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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 게시판 스크랩 간잽이 - 이동삼 명인(名人)
이장희 추천 0 조회 1,462 15.03.27 11:15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간잽이 - 이동삼 명인(名人)

[出處] 예미정 안동간고등어 누리집 박물관

 

 

 

이러이러! 여명(黎明)의 강구항, 소몰이꾼은 고등어 가득 실은 달구지 끄는 소의 걸음을 연신 재촉합니다. 달구지는 무거운 짐 진 걸음답지 않게 제법 가벼운 소걸음 고마운 탓으로 청송의 황장재 넘어 해거름 녘엔 임동의 챗거리장터에 이릅니다.

 

간잽이는 어깨춤을 추듯 고등어 배를 갈라 왕소금을 뿌리겠지요. 노래인양 흥얼대는 간잽이 하는 말 좀 들어보소.

 

“아직은 간고등어가 아니지. 안동 가야 제 맛 나고, 간고등어 이름 얻지. 암! 안동간고등어라야 제대로 된 간고등어인 게지!”

 

 

 

이동삼 명인은 1941년 안동시 길안면 만음리 가난한 소작농의 차남으로 태어났습니다. 그 시절 살림살이라는 게 다 그랬다고 하기엔 명인의 집안 살림은 너무나도 가난했습니다. 변변한 땅 한마지기 없이 소작농의 삶을 살던 명인의 선친은 어질고 부지런하기가 동리 안팎에 소문난 이였으되 살림은 나아질 기미가 없었습니다. 형편이 이러하고 보니 어린 동삼이 초등학교 언저리도 못 가 본 채 열다섯 어린 나이에 행상단을 따라 나선 것은 그리 놀랄 일도 아니었지요.

 

새벽에 강구항을 떠나 황장재 넘어 임동의 챗거리 장터에 닿으면 날은 어둑어둑해졌고 등짐꾼들은 짐을 내려 고등어의 배를 갈라 왕소금을 뿌렸습니다. 소년 이동삼은 누가 시키기도 전에 고등어 씻을 물을 길어 나르며 이런저런 심부름을 했습니다. 챗거리에 하룻밤 묵어 이튿날 동이 트면 또 10여리를 걸어걸어 안동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제서야 심부름 삯으로 고등어 두어 손이 동삼의 손에 들려졌습니다.

 

“내 평생 그렇게 맛있는 간고등어는 못 먹어봤어! 고등어 굽는 냄새만 맡아도 배가 부르던 시절 이었으니 말이야.” 정작 고생한 당신은 아궁이 숯불에 구운 간고등어 머리도 겨우 드실 수 있었다면서 미소를 짓는 이동삼 명인.

 

군대를 다녀온 청년 동삼의 고생은 어물전에 취직하며 잦아드는 듯 보였습니다. 처음에는 어물전에서 간고등어를 떼어다 이 동네 저 동네 돌아다니며 물건을 팔았습니다. 그에게 물건을 대주던 어물전 주인은 남달리 부지런하고 사람 사귐이 좋아 단골까지 두고 매출을 꽤나 올리는 그를 예사로 보아 넘길 수 없었고 급기야는 아예 그를 어물전에 들어 앉혔습니다.

 

과연 주인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습니다. 인사성 밝고 인정 많은 동삼 청년이 파는 간고등어는 다른 어물전 간고등어보다 인기가 좋았고 덕분에 가게 매출이 늘기 시작했던 것이죠. 대물림된 부지런함 때문이었는지 그는 제일 먼저 출근해 문을 열었고, 주인이고 일꾼이고 모두 다 퇴근해야 비로소 뒷정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자연 그의 손에 주인이 간고등어를 쥐여 보내는 날이 늘어갔습니다. 말하자면 보너스였던 셈이지요.

 

이런 대접에도 청년 동삼의 마음은 자꾸만 간잽이에 이끌렸습니다. 손질된 선홍색 고등어 속살 사이로 하얀 소금을 첫눈처럼 뿌리는 간잽이를 보면 그리도 가슴이 설?던 것입니다. 그러나 간잽이로 말하자면 어물전 최고 요직으로 아무나 될 수 있는게 아니었습니다. 동삼은 다 퇴근한 어물전에 혼자 남아 고등어 배를 갈라 씻은 다음 미리 눈에 익혀둔 간잽이 흉내를 내보곤 했습니다. 진작 동삼의 마음을 읽은 주인은 모른 척 하기도 너무 긴 시간이 지난지라 마침내 어느 날 슬며시 그의 등을 작업장으로 떠밀었습니다. 동삼은 속으로 ‘이제 됐다!’고 외쳤죠. 그러나 기쁜 마음도 잠시, 그날부터 생고생이 시작됐습니다. 일을 가르쳐 주는 이는 없고 저마다 필요한대로 잔심부름만 시켜댔던 것이지요. 그러나 그 어떤 힘겨운 심부름도 마다할 동삼이 아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심부름이 끝나는 대로 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는 일을 찾아 했습니다. 고등어 배를 가를라치면 서슬 퍼런 칼날에 손을 베기가 일쑤였고, 하루도 거를 날 없는 물일에 못 이겨 손등이 갈라 터지는 건 예삿일이었습니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눈을 흘기던 작업장 선배들이 붙임성 있고 부지런한 동삼의 성품에 하나, 둘 성심으로 일을 가르쳐주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남보다 빨리 일을 몸에 익혔고, 제 몫의 일이 끝나면 아직 덜 마친 다른 이들을 도왔습니다. 덕분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 자연스레 여러 공정을 익히게 되었습니다.

 

이 명인이 고등어만 보고 중량을 정확히 맞추는 것도, 매번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한 양의 소금을 잡는 것도 타고난 감각 때문이라기보다는 여러 공정을 두루 몸에 익힌 그 변할 줄 모르는 성실함 때문일 터이지요.

 

어느덧 간잽이 이동삼의 손을 거친 안동간고등어는 안동장을 보러 오는 이들 사이에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출향인사들도 고향을 다녀갈 때면 그를 찾아와 손수 만든 간고등어를 한 손씩 사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일하는 재미에 빠져 간잽이 인생만 40년을 훌쩍 넘길 무렵 ‘안동간고등어 브랜드화’사업을 구상 중인 안동간고등어 공장장으로 스카우트 됐습니다. 안동간고등어 공장장이 된 이동삼 명인은 지난 40여년의 경험으로 위생적이면서도 전통의 깊은 맛을 살리기 위한 제조공정을 10여단계로 나누어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이러한 노력들은 후에 HACCP 생산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기초가 되었지요.

 

안동간고등어간잽이보존회 교육과정을 마친 제자들과 함께 - 미래의 간잽이 명인을 기대

 

이 명인은 또 ‘안동간고등어간잽이보존회’를 결성하고 간잽이 교육과정을 운영하며 후배 간잽이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HACCP 기준에 맞춘 제조공정을 과정마다 과학적인 근거로 기술교육하고 마케팅, 브랜드홍보, 리더십 등의 교육을 통해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이 프로그램은 안동간고등어의 100년을 이어갈 차세대 간잽이들을 배출해내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제 맛이 아니면 내놓지 않겠다는 처음 다짐을 지켜온 사람. 그래서 언제나 최고의 재료여야만 한다고 이유 있는 고집을 세워온 안동간고등어 50년 간잽이 이동삼 명인. “정성이 없으면 그게 어디 입으로 들어갈 음식인가 바다로 돌려보내고말 고등어 한 마리일 뿐이지.” 오늘도 온 정성 다해 간고등어를 손질하는 명인의 주름진 손을 바라봅니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손, 간잽이라는 이름을 가진 손입니다.

 

안동간고등어간잽이보존회 수업 모습, 우리의 것이 귀중한 시대가 옵니다

 

대를 이어오는 우리의 맛을 세계에 전할 안동간고등어 간잽이들입니다

 

[出處] 예미정 안동간고등어 누리집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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