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학적 태도_문제해결 사상>
2021101250 철학과 장현빈
‘한민족은 고유한 철학이 없기에, 창의성과 자주성이 약하여 독립국을 유지하기 어렵다.’ 이것은 일제 관학자들이 전파한 식민사관이다. 그런데 김형찬 고려대학교 철학과 교수의 「한국철학의 정체성과 한국철학사의 관점」(2019) 논문에 따르면 이러한 논리는 다음 두 가지 이유를 통해 해소된다. 첫째, 실제 고유한 철학을 가진 민족은 소수에 불과하며, 대부분의 서구 선진국은 그리스 철학을 그들의 철학의 기원으로 삼고 있기에 식민사관 논리는 허구성이 존재한다. 둘째, 한국과 한국인의 존재 가치와 독립성은 철학, 사상 연구와 상관없이 정치, 경제, 사회의 현실에서 이미 증명되었다.
그렇다면 고유성이 해소된 상황에서 ‘한국철학’은 무엇일까? 제주대학교 철학과 김치완 교수님의 설명에 따르면, 외부의 사상이 내부로 들어올 때, 있는 그대로 들어오는 것이 아닌 내부의 실정에 맞게 변형되어 들어오기에, 한국 유학, 한국 불교, 한국 도교와 같은 우리나라에 맞게 변형된 사상들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이것이 한국철학의 특성, 즉 한국철학의 정체성을 드러내게 될 것이다.
김형찬 교수는 원효, 지눌, 퇴계, 율곡, 다산, 혜강 같이 대표적인 한국철학자로 평가되는 학자들이 이룬 업적에서 공통점을 찾고자 하였다. 그에 따르면 원효와 지눌은 중관과 유식, 선종과 교종의 분열과 대립이라는 당시 불교계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길을 모색하면서 동아시아 불교와 신라 및 고려사회 불교의 과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였으며, 그것이 동아시아 불교사에 기여하고 한국 불교의 기풍이 되었다. 퇴계와 율곡은 성리학적 이상 사회를 추구했던 건국 정신이 타락하려던 16세기 조선의 현실에서 유학을 재해석함으로써, 국가 이념을 다시 세우고 국가 운영 방식을 재정립하여, 이후 조선의 학문과 정치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였다. 다산과 혜강은 조선의 유학이 새로운 시대에 대한 대응력을 잃어가던 시기에, 외래의 지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관점을 통해 유학의 오랜 지적 전통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며 새로운 사회의 대안을 제시하였다.
이들은 모두 현실의 당면 과제에 대해 당대에 그들이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수용하고 활용하여 대안을 모색하였고, 그 치열한 모색의 과정에서 이룬 성과들은 한국철학사의 대표적인 성취로 평가된다. 즉 ‘한국철학’은 지금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고 우리가 이용할 수 있는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한국철학적 태도’는 한국철학 연구계에서 필요한 가치관이다. 현 한국철학계는 데카르트, 칸트 등의 전통적 철학을 비판, 해체하거나 이러한 서구의 철학을 추종하는 것에 그치고 있다. 철학, 학문의 최종 목적은 현실의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거나 그 해결책을 만드는 방향성, 판단 기준을 제시하는 것이다.
한편, 필자는 개인의 삶 측면에서도 ‘한국철학적 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생활환경 복지학부 김혜연 교수님의 <생활복지와 코칭> 수업에서 우리가 가지는 부정적인 감정들은 정신적 습관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정신적 습관 중 하나로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파국화’가 있다. 예를 들어, 늦은 밤, 가족이나 친구, 친한 지인에게 연락이 되지 않으면 혹시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게 되는 경우이다.
그 수업에서 교수님은 ‘생각’하지 말고 ‘사실’만 파악함을 해결 방법으로 제시하셨다. ‘친구가 연락을 받지 않는다.’라는 사실만 인지하고, ‘큰 사고가 나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 것이다. 즉, 현실의 문제를 파악하는 것이다. 더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할 일이 무엇일지에 집중한다. 이러한 ‘한국철학’적 태도는 우리가 감정의 늪에 빠지지 않게 도와줄 수 있다고 본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치열한 모색, ‘한국철학적 태도’는 한국철학계를 발전시키는 길이자 개인에게는 고뇌를 이겨내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김형찬, '한국철학의 정체성과 한국철학사의 관점',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문화학회, 2019.
첫댓글 "실제 고유한 철학을 가진 민족은 소수에 불과하고"라는 것은 유보적인 입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의 논리를 논박할 때는 상대의 주장을 진실이라고 가정하고, 그 형식논리가 타당한지를 분석할 수도 있고, 두 번째로는 상대의 주장 자체의 진위를 논거로 검증해내는 방식을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유보적이라고 한 것은 상대 주장이 옳다는 전제로부터 출발한 것이라고 볼 수 있지요. 당신이 말한대로 고유의 철학이 없다고 한다면 정말 고유의 철학을 가진 민족은 소수에 불과하다고 반박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면 고유의 철학을 가지지 못한 민족은 없습니다. 물론, 여기서 고민해봐야 하는 문제는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출생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그것이 보편적이고 절대적인 개념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컨대 우리만 하더라도 유럽 등에 비해서는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오래도록 간직해왔지만, 현실적으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철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해야 하는 학문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