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에서 찾은 니체의 철학
영화 "하늘을 걷는 남자"는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쌍둥이 빌딩) 옥상 사이를 외줄타기로 건너간 필립 페팃의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주인공 필립은 프랑스에서 소규모 길거리 공연을 하던 곡예사였다. 그는 바닥에 원을 그려놓고 그 안에서 공연을 하였으며, 그 누구도 원의 경계를 침범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길거리 공연을 단속하는 경찰에게 쫓기는 것이 일상이었고, 곡예사는 돈이 안된다며 반대하는 아버지에 의해 집에서도 쫓겨났다. 게다가 자기 발로 찾아가 제자가 되고자 했던 스승(유명 서커스단의 단장)의 태도가 맘에 안 든다며 대들었다가 쫓겨나기도 했다. 하지만 외줄타기를 비롯한 곡예공연을 하는 것을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는 쌍둥이 빌딩이 곧 완공될 것이라는 신문기사를 보게 되고, 두 건물 사이를 외줄타기로 건너야겠다는 말도 안 되는 다짐을 하게 된다.
“내 공연은 단순한 쇼가 아니라 하나의 쿠데타가 될 거요.”
그는 쌍둥이 빌딩 옥상에 모두의 눈을 피해 몰래 줄을 달고 외줄타기 쇼(illegal high wire walk)를 실현할 계획을 세우며 이것을 “세기의 예술적 쿠데타”라고 칭했다. 이 쿠데타에 협력해 줄 동료들을 모으고, 싸웠던 스승을 다시 찾아가 400m가 넘는 높이의 건물에서도 튼튼하게 줄을 고정할 수 있는 노하우를 배웠다. 그다음엔 뉴욕으로 넘어가 쌍둥이 빌딩 근처에 머물며 수많은 경비원들의 눈을 피해 옥상에 줄을 설치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건축사로 변장하여 건물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엘리베이터의 구조, 건물 운영 시스템 등을 꼼꼼하게 파악하였다. 온갖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결국 그는 쿠데타에 성공하였다.
역사상 가장 공격적인 철학자라고 회자되는 니체의 철학은 자칫하면 개인주의자 혹은 극단주의자들의 이기적인 행동을 옹호하는 것으로 해석된 수 있다. 하지만 이 영화의 주인공은 니체의 철학을 가장 바람직하게 실현한 사례라고 생각한다. 자기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의지를 행사하여 끊임없이 위로 올라가려고 하는 위버멘쉬를 실현한 사람인 것이다. 그는 목표에 도달하기 위한 과정 속에서 끊임없이 타인에게 의심을 받고 부정당했다. 경찰에게서 쫓기고, 집에서 쫓겨나고, 스승에게서 쫓겨났을 뿐만 아니라 그의 조력자들도 아직 준비가 미흡하니 날짜를 미뤄야 한다고 말하거나 안전줄을 달아야 한다고 그를 설득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단 한순간도 망설이지 않았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공격적으로 행동하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니체의 생철학에서 의식과 이성 같은 정신적 기능, 초월적 이상과 이로부터 파생된 반자연적 도덕규범은 온전한 생(life)을 누리기 위해 극복해야 할 적대적인 요소이다. 실제로 그는 (조력자 중 한 명의 표현에 따르면) 완전히 미쳐있었고, 100개가 넘는 뉴욕시의 조례를 어겼다.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파격적인 발언을 통해서 죽은 신이 남긴 잔재인 도덕규범은 “약자”가 생존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며, 도덕이 만들어낸 거짓인 선, 악, 죄책, 양심과 같은 개념들과 함께 쓸어내야 할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이것이 부도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야생에서 사자가 양분을 섭취하기 위해 다른 동물을 사냥하는 행위와 같은 자연적 본성을 비난하지 않듯이 도덕 무관한 것, 비도덕(몰도덕) 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도덕적 자연주의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뉴욕의 사람들도 주인공의 행위가 부도덕적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는지 그를 체포하려고 출동한 경찰들은 줄에서 내려온 주인공에게 박수를 보냈고, 재판에서 그에게 내려진 판결은 고작 센트럴파크에서 아이들을 위한 무료공연 개최하라는 것이었다.
“왜(why)”
이 영화의 첫 대사이자, 주인공이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일 것이다. 죽음의 위험을 무릅쓰고 도대체 “왜” 고공줄타기를 계속하냐고 묻는 질문에 그는 “난 그(death) 반대말이 더 좋아요. Life. 줄을 타는 것은 나의 인생(life)이에요.”라고 답한다. 나는 아직까지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깨닫지 못했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주인공의 이야기를 통해 깨닫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맞춰, 혹은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한 틀 안에서의 꿈을 찾지 못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미래의 내가 이 영화의 주인공이나 니체가 말한 것처럼 힘의 의지를 바탕으로 자유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을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이 영화를 본 직후에는 모든 것이 가능할 것 같다는 용기를 얻은 기분이었다.
첫댓글 중력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내용을 소재로 삼았네요. 그런데 이것을 쿠데타라고 정의한다고 할 때 주인공이 전복시키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요? 니체와의 비교를 통해서 이것을 설명했지만, 도덕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이야기는 좀 더 심화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도덕이라고 하는 것도 결과적으로 그 시대까지의 지성사를 토대로 해서 시대정신이 합의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니체가 말한 정신적 기능, 초월적 이상과 반자연적 도덕규범이라고 하는 것이 주인공의 쿠데타에서는 어떻게 드러나는 것일까요? 그것이 "전복"에만 초점이 맞춰줘도 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