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대리계약 위임장만 믿었단 낭패…
위조 수월한 부부사이일수록 더 의심을~(참고 하세요)
매매 임대차 거래 등에서 본인이 나서지 않고 대리인을 내세울 때 꼭 필요한 서류가 위임장이다. 그런데 위임장은 본인의 위임 사실을 증명하는 서류일 뿐 위임의 효력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만일 위임장이 위조됐거나 위임 의사에 하자가 있다면 무권대리로서 본인에게 무효인 계약이 된다. 즉 본인의 위임 의사를 확인하는 별도 절차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위임장과 인감증명서만 첨부되면 계약에 아무 하자도 없다고 믿는 일이 많아 주의가 요망된다.
얼마 전 지인 요청으로 아파트를 매수하는 계약서 작성을 대리한 적이 있다. 매도인은 95세 노인이었는데 노인이 직접 계약에 참석하지 않고 자식 중 한 명이 위임장만으로 계약을 체결하려 했다. 매도인이 고도의 치매거나 자식이 위임장을 위조하면 계약이 무효가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매도인 측 중개사에게 노인이 계약에 직접 참석하거나 아니면 최소한 위임장에 공증을 받아 오라고 요청했다. 그런데 중개사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그는 "여태 20년 이상 중개를 하면서 위임장에 공증을 받아 오라는 경우는 처음이다. 왜 변호사가 계약을 방해하려고 하느냐"며 돌연 화를 낸 것이다. 매수인을 대리하는 변호사의 법률 조언을 계약 방해로 치부하는 태도가 무척 어이없었지만 "노인의 다른 자식들이 치매로 인한 위임 무효를 주장하며 소송을 제기하면 중개사가 책임을 질 것이냐"고 따지자 그제야 태도가 바뀌어 노인이 직접 계약서를 쓰는 것으로 정리됐다. 이처럼 법률 리스크를 하찮게 여기다 사고가 나고서야 때늦은 후회를 하는 예가 적지 많다.
심지어 본인 위임장도 없이 대리인 말만 믿은 채 거래해 사고가 난 사례도 많이 있다. 몇 년 전 언론을 떠들썩하게 만든 안산 부동산 사기 사건이 대표적이다. 중개사가 집주인을 대리해 세를 놓으면서 세입자에게는 전세를 놓는다고 거짓말을 해서 전세금을 받은 후 집주인에게는 월세를 놓았다고 말해 전세 보증금 차액을 횡령한 사건이다. 중개사는 사기죄로 형사처벌이 됐지만 민사상으로는 무권대리이기 때문에 세입자는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받을 수 없게 됐다. 이 사건에서 세입자가 집주인의 위임장을 받았다면 최소한 표현대리(무권대리지만 본인에게 책임을 돌릴 수 있는 경우) 법리로 보호받을 수 있었다.
위임장은 부부간에도 필요하다. 정확히 말하면 부부 일방이 대리인이면 타인보다도 더더욱 위임장이 필요하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부부 사이를 입증하는 가족관계 증명서가 있으면 위임장이 필요 없다고 오해하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우리 민법은 부부 별산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부부 일방이 다른 쪽을 대리해 집을 팔거나 근저당을 잡히는 처분 행위를 하려면 반드시 본인 위임이 필요하다. 본인 위임도 없이 부부 일방이 타방 재산을 처분하면 본인에게 유효를 주장할 수 없다.
부부 일방이 대리인일 때에는 형식적인 위임장이 구비됐더라도 타인 간의 경우보다 위임 의사 확인이 필수다. 거래 상대방은 대리인이 부부 관계면 본인 위임 사실을 확인하지 않는 사례가 많은데 정말 큰일 날 노릇이다. 요즘 이혼 직전에 있거나 별거하는 부부 관계가 많은 현실에서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리 판례는 부부 일방이 타방의 인감도장을 이용해 인감증명서까지 몰래 발급받아 위임장을 위조하면 무권대리로 볼 뿐만 아니라 본인에게 표현대리 책임도 잘 인정하지 않는다. 표현대리란 무권대리일지라도 거래 상대방이 무권대리 사실을 모르고 이를 믿은 데 정당한 이유가 있다면 본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리를 말한다. 우리 판례는 본인과 대리인이 부부거나 친인척(부자 관계 등)일 때 인감도장과 인감증명서 입수 등이 용이하다는 이유로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경우보다도 오히려 정당한 이유를 인정함에 인색하다.
따라서 본인과 대리인이 친인척 관계라면 거래 상대방은 본인 위임장을 구비하는 것은 물론 본인의 위임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전화통화를 하거나 위임장에 공증을 받는 등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해야 한다.
[이기형 부동산전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