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한라산 등반
2월 초에 제주도에는 한주간 내내 눈이내렸습니다.
한라산에 1m가 넘는 눈이 쌓여 둘째 주는 입산통제가 되었습니다.
설날이 지나고 한라산 입산통제가 해제되어 설경을 감상하고 또 신년 의지도 다질겸 한라산 등반을 결행했습니다.
19일 새벽 6시에 성판악을 출발했습니다. 성판악은 치운 눈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습니다.
내가 첫 입산자였습니다. 아무도 밟아보지 못한 눈길을 밟으며 산행을 시작합니다.
출발 시 어두움이 깔려있어 해드램프를 켜고 눈길을 조심스럽게 걸었습니다.
해드램프가 비취는 길 외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동행인도 없이 홀로 밤길을 걷는 마음이 좀 쓸쓸했습니다.
간밤에 내린 눈이 길을 덮고 있어 나의 발자국이 길 위에 선명히 새겨졌습니다.
나무 숲길을 1시간 정도 지나니 주변이 점점 밝아졌습니다.
어둠의 장막이 걷히고 설경이 시야에 들어오니 그야말로 황홀경이었습니다.
눈을 잔뜩 짊어진 나무들이 자연작품이 되어 눈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해발 1,000여미터 지점에 이르니 겨우살이가 겨울 열매처럼 주렁주렁 달려있엇습니다.
항암효과가 있다고 사람들이 애용하는 식물입니다.
한 시간 반쯤 걸려 샘터 근방에 당도했습니다. 눈에 덮혀서인지 샘터는 눈에 띄지 않았습니다.
새 떼가 잠에서 깨어 집단으로 날며 멋지게 춤을 추어 등산객의 마음을 한껏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새들이 나를 반겨주는 것인지. 내가 새의 잠을 방해한 것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
두 시간쯤 걸어서 사라오름 갈림길에 당도했습니다. 좌측으로 올라가면 사라오름 전망대가 있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산봉우리를 오름이라고 합니다. 사라오름 정상에는 분화구가 있습니다.
나무들도 체온이 있는 모양입니다. 나무 주변의 눈이 녹아 있습니다.
산행 3시간 쯤 지나 진달래밭 대피소 부근에 이르니 한라산 정상봉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가운데 조금 불록 내민 곳이 한라봉입니다.
진달래밭 대피소 - 이곳에서 휴식도 하고 간식도 먹으면서 애너지 충전을 했습니다.
한라산 통제소 - 정오가 넘으면 한라산 등반을 통제하는 곳입니다.
정오 이전에 이곳을 통과해야 정상에 갈 수 있습니다. 시간 오버되면 냉정하게 통제합니다.
높은 곳에 오를수록 적설량은 증가합니다.
신발이 얼음에 묻혀 할 수없이 스패츠를 착용했습니다. 아이젠에 스패츠를 착용하니 발이 무겁습니다.
한라봉 능선에 오르니 제주도 전역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날씨가 흐려서 선명히 보이지는 않지만 마을 넘어 바다까지 전망이 됩니다.
드디어 한라봉이 눈 앞에 전개됩니다. 4시간 여 눈길을 걸었더니 숨도차고 다리도 많이 아픕니다.
하지만 저기가 고지인데 여기서 되돌아 갈 수는 없지 않습니까? - 힘들면 쉬었다 걷고...
본래 등산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지요. 뒤따라온 젊은이들에게 물었더니 모두 다 한결같이 힘들다는 대답이었습니다.
고지대에 오르는 사람은 남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봅니다. 고산식물도 보고, 멀리 넓게 온 천지를 보기도 합니다.
인내심도 강화되고 체력도 강해집니다. 이것이 고통을 감내하며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상급입니다.
한라봉 능선으로 사람들이 걸어가는 모습이 보입니다.
입산은 내가 맨 먼저였으나 젊은 사람들에게 추월 당해 좀 뒤쳐졌습니다.
정상까지 800m 남았습니다. 한라봉 능선길입니다.
한라봉 능선에서 아래쪽을 바라보았습니다. 저만치 먼 곳에 사라오름 봉우리가 아련히 보입니다.
한라봉 능선 중간 지점에서 까마귀가 포즈를 취해줍니다.
모델료로 먹이를 좀 던져주었습니다. 한라산에는 까마귀가 엄청 많이 서식하고 있습니다.
능선길은 아주 가파릅니다. 아찔한 느낌도 듭니다. 자칫 미끄러지면 하염없이 굴러 떨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위험한 지점은 안전조치도 해놓았습니다.
해발 1900m지점에서 생명을 유지하고 있는 나무들이 경외롭습니다.
이제 정상에 거의 다 왔습니다. 산행길도 완만하고 정상이 코 앞에 보이는지라 힘이 절로납니다.
정상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입니다.
날씨는 흐렸지만 바람이 거세지않고 온도가 영하 3도 정도여서 춥지 않고 상쾌했습니다.
제가 추위를 엄청 타는 사람인데도 안면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도 견딜만 했습니다.
드디어 정상에 당도했습니다. 9.6km 눈길을 걸어온 것입니다.
시간은 11시 30분, 출발한지 5시간 30분이 걸렸습니다.
산행안내에는 4시간 30분이 걸린다고 하는데, 대피소에서 간식 먹는 시간, 사진 찍는 시간, 휴식시간 감안하면
이정도는 걸린다고 보아야 합니다.
백록담의 설경 - 이곳에 다섯번 째 왔는데 백록담 모습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입니다.
이전 네 차례는 구름이나 운무가 뒤덮고 있어 그 모습을 보지 못했습니다.
백록담은 하얀 눈을 듬뿍 안고 포근한 모습으로 등산객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숨김없이 보여주었습니다.
백록담의 남쪽 능선
한라산 백록담이 두 팔을 벌려 나를 환영해 주고 있습니다.
등산객들이 기념사진 찍느라 여념이 없습니다.
이 날은 군인들도 단체로 왔는데 익산 금마에 있는 공수부대원들이 산악훈련 왔다고 합니다.
2천미터 고산을 숨도 헐떡이지 않고 거뜬히 오르내리는 군인들을 볼 때 안보에 신뢰감이 갔습니다.
한 군인에게 "군인 아저씨들 보니 북한이 쳐들어와도 걱정없겠네요." 했더니
"쳐들어 오면 저희들이 혼내줄게요."라고 자신만만하게 답했습니다. 믿음직스러웠습니다.
백록담의 북쪽 능선
하산은 관음사쪽으로 했습니다. 정상에서 관음사까지는 8.7km.
하루에 18.3km를 걸었습니다.
60대 후반 나이에 이정도 감당할 수 있는 건강과 체력을 주신 하나님께 무한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