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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역사에서는 The Tudor dynasty 라 부르고 있습니다. 이번에는 튜더 가문입니다...
오랜만에 다시 가문 소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게임의 진화가 눈부신 이 시점에서 초창기에 필요했던 글을 쓴다는 자체가 얼마나 뜻 깊은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이 카페의 조그마한 눈 요기거리라도 만들고 싶은 충정(?)의 마음가짐으로 한 줄 올립니다.
개인적으로는 논문 마감이나 용역 마감 등등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지만... 이상하게도 바쁜데 놀고 싶어서... 게임을 열어서 군주들을 한 번씩 검색해 보았습니다. 먼저 인지해야 할 점은 저의 게임은 2년 전 수준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즉 이후의 업데이트는 없습니다. 그래서 구버전입니다...)
실은 이 게임을 무지 학문적(?)으로 접근해서 플레이하기 때문에 무슨 개념을 가지고 플레이 하지 않고 서양인들의 눈에 어떻게 비춰지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 봅니다. 예를 들면 크베적 상황(?)이 의도하지 않게 등장할 경우... 플레이어를 갈아탑니다... 저는 그런 인간 아니거든요...
아무튼 각설하고...
우연히 어떤 가문과 인물들이 구현되고 있는지 알고 싶어서 국내에 가장 많은 문헌이 돌고 있는 영국을 둘러보았습니다. 즉 남작령 수준부터 하나하나 찍고 보고 있는겁니다... 그런데...
아~ 진짜 중세의 시작을 알리는 가문 하나가 남작령에서 구현되고 있더군요. 제 눈을 의심함...
역쉬... 역설사는 다르구나... 분명 제작자 중에 역사적 식견이 대단한 인물이 있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죠... 진짜 수준이 다르구나...
이때 제가 찾아낸 가문은 바로... 튜더 가문이었거든요.
아시는 분은 다 아실듯... 일부러 남작령 만들어 놓았더군요... 여기 튜더가 있다!
다른 시나리오보다 이 곳의 홀딩수가 다르다는 겁니다... 비교해보세요~
아~ 그러고... 요기 이 남작님이 바로 헨리 7세의 7대조 할배입니다.
그래서 꼭 한 번 소개해 드리고 싶었어요. 세계의 역사를 뒤흔든 가문 중의 하나라고 꼽고 싶었거든요.
이를테면... 비잔틴 제국이 오스만투르크 제국에 패망한 사건 만큼이나 중요한 역사적 사건을 2건이나 만들면서 오늘날 세계의 질서를 재편시켜 놓았기에... 이렇게 말하면 어린 분들 이해 안 될 것 같아서 생략합니다. 부디 세계사를 반드시 배우시기를... 수학의 미분적분이나 벡터는 대학 초급 과정까지 인생을 좌우하지만... 세계사는 사회에 살아갈 때 지적 수준을 판가름하는 척도의 하나입니다. 소위 배운 사람들 사회에서는 필수죠... 무식은 티나지 않게~
잉글랜드 역사에서 튜더 가문은 그 유명한 헨리 8세와 엘리자베스 1세를 배출한 영국 왕가의 하나입니다.
이 가문에서 총 4+1명이 군주가 되었습니다. +1은 제인 그레이라서 ‘9일 여왕’인지라 고민 좀 했지만 그래도 여왕이었으니... 군주의 이름은 헨리 7세, 헨리 8세, 에드워드 7세, 제인 그레이, 메리 1세, 엘리자베스 1세 군요...
이 가문은 대가 끊겨서 더 이상 튜더 라는 성을 쓰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물론 헨리 7세의 후손에 한해서요...
이 초상화의 주인공이 바로 헨리 7세입니다.
앙드레 모로아는 이 군주를 아주 구두쇠이며... 음습하며...
그리고 아주 검박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죠... 아들과는 정반대였다고...
오른손에 장미를 들고 있죠... 바로 튜더의 장미입니다.
요 녀석이 바로 튜더의 장미입니다. 랭카스터의 붉은 장미와 요크의 흰 장미가 결합...
그러나... 붉은 장미라기 보다는 선홍색 장미입니다.
그냥 적백의 대립이 더 멋있게 보인 후세 역사가들의 농에서... 장미전쟁... ㅋㅋㅋ
물론 미국 드라마로 더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시청하다가 깜놀... 그건 좀 과장이 많더군요.
우리나라 아침드라마 수준은 아니지만... 뭐랄까... 남자들의 로망?!
헨리 8세가 비록 매독으로 생애를 마쳤지만 대단한 ‘욕심쟁이 군주’였기 때문에 오늘날 영국의 기반을 만드는데 최고의 공헌을 한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레이트 브리튼이란 단어를 만드는데 최고 공로는 역시 창시자 헨리 7세였지만 말입니다.
게임을 뒤적거리다가 놀라웠습니다. 영국 중세의 시발점에선 가문을 요렇게 고증을 완벽히 구현하다니 놀라운 게임일 뿐이다 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 글을 보고 누군가 이 꼬꼬마 남작령에서 튜더를 구원하여 이른 시기 브리타니아 제국을 건설해 보시기를... 이왕 이름은 헨리 또는 에드워드로 지으시던가... 여왕이 나오면 반드시 엘리자베스로... 시간이 나면... 갈아타기 형식을 빌려 '엘리자베스의 제국'을 만들고 싶네요... 후후후 지금 설날을 기다립니다.
이 가문의 기원은 웨일즈 지방의 오래된 귀족가문에서 출발합니다.
영문에선 Tudors of Penmynydd라 표현하더군요. 웨일즈어는 도통 이해 불가...
가문의 역사는 12세기 초 Gwynedd 가문의 Llywelyn ‘the Great’와 그의 아들 Dafydd ap Llywelyn의 신하로 활약했던 Ednyfed Fychan ap Cynwrig(1179-1246)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사람은 역사에 그 이름을 처음으로 드러내는 시조인데 잉글랜드가 끊임없이 웨일즈를 침공할 때 선봉대장으로 왔던 Ranulph de Blondeville(4th Earl of Chester)를 맞서 용감하게 격퇴함으로써 장군으로 명성을 쌓았다고 합니다. 이른바 웨일즈의 수호자?!
그는 상당히 많은 결혼을 해서 자식이 엄청 많았습니다. 첫 번째 결혼에서 6명의 자녀를, 두 번째 결혼에서 4명의 자녀를 그리고 적자로 인정된 2명의 자식과 서자 1명이 있었죠.
훗날 왕가를 배출해내는 자식은 두 번째 결혼에서 태어난 7남인 Goronwy ap Ednyfed Fychan(1200-1268, Lord of Tref-Gastell)인데 그는 헨리 7세의 7대조가 됩니다.
이름을 부를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문자로 보세요... 어설픈 해석은 금물...
Goronwy ap Ednyfed Fychan(d. 1268)은 Morfudd ferch Meurig of Gwent와 결혼해서 5명의 자녀를 얻었는데 그 중 장남이 Tudur Hen ap Goronwy of Penmynydd(d. 1311)입니다.
Tudur Hen은 Goronwy ap Tudur Hen(d. 1331)을 낳았는데 장남이었고 아키텐의 궁수대 대장을 역임했죠. Goronwy은 두 번의 결혼을 통해 10명의 자녀를 낳았는데 그 중 막내가 Tudur ap Goronwy(d. 1367)였습니다. 이가 바로 헨리 7세의 고조부입니다.
Tudur ap Goronwy은 세 자녀가 있었는데 장남이 Maredudd ap Tudur(d.1406)로 Margared ferch Dafydd Fychan of Trefeilir와 결혼해서 1남 1녀를 얻죠. 딸은 잉글랜드의 기사 Sir William Norris와 결혼한 Annes ferch Maredudd이었고 장남은 가문을 일으키면서 왕조를 개창하는데 기틀을 마련한 Sir Owen Tudor였습니다.
오웬 튜더... 웨일즈어로는 Owain ap Maredudd ap Tewdwr라고 씁니다만....
웨일즈의 옛 통치자 Rhys ap Gruffudd의 외손자 후손이라는 간판으로 잉글랜드 궁정에 진출한 잉글랜드 왕국 내 튜더 가문의 첫 일원이 됩니다. 그는 장미전쟁에 참가했고 열렬히 랭카스터 가문을 옹호하여 그 공을 인정받게 됩니다. 그의 신분은 ‘왕의 기사’에 불과했지만... 원래 왕궁의 가신에게는 출세의 길이 무공 이외에도 다른 방면으로도 보장되곤 합니다...
튜더 가문을 소개하기 앞서 장미전쟁 때 랭카스터 가문에 대해 잠깐 설명을 붙이겠습니다. 이 가문을 설명하지 않고서는 튜더 가문의 계승이 이해되지 않기 때문이죠.
잉글랜드왕 헨리 5세(1386-1422)는 아버지 헨리 4세의 왕관을 이어받았지만 그의 조부 랭카스터 공작 존(1st Duke of Lancaster)은 에드워드 3세의 수많은 아들 중 한 명에 불과했죠. 게임 해 보면 다들 아시겠지만... 원래 국왕이라 할지라도 자손에게 줄 수 있는 직할지는 별로 가지지 못합니다. 이런 것까지 깨알같이 구현하는 게임이 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만 말입니다. 아무튼 에드워드 3세도 많은 아들들에게 챙겨줄 토지는 별로 없었죠. 그래서 왕국 내에서 딸만 가진 귀족 가문을 물색합니다. 이 방법은 프랑스의 카페 가문이 잘 써먹어서 유명하죠. 수많은 방계를 만들 때 토지를 줄 수 없는 왕자는 딸만 가진 귀족들에게 보내면서 처가 재산을 차지하게 합니다. 그럼 왕자는 아내도 얻고 자기 자손에게 줄 토지도 확보합니다. 물론 왕자를 사위로 삼는 영광을 처가에게 주는 댓가(?)로 말입니다. 에드워드 3세도 이 방법을 충실히 활용하여 왕실 일원으로 딸만 있는 가문을 골라 드디어 발견합니다. 랭카스터 백작 가문이라고....
1대 랭카스터 백작 에드먼드는 헨리 3세의 아들로 에드워드 1세의 바로 밑 동생이었습니다. 이 때까지는 정복왕 윌리엄 1세 덕분에 왕실은 여전히 엄청난 왕령지를 확보하고 있었죠. 여담이지만 윌리엄이 정복에 성공했을 때 왕령지가 무려 2800여 곳이 넘는 장원을 확보합니다. 색슨 귀족들에게 몰수해서 2000여명의 기사들에게 나눠 주고 남은 건데... 아마 국토의 80%가 왕령지로 귀속되었다고 하더이다. 자신의 가까운 친족들만 백작으로 삼았는데 그 수는 수십명도 안되어서 왕령지 천지였다고... 가장 많은 왕령지는 사냥터였죠... 즉 토지의 지목으로는 '임야'올시다...
아무튼 에드먼드는 왕자령을 받고 분가를 해서 랭카스터 백작 가문을 열죠. 에드먼드가 죽고 그의 아들 토마스가 2대 백작이 되었고 토마스가 자식이 없어 동생 헨리가 3대 백작이 됩니다. 3대 헨리를 이어서 아들 헨리가 4대 백작이 되었죠. 그런데 4대 백작 헨리(1310-1361)는 딸만 두 명만 낳게 되어서 괴롭게 됩니다. 많은 귀족들의 차남 이하 놈팽이들이 눈독을 들입니다. 장가 한번 잘 가서 팔자 아주 고치겠다고...
장녀였던 모드는 아주 어릴 적에 Ralph Stafford와 결혼했지만 자식 없이 남편이 사망하자 결국 13세 때 독일 비텔스바하 가문 출신의 빌헬름 5세(William V, Count of Holland, Zeeland and Hainault)와 재혼합니다. 그러나 그녀가 죽을 때 살아남은 자손이 없었기 때문에 결국 여동생 블랑쉬가 진정한 후계자가 되죠.
차녀인 블랑쉬(1345-1368)는 에드워드 3세의 자식 중 살아남은 순서로는 3남인 왕자 존(1340-1399)과 결혼하게 됩니다. 4대 백작인 헨리는 왕자 사위를 두면서 죽기 전에 1st Duke of Lancaster 즉 초대 랭카스터 공작이 되죠. 아마 에드워드 3세가 아들 존을 위해 장인부터 공작으로 승급시켜 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1360년 블랑쉬가 첫 딸 필리파[그녀는 훗날 포르투갈 왕 주앙 1세의 왕비가 됨]를 낳아서 정식 상속인이 생겼으니까요. 아무튼 장인이 죽자 존이 랭카스터를 상속받게 되면서 2번째 플랜타지네트 가문의 랭카스터 분가를 만들게 됩니다.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 에드워드 계열이 단절되자 방계들이 클레임 전쟁 걸면서 장미전쟁이 발발하게 됩니다. 랭카스터 공작 가문의 존과 블랑쉬는 4남 3녀를 낳았지만 어른이 된 자녀는 단 3명에 불과합니다. 장녀 필리파와 3녀 엘리자베스 그리고 6남 헨리였죠.
존은 원래 순서로 3번째 왕자 밖에 안 되어서 클레임이 약한 편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들 헨리는 의회의 동조를 얻어 1399년 왕위를 획득하게 됩니다. 바로 그가 바로 헨리 4세(1367-1413)입니다. 그리하여 랭카스터 왕조를 개창하게 됩니다.
랭카스터 가문의 헨리 4세는 에드워드 3세 때부터 주장한 프랑스 왕위 계승을 지속적으로 이어받기를 원했죠. 선조 에드워드 2세의 결혼에서 발생한 외손자로써의 클레임 주장은 원래 리처드 2세로 완결지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혼란은 잉글랜드의 기쁨... 씨도 안먹히는 클레임 주장을 하면서... 뒤로는 나름대로 다시 프랑스와의 국혼을 서두르죠. 우리 아드님을 프랑스왕 사위로 만들어야 할 터인데...
요약하자면... 에드워드 2세가 프랑스 공주를 맞이해서 그들의 아들 에드워드 3세가 외손자로서 클레임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프랑스왕실이 그대로 카페 가문의 종가가 유지되었다면 에드워드 3세가 씨도 안먹히는 소릴 안했을 텐데 웃기게도 종가가 단절됩니다. 그러자 1순위인 에드워드 3세가 프랑스왕을 겸하는 꼴을 못보는 프랑스귀족들이 듣보잡이던 살리카법을 끌어다가 여계 상속을 인정하지 않고 남계 상속을 통해 저 멀리 방계 출신의 백작 하나를 물어다 왕위에 앉히죠. 그러니 외손자인 에드워드 3세가 눈 돌아갑니다. 내꺼 돌리도...
그래서 전쟁이 시작되었죠... 그런데...
이쯤에서 다시 잉글랜드 왕위 계승 서열부터 요약한다면...
와~ 장미전쟁이 워낙 이런 클레임 때문에 발생해서 족보부터 다시 더듬어야 되니 힘드네요.
자~ 에드워드 3세의 자녀 중 어른으로 성장한 왕자는 모두 4명.
1남 에드워드 the Black Prince (1330–1376)
-> 아들 2명으로 에드워드와 리처드 2세(1400 죽음) 그러나 단절
2남 라이오넬 1st Duke of Clarence (1338–1368)
-> 외동딸 필리파 Philippa of Clarence, 5th Countess of Ulster (1355–1382)
그녀는 모티머 가문에 시집가서 2남 2녀를 낳았습니다. 장남이었던 로저 모티머(4th Earl of March)의 장녀 앤 모티머가 훗날 요크 가문의 에드워드 4세의 할머니가 됩니다. 여기서 나온 권리를 나중에 에드워드 4세가 주장합니다. 자신의 혈통이 랭카스터 혈통보다 더 종가에 가깝다고 주장을 하거든요.
3남 존 1st Duke of Lancaster (1340–1399)
-> 헨리 4세 Henry IV of England (1367–1413) 랭카스터 가문의 창시
4남 에드먼드 1st Duke of York (1341–1402) 결혼 두 번해서 각각 아들 한 명씩 얻음.
-> 장남 에드워드 2nd Duke of York (1373-1415) 결혼 2번했지만 자손이 없어 동생 리처드가 상속자가 됨
차남 리처드 (3rd Duke of York, 1411-1460) 어머니가 앤 모티머... 클라렌스 공작 라이오넬로부터 오는 계승권 주장이 가능해짐. 그는 결코 왕이 되지 못했지만 아들 에드워드 4세와 리처드 3세가 요크 왕가를 열게 됨... 아내는 Cecily Neville... 아주 유명함. 네빌 가문이 너무 유명함... 이 가문은 언제 소개할려나... 유명한 ‘킹 메이커’가 배출...
아무튼 존의 후손들인 랭카스터 가문은 3번째 아들의 자손인지라 프랑스 계승에 대한 정통성 확립이 절실했죠. 결국 헨리 5세(1386-1422)는 1420년 프랑스왕 샤를 6세와 바이에른공녀 이사벨라의 딸인 캐더린(Catherine of France, 1401–1437)과 결혼하게 됩니다.
두 사람 나이를 보니 15세 차이군요... 이건 도둑 심뽀...
그리고 1421년 12월 6일 두 사람 사이에 왕자 헨리가 태어납니다. 랭카스터 왕가의 경사 중 경사겠죠. 다시 프랑스 클레임을 주장할 수 있으니... 그러나...! 1422년 9월 1일 헨리 5세가 갑자기 죽어버려서 강보에 싸여있던 왕자가 왕위를 계승하게 됩니다. 그가 바로 헨리 6세(1421-1471)였죠. 문제는... 20대 청춘을 만끽하던 어머니 캐더린이었죠....
뭐야? 왕비가 되었다고 좋아하다가 바로 과부... 미망인... 겨우 21세 청춘...
캐더린은 기다리지 않고 바로 연애사업에 뛰어들죠... 왕궁 내 잘생긴 넘 없나...
이때 등장한 인물이 바로 웨일즈 출신의 오웬 경이었습니다. 오웬 튜더라고...
두 사람은 아주 비밀리 결혼식을 올리고 함께 살면서 두 아들을 낳습니다.
장남은 에드먼드(Edmund Tudor, 1431-1456)로 이부형님 헨리 6세 덕분에 1st Earl of Richmond이 됩니다. 바로 헨리 7세의 아버지입니다.
차남은 재스퍼(Jasper Tudor, 1431-1495)로 이부형님 헨리 6세 덕분에 1st Earl of Pembroke되고 훗날 튜더 가문에 의해 1st Duke of Bedford가 됩니다. 그의 부인은 에드워드 4세의 왕비였던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여동생 캐더린 우드빌(즉 요크의 엘리자베스 이모)로 딸만 둘 낳아서... 남자 자손은 없습니다.
확실히 헨리 6세가 대인배 였던 것 같네요. 공주였던 어머니가 신분이 엄청 낮은 하급 기사랑 결혼해서 사니... 태어난 이부동생 둘이 불쌍하다고 생각되었던 것 같습니다. 결국 왕의 힘으로 두 동생을 ‘인정된 서자’로 만들어주고 그것도 모자라 각각 백작 작위도 수여해 줍니다. 결국 튜더 가문은 백작을 둘 배출하는 상급 귀족으로 승격된 것이죠. 특히 큰 동생 에드먼드에게는 더 신경을 써 주는데... 바로 왕위계승권을 가진 여인과 결혼시켜 주게 됩니다.
그녀의 이름은 마가렛 보퍼드(Margaret Beaufort, 1443-1509)로 평생 결혼을 네 번씩 하는 행운이라고 해야할지 팔자가 사납다라고 할지.... 물론 낳은 자식은 단 한 명... 훗날의 헨리 7세만을 낳았습니다. 여담이지만 그 유명한 ‘더비경마대회’를 개설한 12대 더비 백작 에드워드 스탠리가 바로 이 여인의 네 번째 남편 토마스 스탠리(Thomas Stanley, 1st Earl of Derby) 후손인데요. 토마스는 재혼을 잘 해서 왕의 의붓아버지가 되는 통에 백작 가문을 창설하게 됩니다. 물론 토마스 스탠리가 의붓아들 왕위쟁탈전에 가담해서 공을 세워 왕관을 직접 씌워주는 영광을 얻게 되면서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백작 가문 시조가 되지만요. 아무튼 마가렛 보퍼드는 랭카스터 공작 존의 ‘인정된 서자’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래서 헨리 7세는 어머니로부터 문장에 장미를 쓸 권리를 얻게 됩니다.
마가렛 보퍼드... 그녀의 인생은 왕위계승권을 노리는 많은 귀족 남자들의 노림수로 점철되어 있었습니다. 첫 결혼이 1444년이니 만 1세 때 서포크 공작인 존 드 라 폴과 결혼합니다. 그러나 헨리 6세는 이 결혼을 무효화 시켜 버리죠... 왜냐... 이부동생을 위해서입니다. 백작으로 만든 동생 가문을 더 빛나게 하기 위해선 그녀가 필요했죠. 1450년 그녀의 나이 7세 때 13살 연상인 에드먼드 튜더와 결혼을 합니다. 그리고 1457년 1월 28일 헨리를 낳죠. 그녀 나이 14세... 너무 어린 나이에 어머니가 된 그녀는 그저 장미전쟁의 한 희생물에 불과했죠.
더 웃긴 건... 헨리는 유복자로 태어납니다. 에드먼드가 요크 가문 지지자들에게 붙잡혀 포로 생활을 하다 프라그로 병사하는 통에... 13세 나이에 과부가 되어 14세에 아들을 낳고... 시동생인 펌브로크 백작의 성으로 가서 의탁하게 되죠. 그렇지만 왕위계승권에 눈이 어두운 버킹검 공작 험프리 스태포드가 그녀를 데리고 가서 그녀보다 13세 연상인 아들 헨리 스태포드와 결혼시킵니다. 이 둘은 8촌 지간이었는데 1471년 남편이 죽자 다시 과부가 됩니다.
그리고... 그녀는 1472년에 네 번째 결혼을 하는데 바로 토마스 스탠리로 Lord High Constable 즉 보안무관장(왕의 시종무관입니다)이었으며, 토마스는 리처드 3세와의 전투 때 의붓아들을 도와 왕궁으로 맞이하는데 1등 공신이 되죠. 아들이 승리하여 왕관을 획득하자 그녀는 King's Mother로 여생을 보내게 됩니다. 본디 웨일즈 촌구석의 하급 귀족에 불과햇던 튜더 가문이 결국 그녀를 통해 왕관을 차지합니다.
오늘날 튜더 가문 인물들은 초상화를 잘 남겨 주어서... 상상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얼굴보면... 누구 닮은 자식인지 다 알죠... 가계도입니다.
이 가문은 이야기 거리도 많은게 사실...
실은... 예전에 그녀에 대한 전기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정말 일생이 기구하더군요. 어쩌면 카페 글에서 읽는 클레임 얻기 위해 막 태어난 공주랑 혼인시키는 전략 구사하는 글 보면서 그녀를 생각했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정략적이니... 게임이 이런 것을 다 구현하니 마음이 심란하더군요... 쩝... 이 게임이 너무 무섭다는 생각이 들곤 해요. 그냥 크베가 아녀...
그녀의 유일한 아들 헨리 7세는 요크 가문의 엘리자베스와 결혼하면서 이른바 장미의 결합을 단행하죠. 이 둘은 8촌 지간인데 적백 장미의 결합이었죠.
오늘날 튜더 가문 시절 자료들이 많이 남아있어서 연구하기에는 좋습니다. 라틴어랑 프랑스어만 잘 구사하면 여러 문서들이 와르르... 절대 영어로는 못 읽어요.
웃기죠... 영국사를 영어로 읽지 않고... 우리 역사를 한글로 읽지 않고 한문으로 읽는 거랑 같습니다. 역사 전공은 그래서 힘들어요. 어학이 딸리면 그날로 게임 끝...
오늘날 남아있는 초상화를 보면 정말... 헨리 7세는 그의 어머니 판박이입니다.
그리고 헨리 8세는 어머니 엘리자베스(Elizabeth of York, 1466-1503)의 판박이입니다.
아들은 역시 어머니를 닮는군요... 못생긴 아빠는 이쁜 딸을 기대하면 안됩니다... 유전학의 이치(?)를 거스리지 ~퍽~
이건 웨일즈 귀족 가문일 때 쓰던 튜더 가문의 문장입니다. 단순 하네요...
이건 헨리 7세의 아버지 에드먼드의 문장입니다.
어머니로 부터 받은 카페 가문의 문장과
아내로 부터 받은 플랜타지넷 가문의 문장을 합침
아무튼 헨리 7세가 즉위하면서 웨일즈 시골 귀족 가문이 대영제국을 만드는 초석이 됩니다.
헨리 7세의 자녀는 모두 3남 4녀였습니다. 그의 후손들이 여전히 왕위를 차지하고 있죠.
현재의 윈저 가문도 헨리 7세로 부터 내려오는 계승권으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1남 아서 (Arthur, Prince of Wales, 20 September 1486 – 2 April 1502)
2녀 마가렛 (Margaret, Queen consort of Scotland, 28 November 1489 – 18 October 1541)
3남 헨리 8세 (Henry VIII of England, 28 June 1491 – 28 January 1547)
4녀 엘리자베스 (Elizabeth Tudor, 2 July 1492 – 14 September 1495)
5녀 메리 (Mary, Queen consort of France, 18 March 1496 – 25 June 1533)
6남 에드먼드 (Edmund, Duke of Somerset, 21 February 1499 – 19 June 1500)
7녀 캐서린 (Katherine Tudor, 2 February 1503 – 10 February 1503)
여기서... 스튜어드 가문이 잉글랜드 왕관을 합치는 것은 차녀 마가렛의 후손이기 때문입니다.
앙드레 모로아의 ‘영국사’에는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헨리 7세가 둘째 왕녀를 스코틀랜드왕 제임스 4세에게 보낼 때 추밀원의 귀족들은 쌍수 들고 반대 합니다. 감히 촌구석의 왕 넘에게 귀한 왕녀를 보낼 수 없다는 내용입죠. 그리고 만일 종가가 단절되어 저 촌구석 왕 넘의 자손이 계승권리를 주장한다면 어떻게 할거냐고 묻자... 왕이 말하기를...
‘그럼... 두 왕국은 합쳐지겠지 뭐....’
결국 합쳐졌죠... 그리고 이제는 독립하겠다고 난리죠... 이 모든 게 헨리 7세의 업보죠.
실은 원래 리처드 3세의 유골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장미전쟁 한 번 쓰고 싶은데...
조사할 게 많아서 지금은 포기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쓸 생각입니다.
(저의 입장에서는 이 정도의 글 쓰는데 적어도 3~4시간 이상 걸리거든요. 양해를...)
다음 이야기는 스코틀랜드로 갈 생각입니다.
아마 브루스 가문과 스튜어드 가문이 되겠죠... 그렇지만 언제 올릴건지는 미정... 가능하면 빨리 올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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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어째 역사스페셜로 가야할 분량과 내용인 것 같은데요ㅋㅋ 잘 봤습니다.
헨리 튜더가 왕위를 찬탈한 뒤(진짜 찬탈이었음. 보포트가는 왕위계승권도 없을 뿐더러, 헨리는 어머니가 보포트가니 혈통조차 주장하기 민망함), 플랜타지넷의 남계는 헨리 7세가 끊었고, 마지막 생존자인 마가렛은 헨리 8세가 처형했죠.
리처드 3세의 유해발견으로 랭카스터와 요크의 혈통문제가 터졌지만 다들 별로 신경 안 쓰는 이유가, 워낙 예전의 일이기도 하지만, 애시당초 헨리 튜더는 계승권이 없던 자가 힘으로 올라간 것이라, 에드워드 3세의 후손이건 아니건 찬탈자니.
미드 봐서 튜더스를 동감이네요. 보면 헨리 8세가 왕가의 피가 조금이나마 섞인 귀족들 숙청하는 장면보면 냉철하다못해 냉혈스럽죠. 그만큼 적통성이 미약하기 때문이었던거 같습니다.
너무나 재밋게 잘봤습니다
언제 올라오나 하고 기다리고 있었네요. 잘 봤습니다.
잘보고갑니다. 매번 가문소개 해주시는 덕분에 몰랐던 여러가문을 알게되서 기쁩니다.
오래간만의 연재 시네요.
대체로 역사에서 가문의 이야기는 한국에선 별로 관심이 없는데, 크킹2를 하다보니 다양한 가문들 이야기에 관심을 갖게 되더군요 ㅎㅎ
저도 시간이 이렇게 흘렀는지 깜놀... 작년 4월에 마지막 작성했더군요... 지금 버닝 중인지라... 이게 다 리처드 3세가 불 질러 놓았어요~ 笑
웨일즈 어디에있는가문이져?
제가 사진 속에 표기해 두었는데요... 웨일즈의 귀네드 백작령에 속해 있습니다. 시대가 맞아야 홀딩 추가되어 등장합니다.
재밌게 읽었습니다! 정말 기구한 가문이네요. 일이 뭐 이리 많은지 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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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보고 위키 찾아보니 뭔 안맞는 구석이 너무 많더라구요 ㅋㅋ 재미를 위해서 허구좀 섞어놓은듯
중간에 차남은 재스퍼에서 에드워드 4세로 고치셔야겠네요.
@shyisna 아뇨 그 줄에서 엘리자베스 우드빌의 남편이 에드워드 6세로 되어 있어서요.
@Salvation 아~ 고쳤습니다. 감사합니다... 4세죠...
@shyisna 아 별 말씀을 요. 좋은 글 써주셔서 감사합니다.(__)
그런데 요크쪽 가계에 좀 심각한 트러블이 있다는....중간에 누가 바람을 거하게 피셨는지 에드워드3세이후의 다른 자손들하고 DNA매칭이 안맞게 나온다고 말이 많습니다.현 왕실은 그거 확인불허했고요.
예... 요크 가문 쪽이 아무래도... 영국 현지에서는 랭카스터 가문도 의심하더군요. 존도 에드워드 3세 자식이 아닐꺼라고...
한번 거론하고 싶은데... 영국 여왕께서 싫어하실까요? 이런 거 감히 한국 땅에서 언급한다고... ㅋㅋㅋ
중세후기 시나리오
1337년 1월 아닌가요?
왜 귀네드 백작령안에 남작에 없을까요?ㅠㅠ
잘못찾은건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