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시절 빼어난 용모로 인해 본드걸이라는 애칭으로 부산을 주름잡던 최준. 주먹 하나로 전설이 되어버린 그였지만 군에서 제대한 이후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텨내고 있다. 철없던 시절 아무렇게나 자랑하던 호기도 없고 객기도 남아있지 않다. 그에게는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번듯한 사회인이 되는 것이 당장에 놓여진 과제였다.
그가 저질러온 사고의 뒷수습은 언제나 홀어머니의 몫이었다. 차라리 얻어터지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때리지는 말라던 어머니의 신신당부는 언제나 어긋났다. 그로서는 때리는 것보다 맞는 것이 더 어려웠다. 어린 시절 기지배라 놀림 받고 친한 친구에게까지 당해야 했던 수모를 잊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의 주먹에는 한이 서려있었고 분노가 녹아있었다. 바보같이 놀림받아야했던 자기 자신을 향해 휘두르는 주먹이기도 했다.
'본드걸은 죽었다'를 읽으면서 조해일의 '왕십리'가 떠올랐다. MBC가 KBS의 'TV문학관'을 겨냥해서 야심차게 만들었던 '베스트셀러극장'의 2회작이기도 했던 '왕십리'. 25년이 지났어도 나는 아직 '왕십리'의 주연배우였던 유인촌의 슬픈 눈빛을 잊지 못하고 있다. 14년만에 쓰라린 사랑의 상처를 안고 왕십리로 돌아온 민준태.
첫사랑을 한번만이라도 다시 만나고 싶어 돌아왔지만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왕십리를 주름잡고 있던 패거리들이었다. 그들에게 있어 민준태는 자기편으로 끌어들이지 못하면 상당히 위험한 존재. 결국 민준태가 누리려고 했던 조그만 행복마저 그들에게 짓밟혀 버리고 그는 끝내 눈을 감고 만다. 그를 기다리는 창녀에게 작별인사도 고하지 못하고 ...
어린 나이였지만 가슴이 뭉클했다. 언젠가 세월이 흘러 민준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면 다시 한번 꼭 보고 싶은 작품이었다. 하지만 어렴풋한 기억으로만 남아있을 뿐 드라마도 소설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본드걸~'에서 '왕십리'를 느낄 수 있었고 어쩌면 '본드걸~'은 '왕십리'의 21세기 버전이 아닐까하고 생각해 본다.
웃긴대학에서 경이적인 조회수를 기록하고 네이버에서 검색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던 '본드걸'. 이동훈이라는 이름보다 '러브풀(Lovepool)'이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한 작가의 소설. 이미 2년전에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었고 책으로도 발간된 이 소설을 다시금 펼쳐들었던 것은 그의 죽음 소식을 접했기 때문이고 그로인해 그의 초기작품이자 대표작인 '본드걸~'을 읽어야 할 어떤 의무감마저 느꼈기 때문이다.
'러브풀(Lovepool)'의 글을 처음 접했던 것은 '액션가면의 사랑'이라는 다소 유치한 제목의 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리고 그 이후 나는 그의 팬이 되어버렸다. 신문 연재소설보다 그의 다음 글이 더 기다려질 지경이었다.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말기 간암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던데 이야기 전개가 너무도 생생해서 작가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니면 지어낸 이야기인지조차 구분할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그는 정말로 간암으로 투병중이었고 소설에서처럼 말기상태였다고 한다.
작가가 '본드걸~' 뒷이야기로 남긴 말에 의하면 2년전 '본드걸~'이 영화화될뻔한 적이 있다고 한다. 감독과 함께 합숙해가며 시나리오 작업에 여념이 없었는데 제작사가 망하면서 흐지부지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그는 간암 투병을 시작하게 된다. 그가 몸에 이상을 느껴 부산행 기차에 몸을 실었던 것이 2006년 7월이었는데 2007년 7월 그는 이제 이세상에 없다.
지난 5월 마침내 영화 '박하사탕' 조감독 출신인 김현진 감독이 '본드걸은 죽었다(불량청춘백서)'를 영화화하기로 했다고 한다. 그는 영화화 발표가 있기까지 무려 1년간 제대로 치료도 하지 못한 채 작업에만 매달려왔다고 한다. 시간이 없을 것 같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란다. 그리고 지난달 27일 오후 1시30분, 그는 자신의 작품으로 만들어진 영화를 보지 못하고 끝내 사망했다.
첫번째 영화작업을 함께했던 어느 영화감독의 이야기로 그의 추모를 대신한다.
"인생이란 건 정말 노력을 해도, 간절히 바래도 안 될 때가 있는 것 같다. 지금 우리처럼 말이다. 처음엔 당연히 될 거라 생각하고 시작했었다. 안 될 거라곤 아예 생각도 안 했어. 내 스스로에게 자신이 있었고, 네 글을 처음 접했을 때 내 가슴속에 스쳐갔던 그 번개의 내리침이 나에겐 너무나 강렬했고 선했거든. 비록 회사가 문 닫고, 전부 사라져버렸지만... 끝나지 않았어. 글은 아직 살아있잖아? 우리 머릿속에 남아 있잖아? 그렇기에 우린 끝이 아니라 현재 진행형이라고 생각해. 넌 비록 인터넷 작가지만,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작가들보다 열정적인 작가였다. 적어도 내 기억엔 그래."
2007/08/17 19:52 작성 http://blog.chosun.com/unme/23508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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