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둑길을 걸어
가을이 문턱을 넘었다만 한낮 기온은 30도 부근이다. 추석을 쇤 이튿날 등산로가 없는 삼귀해안 산자락을 탔더니 무릎관절에 무리가 와 휴식이 필요했다. 나한테 휴식이란 집안에 머무는 게 아니라 바깥 활동에서 경사진 산을 오르내리지 않는 정도다. 도시락을 챙겨 산행이 아닌 강둑길을 걸어볼 요량으로 집을 나섰다. 도계동 만남의 광장에서 낙동강 강가로 나가는 버스를 탔다.
용강고개를 넘은 1번 마을버스는 용잠삼거리로 향했다. 가까이 늪과 같은 저수지와 강이 있음을 실감했다. 낮과 밤 큰 일교차는 자욱한 안개를 생성시켰다. 안개는 뭉실뭉실 피어올라 구룡산 중턱까지 뒤덮어 말 그대로 오리무중이었다. 마을버스는 읍사무소가 있는 신방마을을 거쳐 주남삼거리에서 각을 크게 꺾었다. 동판저수지 근처 늪엔 연꽃이 진 꼬투리마다 연실연밥이 달렸다.
아침 이른 때라 주남저수지 입구는 한산했다. 아마 한낮이 다가오면 연휴를 맞아 산책객들이 더러 찾지 싶었다. 이맘때 주남저수지는 철새보다 제3배수장에서 용산마을에 이르는 기나긴 둑길의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나는 주남저수지는 차창 밖으로 스쳐보고 대산 들녘을 거쳤다. 너른 들판의 벼는 누렇게 익어 고개를 숙여갔다. 한 달여 사이 추수는 끝나고 겨울 철새가 오지 싶다.
예전 1번 마을버스 종점은 가술 지나 모산마을이었다. 언제부터인가 제1수산교와 일동을 거쳐 신전마을까지 연장 운행하고 있다. 나는 제1수산교에서 내렸다. 그곳이 내가 출발한 일일 도보여행 기점이었다. 강물 따라 내려가면 김해 한림정이다. 다리를 건너면 수산과 초동이다. 강을 거슬러 오르면 본포와 마금산 온천이 나온다. 본포에서 다리를 건너면 창녕 부곡 학포마을이다.
버스정류소에 내리니 강둑엔 정자가 세워져 있었다. 강 건너 수산이 바라다 보이고 둑 아래 너른 둔치는 잡초가 무성했다. 환삼넝쿨이 엉켜 있고 여름내 꽃이 피고 진 망초와 달맞이꽃은 시들었다. 신성마을 노부부는 아침 일찍부터 깨 꼬투리 같은 달맞이꽃 열매를 채집했다. 달맞이꽃 열매는 깨알보다 더 작은데 기름을 짜서 약용으로 쓰인단다. 아토피를 다스리는데도 효험이 있다.
강을 거슬러 조금 더 올라가니 일동과 신전마을 뒤 강변여과수취수장이 나타났다. 둔치 취수정에서 지하수를 끌어와 상수도로 만들어 공급하는 시설이었다. 강 건너편은 밀양 초동 곡강마을이었다. 수산교와 본포교 사이 둔치에서 가을 풍경이 가장 운치 있는 곳이다. 드넓은 둔치엔 물억새와 갈대가 이삭이 패어 은물결로 일렁거렸다. 나는 한동안 둑에 서서 둔치를 내려다보았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4대강사업의 큰 가닥은 종료되었다. 강둑의 자전거도로에는 둘 셋씩 자전거를 타고 질주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창녕함안보 수문을 빠져나온 강물은 본포를 지나 수산으로 흘렀다. 환경단체에서 녹조가 엉겼다고 야단이었던 강물은 뉘엿뉘엿 흘러 삼랑진을 지나 구포로 흘러갔다. 낙동강하구언을 지나면 골골마다 쌓인 사연은 바닷물에 섞여 모두 녹여질 것이다.
본포 둔치엔 수변생태공원이 조성되어 있었다. 예전 본포나루보다 조금 아래쪽엔 나루터도 재현해 두었다. 지금은 내수면 어로작업에 쓰이는 날렵한 동력선 서너 척이 묶여 있었다. 당국에 허가를 받아 낙동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는 사람이 있는 듯하였다. 둔치엔 가족단위로 캠핑을 나온 사람들이 고기를 굽고 있었다. 나는 본포교 밑 쉼터에서 가져간 도시락을 비웠다.
북면 명촌과 부곡 임해진 사이를 빠져나온 강물은 본포에 이르러 벼랑에 부딪쳐 휘감아 흐른다. 그곳 암반에 취수정을 뚫어 강물을 퍼 올린다. 취수정 앞을 두르는 수변생태보도가 놓여 본포에서 북면 신천으로 강물 위를 건널 수 있도록 해두었다. 샛강엔 잉어가 간간이 펄떡거렸다. 바깥신천 둔치엔 북면 수변생태공원이었다. 제철을 만난 코스모스가 원색의 꽃을 피워 하늘거렸다. 13.09.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