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도생(各自圖生)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
各 : 각각 각
自 : 스스로 자
圖 : 도모할 도
生 : 날 생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각자가 스스로 제 살 길을 찾는다는 의미이다. 원래 각자도생이란 조선시대 대기근이나 전쟁 때 임금에게 올라간 상소문에 등장한 백성들의 모습을 의미한다.
이 무렵 조선의 상황은 유례없는 가뭄과 흉작, 전쟁 등으로 백성들이 도처에서 굶어 죽어 나갈 만큼 흉흉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시기에 백성들이 찾은 생존법이 바로 각자도생이다. 한마디로 나라에서 어찌할 수 없으니 백성들이 스스로 알아서 살아 남아야 한다는 절박함에서 유래된 사자성어이다.
우리 고전에는 심심치 않게 등장하는 사자성어가 각자도생이다. 조선왕조실록에도 네 번이나 등장한다. 공교롭게도 그 네 번은 임진왜란과 정묘호란으로 국가가 난리통에 휩싸였을 때와 조선의 명운이 다하던 조선 말기였다.
1594년 선조실록에는 '백성들이 장차 살육의 환난에 걸릴 것이니, 미리 알려주어 각자 살길을 도모할 것으로 몰래 전파하라'는 내용의 비변사 보고가 쓰여 있고, 인조 때인 1627년에는 '종실은 모두 나라와 더불어 운명을 함께해야 할 사람인데 난리를 당하자 임금을 버리고 각자 살기를 도모한 것은 실로 작은 죄가 아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순조 9년인 1809년에는 흉년의 실상을 상소한 내용에 각자도생이라는 표현이 있다. '처음에는 나물을 베어먹고 풀뿌리를 캐어 먹으면서 시각을 연장시켰습니다만, 지금은 정리(井里;마을터전)를 떠나 각기 살기를 도모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어미는 자식을 버리고 남편은 아내와 결별하였으므로 길바닥에는 쓰러져 죽은 시체가 잇따르고, 떠도는 걸인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습니다'라고. 생활고에 가족이 붕괴하는 요즘 상황과 묘하게 대비된다.
고종 때인 1866년에는 경상좌도의 조창(漕倉) 운반선이 침몰된 것과 관련해 '배가 암초에 걸리자 각자 자기 살 궁리만 하였으니, 만약 간사한 마음이 없었다면 어찌 이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엄격히 책임을 묻는 관청 보고가 기록돼 있다.
이렇듯 각자도생은 혼란기에 어김없이 등장한 단어였다. 세월호 사건과 메르스 사태로 우리 사회에 다시 등장한 각자도생은 올 총선 정치판을 비꼬는 말로도 쓰였다가 이제는 브렉시트와 미국의 트럼프 현상을 빗댄 글로벌 신(新)고립주의를 지칭하는 말로도 진화했다.
병자호란 때의 각자도생
남한산성(南漢山城)에서 45일간 우왕좌왕하던 인조(仁祖)가 삼전도(三田渡)로 나와 이마로 맨땅을 쿵쿵 찧으며 피를 질질 흘리는 3배 9고두례(三拜九鼓頭禮)로 청태종(淸太宗)에게 항복하고 목숨을 구걸한 후 조선 땅은 빈곤과 수탈에 찌들린, 그야말로 생지옥이 되고 만다.
특히 철군하던 청군들은 30만~50만으로 추정되는 조선 여인들을 자기 나라로 끌고 갔는데, 첩이나 노예로 부리고 살다가 돈을 주면 조선으로 돌려 보내주기도 했다.
하지만 압록강을 넘은 조선의 딸들은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고향집에서도 대부분 문전박대(門前薄待) 당했다. 청(淸)에서 임신했거나 접대부 노릇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고향으로 돌아온 여자라는 의미의 환향녀(還鄕女)는 시나브로 '화냥년'이라는 욕이 돼버렸고, 그녀들이 낳은 아들딸들은 오랑캐의 자손이라는 뜻의 호로자식(胡虜子息)으로 불리며 따돌림 당했다.
못난 임금 탓에 개털리고 그 나라한테 버림받은 것이다. 초근목피(草根木皮)로 연명하는 비렁뱅이나 산 도적이 되어 각자도생(各自圖生)할 수 밖에 없었다.
380년전 병자호란(丙子胡亂)의 교훈은 분명하다. 부패한 광해군(光海君)보다 무능한 인조가 훨씬 공동체 파괴력이 컸다는 점이다. 광해군은 기우는 명(明), 떠오르는 청(淸)이라는 국제정세를 읽고 균형외교로 왜란 이후 민생을 그나마 안정시켰다. 인조는 대의명분(大義名分) 사대주의(事大主義)에 매달려 친명반청(親明反淸) 객기를 부리다 결국 삼전도의 치욕을 당했다. 이후 조선 백성을 기다린 건 도탄과 쇠락 뿐이었다.
명(明)나라 사조제(謝肇淛)의 문해피사(文海披沙)에 보니 세사상반(世事相反)의 조목이 나온다. 세상일 중 상식과 반대로 된 경우를 나열한 내용이다. 떠오르는 풍경이 많아 여기에 소개한다.
지위가 높은 관리는 천하일을 근심하지 않는데, 초야의 사람이 도리어 근심한다. 문관은 군대 일을 자주 말하나, 무관은 싸우는 것을 즐기지 않는다. 재주와 학식이 있는 사람은 문장에 대해 말하지 않고, 학문도 없는 인간이 주로 떠든다.
부자는 돈 쓰기를 즐기지 않지만, 가난한 이는 돈을 잘도 쓴다. 승려와 도사가 비린 음식을 즐겨 먹고, 보통 사람이 도리어 채식을 한다.
관리의 책임을 맡은 사람은 권세가에게 휘둘리는 경우가 많은데, 낮은 지방관은 도리어 군현을 장악하고 있다. 벼슬이 높을수록 물러나 쉬고 싶다고 말하고, 벼슬이 낮을수록 제 공치사를 더 심하게 한다.
천하 걱정으로 밤잠을 설쳐야 할 고관대작들은 제 한 몸 걱정하기 바쁘니, 아무 힘없는 재야에서 세상 걱정 짊어지느라 애들을 쓴다. 군대 문턱에도 안 가본 사람이 말만큼은 대장이다. 정작 힘깨나 쓰는 사람은 웬만하면 싸움에 나서지 않는다.
부자는 틀어쥐고 안 써서 모으지만, 가난뱅이들은 생기는 족족 써서 더 가난해진다. 영문도 모른 채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어디서나 비전문가들이다.
고위 공직자들은 저마다 아킬레스건이 있어서 상대의 불의를 알고도 결정적인 한 방을 못 내민다. 멋모르는 청백리만 먼 시골에서 원리원칙을 따지다가 불이익을 받는다. 제 공치사가 늘어지면 아무도 안 알아주고, 물러나 쉬겠다고 투덜대면 왜 이러시냐고 더 높은 자리로 올려준다.
세상일은 참 알수록 모르겠다. 하기야 공천 받아 국회의원 되는 일이 다급한데 장관이라 한들 나랏일 걱정할 틈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니 무지렁이 백성들이 천하를 걱정하는 수밖에. 바로 여기서 각자도생의 서글픈 망령이 춤추며 나온다.
성대중(成大中)이 질언(質言)에서 말했다.
淸而不刻 和而不蕩(청이불각 화이부탕)
嚴而不殘 寬而不弛(엄이부잔 관이불이).
청렴하되 각박하지 않고, 화합하되 휩쓸리지 않는다.
엄격하나 잔인하지 않고, 너그러워도 느슨하지 않는다.
청렴의 이름으로 각박한 짓을 한다. 화합한다더니 한통속이 된다. 엄격함과 잔인함은 구분이 필요하다. 너그러운 것과 물러터진 것은 다르다.
各(각)은 회의문자로 앞에 온 사람과 뒤에 오는 뒤져올 치(夂; 머뭇거림, 뒤져 옴)部와 사람의 말이(口) 서로 다르다는 뜻이 합(合)하여 '각각'을 뜻한다. 뒤져올 치(夂)部는 발의 모양으로 위를 향한 止(지)가 '가다'의 뜻인데 대(對)하여 밑을 향한 뒤져올 치(夂)部는 '내리다, 이르다'의 뜻이다. 口(구)는 어귀, 各(각)은 '어귀까지 가다, 바로 가서 닿다', 箇(개)와 個(개)는 음(音)이 비슷하기 때문에 각각의 뜻으로도 쓰인다. 용례로는 여러 가지가 각기 다 다르다는 각양각색(各樣各色), 모든 것이 그 있어야 할 곳에 있게 된다는 각득기소(各得其所), 사람은 제각기 살아갈 방법을 도모한다는 각자도생(各自圖生), 각 개인의 전투력을 기준으로 하는 전투라는 각개전투(各個戰鬪) 등에 쓰인다.
自(자)는 상형문자로 사람의 코의 모양을 본뜬 글자 '코'이다. 사람은 코를 가리켜 자기를 나타내므로 스스로란 뜻으로 삼고 또 '혼자서, …로부터' 따위의 뜻으로도 쓴다. 나중에 '코'의 뜻에는 鼻(비)란 글자가 생겼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몸 기(己), 몸 신(身),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다를 타(他)이다. 용례로는 같은 패 안에서 일어나는 싸움을 자중지란(自中之亂), 자기의 언행이 전후 모순되어 일치하지 않음을 자가당착(自家撞着), 스스로 묻고 스스로 대답한다는 자문자답(自問自答), 자기자신이나 또는 자기의 행위에 스스로 만족하는 자기만족(自己滿足) 등에 쓰인다.
圖(도)는 회의문자는 図(도)의 본자(本字)이다. 일정한 토지(口)에서 농토를 나누어(啚) 그린 모양에서 '그리다'를 뜻한다. 圖(도)는 영토에서 '지도, 그림을 그리다, 또 영토를 다스리다, 일을 꾀하다' 라는 뜻한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그림 화(畵), 그림 회(繪)가 있다. 용례로 도서(圖書)는 글씨ㆍ그림ㆍ책 등(等)을 통틀어 일컫는 말, 도서실(圖書室)은 도서를 모아 두고 열람하는 방, 도화지(桃花紙)는 도화를 그리는 종이, 그리고 앞으로 할 일을 이루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꾀한다는 도모(圖謀) 등에 쓰인다.
生(생)은 상형문자로 풀이나 나무가 싹트는 모양에서 생기다, 태어나다로 만들어졌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날 출(出), 있을 존(存), 살 활(活), 낳을 산(産)이 있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죽을 사(死), 죽일 살(殺)이 있다. 용례로 산 사람의 목구멍에 거미줄 치지 않는다는 생구불망(生口不網), 삶은 잠깐 머무르는 것이고, 죽음은 돌아간다는 생기사귀(生寄死歸), 삶과 죽음, 괴로움과 즐거움을 통틀어 일컫는 말을 생사고락(生死苦樂), 살리거나 죽이고, 주거나 뺏는다는 생살여탈(生殺與奪), 학문을 닦지 않아도 태어나면서부터 안다는 생이지지(生而知之)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