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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 시대의 새로운 아편, 성공팔이 / 정체성팔이 - 필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한 고찰
오늘날에 '자아정체성'이라는 말은 이제 주변에서 흔한 말이 되어버렸다.
그리하여 SNS 기반으로 소위 말하는 자아의 정체성을 표출하는 해쉬태그들이 쏟아져나오고 있다.
트랜드 코리아 2021,2022,2023 3개년의 분석에서도 젊은 세대들의 자아정체성 표출을 다루는 내용이 실려있다.
이러한 젊은 세대들 사이에서의 문화는 어찌보면 주체적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하는 요즘 세대들의 현상이 이전 세대들과 다르게 멋있게 보이는 경향도 있다.
개인주의가 보편화된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의 두드러짐은 어찌보면 당연한 시대적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다만 여기서 필자가 묻고자하는 점은 과연 우리는 우리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은 것이 맞을까? 라는 점이다.
책 '그릿' 에서 굉장히 인상 깊은 구절이 있다.
기억을 더듬어 보자면, '자아의 탐색만으로 자신이 누구인지 절대 알 수 없다. 직접 경험을 해야 알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다' 라는식의 구절이였다.
또한 비슷한 내용의 구절이 '타인의 해석' 이라는 책에서도 나온다.
이제부터 필자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통해 필자가 느낀 자아정체성 탐구의 방법과 오늘날 인터넷에 쏟아져 나오는 성공팔이, 정체성 팔이에 대한 비판을 하고자 한다.
필자가 왜 이러한 점에 주목함은, 필자는 자아정체성을 찾는 것을 누구보다도 찾고 싶어하는 사람이기에 그렇다.
때문에 어린시절부터 자아탐색을 질리게 해보았고 온갖 동기부여 영상, 자기계발 영상을 찾아보기도 하였다.
그 기간이 자그마치 10년이였다. 자아정체성을 찾고자 함의 동기는 꿈이였고 꿈을 키워나감에 있어서 자아정체성 확립은 필수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필자의 꿈을 주위에 설파하고 다녔다. 주변의 반응은 냉담했고 반감을 사기도 하였다.
하지만 꾸준히 설파하고 다니며 나름의 믿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필자의 생각수준에 어느정도 인정하는 사람들이 생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필자가 그 시기를 몽상가 시절이였다고 칭하는 이유는, 필자는 결코 그 어느것도 제대로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필자가 말하고 꿈꾸는 것들을 마치 정말 이룬 것처럼 말하고 그렇게 될 사람인 것처럼 확신에 차서 말하고 본인은 특별하다고 생각했지만 어느하나 행동으로 제대로 실천으로 옮기지 않았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정말 생각이 통한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필자를 떠나는 일이 발생한다.
그 전에도 필자를 떠난 친구가 있었다. 같은 이유였고 그 전은 약속시간을 지키지 않음의 이유도 컸다.
꿈에 비해 노력하지 않았던 필자의 학창시절은 학업적 가능성만 내비쳤던 몇몇의 지표만 있었을 뿐 게으름과 행하지 않음의 압도적인 데이터로 원하는 대학에 진학을 못하게 되었다.
와중에 몇몇 대학을 붙었지만 인서울 아니면 의미가 없다는 생각에 제주도 가서 4년 동안 철학을 하면 내가 누군지는 알고 가겠지 하는 마음으로 제주대학교 철학과에 진학했다.
전북대를 가면 400만원을 주겠다는 어머니의 간곡한 요청도 거절한 채 내린 독단적인 아집이였다.
운이 좋게도 마음과 생각이 잘맞는 룸메이트를 만나 중학교 - 고등학교 시절 나를 떠났던 친구들과 떠나기전에 나누던 대화들을 나눌 수 있었다.
그 친구 역시 이전 떠났던 친구들이 그랬듯 필자의 화술이나 생각에 매료된 듯 하였고 필자 역시 그 친구의 생각과 마인드에 매료됬었다.
하지만 필자는 역시나 버릇을 못고치고 이것도 경험이라면서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면서 돌아다녔었다.
한달내내 술마시지 않는 날이 없는 것이 자랑인 것처럼 여겼었고, 수업에 안나가는 모습이 쿨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 와중에도 룸메이트와는 정말 재밌게 잘지냈다. 함께 누구와도 못했을 추억을 많이 만들고 다녔고, 온갖 이상한 짓들도 많이 하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 2학년 1학기 어느 날, 이 친구 역시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가 말한 이전의 친구들이 너를 왜 떠났는지 그 이유를 알거 같다'
이 말을 들었을때 가슴이 시큰했다. 정곡을 찔린 듯한 그리고 숨기고 싶었던 치부가 드러나는 듯한 기분이였다.
그럼에도 이 친구와는 정말 잘지내고 어울려 다녔지만 이 친구는 필자와 다르게 본인의 학점도 챙기던 친구라 방학때 짧은 기간동안 해외어학연수 같은걸 다녀왔었다.
이 친구는 거기서 어떠한 울림이 있었는지, 2학년 2학기 복학을 앞둔 시점에 기숙사 방을 선택하고 있던 바로 그 시점에 돌연 재수를 하겠다며 신청했던 rotc도 포기하고 휴학을 했다.
그리고 그 친구는 그 친구가 원했던 최상위 대학은 아니지만 중간정도 수준의 대학에 원하는 학과에 입학했다.
필자는 그 친구가 떠나고서도 허구한 날 술만 퍼마시면서 다녔다.
아침 아니 점심이 되어서야 일어나면서 쓰린 쏙을 아주 맵게 주문을 부탁한 고기짬뽕을 먹으며 해장한답시고 또 속을 버렸다.
살은 쪄갔고 거울 속의 필자의 모습을 들여다 보며 스스로 성공할꺼라고 되뇌이었지만, 그럼에도 알고 있었다.
이 모습으로는 절대 성공할 수 없을거라는 것을
이 사실을 부정하고 싶었던 것이였던 맘이였는지 모르겠지만 술을 끊을 수 없었고 담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입대하고선 훈련소를 지나 자대 배치받고선 신병신체검사할 때 몸무게가 77kg 이였다.
대학에 처음 들어올때 몸무게가 54kg 이였다. 심지어 훈련소도 다녀온 후 였다.
얼마나 자기관리가 안된 인생을 살았었는지를 실감했었다.
군대 생황을 지옥같았다. 말해도 공감 못하기에 군생활에서 느낀 인상깊었던 딱 한가지만 추려서 말하자면,
싫어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서 최고의 결과를 얻은 경험을 했다. 이것은 급수장비 운용 능력이였는데, 사단 최초로 한번에 성공했었다. 그 때 간부들이 필자에게 물어보곤 했었다.
전역할때쯤 자기자신에 대한 확신이 끝까지 차올랐었다.
전역하고서도 그 확신을 증명하는 듯한 행동을 하면서 지냈고 필자 스스로가 그런 사람인줄 알았다.
그렇게 강한 확신을 가지고 필자는 23에 서울살이를 도전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사업을 할 것을 꿈꾸고 갔으나 시도는 커녕 처음에 제대로 정착도 못하고 처음으로 돈 없어서 빌빌기던 때였다.
인생의 트라우마라고 할 정도로 정말 힘든 시기였다. 자존감은 바닥이였고 고등학교때 내 조언을 받들고선 성인이 되어서도 고맙다고 했던 친구가 필자의 말을 무시할 정도였다.
부모님께 도움을 안받겠다고 했지만, 서울살이 6개월 남짓한 시간동안 200만원 넘게 빌렸다.
처음으로 '나' 라는 사람의 사회적 효용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되었고 스스로가 꿈이 어떻고 뭐라 생각하건 현실은 그저 23살 군필 고졸 남자가 필자의 스펙 전부였다.
알바따윈 하지 않으려했지만 결국 대형의류브랜드 알바에서 재정적, 인간관계적 안정을 얻었다.
그리고선 24살에 복학할 때 쯤 정말 정체성과 진로고민에 봉착하게되었다.
처음에는 떠난 룸메이트 친구를 따라 재수를 하려고 했다.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한번 미끄러지니 맨날 누워서 폰만 보게 되었다.
공부한답시고 밖은 나가지도 않고, 수업만 마치고 방 구석에서 핸드폰만 보면서 그저 멍한 상태로 멍청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었다.
이렇게 된데에는 한 가지 큰 이유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진로의 고민이였다. 23살 시기를 겪은 24살의 필자의 머릿 속에선 인생이 망했다는 시뮬레이션 밖에 그려지지 않았다. 다시말하면 꿈을 이루지 못할거 같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였다.
그렇게 산송장처럼 지내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을 가진지 10년이 지났는데, 나는 바뀐게 하나도 없네?'
연이어서 '내가 남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던 그 꿈에 대해서 노력한 것이 하나도 없네?' '나는 정말 꿈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 만큼 남들보다 나은걸까?' '내가 무시했던 꿈이 없는 사람이 나보다 더 잘사는거 같은데?' 이런 생각들이 들고,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핸드폰을 들여다 봤을때 눈에 띄었던 것이 에브리타임에 소축제때 부스운영 참가자를 모집한다는 홍보 게시물이였다.
그래서 군대에서 생각했었고 서울가서 해볼려고 했었던 필름카메라 아이디어를 부스운영으로 간소화하여 실행했다.
도매업자를 어떻게 구하는지 몰라서 인터넷에 그냥 검색하면서 찾았고, 네이버 블로그 '남서울X상'을 찾아서 수업시간에 나와서 무작정 전화를 걸었다.
필름카메라만 팔면 어색할거 같아서 지금껏 찍은 사진 중에 괜찮게 나온 사진 6장을 골라 엽서 주문을 했다.
부스 운영대를 꾸미는 데 마땅한게 없어서 자취방 커튼을 뜯어다가 식탁보로 썼다.
가판대가 없어서 음료수 박스에다가 유성매직으로 메뉴판을 만들었다.
서울에서 사업준비하는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그들의 굿즈 아이템인 스티커를 받아서 함께 전시했다.
그렇게 어설프게 시작했지만 나름의 계산과 계획이 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산과 계획은 하나도 맞지 않았고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받아 겨우 필름카메라를 다 팔아 본전보다 조금 더 벌었다.
이 다시한번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깨닫고 학교생활로 돌아갔다.
어떨결에 '철학사랑전우회'라는 친목모임을 만들었다.
친한 형님이 알려주셔서 한국마사회에 경마지원직을 지원했고 면접을 보러갔었다.
그때 일렬로 쭉 오던 정장입은 아저씨들 모습이 너무 멋있었다.
필자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고 그 때부터 공기업을 목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 필자를 미치게 했었던 진로 고민에 대한 나름의 해답을 찾은거 같아 다시 삶의 자존감을 되찾고 더 적극적으로 이런저런 도전을 하기 시작했다.
이 이후로 불닭볶음면이 좋아서 대동제때 부스운영을 한번 더해보고,
철학과 축제때 찍을 영화 각본 및 촬영을 동기와 함께 직접하여 만들어 보았고,
불리할걸 알면서도 단과대학 부회장 선거에 나가보았고,
와중에 사귈 줄 알았던 배우에게 고백했다 까이고,
다음날 정책토론회인거 알면서도 인문대학 부스운영을 준비하고 운영했다.
올해에 들어선 대동제때 좀 더 스케일 크게 주점을 운영해봤고,
교육봉사도 전국단위로 회장직을 맡으면서 하게되었고,
교외근로를 하면서 대표님께 칭찬도 들어보고,
쉬는 날 없이 몇달간 일해보고,
삶의 계획, 안락함, 유익함을 다 뒤로한채 올인을 한 선택을 해보기도 했다.
물론 마지막 선택은 현재 진행형이고 잘 안풀려서 정말 지금 서울살이때와 마찬가지로 고통 속에 살고 있지만 그 때와 다르게 지금은 좀 더 괴롭고 힘들다. 그럼에도 내성이 생겨가면서 더 필자 스스로가 단단해져감을 느껴가는 요즘이다.
일일이 다 서술하진 않았지만 군대에 전역한 이래로 지금까지의 쭉이어온 필자의 삶 속에서 필자는 경험에 기인하여 사고의 확장과 인식의 전환등을 겪었고 이전과 다른 모습을 갖춰가고 있다.
마인드셋과 사고방식, 추진력 행동력 등에서 놀라운 변화와 성장을 겪었고 이는 필자를 한층 더 성숙하게 만들어주었다.
이러한 삶의 경험을 가지고 이전에 보았던 동기부여나 정체성에 관한 오늘날의 컨탠츠를 보고 있자면 감히 판단하건데,
딱 필자가 중 고등학교 시절 주위 친구들을 그저 말만으로 사로잡았을때의 수준과 별반 차이가 없어보인다.
심지어 컨탠츠이기 때문에 그 내용의 타당성을 증명을 시험받지 않는다.
이러한 컨탠츠는 그저 소비를 안하면 되지 않느냐? 라고 물을 수 있겠지만은, 주제에 시대의 새로운 아편이라 칭함은 이러한 컨탠츠들은 심각한 중독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떠한 동기부여 영상을 보는데 거기서 이런 말을 한다고 생각해보자 '이 영상을 보고 있는 것 만으로도 여러분의 성공확률은 다른 평범한 사람보다 앞서 가는 겁니다.' 이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뇌에서는 도파민이 나온다. 그 말은 즉슨 이 말을 듣는 것 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져서 오하려 어떤 일을 해야할때의 동기를 떨어트린다. 이는 도파민 중독의 사례이며 성공팔이, 정체성팔이 컨탠츠는 유독 이러한 현상이 심한 것으로 관찰된다.
군대에 있을 시절 어느 성공에 관한 영상물을 다루던 어느 채널에 호기심에 맴버십에 가입했었는데, 단톡방에 자그마치 1000가량의 사람이 있었다. 맴버십 가입을 한 사람들만 초대 받을 수 있는 방이였으므로 거기있는 모두는 적어도 매달 3,000원은 채널 주인에게 돈을 내는 셈이였고 단순 계산만해도 월에 300만원 수준이였다.
그 단톡방에는 주로 말을 많이 하는 사람들에 의해 분위기가 좌우되었었는데, 유독 활동성이 짙은 사람이 있었다. 톡방은 세 개 남짓하게 있었는데 세 개의 방 모두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사람이였다.
때문에 채널 관리인 그 전 매니저같은 사람이 채팅방 관리를 부탁해서 그 사람이 맡게 되었었는데, 답변이 가관이였다.
자기는 고 3이고 현재 평균 4,5 등급이며 고려대를 목표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공부하느라 잘못할 수도 있지만 잘부탁드린다는 것이였다.
과거의 내 모습에 어느 이상한 것이 씌인거 같은 모습이였다.
톡 방에서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의 대부분은 자신의 하고 있는 일들을 공유하곤 했는데, 그렇게 톡을 하면서 언제 그런걸 했는지 의심이 들정도의 성과를 올리곤 했다.
그리고 가끔씩 채널 주인장이 나타나서 한마디씩 던지고 가는데, 다들 무슨 종교 지도자 대하듯이 엄청 떠받는 듯한 내용을 다들 올렸었다. 사실 채널 주인장은 그 톡방들을 일일히 관리하지도 않았다. 제일 활동성 짙은 사람 몇몇에게 매니저 같은 권한을 주고선 자체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완전 사이비 종교집단과 다를바 없어 보이는 기이한 구조였다.
그 당시 읽고 있던 책의 '성공비밀은 노력없는 성취를 이룰려는 게으른자들이나 찾는 것이다'라는 구절을 보내고 다 해지하였다.
그렇게 유명한 유튜브 채널도 아니였는데 그런 식의 유사종교 성격을 지닌 온라인 사회망이 있다는게 필자는 너무나 충격이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이런식의 맴버쉽 운영체제를 택한 컨탠츠들이 굉장히 많이 보인다.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하지않고 시각화와 구체적인 상상만으로 성공에 이룰 수 있다고 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판을 치는 시대이다.
개고생을 해서 경험을 얻는 것이 아니라 성공한 사람을 흉내내려는 그마저도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짤라서 흉내내면서 성공할 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나 그럴거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나 모두 시대의 새로운 아편에 중독된 사람들이다.
앞서 말했듯 컨탠츠이고 증명해야할 부분이 없다. 다시말해 필자의 경우 필자를 따르던 친구들은 필자의 행동을 보고선 필자를 떠났지만 컨탠츠를 운용하는 개인은 그런 시험대에 오를 경우가 매우 적다. 스스로가 리스크를 걸고 얼굴공개하고선 성공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따라서 성공 혹은 정체성의 컨탠츠는 아편적인 요소가 강하다. 사람들에게 노력해야 얻을 수 있는 것을 노력하지 않았음에도 얻은 것 같은 쾌락을 전달해주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람은 그 자신의 뼈를 깎는 고통과 경험을 하지 않고서는 뼈를 깎는 다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공감하려고 조차 할 수 없고 안다고 할 수도 없다. 설령 그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었어도 자신의 경험이 아니기에 그냥 들은 이야기일 뿐이다.
근데 그것을 어떠한 삶의 비밀을 알고 있는 것 처럼 여긴다면 그것은 문제이고 이게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필자는 파악했다.
오늘날은 어느때보다 분별력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앞서 말했듯 성공과 정체성을 앞세워 아편을 파는 거짓 선지자들이 너무나 많은 시대이고 거기에 중독된 사람들은 어쩌면 다섯제곱배 이상일 것이다.
때문에 오늘날에 다가오는 '정체성','성공'이라는 탈을 쓰고 다가오는 컨탠츠들에 대해서는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고 그것을 추구하고 싶다면 오로지 자기자신의 경험적 인식을 바탕으로 사고와 인식의 확장을 도모하여 힘들게 얻어내기를 권고하는 바이다.
p.s 교수님 중간대체 공지를 어디서도 제대로 기간이나 주제에 대해 못받았어서 조금 늦게 올립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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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페이크 다큐라는 엔터테인먼트 분야가 아예 따로 있을 정도로 이미 오래전부터 개인의 "사연팔이"는 있었습니다. 오늘날 유튜브도 이런 분위기를 확장하는 데 큰 영향을 끼치고 있지요. 그런데 이 지점에서 우리는 한 가지 전제에 대한 질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 우리는 다른 이의 사적인 삶의 영역에 환호하는가? 환호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분명히 우리는 다른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 이유를 문학적으로 표현한다면 우리가 외로운 존재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우리는 단독자로 살아가기를 요청받고 있고, 실제로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관계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나와 관계하고 있는 이들이 어떤 점에서 같고 다른지를 엿보고 확인하며, 드러내려고 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