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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조선일보 시낭송회
한국낭송문예협회
일시-2009년 11월 24일 오후 6시
장소-선능 아바카페(시인의 마을)02-555-8935
2호선 5번 출구 신한은행 뒷길
초청시인-김세영시인, 송봉현시인
한국낭송문예협회 낭송시15편
나무와 새
김세영
나무의 머리채 속에 새가 둥지를 틀고
밑둥치 속에 내가 움막을 짓고 산다
해가 뜨면,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의 목소리로 하늘을 읽고
해가 지면, 새와 나는
꿈의 파편들이 뿌려진
진공眞空 속에서 만난다
꿈 꾸는 나무의
수관水管 속에서 피가 섞여
새는 나의 혼이 되고
나무는 육신이 된다
죽어서 나무새木鳥 되면
어린 새들, 살을 쪼아 먹게
조장鳥葬을 해주세요
나를 기억하는 바람이
뼛가지를 흔들어 혼을 부르면
나무새 풍경木鳥 風磬으로 대답하리라
뼛가루로 문지르고 닦은 언어들은
하늘에 뿌려져 별이 되었다고
새를 부르던 목소리는 바람이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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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강
김세영
강물은 속으로 흐른다
무성하게 출렁이는
바람의 치마 밑으로
때로는 춤추며
달려가던 날들을 기억하면서
앙상하게 얼어붙은
바람의 고샅 밑으로
때로는 포복하며
웅크리고 걸어가면서
등허리의 긴 상처를
달빛으로 꿰맬 때만
살얼음 덮인 알몸을 보일뿐
얼음 비늘의 황톳빛 잉어들이
바다의 도마 위에 지친 몸을 누이고
파도의 칼날이 잘게 다져서
바닷물 속으로 녹아들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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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타
김세영
마을 언덕길에 올라
긴 한숨 내려놓으며
관세음보살 부르던
등 굽은 할머니
한 평생, 삼십리 길
장터에 내다 놓을 짐 지고
봉(峰)이 된 등허리
먼데 자식 걱정에
흙먼지 바람 탓하며
처진 눈꺼풀 사이에 숨은
젖은 눈곱을 닦았다
수박같이 탱탱한
머리통을 쓰다듬으며
마른 가슴에 감싸안고
연꽃처럼 웃었다
오늘 다시
고향 언덕에 오르니
할머니 모습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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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게
김세영
팔십 평생 허리 휘게 한
쌀 한가마니 등짐 내려놓고
옷고름에 매듭진
손때 묻은 한을 풀어놓았다
생명선 끝가지에 매달린
잎사귀 몇 잎마저
움켜쥔 손아귀를 열어놓았다
날마다 버리고
밤마다 가벼워져
여든 살 삶의 가벼움에
잠시 중력을 잃었다
나락같은 어둠 속에서
목숨들이 문을 닫고 있을 때
세상의 뒷문을 열고 나가
어둠의 강 저편으로 건너갔다
연기 몇 점 깃털로 날리고
비둘기 한 마리 무게로 남은
뼛가루 한 그릇
바람에 담아 산에 뿌리니
멧비둘기 한 마리 숲에서 날아오르자
산이
어머니 모습으로 일어나 앉으며
산의 무게로
무너져 내리는 둑을 다져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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갯벌에 누워
김세영
배앓이 할 때는
어머니 허벅지처럼 포근한
갯벌에 눕는다
달랑게랑 댕가리도 옆에 눕는다
내 손은 약손이다
내 손은 약손이다
어머니가 배를 쓰다듬는다
많이 아프냐고 물으며 쓰다듬는다
밀물 차오르고
보름달 내려와서
물 위에 태반으로 뜨면
양수 속, 태아가 된다
파도가 칠 때마다
귀에 익은 심장소리 들리고
어느새
자궁 속, 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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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야의 2호선
김세영
밤늦은 귀가歸家
창이 벽이 되는 몸체가 되어
땅 속을 달린다
꿈의 터널을 뚫는 두더지가
어둠의 속살을 헤치는 박쥐로 진화했다는
옛 소문을 창의 진동으로 듣는다
철제 껍데기 속의 번데기가 되어
나비의 꿈을 꾸다가
한 생의 목적지를 지나쳐버린다
귀에 익은 정거장의 이름이
다시 한 번 잠을 깨울 때까지
심야의 2호선은
어둠의 세계를 순환하는 우주선이 된다
새로운 새벽의 귀가
전생의 기억들로 가득한 조간朝刊을 들고
낯설지 않은 집 앞에서 머뭇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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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떼
김세영
아직도 삭지 않고 씹히는 돌을
침실의 천정에 뱉는다
물수제비 파문이 일어나듯
쥐떼가 우르르 몰려나온다
비릿한 냄새를 풍기는 빈 포장지가
구석구석에 쌓여있기 때문인지
가슴판이 울렁거리고, 등판이 가렵다
거친 손톱의 효자손으로 핏줄이 서도록 긁는다
출렁다리를 건너듯, 조심조심
천정의 문양文樣을 따라 흐르는 수면 뇌파
쥐떼가 우르르 몰려가며 헝클어뜨린다
쥐틀을 놓을까
고양이를 키울까
죽비로 제 잔등이를 후려치는
화엄사의 선승처럼
효자손으로 천정을 두들기어
다스리며 함께 살까
이제는 그들의 집이기도 하니
인도의 고행승처럼
거두어 함께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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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월의 목련
김세영
긴 이별의 겨울동안
보리밭을 밟듯
나이테의 동심원 속에
그리움을 다지고 다졌지요
다시 찾아온 봄 햇살 같은
그대의 손을 잡고
참았던 울음, 꽃대에 차올라
봉오리를 터뜨렸지요
나이테 속에 다져졌던 말들, 이제야
꽃술에 화분花粉으로 올라와서
향기로 피어올라, 그대 귓가에
흰나비 되어 날아가네요
불현듯 내리는, 무심한 봄비에
나비의 날개가 젖고
빗방울, 점점 무거워져
꽃잎 떨어지려 하네요
꽃 지면, 떠나야하는 그대여
커다란 눈물방울에 젖은
흰 손수건들이 발아래 쌓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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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을 묻고
김세영
날마다
그리움의 날개에
그물을 씌우고
밤마다
그리움의 발목에
쇠사슬을 채운다
그리움의 말들
딱다구리처럼
가슴판板을 쪼아
비문碑文으로 새긴다
가슴 구덩이에
그리움을 생매장하고
가슴팍 덮개에 못을 박는다
아침이면
그대 체취 묻은 꿈 조각들
베갯머리에
비듬처럼 떨어져 있네
지난밤 몸부림에
헐거워진 못 자국
부러진 가슴판 옹이에
피딱지가 엉겨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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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김세영
어느새
떠나려하느냐
개나리꽃 피던 날
병아리처럼 아장아장 걷던
너가 아니였느냐
물미끄럼틀 타면서
둘리처럼 깔깔대며 웃던
너가 아니였느냐
방패연처럼
얇은 가슴으로
12월의 찬바람을
어찌 견딜 수 있겠느냐
수수깡처럼
여린 어깨뼈로
세상의 무거운 짐을
어찌 감당할 수 있겠느냐
치마저고리를 다림질하던 날
어미는 가시나무새처럼
몇 날 밤 베갯잇을 적시더구나
아비는 괜스레 허전하여
수능 본 날 밤
너랑 함께 걸었던 양재천
둑길을 밤늦게 혼자 걸었단다
이제
떠나려하느냐
그러나 언제나
기억하여라
아침 해보다 먼저
아비는 깨어나 있고
부엉이처럼 밤늦도록
잠들지 않고 있다는 것을
세상에서 맨 처음
너를 품어주었던 그날처럼
어미의 날갯죽지는
변함없이 따스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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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니
김세영
8월의 끝가지에 매달려서
매미, 애끓게 울던 날
잇몸 속에 갇혀서
누구의 혀, 한 번 깨물어보지 못하고
사랑니, 속앓이 했다
사랑니의 울음소리에
개미핥기처럼 다가온 그녀
숨소리는 뜨거운 태풍이었다
진공청소기 혀가
입속의 개미들을 핥으며 들어왔다
미처 깨물 사이도 없이
뿌리 채 뽑힌 사랑니가
허파꽈리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한여름 물장구치며 놀던
송아지 떠내려가는 개천가에서
어미의 치맛자락 속을 파고들며 울던
벌거벗은 그 아이를 쫓아서
마을을 뒤덮은 먹구름 치마 속으로
태풍의 자궁 속으로 온몸 빨려 들어갔다
태풍이 허물을 벗으려 날아간 곳은
사하라 사막 그 어느 곳
생 텍쥐페리가 불시착한 곳이었다, 그녀는
자궁 속의 양수를 뿌려서
오아시스 나라를 세웠다
어린왕자가 살다 묻힌 그곳에
나의 사랑니는
고인돌이 되어 서 있었다
지금도 매미 우는 8월이면
사랑니가 있던 빈 잇몸자리를
태풍의 흔적을
혀끝으로 더듬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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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사랑
김세영
말없이 바라만 보다
무심히 떠나려하는
푸른 눈빛의 비천(飛天).
도솔천(兜率天)에서 빛나는
새벽별 같은 님이여.
살 내음 감출 수 없어
다가가지 못하고
심장만 아팠더이다.
긴 세월 살이 삭아
정화수 한 사발 되어
달빛 가득 차오르면
혼은 향불로 피어올라
새벽별 되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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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청호의 수련
김세영
- 가슴 속에 수장된 것은 눈 감으면 보인다
척추 디스크 아내의 허리가 아파서 집안 청소를 했다
안방 화장대 밑, 침대 아래, 거실 장식대 밑, 식탁 아래
무릎 꿇고 엎드려서 삼천 배 하듯 걸레질을 했다
걸레를 뒤집어 펼쳐 보니 대청호 관광기념이란 글이 보였다
몇 년 동안 나의 몸을 닦아주던, 연꽃무늬의 타월이었다
다용도실 대야에 더럽혀진 걸레를 던져놓고
세제를 한 스푼 뿌리고 수돗물을 틀었다
서서히 물에 잠기는,
오리가 노닐던 냇가, 푸른 지붕 위의 흰 찻잔,
거룻배를 타고 낚시하던, 회남면* 저수지의 수련,
젖은 귀밑머리 아래, 볼이 연꽃잎처럼 하얀 여자,
들이치는 물살에 치마가 연잎처럼 펼쳐진다
뻐끔뻐끔, 입질하는 붕어처럼 떠오르는 기억들
거품이 되어 대야를 넘쳐흘렸다
묵은 땟물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씻고 또 씻었다
솜털 보송보송한 타월을 사려, 대청호에 가야할 것 같았다
청소를 마치고 침대에 누워 눈을 감는다
세탁기 급수조의 물 차오르는 소리가 온 방 가득 찬다
둥둥, 내 몸이 연잎 위로 솟아올라 떠다닌다
둥둥, 흰 연꽃이 배 위로 솟아올라 떠다닌다
둥둥, 붉은 연꽃이 가슴 위로 솟아올라 떠다닌다
둥둥, 꽃잎이 하늘 위로 솟아올라 떠다닌다.
*회남면: 대청호가 조성되어 많은 평야지역이 수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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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因緣(3)
-신처용가 新處容歌
김세영
사랑하지 않았다
삼십 년 품속에서
꼬깃꼬깃 접은 아내의 고백
처용처럼 문밖을 서성이다
야간열차를 타고 경주에 왔다
불국사 아랫동네
바람에 기우뚱거리며
저만치서 앞서가는 사내
춤사위가 예스럽다
어깨에 둘러메고 가는
저 황금빛 술두루미
네 가랑이 흠뻑 적셔주던
서라벌 만월滿月의 젖통 같다
흥얼거리는 노랫말은
처용가處容歌가 분명하다
몸은 내 것인가
맘은 누구 것인가
본디 내 것 아니지만
얻지 못 함을 어찌하리오
아직도 홀로
밤길을 떠도는 저 처용
귀신을 죄다 쫓아버린들
넓적다리 살을 포개어
천년 세월의 탑을 쌓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천년의 강을 건너가는
사내의 거룻배를 타고
밤드리 취하고 싶다
경주의 모든 새벽 종소리가 울어
나를 깨워 하선下船시킬 수 있을는지
모르겠네
개운포開雲浦*를 지나 동해로 흘러가버릴는지
알 수 없네.
*개운포開雲浦: 신라 헌강왕이 동해 용의 아들 처용을 만난 바닷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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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연(5)
-생존生存
김세영
배추 애벌레 한 마리
아지랑이 감고 뒹굴어
솜사탕처럼 부푸는 날
중앙선을 넘어와
역주행하는 자동차처럼
달려드는 사마귀
배추 잎을 할퀴며
짧은 시간의 스키드 마크가 생기고
터지는 에어백처럼
작은 공간의 파열이 일어난다
날카로운 이빨로 뜯어낸
애벌레의 속살 덩어리
햇살 꼬챙이에 꽂힌
새 가슴살 꼬치 같다
구멍 난 배추 잎은
밀가루 반죽의 흔적만 남은
텅 빈 풀빵 틀 같다
애벌레의 체취를
기포 속에 간직한 아지랑이
배추 잎맥에 꿰인 사마귀의 긴 그림자
까마귀의 한바탕 날갯짓에 흩어진다
검은 마침표 하나
푸른 하늘 속으로 사라지고
다시 조용해지는
어느 따뜻한, 꿈같은 봄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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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축! 그날 크게 파티를 여신다면 참석 고려하지용..단 시간이 된다면...^^*
좋은 행사 축하드립니다...장충열 선생님께서 여전히 열심히 활동하시네요..성황리에 행사 이루시길 기원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