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자도(楸子島) 여행(3) / 하 추자도 올레길 종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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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 추자도 일주를 마치고 추자교(楸子橋) 앞에 오니 왼쪽에 발전소가 있고, 오른쪽 바닷가에 '6각정 쉼터', 그옆에 '추자연도교 가설 유래비'가 서 있다.
추자도의 오랜 숙원 사업이던 상추자도와 하추자도와 사이에 놓은 추자교량(楸子橋粱) 가설은 섬과 섬을 잇는 교량으로는 우리나라 전국 최초로 1972년 완공하였으나 골재를 실은 트럭이 통행하다가 다리가 무너지는 바람에 1995년 다시 신교량 공사로 총 길이 212m, 폭 8.6m로 완공된 다리다.
그런데 한국 최초의 섬을 잇는 다리라서인가 그 단어를 돌에 잘못 새겨 놓고 말았다.
섬과 육지를 연결하는 다리를 '연육교(連陸橋)'라 하고,
섬과 섬을 잇는 자리를 '연도교(連島橋')라 하는데 그걸 구별하지 못하고 써 놓은 것이다.
그 비석에서 고쳐야 할 것은 4째 줄의 '연륙(連陸)'을 '연도(連島)'로, 맨 아래 '연륙교량(年陸橋粱)'을 '연도교량(連島橋梁)'으로 고쳐야 맞다.
게다가 그 다리를 걸어 넘다 보면 차도와 구별되는 인도나 자전거길을 배려하여 만들어 놓지 않은 것이 안타깝다.
다리를 넘어서니 왼쪽에 커다란 참조기 조형물이 있고 곳곳에 추자도 특산 어물이라는 '추자도 참굴비' 표지가 요란하다. 어제 밤 추자항으로 산보를 나가 보니 가로등도 참조기였다. 주민의 말에 의하면 법성포조기는 잘 잡히지 않은 지 오래 되어 추자도 참조기를 가져다가 법성포에 해충에 말려서 가공한다고 한다.
추자교를 건너서 추자교 삼거리에 오니 이정표가 있다. 어느 쪽으로 가야 할까?
나는 망설이지 않고 돈대산 길을 향하였더니 그 길은 담수장(淡水場) 앞을 지나는 길이다.
*. 처녀당(處女堂)
그러나 오른쪽 길 1.3km에 있다는 처녀다은 가보지는 않았지만 자료애 의하여 정리하고자 한다. 마을을 찾아 버스가 다니는 길로 목리 마을을 향하는 길로 가다가 목리 남쪽 해안가에 가면 '당목치'라는 동산에 '처녀당이 있다.
지금으로부터 90여 년 전 일이었다. 제주에서 물질하러 추자도로 온 해녀들 중에 어머니를 따라와 아기를 돌봐주던 한 처녀가 있었다. 그 처녀가 어쩌다가 목리바다에 빠져 죽었는데 그 날 밤 꿈에 처녀가 나타나 지금의 당(堂) 자리에 앉아 꿈짝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이를 불쌍이 여긴 마을 사람들이 그곳에 '처녀당'을 세워 모시고 매년 음력 정월 초 이튿날이 되면 이곳에서 걸궁을 치고 바다에서의 안전과 자녀들이 아프지 않게 해달라고 굿을 하며 기원 해 왔다.
나는 몇 년 전에 제주도 마라도(馬羅島)를 다녀 왔는데그 선착장 부근에 이와 비슷한 '아기업개' 전설에 얽힌 장소가(위 우상 그림)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전설 같다.
*.추자도 식수(食水)
추자도를 다니다 보면 고풍스런 멋진 커다란 우물을 만나게 된다. 옛날 이 섬에서는 식수가 귀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이 주민들은 빗물에 의존도가 높았다. 그래서 가뭄에는 아주 큰 불편을 겪어야 했다.
그러다 2012년 추자 도민들의 숙원이었던 담수화(淡水化) 시설 증설과 고도 정수처리시설이 완공되어 1인 하루 급수량이 383리틀/일을 달성하여 이 섬 주민들의 물 부족 걱정을 완전히 해소하게 되었다.
그 시설이 담수장(淡水場)이다. 담수(淡水)란 민물을 말하는 것이니 담수장(淡水場)이란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시설이다.
추자교를 넘어 선 나의 현 위치는 우(右)로 가면 신양항(하추자항)으로 가는 길이요 왼쪽 길은 돈대산 정상> 예초리포구> 신양항>> 추자교로 8.8km/ 3시간 30분 걸려 원점회귀하는 코스다.
근처에 있는 돈대산 입구 정자에 앉아 잠깐 쉬다가 돈대산을 향하고 있다. 돈대산 정상까지 2km의 거리였다.
지금부터 그동안 소홀했던 산행이 시작되는 것이다.
돈대산 가는 길에 우측 담수장 뒤편 쪽을 보니
물을 가두어 둔 댐이 보이는데 주민들의 말에는 담수를 위해 빗물을 모아 둔 댐이라 한다.
*. 돈대산(墩臺山) 이야기
돈대(墩臺)라는 말은 봉화둑으로 봉화를 올릴 수 있게 만들어 놓은 시설을 말한다. 이를 산 이름으로 쓰고 있는 곳이 진도의 관매도(觀梅島)네 닦저미 거기의 돈대산도 있더니 추자도에도 돈대산(墩臺山)이 있구나 하였다. 그러니까 돈대산은 옛날 추자도에서 봉화를 올리던 산이었을 것이다.
올레길 표지 리본 따라 돈대산 가는 길은 오솔길이지만 폐타이어나 동아줄로 엮어 바닥을 깐 한 편안한 길인데 서울에선 벌써 그친 쓰르라미가 아직도 울고 있었다.
섬에서의 산행은 난코스가 적지만 그래도 산은 산이라 힘들 때마다 잠깐 뒤돌아 보면 시야에 시원한 바다가 열리는 것이 일품이다.
내년이면 80이 되는 고령(高齡)의 나이에 혼자 추자도를 오게 된 것은 추자도가 도립공원이라는 것을 인터넷에서 보고 왔기 때문이다.
나는 내 팔순 기념으로'한국 국립공원"에 이어 '한국도립공원(韓國 道立公園)' 출간을 위해서 그 자료를 찾아 추자도에 왔는데 엊저녁 면사무소에 들려 확인해 보니 내가 잘못 알고 온 것 같다.
드디어 돈대산의 정상의 팔각정 정자의 모습은 아취 형의 다리도 그랬지만 전국 어느 팔각정보다 멋있는 것은 그 전망 때문인 것 같다.
이 섬에서 가장 높은 164m의 정상석 옆에는 무료 대형 망원경이 바다를 향해 있다. 굽어 보는 항구는 신양항(하추자도항) 같다. 인적이 없는 정자에다 짐을 풀고 윗통을 벗은체 민박식당 집 원 여사가 정성껏 준비해 준 멸치회와 굽어보이는 바다를 안주하여 술 한 잔 기울이다 보니 시흥(詩興)에 겨워진다.
벼르다 벼르다 설레며 찾아온 추자도(楸子島)는 제주 우도(牛島)보다 더 아름다운데도.
도립공원(道立公園)도 군립공원(郡立公園)도 아니더라.
돈대산(墩臺山) 오르는 오솔길은
우러러 보고 있는 섬들 때문일까
민박집 아낙네 든든한 조반의 참굴비 탓이었을까
나이를 벗은 듯 몸도 마음도 가볍다.
그 길엔 서울서 잃고 온 여름이 매미소리로 남아 있었고
하늘을 닮은 정상 8각정에서 굽어보는 코팔트빛보다 더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아아, 저 섬 섬 섬 들
38개의 유어도(有魚島)가
낚시꾼들의 천국(天國)이라지만
4개의 유인도(有人島)는 이 나그네에겐 관광의 천당(天堂)이더라.
심심할 새 없이 오르내림을 반복하는 올레길 하나하나는
섬 냄새 가득한 후풍도(候風島)
추자도(楸子島)만의 길이더라.
-2015. 9. 21 ilman
돈대산 하산길에서 오레길 코스 따라 가려면 북쪽' 엄바위 장승' 쪽을 향하여야 할 것이지만 정상에서 만난 추자도가 고향인 청년 말 따라 신양1리 마을 쪽으로 향하였다. 그러다 보니 추자도 지도를 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올레길을 잃고 말았다. 그 길은 신대산(新大山)을 왼쪽에 두고 큰 신작로를 따라 정처없이 바다로 향하는 길로 향하였더니 그 해안이 '모진이 몽돌해안'으로 몸을 씻을 우물과 화장실이 초라하나마 가추어 있는 '모진이 몽돌해수욕장'이었다.
거기서 길이 끊어지는가 했더니 북으로 해안을 끼고 도는 산책로가 있는데 차량통행을 금하는 곳에 엉성하게나마 이정표가 있다. 내가 찾아가려던 "황경한묘 0.9km" 를 향하는 길이었다. .
*.천주교 순교자의 아들 황경한(黃景漢)의 묘
추자도를 올 때 제주 여객선착장에서였다. 한 천주교 신자를 만났는데 '추자도 천주교 성지'를 가려 하는데 배편 때문에 발길을 돌려야 한다고 안타까워'하던 그 성지라는 곳이 '황경한의 묘'였다.
1801년 신유박해(辛酉迫害) 때 순교한 황사영 알랙시오와 제주관노로 유배된 그의 아내 정난주 마리아 부부의 아들인 황경한이 묻혀 있는 곳이다.
정난주는 1773년 남인(南人)이요, 천주교 가문인 정약현의 딸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열심한 신앙생활을 하였다.
18세 때에 16세인 황사영과 혼인하여 아들 경한을 낳았다. 신유박해로 1801년 2살의 아들 경한을 가슴에 안고 귀양길에 오른 정난주는 추자도에 이르러 젖먹이 어린 것을 예초리 바닷가 갯바위에 내려놓고 사공에게는 죽어서 수장했다고 말했다.아들이 평생 죄인으로 살아가야 함을 걱정하여서였다. 천주교를 믿는다는 한가지 죄 아닌 죄로 남편이 순교 당한 그 아내인 정난주는 제주에서 관노로 37년간 길고긴 인욕의 세월을 살면서 늘 아들을 그리워 하다가 하늘 나라로 소천(素天)하였다.
아들 황경한은 자신의 내력을 알고 난 후, 항상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제주도에서 고깃배가 들어오면 어머니의 안부를 물었다고 한다.
왼쪽의 샘물은 어미를 그리워 하는 아들의 애끊는 소망에 하늘이 탄복하여 내리는 활경한의 눈물의 샘으로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늘 흐르고 있다는 샘이다.
그 바로 근처에 일출전망 포인트가 되는 전망대가 있고 바로 그 옆에 추자10경이 그림과 함께 서있는데
왜 정자가 8각정이 아니고 4각정이었을까?
옛 사람들은 하늘은 둥글고 땅을 평평하다 하여 천원지평(天圓地平)이라 하였다. 그래서 8각은 하늘을 4각은 땅을 상징하는 것이다.그 4각의 귀퉁이를 잘라 보라, 8각이 되지 않는가.
이곳 4각정은 땅에서 8각의 상징인 하늘의 해가 떠오르는 것을 기다리는 일출 전망 포인트라해서 4각 정자였다고 말할 수가 있겠다.
거기서부터는 계속 내림길로 평지로 내려오니 또 가파른 오름길이다. 아마도 추자 제1경이라는 우두일출(牛頭日出)을 보는 신대산전망대르 가는 길 같지만 눈으로 보는 고갯길이 너무 가팔라서 피곤에 지친 나의 마음을 거절케 한다.
그래 나는 그 길을 버리고 예초리 마을길로 들어섰더니 거기가 바로 예초리포구가 있는 곳이었다.
피곤을 핑계하여 1시간에 한번 온다는 버스를 기다리다 보니 예초리 마을 사람들이 저기 보이는 길 모둥이가 '엄바위 장승'이라 하여서 발길을 재촉하였다.
*. 엄바위장승
옛날에 엄바위 근처에 억발장사가 살고 있었다. 엄바위 아래 바닷가에 '장사공돌'이라는 바위 다섯개가 있었는데 억발장사는 이 바윗돌로 공기놀이를 즐겼다. 그러던 어느날 억발장사는 횡간도로 건너 뛰다가 미끄러져 그만 넘어져 죽고 말았다. 그후부터 예초리와 횡간도 처녀 총각끼리는 결혼하면 청춘과부가 된다는 속설 때문에 결혼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언제인가 마을 사람 하나가 엄바위 아래에다가 억발장사를 상징하는 목장승을 깎아 세우고 예초리 마을에서는 해마다 걸궁을 할 때면 이 엄바위 앞에 와서 한마당 놀고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 목장승 대신에 지금은 화강암으로 석장승을 세워 놓았다.
추자도 버스는 마을을 찾아 다니는 코스로 왕복하기 때문에 나는 버스가 다니지 않는 '추억이 담긴 학교 가는 길' 입구를 지나 돈대산 입구 그리고 오지박전망대를 지나 추자교길로 해서 추자항까지 일주를 마쳤다.
6~7시간의 코스를 장장 11시간에 마친 것이다.
종주를 마치고 면사무소에 들렸더니 비로소 거기에 추자도 팜플렛을 구할 수가 있었다. 이 안내도가 있었으면 더 체계 있게, 더 구체적인 추자로의 진면목을 찾아 일주할 수 있었는데 하는 것이 커다란 유감이었다.
그러나 기대를 갖고 와서 아쉬움을 남기고 떠나는 것이 여행이(旅行)이요, 여행은 생략의 예술이라 생각하는 사람니 추자도를 욕심내던 어제와 오늘이 그리워진다.
- 215.09.19~2추자도 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