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적당한 거리는
2024.02.16
거리를 모를 때는 정확한 거리를 알려주는 ‘반듯한 줄자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거리를 재
다 그 거리가 멀어졌을 때는 여러 손을 가진 ‘문어 친구’가 있었으면 했다.
#part1. 적당한 거리가 없어서
그때 그이와 관계를 계절로 표현하자면 여름과 겨울이었다. 뜨겁게 타다 차가울 때로 차가
워진 관계, 그것이 그이와의 시작과 끝이었다. 20년이고 50년이고 계속해서 볼 사이라고
굳게 믿었던 이였다. 글에 대한 관심과 드라마 취향이 비슷해서 끌렸던- 아마도 그것이 관
계의 시작이었지 싶다. 그런데 관계의 명확한 정리 이유를 아무리 쥐어짜고 또 짜서 생각해
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어쩌면 기억하기 싫은 건지도…) 그러나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그때는 사람과의 적당한 거리를 몰랐고, 해외살이의 외로움을 사람으로 채우려 했던 것
이었던 데다, 참 많이도 그이를 좋아했었다. (그것이 집착이었다 할지라도…)
친정식구도 솔메이트도 모두 한국에 두고 온 데다 이곳에서는 남편과 두 아이 그리고 이미
자녀들을 다 키운 어른들과의 만남뿐이었다. 그런 가운데 비슷한 시대와 추억을 거쳐 살아
온 이를 만났으니 마치 신이 보내준 선물 같았다. 그래서 구름 타고 다니는 것처럼 마음이
늘 들떠 있었고 콩 한쪽도 나누어 먹어야지 하는 말이 가슴 깊은 데에서부터 이해되기도 했
다. 그만큼 좋았고 그만큼 잘 맞을 거라고 여겼었다.
그러나 나는 그때 ‘상처’와 ‘헤어짐’이란 말을 배울 수밖에 없었고 그런 나에게 정원 가꾸기
에 진심이었던 남편이 “빈 땅에 그대로 모두 뿌리면 편하기야 하죠. 그런데 간격을 두지 않
으면 얘네들도 힘들어요. 내가 보고 싶었던 정원 모습도 기대하기 힘들고요. 그래서 오래
걸려도 조금씩, 조금씩, 간격을 주면서 씨를 뿌리는 거예요.”라고 말해주었다.
남편의 말처럼 그때 그이와의 ‘조금의 간격’이란 건 어느 정도였을까. 멀어지면 큰일 나는
줄 알았고, 놓아버리면 다시는 없을 거라 생각했던- 그때 나는 1센티미터라는 조금의 간격
도 두지 못했다.
#part2. 적당한 거리를 재느라
‘먼저 사람’과 헤어짐을 겪고 다시 오지 않을 거라 믿었던 관계라는 테두리 안에 여러 만남
들이 찾아왔었다. 그런데 그때는 그 거리를 재느라- 정확히는 거리만 재다 관계를 맺지 못
하는 날의 연속이었다. 선과 악으로까지 생각이 이어진 데다 이번 관계는 천국일까, 지옥일
까를 여러 차례 고민만 했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기를 꺼렸고, 집에서 홀로 보내는 시간
이 많아지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혼자의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사람이지만 그 시간들이 길어지니 외로움과 우울함이 밀려
왔고 하고 싶었던 것들에서조차 기운을 낼 수가 없었다. 그렇게 깊은 터널 속으로 꿈도 기
력도 꾹, 꾹 밀어 넣기만 해야 했다.
by. 비꽃 https://brunch.co.kr/@biccott-archive/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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