을 들어봤으면 하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요셉은 누군지 아시죠?
요셉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이사악의 손자, 즉 아브라함의 증손입니다.
이사악이나 야곱의 결혼 생활과 또 그들의 신앙생활에는 참 재미난 얘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일일이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구약 성서를 펴놓고 읽어주시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어떤 해설도 불필요할 만큼 쉽고 재미난 이야기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이고, 요셉은 야곱의 막내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야곱은 요셉을 특별히 편애한 것으로 나옵니다.
그래서 10명의 형들은 질투하고 요셉을 미워했습니다.
이 형들은 요셉과는 배가 다른 형제들입니다.
이러한 질투와 미움은 결코 좋은 결과,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일 의논을 하지만 한 형 르우벤이 요셉을 불쌍히 여기고 죽이는 일만은 피하고
대신에 광야 구덩이 속에 요셉을 던져 넣을 것을 제안합니다.
르우벤은 나중에 살짝 요셉을 구덩이에서 살려낼 속셈이었던 겁니다.
형들은 꼴 보기 싫은 요셉을 구덩이 속에 버리고 음식을 먹기 시작합니다.
미운 놈을 구덩이 속에 던져놓고 먹는 음식 맛은 아마 더 좋았을지도 모릅니다.
‘아이고, 속이 시원하다. 저놈 아주 꼴도 보기 싫었는데,
저놈이랑 같이 밥도 먹기 싫었는데 구덩이 속에 던져놓고 나니 이제 밥맛도 좋네.’
이렇게 인간은 비정한 동물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식사를 마치기 전에 장사꾼들이 낙타를 타고 나타납니다.
그래서 형들은 욕심이 일어났죠.
‘구덩이 속에 버려 굶어 죽게 한들 한 푼의 이득도 없다. 차라리 저 상인에게 팔자.’
이렇게 요셉은 은 20냥에 팔리고 말았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팔리듯이.
그때 요셉의 나이가 17세였습니다.
이렇게 요셉이 팔려 간 것도 모르고 르우벤은 요셉을 구덩이에서 꺼내려고 왔죠.
그러나 구덩이는 비어 있었습니다.
르우벤은 슬퍼하며 형제들을 원망합니다.
다른 형제들은 사냥해 죽인 짐승의 피로 요셉 옷에 적시고, 요셉은 죽었다고 르우벤과 부친 야곱에게 고합니다.
요셉을 정말 이뻐하고 편애했던 야곱의 한탄은 차마 볼 수 없었죠.
그야말로 그 슬픔 때문에 죽을 것만 같은 아픔을 겪습니다.
요셉은 이집트로 팔리고 파라오의 신하인 경호대장 보디발이 다시 그 요셉을 사게 됩니다.
그래서 보디발의 노예가 된 것이지요.
이렇게 갑자기 자유인에서 노예의 신분으로 요셉은 인생 전환이 됩니다.
요셉은 이 사건으로 인해서 인간이 크게 확 변합니다.
다행히 못되게 변하는 것이 아니라 좋게 변합니다.
그는 곰곰이 생각합니다.
‘왜 형들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는가?’
또 이집트로 팔려 오면서 곰곰이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결과는 결국에는 내 자신의 오만 때문이었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오늘 여러분들이 성서를 보시면, ‘요셉이 형들의 행동을 낱낱이 아버지인 야곱에게 고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고자질을 한 거죠.
고자질을 당하고도 기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고자질은 험담이기도 합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닐 때 좀 얄미운 애가 하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선생님에게 친구들을 고자질했어요.
고자질을 해놓고 또 그렇게 얼굴이 환하게 웃었죠.
왜? 고자질 당한 친구가 혼날 거를 알았기 때문이죠.
친구 혼날 것을 생각하면서 혼자 그렇게 좋아했던 겁니다.
그러다 어느 날 사람을 잘못 선택했죠.
나를 고자질하다가 한바탕 싸워서 내가 그 아이 코피를 터뜨린 적이 있었습니다.
아무튼 참 고자질은 나쁜 습관이죠.
누구의 무엇을 고자질한다는 것은 아까 얘기했지만 험담입니다.
잊지도 않는 말을 만들어 내는 거죠. 그리고 자기는 그것을 즐깁니다.
무심히 던진 돌을 피하려고 개구리들은 죽을힘을 다해서 도망을 치는 것을 모르고,
장난삼아서 돌을 던지는 모습이 바로 고자질의 행태가 아닐지 생각됩니다.
아무튼 성경에 보면 요셉은 아버지에게 형들 고자질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니 형들이 볼 때 이쁜 구석이 생길 수가 없죠. 아주 나쁜 놈입니다.
아버지에게 형들 고자질하면서 형들을 제쳐놓고 더욱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려는 얕은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또 요셉은 자기 꿈 이야기를 아주 의기양양하게 형들에게 말하곤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에 그렇게 나오죠.
‘글쎄, 밭에서 우리가 곡식 단을 묶고 있는데, 내가 묶은 단이 우뚝 일어서고
형들이 묶은 단이 둘러서서 내가 묶은 단에게 절을 하지 않겠어요?’
그 말을 듣고 형들이 뭐라고 그럽니까?
‘뭐라고? 장래 너에게 우리들이 절을 하게 된다는 말이냐? 건방진 자식 네가 왕이라도 될 것 같으냐?’
이렇게 요셉을 괘씸하게 생각한 겁니다.
그렇지만 요셉은 꿈만 꾸면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는 아버지와 형들에게 관련된 꿈 이야기를 또 합니다.
‘글쎄, 내가 꿈을 또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하나가 내게 절을 하더군요.’
이 꿈 이야기를 들은 아버지는 야곱을 꾸짖죠.
‘너의 꿈이 무엇을 뜻하느냐, 별은 형들이고 해와 달은 부모가 아니냐,
그렇다면은 부모 형제가 너에게 절하는 날이 온다는 것이냐?’
이러니 형들이 더욱 미워하고 시기한 것은 당연한 일일 겁니다.
그렇지만 성경에 보면 아버지만은 그 꿈을 마음에 두었다고 나옵니다.
아무튼 요셉이 그런 꿈을 꾸었다고 해도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는 거였죠.
17살 그 막내 소년은 그런 분별을 하지 못했던 겁니다.
아무튼 요셉은 마음속으로 오만해지고 형들을 깔았습니다.
요셉이 만일에 정말 사랑스럽고 겸손한 동생이라면 아버지에게 편애받는다 하더라도 이렇게까지 미움을 사지는 않았을 겁니다.
아버지에게 편애받는 동생을 형들이 다 미워하지 않습니다.
막내이니 오히려 같이 예뻐해 주죠.
하지만 요셉은 형들에게 죽음에 이르기까지, 구덩이에 넣어 죽이려고 할 정도로,
그리고 장사꾼에게 팔아넘길 정도로 미움을 받았죠.
어찌 보면 스스로 무덤을 팠던 겁니다.
이런 사실들을 요셉은 이집트로 팔려 가며 깨닫게 된 거죠.
그리고 이집트로 멀리 팔려 와 노예의 몸이 되자 그때 비로소 누굴 믿습니까?
요셉은 하느님을 믿게 됩니다.
겸손해진 요셉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게 되고요.
그 요셉이 하는 일은 무엇이나 다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주인인 보디발은 요셉에게 주목합니다.
‘어딘지 모르게 이 아이는 좀 달라. 같은 노예라도 광채가 나고 빛이 나고 참 똑똑해.
그리고 자기가 믿는 신에 대한 절대적인 그 충성이 대단해.’
하여튼 보디발은 요셉을 좀 다르게 생각하고 달리 취급합니다.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라고 타인이 생각하는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사실 어려운 일이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사람에게 ‘어딘가 모르게 저 사람은 다르다’라고 생각되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만 합니다.
제 피정 강의나 강론 중에 아마 이 이야기를 들으신 분 있을 겁니다.
제가 신학생 때 교도소에 있는 사상범 간첩과 1대1로 자매결연 맺고, 1년 동안 한마디도 듣지 못하며 한 달에 한 번 찾아갔습니다.
그렇게 다닌 후 1년 만에 들은 그분의 입에서 나온 소리가 ‘간나새끼’였습니다.
‘내 사상 바꾸려고 여기 들어왔지?’
그 양반은 자타가 공인하는 토마토, 겉과 속이 다 빨간 코뮤니스트 공산주의자였죠.
저도 만나러 가는 것을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그래도 하여튼 1년 동안 성모님께 희생 두 가지를 봉헌했습니다.
그러면서 아무 울림도 없고 한마디도 듣지 못하고 다시 1년을 다녔는데, 다시 1년 만에 그분의 입에서 나온 말
‘학생에게 졌어. 하느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학생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을 보니 학생이 믿는 하느님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울까?
나도 그런 하느님 좀 믿게 해주게.’
보디발이 볼 때 많은 노예 가운데서 요셉은 어딘가 모르게 달랐던 겁니다.
어딘가 모르게 다르다는 사람으로 우리 크리스천들은 인정받아야 합니다.
성당 다니는 저 사람은 뭔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다.
성당 다니는 저 사람의 근무 태도는 어딘지 모르게 다르다.
성당 다니는 저 사람 얼굴은 우리 얼굴과는 무언가 좀 다르다. 빛이 난다.
이러한 신자가 되어야겠죠.
여러분들, 여러분은 그렇게 주변 사람들한테 평가받고 사십니까?
만일 이 반대가 된다면 이게 참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성당에 나가고 싶다가도 너 하는 꼴만 보면 성당 나가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진다.
냉담하는 며느리가 성당 나가려고 할 때마다 시어머니가 하는 모습을 보면서 걸려 넘어지고 성당에 못 나간다면
이것은 스캔들입니다.
스캔들이라고 하는 것은 라틴어의 'scandalum' '걸려서 넘어지게 한다'라는 뜻입니다.
며느리가 성당 못 나가게 시어머니가 걸고넘어진다는 뜻이지요.
‘하느님이 누군지 모르지만, 당신이 뭔가 좀 다른 걸 보니 나도 그 하느님을 좀 믿고 싶소. 그 하느님에게 좀 안내해 주시오.’
이런 존재가 바로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존재가 아니겠습니까?
저는 미사 끝나고 교우들과 단체 사진을 찍습니다.
찍힌 사진이 제 카페에도 많이 올라가죠.
보통 여러 장을 찍는데 이렇게 보면 항상 뒤에 숨어 있는 분도 있고,
다른 사람은 다 웃는데 그 사람만 화난 표정으로 있는 분도 있습니다.
결국 얼굴은 자기 영혼의 창입니다.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내 눈을 보고 내 얼굴에서 나오는 그 미소를 보고
하느님의 자비를 깨닫고 하느님의 아름다움을 느끼도록 해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의무일 겁니다.
‘무언가 다르다.’
보디발은 요셉에게서 무언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던 겁니다.
뭔가 좋은 뜻으로 다르다는 소리를 못 듣는다 해도, ‘우리랑 별로 다를 게 없네’ 이런 소리만 들어도 괜찮죠.
문제는 ‘저 인간 우리보다 훨씬 더 못하네. 성당 다니고 있대. 성당에서도 무슨 감투를 이것저것 많이 쓰고 있대.
그런데 우리 동네에서 보면 뒷담화 제일 많이 치는 게 저 사람이고, 돈 꿔가면 안 갚는 게 저 사람이야.’
그런 사람을 보고 누가 신뢰하겠습니까?
누가 그런 사람을 보고 하느님께 인도되겠습니까?
아무튼 요셉은 자기 자신이 왜 이렇게 팔려 왔는지 그 과정을 복구하면서, ‘내가 오만하고 못되게 살았구나,
형들을 괴롭히면서 살았구나.’ 뉘우치면서 동시에 하느님을 알게 됐죠.
하느님을 알게 된 요셉은 참으로 성실하고, 그래서 주인인 보디발의 눈에 쏙 들게 됩니다.
그래서 요셉의 주인 보디발에게 큰 신용을 얻고 그 집에 총무, 다른 용어로 집사가 맞겠네요.
아무튼 그 집 살림을 다 맡아 하는 집사, 그런 높은 지위를 얻게 됩니다.
심지어는 재산의 관리까지 위임받게 됩니다.
집과 밭과 모든 소유물을 요셉에게 맡기고도 주인인 보디발은 안심할 수가 있었던 겁니다.
아무튼 요셉은 그와 같은 신용에 응할 수 있는 아주 훌륭한 집사였던 겁니다.
요셉의 이야기 1편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팔려 온 그 과정, 또 팔리고 난 다음에 자기 자신을 뒤돌아보는 그런 정직한 마음,
또 그럼으로써 하느님을 새롭게 만나고, 요셉에게 하느님께서는 하는 일마다 축복을 주신다는 얘기죠.
나중에는 보디발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신뢰까지 받게 된다는 얘기까지 드렸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미리 조금 맛보기를 해드린다면은 요셉이 너무너무 잘생겼다는 겁니다.
그야말로 꽃미남이었다는 겁니다.
17살에 팔려가 10년이 지나서 27살이니 얼마나 필 때니까?
너무 잘생겼다는 것 때문에 사건이 터지기 시작합니다.
여러분들 기대하십시오.
여러분들 영원에 영원을 더하여 사랑합니다.
이제 꽃샘추위가 또 옵니다. 여러분들 감기 조심하십시오.
+전능하신 천주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는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이들에게 강복하소서.
아멘.
♣청주교구 원로 사목자 김웅열(느티나무) 신부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