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락삼존도
연종(蓮宗) 제사조(第四祖) 법조대사(法照大師)
법조(法照)스님은 당(唐)나라 대력 연대(年代)의 스님으로서 이 기록(記錄)은 법조(法照)스님께서 친(親)히 기록(記錄)해 놓은 기사에 의지(依支)한 것임을 알아두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스님은 숙세(宿世) 선근(善根)을 많이 닦으신 아주 불연(佛緣)이 많으신 스님으로 보통스님들과는 전혀 다르신 분임을 또한 알아두기 바랍니다. 이 스님께서는 일찍부터 정토(淨土)발원(發願)을 하여 염불수행(念佛修行)에 전념(專念)을 해오셨다고 한다. 대력 이년(二年) 형주 운봉사(運峰寺)에 계실 때에 일이었다. 이 스님께서는 항상(恒常) 남달리 밤잠을 안자가면서 정진(精進)에 노력(努力)하여 애를 써오셨다는 것이다. 하루는 승당(僧堂)에서 아침 공양(供養)을 드시는데 죽발 위에 이상(異常)한 구름이 생겼다.
오색(五色)이 아롱진 아주 아름다운 상운(祥雲)이 일어나면서 그 구름 안에 한 산사(山寺)가 나타났다. 그리고는 그 산사(山寺)에서 동북간(東北間)으로 약 오십리(五十里) 정도(程度) 떨어진 곳에 또 산(山)이 하나 나타나며 그 산(山)밑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는 것이 보이며 그 시내물 북(北)쪽으로 조그만한 석문(石門)이 또한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석문(石門) 안으로 약 오리(五里) 쯤을 들어가서 커다란 절이 하나 보이는데 그 절앞에 커다란 현판(懸板)이 걸려 있어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라고 순금(純金)으로 아주 크게 써 있었다. 그러한 광경(光景)이 큰 병풍(屛風)에 그림처럼 아주 분명(分明)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곧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법조(法照)스님이 비록 분명(分明)히 목격(目擊)한 것이기는 하나 그 사유(事由)가 무슨 영문인지 알 수가 없는 것이며 또한 그곳이 어디인지를 도무지 알 수가 없었더라는 것이다. 그 후(後) 며칠이 지난 뒤에 낮에 제 공양(供養)을 드실려고 하는데 또다시 발우(鉢盂)에 오색채운(五色彩雲)이 일어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다시 그 오색(五色) 구름 안에 오대(五臺)가 나타나며 그 오대(五臺)에 모든 절이 <사찰(寺刹)>나타나고 있는데 그 땅이 모두 순금(純金)으로 되어 빛이 찬란(燦爛)하게 빛나고 있는 것이며 산림(山林)과 일체(一切) 부정(不淨)한 것은 하나도 없는 것이었으며 못과 대와 누각(樓閣)등이 보이는데 그 모두가 칠보(七寶)로 장엄(莊嚴)되어 호화찬란(豪華燦爛)하게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리고는 그 안에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일만 성중(聖衆)을 거느리고 계시는 것이 나타나 보이는 것이며 또 다시 시방세계(十方世界)의 모든 부처님의 맑고 아름답게 장엄(莊嚴)된 호화찬란(豪華燦爛)한 국토(國土)들이 나타나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러한 광경(光景)들이 공양(供養)을 다 드시고 나니 사라져 버렸다. 법조(法照)스님께서는 역시(亦是) 그 사유(事由)와 처소(處所)를 분명(分明)히 알 수가 없었다. 그러나 오대(五臺)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오대산(五臺山)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어 공양(供養)이 끝난 후(後) 염불원(念佛院)에 돌아가서 여러 스님들께 물어봤다.
‘혹시(或是)스님들 중에 오대산(五臺山)을 가보신 스님이 계시느냐’ 고 하니 가연스님과 담휘스님 두 분이 ‘가본 적이 있다’고 하였다. 그리하여 그 스님들로 하여금 오대산(五臺山)에 대한 모든 풍경(風景)과 지형(地形) 등을 들어보니 법조(法照)스님께서 보신 발우(鉢盂)에 나타난 풍경(風景)과 그 모두가 부합(附合)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오대산(五臺山)중에 대성인(大聖人)이 계신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그 후(後) 이년(二年)이 지나 대력(大歷) 사년(四年) 여름에 형주(衡州) 호동사(湖東寺)로 옮기어 그 절에 높은 누각(樓閣)이 있어 그 누각(樓閣)에서 오회염불당(五會念佛堂)을 만들어 구십(九十)일간(日間)을 그 곳에서 염불(念佛)을 하고 지내기로 하셨다. 그리하여 염불수행(念佛修行)에 전념(專念)을 하고 있던 중 육월(六月) 이일(二日)날 이었다고 한다. 오후(午後) 삼시(三時)경에 저 멀리 보니 오대산(五臺山) 절위에 상서(祥瑞)로운 구름이 덮이더니
그 구름 가운데에 여러 누각(樓閣)이 나타나며 그 누각(樓閣)가운데에 범승(梵僧)들이 있으되 키가 십척(尺)이나 되어 보이는 스님들이 긴 육환장(六環杖)을 짚고 거닐고 있으며 그 회중(會中)에 아미타부처님게서 계시어 문수보살(文殊菩薩) 보현보살(普賢菩薩)두 보살(菩薩)과 더불어 일만 보살(菩薩)들이 계심이 분명(分明)히 보이더라는 것이다.그 몸매는 아주 큰 몸매로써 거룩한 모습(模襲)이었으며 광명(光明)이 빛나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光景)은 비단 법조(法照)스님께서 혼자만이 보신 것은 아니니 그 절에 전 대중(大衆)과 형주(衡州)땅에 모든 사람들이 다 보았다고 하는 것이며 그 광경(光景)을 보는 자(者) 그 모두 심(甚)히 감격(感激)하여 눈물 흘리며 절하지 않는 자(者)가 없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 구름이 서서히 서(西)쪽으로 옮겨가더니 마침 내사라져 버리고 말더라는 것이다. 그날 해가 다 지고 나서 법조(法照)스님께서 저물게 도량(道場)밖에서 거닐고 계셨다. 그런데 한 노인(老人)이 나타나 법조(法照)스님에게 와서 하는 말씀이 “그대가 일찍부터 금색세계(金色世界)에 왕생(往生)하기를 발원(發願)하였거늘 어찌하여 대성(大聖)을 뵙고저 가지를 아니하는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법조(法照)스님이 괴이(怪異)하게 생각하면서 하는 말이
“때가 어려운 때이며 길이 지극(至極)히 험난(險難)하니 어떻게 가서 뵈올 수가 있으리까.” 하고 대답(對答)을 하니 그 노인(老人) 재차(再次) 다시 말하기를 “빨리 가서 뵈옵도록 할지어다. 가는 길이 그다지 험난(險難)하지 않느니라” 라고 말을 마치고는 홀연(忽然)히 사라져서 보이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이를 본 법조(法照)스님은 그 기이(奇異)함과 이상(異常)함 놀라서 곧 절 안에 들어가 부처님 전(前)에 거듭 맹서(盟誓)하길 ‘여름 하안거(夏安居)를 마치고는 결정(決定)코 오대산(五臺山)에 찾아가 대성(大聖)을 뵈오리다. 설령(設令) 가사(假使) 불 무덤과 빙하(氷河) 같은 것이 길 앞에 막아 장애(障碍)함이 닥치더라도 결코 물러나지 않고 반드시 대성인(大聖人)을 찾아뵈오리다’ 하고 서원(誓願)을 발(發)하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여름 하안거(夏安居)를 마치고 팔월(八月) 십삼(十三)일 도반(道伴)들 몇 분과 같이 오대산(五臺山)을 향(向)하여 길을 떠나셨다. 과연(果然) 별다른 장애(障?)없이 근 팔개월(八個月)만에 마침내 오대현(五臺縣)에 도착(到着)하게 되었다. 때는 대력(大歷) 오년(五年) 사월(四月) 오일(五日)날 이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저 멀리 불광사(佛光寺)가 있는 쪽을 바라보니 산세(山勢)가 수려(秀麗)하여 그 아름다운 풍경(風景)은 절세미인(絶世美人)인양 과연(果然) 천하(天下)에 제일(第一)인 듯한 것이었다.
또한 이상(異常)한 것을 보았나니 불광사(佛光寺) 남(南)쪽으로 몇 줄기의 흰색 광선(光線)이 뻗치더니 눈이 부실 정도(程度)로 밝은 광명(光明)을 놓는데 그 아름답고 찬란(燦爛) 함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表現)할 수가 없을 만큼 황홀(恍惚)한 것이 이를 본 대중(大衆) 모두가 환희심(歡喜心)에 넘쳐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원로(遠路)의 피로(疲勞)함도 다 잊고서 한시 바삐 그곳에 가서 대성인(大聖人)을 찾아 뵈옵고저 하는 생각이 더욱 간절(懇切)해 지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 이튿날 사월(四月) 육일(六日)에 드디어 불광사(佛光寺)에 도착(到着)하게 되었다. 가서 보니 법조(法照)스님께서 발우(鉢盂)에서 본 그 풍경(風景)과 과연(果然) 조금도 틀리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날 밤이었다. 법조(法照)스님 너무나 기쁘고 환희(歡喜)스러워서 밤이 깊도록 도량(道場)에 다니며 거닐고 계셨다. 그런데 행각(行脚)중에 저 멀리 북(北)쪽 산(山) 아래로부터 한줄기 밝은 광선(光線)이 뻗치어 오더니 법조(法照)스님의 몸을 아주 찬란(燦爛)하게 비추었다.
이를 본 법조(法照)스님은 놀라서 황급(遑急)히 방안으로 들어가 대중(大衆)스님들께 이것이 어떠한 징조(徵兆)인 것인가를 물어보셨다. 그때 어떤 스님 한분이 대답(對答)해주기를 ‘이는 대성인(大聖人)의 부사의(不思議)한 광명(光明)으로 만날 인연(因緣)이 있음을 알려 줌이로다’ 라고 하였다. 이에 그 말을 들은 법조(法照)스님은 그 말이 옳은 것으로 믿어지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날이 밝은 후(後) 위의(威儀)를 갖추고 광명(光明)이 비추던 곳을 향(向)하여 혼자서 길을 떠나셨다는 것이다. 불광사(佛光寺)에서 동북(東北)간으로 약 오십(五十)리(里) 쯤 가니 과연(果然) 산(山)이 하나 있어 그 산(山)밑에 맑은 시냇물이 흘러가고 있는데 그 아름다운 풍경(風景)은 속세(俗世)를 떠난 선경(仙境)같은 것이었으며 흐르는 물소리는 아름답고 신비(神秘)스럽기만 하더라는 것이다.
그 시냇물 북(北)쪽을 바라보니 조그마한 석문(石門)이 하나 있는데 과연(果然) 발우(鉢盂)에 나타났던 것과 조금도 틀림이<상이(相異)함> 없더라는 것이다.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석문(石門) 옆에 파란 옷을 입은 동자(童子)아이 둘이 서있는데 나이는 팔(八)구(九)세(歲) 정도(程度)되어 보이는 천동(天童)처럼 아주 귀엽게 잘 생겼더라는 것이다.
이 깊은 심심산곡(深深山谷)에 저 어린 동자(童子)들이 어찌하여 와 있는 것일까 참으로 이상(異常)하기만 하였다. 그래서 법조(法照)스님은 그 동자(童子)들이 서있는 곳으로 가서 물어보셨다. ‘너희들은 어디에 살고 있으며 성명(姓名)은 무어라고 하느냐’ 고 하니 동자(童子)가 대답(對答)해 말하기를 ‘우리들은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에 살고 있으며 하나는 선재(善財)라 부르며 하나는 난타(難陀)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그 음성(音聲)이 청아(淸雅)하고 아름다워 세상(世上)사람 같지 않았다.
그리하여 또 묻기를 ‘무엇 때문에 이곳에 와서 서 있느냐’고 하니 말하기를 ‘스님께서 오실 것을 알고 스님에게 길을 인도(引導)해 드리고자 이곳에 와서 기다리고 있는 중’이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법조(法照)스님은 또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리하여 그 두 명의 동자(童子)를 따라서 북(北)쪽으로 약 오리(五里)쯤 걸어서 들어가니커다란 누각(樓閣)이 보이는데 이는 순금(純金)으로 장엄(莊嚴)되어 있는데 아주 황홀(恍惚)하게 빛나고 있었다. 점점(漸漸) 문전(門前)에 가까이 당도(當到)해 보니 그 누각(樓閣) 안으로 커다란 사찰(寺刹)이 하나 있는데 그 절 앞에다 커다란 현판(懸板)을 하나 매달아 놓았는데 순금(純金)으로 대성죽림사(大聖竹林寺)라고 큰 글씨로 쓰여있더라는 것이다. 그 역시(亦是)도 발우(鉢盂)에서 본거나 다름이 없었다. 그런데 그 절의 넓이는 두루 이십리(二十里) 정도(程度)나 되는 아주 광대(廣大)한 도량(道場)이었다. 그 안에 들어가 보니 백이십(百二十) 채나 되는 많은 당우(堂宇)<집>들이 널려져 있으며 탑(塔)이 있는데 순금(純金)과 여러 가지 보배로 장엄(莊嚴)되어있어 아주 호화찬란(豪華燦爛)하며 땅은 순황금(純黃金)으로 되어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
또한 여러 가지의 예쁜 꽃나무들이 줄줄이 서있는데 그 모두가 꽃이 피어 만발(滿發) 했는데 그 아름다움은 인간(人間)세상(世上)에서는 볼 수 없는 참으로 훌륭한 풍경(風景)으로 정신(精神)을 차리기 어려울 정도(程度)였다는 것이다.그리하여 그 안에 아주 큰 강당(講堂)이 둘이 있는데 하나는 서(西)쪽에 서있으며 또 하나는 동(東)쪽에 서 있어서 서(西)쪽 강당(講堂)에는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만여(萬餘)명이나 되는 많은 보살대중(菩薩大衆)을 거느리시고 설법(說法)을하고 계시며 동(東)쪽 강당(講堂)에는 보현보살(普賢菩薩)께서 또한 만여(萬餘)명이나 되는 많은 보살대중(菩薩大衆)을 거느리시고 설법(說法)을 하고 계시는데 그 음성(音聲)이 청아(淸雅)하며 또한 웅장(雄壯)한 것으로 분명(分明)하게 역력(歷歷)히 들려왔다. 이윽고 설법(說法)이 끝난 후(後) 두 보살(菩薩)에게 차례(次例)로 예배(禮拜)를 드리고는 평소에 항상(恒常) 궁금하게 생각했던 바를 문의(問議)해 보셨다는 것이다. “말세(末世) 범부중생(凡夫衆生)들은 성인(聖人)이 가신지 때가 오래되어 지식은 점점(漸漸) 열등(劣等)해져 가고 업장(業障)은 점점(漸漸) 깊어져가서 불성(佛性)이 들어남이 없나니 이러한 때에 어떤 법(法)을 수행(修行)함이 가장 요긴(要緊)할 것인지 원(願)컨대 대성(大聖)께서 지시(指示)해 주셔서 저의 의문(疑問)을 풀어주옵소서” 하고 말씀을 드리니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답(答)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현재(現在) 수행(修行)하여 닦고 있는 염불법문(念佛法門)이 지금 때에 가장 합당(合當)하고 정당(正當)한 수행(修行)이니라. 모든 수행문(修行門)이 있는 것이나 염불수행(念佛修行)에 더 지나는 것은 없느니라. 삼보(三寶) 전(前)에 항상(恒常) 공양(供養) 올리며 복(福)과 지혜(智慧)를 갖추어 닦는 것이 가장 요긴(要緊)함이 되며 첩경(捷徑)<가장 빠른 지름길>이 됨이니라.
그러한 소이(所以)는<연고(緣故) 까닭> 내가 과거(過去) 겁(劫)중에 부처님을 관(觀)하며 부처님을 염(念)하며 항상(恒常) 공양(供養)을 올림으로 인(因)하여 이제의 일체종지(一切宗旨)를 얻어 성취(成就)하게 된 것이니라. 이러한 까닭으로 모든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과 심심(深心) 선정(禪定)과 모든 부처님이 모두다 염불(念佛)로부터 나게 되는 연고(緣故)이니라. 그렇한 까닭으로 알아야 함이라. 염불(念佛)은 모든 법(法)의 왕(王)이니 너는 마땅히 항상(恒常) 무상법왕(無上法王)을 생각하여 쉼이 없게 할지어다』 라고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대답(對答)해주었다. 그리하여 법조(法照)스님이 또다시 물어보기를 “마땅히 어느 부처님을 염(念)하여야만 합니까” 하니 다시 말씀해 주시기를
『이 세계(世界)로부터 서방(西方)에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시오니 그 부처님의 원력(願力)이 불가사의(不可思議)한지라 네가 만일 이에 그 아미타(阿彌陀)부처님을 염(念)하되 생각을 이어 간단(間斷)함이 없이 계속(繼續)한다면 수명(壽命)을 마친 뒤에 이에 그 세계(世界) 서방정토극락세계(西方淨土極樂世界)에 결정(決定)코 왕생(往生)하게 되어 길이 보리도(菩提道)에서 퇴전(退轉)하지 않게 될 것이니라』
라고 말씀해 주시고는 두 대성(大聖)께서 각기(各其) 손을 펴시사 법조(法照)스님의 이마를 만지며 수기(授記)를 주어 말씀하시길 『네가 염불(念佛)을 하는 연고(緣故)로 오래지 않아서 무상정등보리(無上正等菩提)를 증득(證得)할 것이니라. 만일 모든 선남자(善男子) 선녀인(善女人)이 속(速)히 성불(成佛)함을 원(願)할진대 염불(念佛)함에 더 지나감이 없음이니 곧 무상정각(無上正覺)을 증득(證得)하게 될 것이니라.』하시고는 두 대성(大聖)께서 게송(偈頌)을 읊어주셨다는 것이다. 이러한 법문(法門)을 들으신 법조(法照)스님께서는 모든 의심(疑心)이 풀리는 동시(同時)에 기쁨과 환희(歡喜)함으로 무엇이라 말할 수가 없었다는 것이며 오직 염불수행(念佛修行)에 전력(全力)을 다할 것을 굳게 결심(決心)하셨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두 대성(大聖)에게 공손(恭遜)히 예배(禮拜)를 드리고는 서 있으니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말씀하시기를 ‘모든 보살원(菩薩院)에 찾아가서 모든 보살(菩薩)들을 찾아뵙지 않겠느냐’고 하시었다. 그리하여 법조(法照)스님은 모든 보살원(菩薩院)에 찾아가서 모든 보살(菩薩)들을 뵙고는 가르침을 받으시고 물러나와서 칠보(七寶) 과수(果樹)나무가 있는 곳에 당도(當到)하셨다. 많은 과일들이 무르익어 주렁주렁 달려있는데 그 크기는 사발만큼이나 컸다. 그 과일 하나를 따서 드셔보니 향기(香氣)가 풍기며 그 맛과 아름다움이 세상(世上)에 없는 선미(鮮味)함으로써 먹고 나니 심신(心身)이 상쾌(爽快)하며 무한(無限)한 즐거움을 느끼게 되더라는 것이다.
그런 뒤에 두 대성(大聖)에게 작별(作別)의 예(禮)를 드리고는 문전(門前)에 나오니 두 동자(童子)가 또 나타나서 길을 인도(引導)해주었다. 그리하여 석문(石門)이 있는 곳까지 이르렸다. 그 곳에서 서로 작별(作別) 인사(人事)를 나누고 고개를 숙여 절을 하고는 머리를 들어보니 동자(童子)들이며 석문(石門)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법조(法照)스님은 공연(空然)히 마음이 쓸쓸해지며 비감(悲感)한 생각이 간절(懇切)해졌다. 그 자리에다 커다란 돌을 하나 세워 표시(標示)를 해놓고는 돌아오셨는데 그 돌이 현재(現在)까지도 그곳에 그냥 보존(保存)되어 있다고 한다. 그 후 십이(十二)월(月) 초(初)에 화엄사(華嚴寺)로 옮겨 화엄원(華嚴院) 염불도량(念佛道場)에 들어가 칠일(七日)간을 결정(決定) 왕생(往生)정토(淨土)의 서원(誓願)을 세워
단식(斷食) 정진(精進)을 하기로 결정(決定)하여 정진(精進)을 하고 있는데 첫날 밤 초저녁에 한 명의 범승(梵僧)이 도량(道場) 안으로 들어오더니 법조(法照)스님에게 와서 하는 말이 ‘그대가 전일(前日)에 오대산(五臺山)에 가서 대성(大聖)을 뵈옵고 온 경계(境界)를 어찌하여 사람들에게 말해주지 않는가’ 하고 말을 마치고는 또한 홀연(忽然)히 보이지를 않더라는 것이다. 그래도 법조(法照)스님은 이 스님의 말을 의심(疑心)하며 그러한 사실(事實)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주지 않고 주저(躊躇)하여 망설이고 있었다. 그 이튿날이었다. 새벽 인시(寅時)경 쯤하여 염불(念佛)을 하고 있는데 또 한 범승(梵僧)이 나타나 법조(法照)스님에게로 왔다. 범승(梵僧)이라고 함은 인도(印度)의 부처님이 탄생(誕生)하신 나라에 계시는 스님들을 말하는 것이다. 이 범승(梵僧)은 나이가 팔십(八十)정도(程度)나 되어 보이는 노장스님이셨는데 법조(法照)스님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스님께서는 전일(前日)에 오대산(五臺山)에서 본 신령(神靈)스럽고 이상(異常)한 일들을 세상(世上)사람들에게 이야기하며 또한 널리 유포(流布)하여 많은 사람들이 보고 듣고 하여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게 하고 큰 이익(利益)이 되게 해주지 않느냐’ 고 하였다.
법조(法照)스님이 대답(對答)해 말씀하시길 ‘실(實)은 제 마음에서 성인의 거룩한 말씀을 비밀(秘密)로 덮어두고 싶지는 않지만 나의 말을 듣고 믿지 아니하여 도리어 비방(誹謗)할 것 같아서 말을 하지 않고 있나이다’ 라고 하니 범승(梵僧)이 말하길
‘그러하지 않느니라. 대성(大聖) 문수보살(文殊菩薩)께서 현재(現在) 이 산중(山中)에 계시면서 항상(恒常)사람들을 불러 경책(警策)하고 나무라거늘 하물며 그대가 본 경계(境界)를 중생(衆生)들이 보고 듣게 되면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여 독고(毒鼓)의 인연(因緣)을 짓게 하겠느냐? 그러니 주저(躊躇)하지 말고 곧 널리 유통(流通)하여 펴도록 할지어다’ 라고 말을 해주고는 문득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독고연(毒鼓緣)이라고 하는 말은 비유(譬喩)로 한 말인 것이니 무상살귀(無常殺鬼)가 사람의 명(命)을 끊어갈 때 치는 북이 있는대 이 북은 아주 독(毒)한 독(毒)을 지니고 있어 그 북소리를 들은 자(者)는 반드시 죽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고(毒鼓)라고 이름 한 것인데
여기서 독고연(毒鼓緣)을 짓게 된다고 한말은 보리심(菩提心)을 한번 발(發)하게 되면 반드시 보리(菩提)를 증득(證得)하게 된다는 뜻인 것이며 또한 그러한 말을 듣게 되면 반드시 보리심(菩提心)을 발(發)하게 될 것이니 그러한 좋은 인연(因緣)이 되는 것인데 어찌하여 그 본 일들을 널리 유포(流布)하지 않느냐는 뜻<의미(意味)>인 것이다. 법조(法照)스님은 그때서야 자기(自己)가 전일(前日)에 오대산에 가서 대성인을 친견한 일과 그 전후사의 모든 일들을 세상(世上)에 널리 펴기로 작정(作定)을 하고는 모든 도반(道伴)들에게 그러한 사실(事實)을 전부(全部)다 이야기를 해주셨다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들은 대중(大衆)들은 모두가 감탄(感歎)하지 않는 자(者)가 없었으며 모두 발심(發心)하여 정토수행(淨土修行)에 전력(全力)을 다하였다는 것이다. 그 이듬해인 대력(大歷) 육년(六年) 정월(正月)달에 화엄사(華嚴寺)에 대중(大衆)들이 그 곳을 한번 가보기를 원(願)하여 숭휘와 명겸 등(等) 삼십여(三十餘)명의 스님들이 법조(法照)스님을 따라 그곳을 찾아가 봤다는 것이다. 바로 석문(石門)이 서 있었던 자리에 이르렀다.
고요히 아무런 말없이 우뚝 서있는 그 돌을 우러러 쳐다보니 기쁨과 쓸쓸한 마음이 생기며 이상(異常)한 생각이 나더라는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대중(大衆)들은 법조(法照)스님이 설명(說明)해 주는 말을 듣고는 깊이 감격(感激)하여 모두가 고요히 명상(瞑想)에 잠겨있었다. 그 순간(瞬間)어디서 인지 청명(淸明)하고 처량(凄凉)한 종(鐘)소리가 들려왔다. 그 곳에는 인가(人家)도 사찰(寺刹)도 없는 무인지경(無人之境)이었다. 그런데 그 종(鍾)소리는 한마디 한마디가 분명(分明)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참으로 신비(神秘)스러운 종(鍾)소리였던 것이다.그 종소리를 듣고 있는 전(全)대중(大衆)은 삼매(三昧)에나 들은 듯 고요히 명상(瞑想)에 잠기어 그 한마디 한마디들 감명(感銘) 깊게 듣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고요한 산천(山川)에 울려 퍼지는 그 맑고 처량(凄凉)한 종(鍾)소리는 듣는 자(者)로 하여금 번뇌(煩惱) 망상(妄想)을 씻어주는 듯 탐진치(貪嗔癡)를 녹여주는 듯 참으로 아름답고 신비(神秘)스런 종(鍾)소리였던 것이다.그 모든 대중(大衆)들은 그 기이(奇異)하고 신기(神奇)함에 감탄(感歎)하지 않는 자(者)가 하나도 없었다.
이윽고 종(鍾)소리는 끝이 났는데 대중(大衆)들은 이 신비(神秘)스런 종(鍾)소리에 넋을 잃은 듯 돌아갈 줄을 모르고 서있었다. 이와 같이 이 종(鍾)소리가 울려오는 것은 법조(法照)스님이 한말들이 모두가 진실(眞實)인 것이나 대중(大衆)들은 마땅히 잘 믿으라는 뜻에서 증명(?明)을 해주는 종(鍾)소리 인 것이다. 마침내 대중(大衆)들은 감격(感激)에 눈물을 지으며 돌아가기 싫은 발길을 옮겨 화엄사(華嚴寺)로 향(向) 하여 길을 떴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법조(法照)스님은 이러한 증명(?明)을 얻고 나서는 전일(前日)에 있었던 모든 일들을 전부(全部)다 기록(記錄)하여 온 사방(四方)에 붙여 놓아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보고 듣게 하여 모두가 수승(殊勝)한 발심(發心)을 하여 다같이 불도(佛道)를 성취(成就)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그 후(後) 법조(法照)스님께서는 죽림사(竹林寺)라는 현판(懸板)이 달렸던 곳에 절을 지어 죽림사(竹林寺)라고 이름을 붙이셨다. 그 후 대력(大歷) 십이년(十二年) 구월(九月) 십삼(十三)일(日) 날이었다. 법조(法照)스님은 제자(弟子)들 여덟 분과 같이 한 자리에 있었다. 저 멀리 동대(東臺)쪽을 바라보니 흰 광선(光線) 네 줄기가 뻗치더니 이상(異常)한 구름이 생겨나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구름이 열리면서 오색(五色)의 신광(神光)이 비더니 그 광명(光明) 안에 다시 홍색(紅色)의 커다란 원광(圓光)이 나타나며 그 원광(圓光) 안에 문수보살(文殊菩薩)이 청사자(靑獅子)를 타고 계심이 분명(分明)하게 보였다.
그리고는 가루 같은 눈이 내려 온 산천(山川)을 덮고 오색(五色) 원광(圓光)이 찬란(燦爛)하게 온 산천(山川)을 비추더라는 것이다. 그리고 얼마 후(後)엔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광경(光景)은 당시(當時) 그 자리에 있었던 분들이 모두 다 보았다는 것이며 당시(當時)그 자리에 있었던 분으로는 ?순일? 유수? 귀정? 지원스님 등(等)이며 그리고 사미(沙彌) 유영과 ?우바새<남자신도(男子信徒)> 장희준과 ?법조(法照)스님이시다. 그 얼마 후(後)에 법조(法照)스님께서는 ‘이제는 내 할일을 다 마쳤으니 이 세상(世上)에 더있어 무엇하리요’ 하고는 세상(世上)을 떠나셨다. 이 얼마나 신기(神奇)하고 기이(奇異)하며 부사의(不思議)한 일들이 아닌가. 모두가 불보살(佛菩薩)님 들의 부사의(不思議)한 신통(神通)과 묘력(妙力)인 것이다. 문수보살(文殊菩薩)은 지혜(智慧) 제일(第一)로 칠불(七佛)의 조사(祖師)이시며 보현보살(普賢菩薩)은 여래(如來)의 장자(長子)로서 만행(萬行)이 구족(具足)하신 보살(菩薩)인 것이다. 이러한 대성인(大聖人)께서 말씀하시기를 염불(念佛)은 제법(諸法)의 왕(王)이라고 하셨으며
속(速)히 성불(成佛)함에는 염불(念佛)함에 더 지남이 없는 것이라고 분명(分明)히 말씀해주신 것이어늘 그 어찌 믿지 않을 수 있을 것이며 이러한 수승(殊勝)한 법(法)을<정토법문(淨土法門)> 방치(放置)하여 놓아두고 무슨 다른 법(法)을 수행(修行)하여 닦을 것 이리요. [출처] 왕생록 --------------------------------------------------------------------------- 오회염불 [五會念佛]
오회염불법은 낮고 높은 음, 느리고 빠른음으로 소리를 조절하여 '아미타불阿彌陀佛'을 외우는 염불, 염불노래 입니다. 소리의 높낮 이와 느리고 빠르기, 리드미컬한 음률까지 붙여 염불을 하면 잡념 제거는 물론이요 깊은 감격과 환희를 느낄 수 있게 됩니다.
처음 시작할 때 낮은 음성으로 천천히'나무아미타불'을 부르다가 제2회에는 약간 높고 맑은 음성으로 노래. 제3회에는 느리지도 급하지도 않게 끊임없이 노래. 제4회에는 점점 빠르게 부르되 중요한 부분에 힘을 넣어 노래. 제5회에는 앞뒤 사이 간격없이 '아미타불'네자만 빠르게 노래합니다.
유래 [由來] 중국의 법조法照 스님께서 남악 미타사[彌陀寺] 미타대[彌陀臺]에서 염불하던 중 홀연히 한 경계가 열리어 아미타불[阿彌陀佛]이 계신 곳에 이르렀습니다. 예배를 올리자 아미타阿彌陀 부처님께서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
“나에게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로운 묘법[妙法]이 있으니 지금 이것을 너에게 부촉 하노라. 이 법을 네가 사는 염부제[閻浮提]에 널리유포하여 무량한 중생들을 이익되게 하여라. 이 보배로운 법을 만나면 누구나 다 이익을 얻게 되느니라.” 고 하셨습니다.
이어 오회염불五會念佛의 근거와 공덕을 일러주셨습니다. “네가 본 《무량수경》에, 극락의 칠보수[七寶樹]는 ‘맑은 바람이 불어오면 다섯 가지 음악소리가 나온다[淸風時發出五音聲]’는 구절이 있나니, 그 다섯 가지 음악소리[五音 聲]가 바로 오회불성[五會佛聲]이니라. 이러한 인연이 있기 때문에 너희가 오회염불법 에 따라 아미타불[阿彌陀佛]의 명호를 부르게 되면, 그 과보로 모두가 나의 국토에 태 어나게 되느니라. 또한 미래의 일체 중생이 오회염불[五會念佛]을 만나게 되면,
가난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다 제거되고[貧苦皆除] · 아플 때 약을 얻는 것과 같고 [如病得藥] · 목마를 때 물을 얻는 것과 같고 [如渴得水] · 굶주릴 때 밥을 얻는 것과 같고 [如飢得食] · 벗은 몸이 옷을 얻는 것과 같고 [如裸得依] · 어두운 곳에서 밝음을 만난 것과 같고 [如闇遇明] · 바다를 건너려 할 때 배를 만나는 것과 같고[如過海得船] · 보물창고를 만난 것과 같아서 [如遇寶藏] 반드시 안락[安樂]을 얻게 되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중국에서 법조[法照]스님 이래 꾸준히 전승되면서 수많은 이들이 가피[加被]를 입었으며, 오늘날 중국을 여행해 보면 불교 성지의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오회염불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나무아미타불’ 뿐 아니라, ‘나무관세음보살’, ‘나무지장왕보살’ 의 오회염불 노래도 널리 접할 수 있습니다.
오회염불의 첫 부분인 찬불게 해석과 어린이 음성의 오회염불 바로가기 (클릭☞)http://cafe.daum.net/amtb/5IRX/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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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그래요 그렇습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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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아미타불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